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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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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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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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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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화. 손해

DUMMY

“으리으리하게도 차렸네.”


녹호가 무심하게 말했다.

그 말대로 테이블 위에는 수많은 술병으로 그득그득 쌓인 채였다.

와인, 위스키, 브랜디 등등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안주 역시 과일, 함박스테이크, 생선구이처럼 취향대로 마음껏 골라 먹을 수 있었다.


소파 옆에는 언제든 일할 심부름꾼도 서 있다.

가져다 달라는 건, 뭐든지 가져오겠지.

술이나 안주뿐만이 아니더라도.


“예. 우선 앉으시죠.”

“그래. 들어는 봐야 하니까.”


반말.

시장이 뒤늦게 인상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처음 한 말은 감탄사일 수 있겠지만, 지금은 명백히 하대였다.


“최 실장.”

“예, 고객님.”

“대기하고 있는 아가씨들 이쪽으로 오라고 하세요.”


당장은 화내지 않았다.

괜히 심기 불편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혼잣말이라고, 제멋대로 납득했을지도 몰랐다.


“딱딱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전에 돈독해지고 싶어서 이곳에서 만나자고 했어요. 괜찮죠?”


녹호는 별말 하지 않았다.

그저 주변에 가득한 술병을 찬찬히 살필 뿐이다.

꼭 견적이라도 내는 듯했다.


그러는 동안 종업원은 문을 열고 되돌아왔다.

뒤에는 앳된 여자들이 줄줄이 따라온다.

접대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겠지.

화장은 짙었고 향수 냄새도 진했다.


“먼저 고르시죠. 허허, 두세 명씩 고르셔도 됩니다.”


인심이라도 쓰듯이 손짓한다.

사나운 눈길은 모두를 찬찬히 훑었다.

치파오, 오피스룩, 짧은 원피스 차림이 전시되듯이 섰다.

옆에서는 등을 떠밀 듯이 잡담을 해댄다.


“최 실장, 우리 여배우님은 어디에 계시나?”

“여기 맨 오른쪽에 있습니다.”

“오호. 역시 배우는 달라. 얼굴 자체에서 아우라가 흘러나오네.


듣는지 마는지 두 눈만 번뜩인다.

그러다 커다란 입은 문득 질문을 내뱉었다.


“다들 몇 살이지?”


흔히 할 수 있는 질문.

동시에 여자들은 서로를 번갈아 보았다.


“제가 23살이에요.”

“저는 22이요.”

“그리고 저는 20살이고 나머지는···”

“나머지도 만 19세입니다. 손님은 그렇게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그러던 중, 종업원이 말을 가로챘다.

그렇게만 알고 있으라니.

꽤 의미심장한 말이다.

녹호는 여기에 짧게 조소를 지었다.


“하, 그래. 그런데 막내는 누구야?”


집요한 이야기였다.


“아, 어린 친구들 좋아하시는구나? 하긴, 애들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는 법이죠.”


좋은 기분으로 묻는 말은 아닐 터.

하지만 정작 상대방은 무언가 잘못 이해한 모양이다.

그러니 이런 농담을 하겠지.


“거기 왼쪽에 있는 두 명.”

“네, 네? 저희요?”

“그래, 얼른 자리 잡아. 손님 기다리시잖아.”


짧은 원피스를 입은 두 명.

얼굴은 유난히 앳된 기색이 가득했다.

쭈뼛대는 몸짓으로 녹호에게로 향한다.

이내 조심히도 양옆에 앉는다.


“이봐! 접대하러 왔으면 똑바로 해!”

“아니, 저희는 그게···.”

“소속사 이름 달고 왔잖아. 대충할 거야?”


두 여자아이가 크게 움찔댔다.

자리를 망친다면, 회사에 피해가 간다니.

책임감이라도 느낀 걸까?

녹호를 향해 어설프게 미소를 지었다.


“허벅지도 주무르고 술도 따라주고.”


시키는 말에 잠시 허둥지둥댄다.

이내 작은 손이 단단한 근육을 향해 뻗어간다.


“그만하지.”


도플갱어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 목소리는 명백할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 혹시 애들이라?”

“허허, 보기와는 다르시네.”


피녹호.

배려를 모르는 성격이지.

갑자기 애들을 챙기는 건, 외부인이 보기에 이상했다.


그런 시선에도, 도플갱어는 멈추지 않았다.

유리잔을 쥐더니 벽을 향해 힘껏 던진다.

투명한 것이 수많은 조각으로 깨져나간다.


“꺄악···!”

“엄마야···!”

“이게 무슨!”


주변에서 비명을 지른다.

시장과 종업원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로운 표정은, 강한 자극에 흩어지고 말았다.


“나는 사업 이야기를 하러 왔는데.”


녹호는 분위기를 휘어잡고선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따위 자리를 마련하나?”

“이, 이 정도면 어디 가서 모자란 접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게 문제지.”


사나운 눈빛이 주위를 스쳤다.

사자처럼 위험한 분위기는 사방에 압도감을 주었다.

그건 직위와 상관없는, 카리스마라고 불리는 능력이다.


“접대도 결국은 투자지. 더 많이 벌어먹을 생각으로 하는 짓.”

“그건 그렇지만···.”

“그럼 이 술, 안주, 여자. 결국에 누가 계산하는 거지? 마지막에 감당하는 사람이 누굴까?”


여기에 통찰력까지 서렸다.

날카롭게 요지를 찌르는 단어들, 그건 꼭 송곳니와도 같았다.


“억측이십니다.”

“사업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사람을 벗겨 먹으려 들어? 내가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지?”

“그저 존중을 표할 뿐입니다. 적어도 대기업 대리나 부장보다는 나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 그딴 놈들은 좋다고 하겠지. 결국, 남의 돈으로 대우받으니까.”


의전과 관련된 비용은 집단이 감당한다.

그렇기에 직원은 과도한 대접을 받더라도 손해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업가는 회사원과 다르다.

여기에 직접 인과관계가 엮였다.


“결국, 다 내 돈으로 생색을 내는 중이잖아?”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돌고 돌아서 그 비용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물주는 자신이었으니까.


“그···, 생각보다 비용은 적은 편입니다. 이쪽에서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장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녹호가 하는 말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겉보기로는 이쪽에서 대접하는 모양새지만, 어떻게든 벌충하긴 할 터였다.

건설사와 이야기하든, 다른 이해집단과 권리를 주고받든.

어쨌거나 시커먼 돈을 최대한 긁어모을 테지.


“아까는 모자란 접대가 아니라고 하더니, 이제는 비용이 적은 편이라고? 앞뒤가 안 맞네?”

“큼! 틀린 말이 아닙니다. 우려에 비해선 확실히 저렴합니다.”


필요하면 증명이라도 할 기세다.

유리한 측면을 들며 변명하겠지.

하지만 도플갱어는 여전히 비웃음을 흘렸다.

커다란 손으로 곧 술병을 하나씩 짚어가며, 숫자를 읊어대기 시작한다.


“80, 190, 270, 330···. 이런 식으로 다 합치면 술값만 얼추 700만 원 되겠네. 안주까지 하면 1000. 아니, 바가지를 생각하면 1500까지도 나오겠어.”


도플갱어는 피녹호를 흉내 내야 한다.

당연히도 그 관심사 정도는 대충 알아뒀다.

술 가격 정도는 대략 어림짐작으로 짚을 수 있었다.


“여기에 사람은 얼마지? 멀쩡한 여자애는 만 19세로 만들고, 하룻밤 여배우 끼고 도는 비용 말이야.”

“그건···.”

“대략 1000, 2000? 겨우 하룻밤에, 그 정도를 태우겠다는 말이지? 사실상 내 지갑에서 빼간 돈으로?”


정확한 지적이다.

수천만 원에 해당하는 접대를, 이쪽이 제공하는 셈이다.

시장 역시도 여배우를 껴안고 헤실대겠지.

이 자체만으로도 화낼 이유는 충분했다.

속사정과 상관없이, 순수하게 손익만 따지더라도 말이다.


“그게, 그럴 정도로 비싸진 않습니다. 가성비···. 그래, 가성비가 좋습니다.”

“정말?”

“예. 이곳이 싸게 잘합니다. 다른 곳으로 가봐야, 이만큼 안 해줍니다.”

“맞습니다, 고객님. 저희가 싸게 아주 잘 해드립니다!”


시장과 종업원이 합세했다.

어떻게든 수습하고 싶겠지.

녹호도 그에 호응해주는 듯했다.


“그래? 그럼 다 이득이네?”

“하하, 맞습니다! 윈윈 아니겠습니까?”

“나도 이득, 댁도 이득, 가게도 이득이야. 그러니까 판을 짰겠지.”


하지만 사나운 목소리는 다시 은근해졌다.


“그럼 말이야···, 누가 손해야?”


깊숙이.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분명 돈이 움직이는데 아무도 손해는 없다? 그건 좀 이상하잖아?”

“꼭 그렇게 볼 일만은···” “아아, 너무 우리끼리만 이야기했네. 다른 사람 의견도 들어봐야지.”


녹호는 몸을 등 뒤로 젖혔다.

이내 거대한 양팔을 펼쳐, 양옆에 있는 여자아이들에게 어깨동무했다.


“꺄악!”


비명이 울려 퍼졌다.

묵직한 근육이 갑작스레 어깨 위로 떨어져 내린 탓이다.

더군다나 무섭게 생긴 어른이지 않은가?

겁먹을 만도 했다.


“꼬맹이들아,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네, 네? 뭐, 뭘···.”

“오늘 하룻밤에 수천만 원이나 하는 가치가 오가. 주는 사람도 있고, 받는 사람도 있어. 분명 여러 명이 이득을 보고 있으니, 손해를 보는 인간도 존재하겠지.”


사자가 앞발로 토끼를 짓누른다면 이럴까?

커다란 팔 근육은 두 여자아이를 뭉개듯이 끌어당겼다.

그리고 귓가에 으르렁거리듯이 질문을 속삭였다.


“그럼 그게 누굴까?”


과연 여기서 누가 손해를 보는가?


“저는 잘 모르겠는데···.”

“힌트를 줄게. 나는 손해 볼 생각이 없어. 회삿돈 허투루 쓰게 두지는 않을 거야.”


도플갱어가 시장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건 경고도 언뜻 섞여 있었다.


“세금으로 하지 않을까요?”

“이런 가게에?”

“아, 그럼 개인 돈···. 그럼 손해는 저 아저씨가···.”

“대략 3, 4000만 원을 온전히 낸다고?”


여자아이들이 멈칫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과할 터였다.

하룻밤 술값으로 평범한 사람의 1년 연봉을 태운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것보다는 싸게 해줘야 할 것 같아요. 가게에서도 좀 저렴하게요.”

“그래? 그럼 손해 보면서 장사를 하겠네?”

“네? 아···. 최대한 돈을 아껴서 팔아야 하지 않을까요? 세금도 안 내고요.”

“맞아. 근데 팔 때는 몰라도, 살 때는 안 돼. 아까 말했지? 술값은 1500만 원 정도라고. 이건 못 건들 거야.”


도플갱어는 이제 종업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뭐라고 답하고 싶은 듯하지만, 그 서슬에 굳어버렸다.

사나운 입가는 거리낄 것 없이 질문을 내뱉었다.


“그럼 뭐가 저렴해질까?”


여기서 손해는 누가 보는가.

녹호는 눈 뜨고 당해줄 정도로 녹록하지 않았다.

가게는 적자를 감수하며 장사하지 않는다.

시장 역시도 피를 보지는 않을 터였다.

애당초 사업자가 투자금 유출을 막는 건 당연한 일이니.


“···저, 저희요?”

“······.”

“그치만 데뷔시켜준다고···. 좋은 기회라고···.”


도플갱어는 어깨에 올려두었던 양팔을 풀었다.

그 다음 얇은 허리를 받치듯이 감쌌다.


“누가 손해를 볼까.”


속박은 약해졌다.

하지만 손끝은 민감한 부위를 덮었다.

촉감이 짙어진 만큼, 더욱 소름 돋을 터였다.


“간단해. 자기 손으로 자기 몫 못 챙기는 애들이 보는 거야.”


작가의말

혹시나 싶어서 말하지만, 이 부분은 그냥 상상력입니다.

불법 유흥업소는 잘 모르거든요.

뉴스로 언뜻 본 적 있습니다.

얇은 가벽 세워서 공간을 만들고 영업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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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151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1) 24.09.14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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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146화. 그리움 24.09.02 8 0 12쪽
145 145화. 녹호의 존댓말 24.08.31 7 0 11쪽
144 144화. 자격 24.08.29 7 0 12쪽
143 143화. 3인칭 주인공 시점 24.08.26 8 0 12쪽
142 142화. 후원 24.08.24 11 0 12쪽
» 141화. 손해 24.08.22 10 0 12쪽
140 140화. 이런 취미 24.08.20 10 0 12쪽
139 139화. 질투 24.08.17 9 0 12쪽
138 138화. 방탕함 24.08.15 11 0 12쪽
137 137화. 웹 드라마 24.08.13 11 0 13쪽
136 136화. 녹음실 24.08.11 9 0 12쪽
135 135화. 인간의 단면 24.08.08 10 0 12쪽
134 134화. 무료 배식 24.08.06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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