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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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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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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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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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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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화. 1조

DUMMY

***


녹호의 방.

천선이 느긋하게 카메라를 세팅했다.

그 옆에는 송과가 떨떠름한 얼굴로 셔츠를 들고 무언가를 준비했다.

특이하게도, 단추는 채워졌는데 앞치마처럼 뒤가 트인 형태였다.


“준비됐죠? 빨리 움직여주셔야 해요.”

“전 손이 느린데, 괜찮겠습니까?”

“안 괜찮아요. 그러니까 빨라야 하고요.”


여우 같은 미소가 빙긋 올라갔다.

그 시선을 받는 입장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울 만했다.

곱상한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아는 탓이다.


“그···, 박인영 씨에게 대신 부탁하는 게 어떻습니까? 저보다 손이 야무질 것 같은데.”


모처럼 집에서 쉬는 모양이다.

저 옆 별관에서 지내니, 금방 부를 수 있겠지.

천선도 그걸 알 터였다.

그런데도 부르지 않는다니,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안 돼요. 심하게 싸웠거든요.”

“아···.”

“제가 괜히 저녁 식사 자리도 안 나갔겠어요? 너무 심하게 놀려서, 당분간 몸을 사려야 해요.”


도플갱어는 마지막으로 책상을 정리했다.

탁상 거울을 엎어두고, 그 옆에 육포 조각과 녹호의 사진도 매만졌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여 문제가 생길까, 등 뒤의 배경은 책장으로 가득 채워버렸다.


“이제 방송 들어가니, 준비하세요.”


그 말에 송과가 셔츠를 움켜쥐었다.

천선은 그 모습을 보고 방송 송출 버튼을 눌렀다.

채팅창 역시도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ㅎㅇ

-안녕하세요!

-ㅎㅇㅎㅇㅎㅇ

-공지 떴던데 갑자기 뭔 일임????

-무슨 일이에용????


예정에도 없던 방송인 모양이다.

천선 역시도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휘말렸다고 말하는 듯했다.


“오늘은 제가 용건이 있는 게 아니라요, 형이 부탁해서요.”


형이라.

대뜸 이렇게 부를 사람은 한 명뿐이지.


“아, 모르시는 분도 계시죠? 레저 피노키오 대표, 피녹호요.”


바로, 자기 자신 말이다.


-동생 찬스ㅋㅋㅋㅋㅋㅋㅋ

-동생 덕을 이렇게 보넼ㅋㅋㅋㅋㅋㅋ

-아 서울 최고의 여가 시설을 보유한 레저 피노키오 말이죠? 그 대표님이 나오신다고요?!?!?

-친절한 서비스에 감동했습니다! 다음에 다시 방문할 의사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죠?

-ㄴ입금햇음니다


대놓고 홍보 같았지만, 그래서 더 별생각 없어 보였다.

몰래 속이는 것도 아니니, 관대하게 넘어갈 모양이다.

사실 궁금해하는 이들도 많을 터였다.

가족, 그것도 도플갱어니 뭐니 구설수가 있는 사람이니까.


“형, 이제 얘기해.”


천선이 옆을 향해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가락은 빠르게 키보드 자판 하나를 누른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음소거 아이콘이 떠올랐다.

소리가 사라진 순간이다.


동시에 방 안 공기는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도플갱어는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나자마자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천은 부우욱 자리에서 벗어나 안을 내보였다.

새로운 바지와 함께, 상체의 잔근육이 드러났다.

송과는 얼른 앞치마 셔츠로 빈 몸을 덮었다.


“······.”


빠르게 육포 조각을 입에 집어넣고 책상 위 사진을 응시했다.

그러자 변화가 일어났다.

검은 머리카락은 노랗게 물들었고, 날렵한 근육은 공룡처럼 커다랗게 불어난다.

여우 같은 미소에 사나움이 깃든다.

레저 피노키오 대표, 피녹호로 변하였다.


“아. 목소리 잘 들리나?”


녹호는

앵글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음소거 아이콘도 어느덧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마 화면 너머 시청자는 이상한 낌새조차 못 느낄 터였다.


-피하!

-피하!

-형젠데 왤캐 다름??????

-와 사진에서 본 거랑 똑같당

-피노코 하이!


역시나 다들 밝기만 했다.

도플갱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테지.

순식간에 옷이 바뀌면서 등장했으니 말이다.


“뭐야, ‘피하’는. ‘피녹호 하이’? 무슨, 손가락이 반토막 났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선과는 영 딴판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이 방송에서 이렇게 매운맛을 볼 줄은 몰랐닼ㅋㅋㅋㅋ

-아 형 사랑해욬ㅋㅋㅋㅋㅋㅋㅋ

-오빠도 채널 하나 열어줘용!!


희한하게도, 반응은 폭발적으로 좋았다.

순하디순한 천선의 방송을 보던 사람들인데.

이렇게 보면, 성향이 꼭 방향성을 지니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됐고, 사업 하나 벌일 생각이라.”


녹호는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그 성격에, 요란한 분위기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 중요한 얘기 하니까.”


커다란 손이 노란색 머리카락을 쓸었다.


-아 그 표정 조아!!!!!

-이 오빠도 매력 있네

-형제 두 명이 같이 고백해오면 진짜 고민되겠다

-난 동생 그래도 먹던 거 먹어야지

-나는 이 오빠! 새로운 맛이 좋아!

-욕 한 번만 더 해주시면 안 돼요?????


사나운 얼굴에 불쾌함이 가득했다.


“돈이 남아돌아서 호텔 리조트 하나 박아둘까 생각 중이야. 딱히 컨셉은 없고, 세금 혜택 넉넉히 챙겨주는 지자체를 고르려고.”


거대한 돈을 들이붓는 사업이라.

분명 회사에서 인영과 대화했었지.

미국 주식에서 자금을 뺄까 고민 중이라고.


-머리 쓸어넘길 때 치였당ㅠㅠㅠㅠ

-리조트???? 스키장 하나 더 생기나????

-지금 지어도 몇 년 있다가 나오겠네

-돈 엄청 깨지지 않나???


그렇게까지 무리할 정도라면, 비용은 얼마나 들어갈까?


“지금 생각은 3000억 전후. 그런데 이런 일은 진행하다 보면 비용이 2, 3배씩 초과하기도 하더라고. 어쩌면 1조까지 갈지도 모르겠네.”


정확한 비용까지 나왔다.

동시에 채팅창은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1조?????

-이야 부자는 규모부터가 다르네

-지자체들 몸 달아오를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방을 데운다니 이런 다이어터를 보았나!!!!

-다이어텈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이어터 누구냨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1조.

억을 넘긴 단위이기에, 이해와 불가해를 오간다.

그래도 돈 감각이 있다면 금세 깨닫겠지.

정말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고.


-사기 아님????


재산 처분과 법인 상장, 두 가지를 병행한다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할 일이겠지.

그렇기에 누군가는 이런 의혹도 남겼다.

1조라니, 정말로 아득해서.


의심하는 게 당연했다.

시청자는 어떤 근거로 내뱉은 말인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이 일에 관심이 있다면, 뭐라도 더 설명을 듣고 싶을 터였다.


“알아들었으면 대충 먼저 연락하라고.”


하지만 녹호는 권태로운 얼굴을 지을 뿐이다.

거대한 돈을 쓴다고 선언했건만,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귀찮다는 듯이 손을 뻗어 카메라를 움켜쥐었다.


“이거 어떻게 끄는 거야?”


화면에 캄캄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흔들렸다.


-야야 다 부순다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기요 그렇게 끄면 안 돼요!!!!!!

-이 형 매력 있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무언가 망가지는 듯하면서 방송 종료.

의문을 해소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저 날 것의 무언가를 봤다는 인상만 남았을 뿐이다.



***


기차역.

양복을 입은 사람이 우르르 내렸다.

단단해 보이는 외형 그리고 정돈된 대형이라.

그건 꼭 의뢰인을 경호하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으로 천청해가 나타났다.

손에는 캐리어를 끄는 채였다.

뒤에서는 화들짝 놀라며 누군가가 따라 나온다.


“아버지, 짐은 저 주세요.”

“괜찮아, 동죽아.”


다급하게 짐을 받아들었다.

얼굴에는 난처함이 가득했다.


“내 짐인데 어때?”

“오늘은 보좌관으로 왔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들게요.”

“그럴래?”


청해는 그 모습을 미소 지었다.

그리고 곧 기차역 바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소식을 들었는지, 기자 몇 명은 벌써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경호원이 거리를 벌리게 두지 않았다면 인터뷰도 하고 있겠지.


“어떻게 생각해? 앞으로 계속 도와줄래?”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한테는 좋은 일이죠. 다만, 제가 잘할 수 있을지는···.”

“어려운 일은 없어. 그냥 심부름 정도만 하면 되니까.”

“이미 민폐를 끼쳐버렸잖아요.”


동죽이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민폐라니?”

“제가 성급히 행동해서 아버지를 곤란하게 만들었으니까요.”


그건 천선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나서지만 않았더라면 모든 일은 쉽게 흘렀겠지.

청해는 다소 편안한 마음으로 재선을 준비하고 있을 터였다.

어쩌면 부산 서구가 아니라 텃밭을 추천받았을지도 몰랐다.

정당에서 가치를 더욱 높게 인정받아서.


“그래서, 그게 틀린 일이었어?”


하지만 당사자는 담담하기만 했다.


“너는 세상 앞에 나섰어. 골수 이식을 하고, 벌써 몇 명에게나 기회를 줬고.”

“네. 그뿐이었다면 괜찮았겠죠. 아버지에게도 도움이 되고.”

“아니, 처음부터 나를 위한 일이 아니었잖아. 세상 사람을 위해서 나섰지.”


아들 때문에 피해를 입었건만, 절대 탓하지 않았다.

다만, 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이야기했다.


“그 청년과 척을 지긴 했지만, 이마저도 연장선이라고 봐야지.”

“연장선이요?”


목소리를 낮춰서 대화했다.

천선과의 일. 이 역시도 악의는 아니지 않았냐고.


“그대로 놔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예.”

“만약 네가 시선을 돌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무런 장애 없이 세상 깊숙이 파고들었겠죠. 모두가 아무것도 모른 채로 파괴당했을 거예요.”


상대는 철저한 악이었다.

증거가 남을 만한 일은 모조리 피했다.

도플갱어라는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감시하지 않을 터였다.

만약 동죽이 언급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음모론이나마 시선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함부로 무리한 짓을 벌일 수는 없었다.

의문의 사건이 벌어지기라도 하면, 의심이 쏠리기 시작할 테니까.


“맞아. 파국이었겠지. 모든 사람이 고통받았을 거야.”

“그런데 아버지는···.”

“아니, 아무것도 안 했으면 나도 파괴됐을 거야. 평범한 사람들처럼 말이야.”

“······.”

“알겠어? 아무리 괴롭더라도 피할 수 없는 일이야. 바다에서 늘 이는, 파도 같은 거지.”


천선이 달려가던 종착지는 최소한 몇 걸음이나 멀어졌을 터였다.

동죽이 나선 덕에.


“동죽아. 때론 무너지는 걸 알면서도 맞서 싸워야 해. 나 말고는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어서, 그래야만 해. 숙명이야. 하늘이 내게 주신 과업이지.”


숙명이라.

어떤 의미로는 맞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도플갱어라는 존재가 두 명이나 나타났다.

심지어 완전한 대척점에 서 있지.


이건 하늘의 뜻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과연 무얼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망설이지 마. 아빠는 괜찮으니까.”

“아버지···.”


청해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서는 역 바깥으로 나섰다.

그러자 밝은 빛이 두 사람을 맞이해주었다.


“와, 의원님···!”

“오셨다!”

“여기 봐주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역 주위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지지자들이 방문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모양이다.

어쩌면 저 안에 직접 구한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국민의 영웅이자 전설의 소방관이었으니.


“다들 감사드립니다···!”


직접 시민과 만나려고 하자, 경호원이 다가오며 밀착 보호를 시작했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곧바로 대처해야 했다.

청해는 이를 믿고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반갑습니다.”

“와, 잘생겼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힘든 일은 없으십니까?”

“아유, 물가 때문에 힘들어요!”

“사는 게 좀 여유로워져야 할 텐데.”


다정한 분위기로 인사를 나눈다.

그만큼이나 이미지가 좋은 덕이다.

악수를 나누는 사람은 연예인처럼 환호하고 응원했다.


“천청해 의원님! 여기 한 번만 봐주세요!”


손을 흔들며 고개를 돌렸다.

대단한 인기였다.

느낌 좋은 시작처럼 보였다.


“다들 이렇게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

“야, 이 나쁜놈아···!”


성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전까진.


“천선이를 왜 그렇게 괴롭혀···!”

“···예?”

“우리 오빠 괴롭히지 마요···!”


파스락, 계란 하나가 청해의 양복을 더럽혔다.


작가의말

역시 나쁜 놈은 부지런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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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154화. 법치가 말하는 선의 24.09.21 6 0 12쪽
153 153화. 보복 24.09.19 7 0 12쪽
152 152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2) 24.09.16 8 0 13쪽
151 151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1) 24.09.14 10 0 12쪽
150 150화. 맞는 오답, 틀린 정답 24.09.12 10 0 12쪽
149 149화. 재연 24.09.10 8 0 13쪽
148 148화. 반격 24.09.07 9 0 14쪽
147 147화. 단 한 명 24.09.05 11 0 12쪽
146 146화. 그리움 24.09.02 9 0 12쪽
145 145화. 녹호의 존댓말 24.08.31 7 0 11쪽
144 144화. 자격 24.08.29 7 0 12쪽
143 143화. 3인칭 주인공 시점 24.08.26 8 0 12쪽
142 142화. 후원 24.08.24 11 0 12쪽
141 141화. 손해 24.08.22 10 0 12쪽
140 140화. 이런 취미 24.08.20 10 0 12쪽
139 139화. 질투 24.08.17 9 0 12쪽
138 138화. 방탕함 24.08.15 11 0 12쪽
137 137화. 웹 드라마 24.08.13 11 0 13쪽
136 136화. 녹음실 24.08.11 9 0 12쪽
135 135화. 인간의 단면 24.08.08 10 0 12쪽
134 134화. 무료 배식 24.08.06 9 0 12쪽
133 133화. 가출 청소년 24.08.03 13 0 13쪽
132 132화. 카드 24.08.01 10 0 12쪽
131 131화. 포기 24.07.30 10 0 12쪽
130 130화. 접대 24.07.27 9 0 12쪽
129 129화. 도련 24.07.20 8 0 12쪽
» 128화. 1조 24.07.18 14 0 13쪽
127 127화. 주인님 24.07.16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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