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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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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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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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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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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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화. 녹호의 존댓말

DUMMY

***


천선은 동죽과 유송이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문도 채 닫지 않고 사라졌다.

도플갱어가 유도한 대로.


“삼촌, 괜찮아요?”


테이가 옆에서 물었다.

계속 이 자리에 같이 있었지.

끼어들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계속 침묵을 유지했었다.


“나한테 그런 걸 물어?”

“어른도 힘들 때가 있잖아요?”


걱정할 만도 했다.

유송과 녹호가 싸우는 모습도 봤다.

그 안에 있는 감정도 얼핏 확인했지.

둘 사이는 아주 짙다고 확신할 터였다.

실망은 기대의 자식인 법인데, 말하지 못한 호의가 얼마나 많을까?


“애는 어른 걱정하는 거 아니야.”

“지금 얼굴로는 세게 말하지 않잖아요? 물론, 존댓말은 쓰셨지만 아까는 과했어요.”

“미안해. 못 볼 꼴을 보였네.”

“저한테 속사정이라도 이야기해줄 수는 없을까요? 같은 편이잖아요?”


맑은 눈망울에 간절한 빛이 서렸다.

하긴, 지금껏 알게 모르게 소외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인영과 서주는 도플갱어의 파트너였지만, 자신은 보호의 대상일 뿐이니.

계속 부채감을 쌓아왔겠지.


천선도 입을 닫고 생각하는 기색을 보였다.

항상 조심히 대해왔지만, 그게 옳을까 고민이겠지.

테이도 반년만 있으면 성인이다.

경제활동은 벌써 시작한 와중이고.


“살면서 가끔은 모르는 척하는 처세도 필요하지만···, 이번엔 말해줄 수 있지.”

“네!”

“나도 알아, 앞으로 천동죽이 얼마나 경계할지. 유송이가 말리기야 하겠지만, 진심으로 나를 치워버리고 싶겠지.”


두 도플갱어는 대척점에 서 있다.

서로 보자마자 깨달은 사실이지.

그러니 이런 적대감 정도는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야. 증오할수록 생각은 짧아지는 법이거든. 최소한 해야 할 일도 망각할 정도로.”


천선은 이 분노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은데요?”

“맞아. 이 자체로는 망상에 가깝지. 그런데 환경이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그 강물을 거슬러야 희망이 생기는데, 혐오하기 시작하면 그런 생각을 못 하거든.”

“으음.”

“지금도 다들 충분히 그러고 있어. 오직 미워하기 위해서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하잖아?”


목표는 파멸이다.

바라는 결과물이란, 지극한 무질서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증오는 아주 좋은 재료가 되겠지.

과정이야 어떻든, 결국 난장판이 되고 말 테니까.


“정말 그뿐이에요?”

“뭐가 더 필요해?”

“유송 언니랑은 정말 상관없어요?”


하지만 말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도플갱어는 마냥 괜찮은가?

그에게 유송은 어떠한 존재인가?

정말 아무런 상관도 없는가?


침묵이 잠시 내려앉았다.

테이는 조용히 닫힌 입술만 바라보았다.

끝까지 대답을 기다릴 모양이다.

천선도 이내 한숨을 쉬더니, 제 생각을 내뱉었다.


“무슨 짓이든 해도 괜찮았지. 그런 관계였고, 그런 계약이었으니까.”


불법이긴 했다.

하지만 합의된 일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또한, 이 계약이 가장 절실한 사람은 유송이었다.

도플갱어는 크게 미련도 없었지.


“여기에 잘못이 있을까? 그럼 얼마나?”

“그···, 있긴 할 텐데···. 잘 모르겠어요, 얼마나 커다랄지는.”

“맞아. 있긴 하겠지. 그런데 트집을 잡으면 더 큰 문제가 생겨나. 계약이 무효가 되거든.”

“아, 그럼 돈도···.”


만약 취소가 된다면, 송과에게 쓰인 병원비도 다 토해내야 한다.

부정한 계약으로 얻은 재화이기 때문이다.

합의금을 어느 정도 받겠지만, 잠시 버틸 뿐이겠지.


“그런 뒤틀린 관계지. 나랑 유송이는.”


무언가 어긋났다.

하지만 결코 이를 고발해서는 안 된다.

그럼 모든 것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복잡하네요. 잘못된 건 같긴 한데, 꼭 잘못되기만 한 건 아니고요.”

“아냐. 잘못됐어. 이 모래탑이 쌓인 곳이 더 틀려먹은 문제고.”

“아···. 그래서 후회하지는 않아요?”


어긋났지만 필요했다.

누구보다도 유송이 더 절실했다.

하지만 도플갱어라고 마냥 괜찮은가?


“후회해.”


그건 아니었다.


“뒤틀린 관계였지. 그건 맞아. 그 안에서 있던 일은 나나 유송이나 상관없을 거야. 문제 삼으면 안 되니까. 그런 관계였으니까.”

“그럼요?”


뒤틀린 관계.

시작은 어쩔 수 없었다.

만나기 전부터 계약은 이뤄졌으니.


“더 괜찮아질 수 있었겠지.”


하지만 사람은 과정을 겪는다.

어긋남을 딛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관계를 발전시키면 됐겠지. 너나 서주, 인영이가 그랬듯이 말이야.”


하지만 두 사람은 하지 못했다.

그저 지금에서야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놓쳐버린 기회를 아쉬워하면서.


“지금이라도 안 될까요?”

“······.”

“유송 언니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기회가 있을까.

침묵은 잠시 고민을 시작했다.

혹여 희망이라도 있는지.

‘어쩌면’이라는 말을, 간절히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안 돼.”


하지만 금세 고개를 저었다.


“세상이 나를 버렸으니, 나 역시 세상을 버려야지.”

“삼촌···.”

“용서는 집어치워. 틈을 보이면 다시 이빨을 들이밀 거야. 여긴 그런 나라니까.”


이미 지하에서 수만 번이나 용서해왔다.

하지만 세상은 지상으로 나왔을 때도 그를 안아주지 않았다.

끊임없이 호의를 받은 줄은 모르고,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인색하기만 했다.

그렇기에 도플갱어는 희망마저 불신했다.



***


녹호의 화려한 방.

도플갱어는 휴식이라도 하는지, 소파에 등을 기댔다.

동시에 문은 활짝 열린 채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자 익숙하지만 낯설어진 얼굴이 안으로 들어온다.


“도련님, 보안 보고 시간입니다.”


두오였다.

손에는 두꺼운 종이 뭉치가 존재감을 뽐냈다.


“오늘은 좀 얇네.”

“최근 보고 빈도를 늘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앉아서 이야기해 봐.”


건장한 몸은 고개를 숙인 후 착석했다.

이내 한 장씩 보기 좋게 테이블 위로 문서를 내민다.


“기존 시설 점검입니다. 침범 행적은 없으며, 보안에 특이점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전자기기 검출 장치도 썼지? 몰래카메라나 도청 장치도 확인했어?”

“예. 늘 그렇듯, 보안요원에게 소지품 검사와 비밀 엄수 계약서 작성을 시킨 후 검사 완료했습니다.”


도플갱어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혹여 누군가가 변신 순간을 포착한다면, 상황이 굉장히 곤란해진다.

음모론에 힘이 실리고, 경찰과 검찰에게 명분이 생기겠지.


“인영이랑 서주 쪽은 어떻대?”

“보고 시간 사이에, 집무 공간에 특별한 물건을 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상기했던 절차 역시도 똑같이 진행했습니다.”

“잘했네. 자주 쓰는 장소일수록 방비가 허술해지는 법인데.”

“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두 분께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하직원이나 관계자 출입 시 주의를 부탁드린다고 말입니다.”


방비는 철저했다.

아는 경로로 위험해지도록 두지 않았다.

그건 하수 중에 하수나 할 법한 일이다.


“일주일 동안 침입은 몇십 번이나 일어났지?”


사나운 두 눈은 제 먹잇감을 지키듯 흉흉했다.


“총 47번입니다.”

“늘었네.” “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저택, 회사, 교회.

커다랗게 세 곳이지만, 주요 보안지점까지 합치면 꽤 넓었다.

매번 검사하는 데에도 제법 돈이 깨져나가겠지.


“자세한 경위는 어때?”

“저택 관련 16건. 장천선의 팬으로 추정됩니다. 초범 2건, 재범 8건, 상습범 6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항상 똑같이 대응하고 있지?”

“예. 초범인 경우, 엄중 경고를 내렸습니다. 재범은 접근 금지 명령, 상습범은 강력 대응을 촉구하는 중입니다.”

“좋아. 괜히 혓바닥이 길면, 형인 피녹호가 빡쳤다고 해. 동생 건드렸다고.”

“알겠습니다.”


천선.

유명인이기에 스토킹 범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집 근처에서 방송까지 켰지.

주소를 알아내자면, 검색만으로도 충분할 터였다.


“회사 관련 7건. 모두 실수로 인한 침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몇몇은 진상, 나머지는 기자나 개인방송인이지?”

“예. 3건은 단순 실수처럼 보이나, 4건은 추측하신 대로입니다.”

“가리지 말고 영업방해로 신고하라고 해. 이것들이 미쳐서는, 카메라만 들면 지들이 왕인 줄 알아?”


이쪽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무례한 손님은 항상 존재한다.

아무 곳이나 들이닥쳐서는, 괜히 화를 내기도 하지.


또한, 언론인 역시도 많을 터였다.

녹호는 예현을 공식 파트너로 두고 있다.

잘만 파고들면 퀴퀴한 덩어리를 캐내겠다고 예상했겠지.

심지어 보안이 유독 철저한 곳이 많으니까.


“마지막으로 교회 관련 24건입니다. 기자 13건, 신도 8건, 교집합 3건 존재합니다.”

“역시 제일 구린 곳이란.”


사이비.

당연히도 광신도와 기자가 들끓겠지.

위장 잠입도 많을 터였다.

동시에 애매하겠지.

영업장소도, 거주지도 아닌 곳이니까.


“어떻게 처리합니까?”

“똑같지. 서주한테 죄다 블랙 리스트에 올리라고 해.”

“몇몇은 광신도라고 들었습니다.”

“괜찮아. 그거 헌금으로 많이 내면 풀어주니까. 거를 수 있어.”

“알겠습니다.”


간혹 범죄로 신앙심을 증명하려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광신도라고 부르겠지.

이를 구분하는 방법도 간단했다.

기자라면 절대 하지 않을 희생을 요구하면 된다.


“이 외에는 특이점 없지?”

“예, 관찰 사항만 남았습니다. 다만, 보안 외 사항이 있는지라···.”


녹호가 자세를 다잡았다.


“그래, 저쪽에서 움직였나?”


무언가 예상가는 바가 있는 모양이다.

하긴, 최근 보안 보고 빈도를 높였다고 했지.

껍질을 더 단단히 할 만한 사건이 오고 있다는 뜻이다.


“약속이 잡혔습니다.”

“약속?”


이내 이상하다는 듯 주름이 잡혔다.

예상과 약간 어긋난 모양이다.

두오는 잠시 반응을 확인하고선, 계속 말을 이었다.


“어머님이 뵙기를 바라십니다.”



***


도플갱어, 그리고 어머니.

이 두 단어는 참 끈덕지게 얽힌다.

애정, 어긋남, 갈망, 그리움 등등 여러 가지가 쌓였지.


녹호는 거실에서 복잡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다과도 많이 쌓인 채였다.

꼭 귀빈이라도 맞이하듯 했다.

두오는 이 모습을 바라보며 옆으로 다가왔다.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그 말과 함께, 고급스러운 차림을 한 여성이 들어왔다.

부유함이 자연스럽게 밴 듯했다.

녹호는 이 여자를 향해 한 마디 건넸다.


“오셨어요?”


존댓말이었다.


작가의말

부산 시장한테도 반말하던 인간이 처음 존댓말을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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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154화. 법치가 말하는 선의 24.09.21 6 0 12쪽
153 153화. 보복 24.09.19 7 0 12쪽
152 152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2) 24.09.16 8 0 13쪽
151 151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1) 24.09.14 11 0 12쪽
150 150화. 맞는 오답, 틀린 정답 24.09.12 10 0 12쪽
149 149화. 재연 24.09.10 8 0 13쪽
148 148화. 반격 24.09.07 9 0 14쪽
147 147화. 단 한 명 24.09.05 11 0 12쪽
146 146화. 그리움 24.09.02 9 0 12쪽
» 145화. 녹호의 존댓말 24.08.31 8 0 11쪽
144 144화. 자격 24.08.29 7 0 12쪽
143 143화. 3인칭 주인공 시점 24.08.26 8 0 12쪽
142 142화. 후원 24.08.24 11 0 12쪽
141 141화. 손해 24.08.22 10 0 12쪽
140 140화. 이런 취미 24.08.20 10 0 12쪽
139 139화. 질투 24.08.17 9 0 12쪽
138 138화. 방탕함 24.08.15 12 0 12쪽
137 137화. 웹 드라마 24.08.13 11 0 13쪽
136 136화. 녹음실 24.08.11 9 0 12쪽
135 135화. 인간의 단면 24.08.08 11 0 12쪽
134 134화. 무료 배식 24.08.06 9 0 12쪽
133 133화. 가출 청소년 24.08.03 13 0 13쪽
132 132화. 카드 24.08.01 10 0 12쪽
131 131화. 포기 24.07.30 10 0 12쪽
130 130화. 접대 24.07.27 9 0 12쪽
129 129화. 도련 24.07.20 8 0 12쪽
128 128화. 1조 24.07.18 15 0 13쪽
127 127화. 주인님 24.07.16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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