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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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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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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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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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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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그리움

DUMMY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그럭저럭이죠.”


목소리엔 퉁명스러운 기색이 서렸다.

헤어진 가족이란, 그렇겠지.

두오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다.


“여전하네. 마지막에 봤을 때랑 똑같아.”


태도를 달리한다면 의심할 테지.

기억도 못 하는 과거와 똑같이 대해야만 한다.

마침 이를 아는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 대에서부터 보좌해온 인물이.


“두오 씨도 고생이 많아요.”

“아닙니다, 사모님.”

“하, 사모님이라. 이제는 좀 낯간지럽네요.”

“죄송합니다, 재혼까지 하셨는데. 마땅한 호칭이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아니에요. 트집 잡을 생각은 없었어요.”


녹호의 친어머니.

아버지와 파국을 맞았지.

다행히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듯 보였다.


“앉아도 되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이미 자리까지 마련해뒀으니까.


“왜 오셨어요?”


퉁명스러운 어조.

두 사람이 이렇게나 서먹서먹했었을까 싶다.


“아직도 나한테 화가 났니?”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산범이가 죽고 난 다음, 너한테 소홀히 했잖아. 아빠랑 엄마가 방황해서 두오 씨 손에서 자라다시피 했고.”

“잘 아시네요.”


감정은 물과 같다.

가슴 한 켠에 담아둘 수도 있고, 오래 두면 휘발하기도 한다.

이를 이용해서 인간은 관계를 개선하고 유지해나간다.


“많이 원망했을 거라고 생각해. 누구한테든 화내고 싶었을 테고.”


하지만 감정은 물과 같았다.

한 줌이라면 모를까, 끝없이 담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음에 쌓아둔 둑 안에 끝도 없이 밀어 넣었다면, 언젠가는 터지고 만다.

개연성 없는 분노란 이때 생겨나지.


“그래서요? 지금 와서 죄책감이라도 느끼시나요?”

“얘야.”

“아니면 인사치레? 억지 화해라도 하고 싶으시고요?”


도플갱어는 피녹호를 동정했지.

필요에 따라 죽이긴 했지만, 사정은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하려던 짓도 납득은 했을 터였다.


“그땐 내가 현명하지 못했어. 너무 어렸지.”

“자식보다 어리진 않았죠.”


그래서일까?

연기가 연기 같지 않았다.

꼭 누군가를 대변하는 모양새였다.


“어른은 그래도 어른이어야 했어요. 애들 앞에서는 더더욱.”


자식은 부모의 잘못을 원망할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예 밀어내기는 힘들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못했다.


지금껏 피녹호 역시도 그랬겠지.

결국, 엇나가고서도 어머니를 완전히 외면하지는 못했다.

그저 방탕하게만 살아갈 뿐이다.

분노를 엉뚱한 곳에 쏟아가면서.


“···달라졌네, 지난번이랑.”


여인이 씁쓸하게 중얼댔다.


“분명 녹호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

“왜 대놓고 말했어? 나한테는 들킬 수 있다는 걸 알면서.”


그랬지.

두 사람은 저택에서 마주쳤었다.

여인은 그저 첫째 아들인 산범을 닮았다고만 생각했겠지.

상식적으로 도플갱어를 떠올릴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10여 년이 지나고서 세상이 요란을 떨기 시작했다.

동죽이 녹호와 예현, 천선을 동일 인물이라고 외쳤다.

자신 역시 그런 존재라고 증명했지.

괴이는 실존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저택에서 있었던 악몽이 떠올랐을 터였다.

기이할 만큼 제 첫째 아들을 빼다 박은 아이, 순간적이나마 착각했던 자신, 그래서 더욱 혐오감이 들던 순간.

동죽이 진실을 말했다고, 홀로 깨달았겠지.


“진짜 녹호는 어떻게 했어?”

“그런 이야기,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혹시···.”

“하시지 말라고요.”


불행한 상상.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 아플 터였다.

하지만 가능성 높은 일이기도 했다.

다른 위장 신분도 있다는 이야기는 그 사람을 처리했다는 뜻이니까.


두 눈을 감았다.

가슴 속에선 매캐한 감정이 피어오르겠지.

후회라고 불러야 할까, 슬픔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제 잘못 역시도 뒤섞인 과거는 애매하기만 할 뿐이다.


“···네가 녹호 대신 화를 냈다면.”


이내 무언가 떠오르기라도 했다는 듯 말했다.


“아니, 그 이야긴 하지 않을게.”


여인이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그래, 항상 어른이 문제지. 너도 많이 힘들었지?”

“다시 말하지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나도 알고 있다는 뜻이야. 녹호가···, 그러니까 너도 기억하지 못하는 네가 얼마나 속이 문드러졌는지.”


피녹호.

아버지처럼, 그리고 도플갱어처럼 끝을 바라고 있었다.

그저 스스로 죽지만 못한 채였지.

그렇기에 가장 허술한 모습으로 지하실로 들어갔다.

본인의 바람을 외면하고서, 가장 바라는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면서.


“다시 못 할 짓을 하게 할 뻔했네. 미안해···. 그리고 미안해.”


사과는 두 번 이어졌다.

도플갱어에게 죽음을 미뤘던 과거를, 그리고 미룰 뻔한 지금을 말하는 것일 테지.

하나는 제 아들의 몫으로,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몫으로.


“사실은 천동죽이 찾아왔었어. 여러 가지로 증거를 모으려는 모양이야.”

“짐작했어요. 정의로운 일을 하려고 했겠죠.”

“맞아. 몸조심하라고, 그 말이 하고 싶어서 왔어.”


이미 반쯤 용서하고 왔으리라.

그러니 이리 말할 수 있을 테고.


“끝났으니까 갈게.”


여인이 몸을 일으켰다.


“사모님, 앉으신 지 얼마나 됐다고···.”

“아니요, 괜찮아요. 매번 제가 좋아하는 다과를 내주셔서 감사해요.”

“별일 아닙니다.”

“이제 찾아올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럴 이유도 사라졌으니까요.”


친아들도 죽었는데, 왜 이곳으로 돌아올까?

과거를 떠올려 봐야 후회와 슬픔만 몰려들 텐데.

모두 의미 없는 일이다.


“갈게.”


몸을 돌렸다.

다신 못 만날 발걸음이었다.

저택도, 두오도, 도플갱어도, 그리고 녹호도···.


“혹시, 미안하기만 한 사람이 그리워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 날 후회가 몰려올 때 어디로 가야 하는가?

보통의 부모가 납골당이라도 향할 때, 여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은 아들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자, 문득 초조해졌을 터였다.


도플갱어도 짧게 숨을 들이 삼켰다.

무덤이라.

당연히도 만들어두지 않았다.

그런 흔적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다.

산 사람이 떡하니 있는데, 죽은 이의 뼈가 나올 수는 없으니.


“···미안. 알려줄 수 없겠지.”


여인도 내뱉고 나서야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설령 흔적을 남겼어도 내어줄 수 없으리라, 금세 결론을 내렸겠지.

얼른 떠나는 편이 좋았다.


녹호는 그 뒷모습을 보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단 음식을 먹고 싶기라도 한 듯 과자를 툭 건들기도 했다.

발소리가 멀어진다.

자식 잃은 부모가 답을 쥐지도 못한 채 떠나간다.


“다신 만나지 못하는데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냉정하기만 한 말.

여인도 나가려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안 듣는 편이 나을 이야기일 테지.

하지만 그럴 만한 이의 원망이기에 잠자코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그냥 살아가야죠. 밥도 먹고 잠도 자고 평소처럼 지내다가, 그러다 너무 평범해서 가끔 자기한테 혐오감도 느끼고.”

“······.”

“하루는 울적하게, 하루는 멍하게, 그러다 또 하루는 웃으면서···. 그렇게 살아가야죠. 여느 사람들처럼요.”


그리움 역시 자기만족일 뿐이다.

그렇기에 무엇에 대고 그리워하든 상관없을 터였다.

그저 원하는 만큼 그리고 그리며 또, 그리워하면 되겠지.


“고마워.”


여인은 그 말을 남기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저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했다.



***


화보 촬영 스튜디오.

천선은 단색 배경을 등 뒤에 두고서 가볍게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찰칵이는 빛은 연이어 감탄사를 쏟아낸다.


“자세 좋으세요! 아, 지금 좋았어요! 방금 그거 또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계속 그냥 있었는데요?”

“네? 진짜 괜찮···, 아! 지금, 지금!”


플래시가 계속해서 터져나갔다.

저렇게 많이 찍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제 사진만 너무 많지 않나요? 테이도 남았는데.”


오죽했으면 그런 말을 뱉을까?

그 말에 사진기사는 아쉬운 듯이 일어섰다.


“하긴, 다 실을 수도 없겠네요.”

“그럼 잠시 쉬어도 괜찮을까요?”

“네. 그리고 테이 씨 들어오세요.”


도플갱어가 자리에서 나오자, 산뜻한 발걸음이 다가왔다.

화사한 꽃이라도 될까?

밝은색 원피스에 식물을 연상시키는 레이스가 가득하다.

싱그러운 미소까지 더해지자, 언뜻 향기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삼촌! 멋있었어요!”

“그래, 잘할 수 있지?”

“네!”

“보고 있을 테니까 열심히 해.”


천선은 손끝으로 이마를 살짝만 두드려주었다.

애써 다듬은 머리카락이 망가지지 않도록.


“헤헤.”

테이는 헤실대면서 카메라 앞에서 섰다.

연기일 리 전혀 없는, 자연스러운 웃음이다.

사진작가는 이를 지적하지 않고, 얼른 셔터를 눌러댔다.

심지어 플래시 크기도 줄어든 듯했다.

지금 감정을 흐트러짐 없이 담고 싶은지.


도플갱어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보호자를 자처하니, 당연한 일이겠지.

그러다 문득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선다.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온 모양이다.


“네, 서주 씨.”


교회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일하는 와중에 갑자기 연락해오다니.


-교회에 세무조사가 들어온대요.

“갑자기요?”

-네. 저도 고객님께 들어서 먼저 안 거예요. 당장은 아니고, 불시에 올 확률이 높대요.


고객님이라.

평범한 신도에게 부를 만한 호칭은 아니었다.


“이해가 안 가는데요? 그냥 시늉인가요?”

-아니요. 진짜로 해요.

“짜고 치기도 아니고, 아예 급습해오지도 않고? 이상한 상황 아닌가요? 이해관계가 얽힌 느낌인데요?”


한 곳에서 벌이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 도플갱어를 공격했고, 제 3자가 끼어들었다.


-그게···. 천동죽 씨, 천청해 의원님이랑 싸우시잖아요. 그래서 보수정당 쪽만 돈세탁해줬거든요.


정치인 불법 비자금을 조성해주고 받는 수수료.

이는 교회 주요 자금줄 중 하나였다.

지금껏 꽤 쏠쏠하게 이득을 봐왔겠지.

다만, 최근에는 거래를 가려서 받기 시작한 모양이다.


“보복을 준비하나 보네요. 우리 고객님들은 미리 소식을 듣고 정보를 건네주셨고요.”


정치는 돈을 잡아먹는 활동이다.

후원만 막혔을 뿐인데, 청해는 숨통이 조여오지 않는가?

모든 정치인은 현금에 강렬한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건 진영과 상관없는 진리였다.


“동죽 씨도 꽤 바쁘겠어요. 명분을 마련하려면 정황을 포착해야 하니까.”

-네?

“그런 게 있어요. 누가 집에 와서 경고해줬거든요. 내 숙적 나리께서 발로 뛰고 있다고요.”


청해와 동죽은 계속 당하기만 했다.

이대로 간다면 그대로 으스러지고 말겠지.

할 수 있는 방어는 해봐야 했다.

그게 공격이라는 이름이 붙은 행위일지라도 말이다.


“좋아요. 방비는 어떤가요?”

-거래 내역은 확실히 정리해뒀어요. 비밀 장부만 걸리지 않으면 안전할 거예요. 정 불안하시면 파기라도 할까요?

“있는 편이 돈 관리하기 편하죠?”

-네.

“그럼 따로 제 집에 보관할게요. 교회는 당분간만 투명하게 운영하고요.”

-알겠어요.


방비는 깔끔하게 정리됐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비리쯤이야, 미리 대비할 수 있는 경로에 불과했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 이미 계획도 다 짜놨겠지.


“여기서 끝낼 리는 없고, 또 뭐를 준비하셨을까?”


도플갱어는 저 먼 곳을 보며 중얼댔다.

어딘가로 찔러 들어올 칼날을 기다리듯이.


작가의말

이번화로 과거의 개연성 정리는 끝난 듯합니다.


-피녹호의 진짜 어머니도 도플갱어를 눈치챌 만하지 않은가?

-두오는 왜 망나니 피녹호의 죽음에 그렇게까지 분노했는가?

-진짜 피녹호는 왕자와 거지를 경계한다고 말했으면서 왜 그렇게 쉽게 퇴장했는가?


저는 필력이라고 말하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모든 장면에 의도와 장치를 여러 가지 넣어두려고 노력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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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154화. 법치가 말하는 선의 24.09.21 6 0 12쪽
153 153화. 보복 24.09.19 7 0 12쪽
152 152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2) 24.09.16 7 0 13쪽
151 151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1) 24.09.14 10 0 12쪽
150 150화. 맞는 오답, 틀린 정답 24.09.12 9 0 12쪽
149 149화. 재연 24.09.10 8 0 13쪽
148 148화. 반격 24.09.07 9 0 14쪽
147 147화. 단 한 명 24.09.05 11 0 12쪽
» 146화. 그리움 24.09.02 9 0 12쪽
145 145화. 녹호의 존댓말 24.08.31 7 0 11쪽
144 144화. 자격 24.08.29 7 0 12쪽
143 143화. 3인칭 주인공 시점 24.08.26 8 0 12쪽
142 142화. 후원 24.08.24 11 0 12쪽
141 141화. 손해 24.08.22 10 0 12쪽
140 140화. 이런 취미 24.08.20 10 0 12쪽
139 139화. 질투 24.08.17 9 0 12쪽
138 138화. 방탕함 24.08.15 11 0 12쪽
137 137화. 웹 드라마 24.08.13 11 0 13쪽
136 136화. 녹음실 24.08.11 9 0 12쪽
135 135화. 인간의 단면 24.08.08 10 0 12쪽
134 134화. 무료 배식 24.08.06 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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