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9.21 02:35
연재수 :
154 회
조회수 :
7,934
추천수 :
72
글자수 :
836,950

작성
24.09.05 01:51
조회
10
추천
0
글자
12쪽

147화. 단 한 명

DUMMY

***


깨끗한 회색, 네모난 공간.

더 설명할 이야기는 없었다.

교도소 면회실은 그렇게 요란하지 않으니.


양복 차림을 한 남자는 유리창 바깥에서 손목시계를 바라본다.

아마 면회객이겠지.

지금 걸어 나오는 죄수에게 볼일이 있는 모양이다.

교도관은 힐끗 눈치를 살피더니, 의례적인 말을 내뱉는다.


“면회 시간 30분. 초과할 시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상.”


수감자.

하얗게 머리가 센 중년이 푸른색 옷을 입고 있다.

늙었지만 어딘가 흉흉한 기색이 느껴졌다.

세상을 향한 증오만 남은 듯했다.


하지만 양복을 입은 남자는 그 기세에도 담담했다.

기계라도 되는 걸까?

딱딱하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장현묘 씨 맞으십니까?”


천선의 친아버지.

현묘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는 멍 자국이 가득했다.

수감실에서 집단 구타를 당했는지도 모른다.

죄질이 워낙 불량하기도 했고, 형벌을 고분고분 받아들일 상황도 아니었다.


“법률구조공단에서 나왔습니다.”

“······.”

“끝까지 억울하다고 외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항소까지 했으나, 법원에서 이를 기각했죠. 결국, 여기에 갇혀 계시고요.”


도플갱어가 씌운 누명이다.

공공기관 방화, 철저히 계획한 테러에 가깝다.

여기에 끝까지 죄를 부정했다.

절대 형량이 가볍지 않을 테지.


“하지 않은 일입니다. 죄가 없는데 어떻게 반성합니까?”

“그렇습니까.”

“그런데 법원은 저에게 괘씸죄를 내렸습니다. 심지어 바깥에서도 다들 나를 욕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릅니다. 정의가 실현됐다고.”


공권력은 정당해야 했다.

만약 선을 넘어선다면, 악인이라도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떳떳한 삶은 아니지만, 지금 받는 건 부당한 처우이기에.


“도대체 판사가 뭐길래 반성문을 받습니까? 또 왜 멋대로 용서하고, 또 왜 괘씸죄를 내리느냔 말입니다!”


법원에 내는 반성문.

현묘는 가장 보편적인 인식을 꺼냈다.

국민 대부분이 의문을 품는 제도이기도 했다.

왜 판사에게 반성해야 하며, 감형을 받는가?


“입장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절차 자체에 항의하시면 안 됩니다.”

“어떻게 항의를 안 합니까!”

“다 이유가 있는 일입니다. 반성문은 진술서 역할도 겸합니다. 양형 사유에서 제외된다면, 재판은 한도 끝도 없이 길어졌을 겁니다. 현묘 씨는 더더욱 고통만 받았겠죠.”


변호사가 단호히 이야기했다.

대상을 다독일 만도 하련만, 법에는 칼 같은 존중을 보였다.

아마도 그 자부심인 모양이다.


“하지만 저는!”

“판사님을 적대하시면 안 됩니다. 그 피해는 본인에게 그대로 돌아옵니다. 쉽사리 반성하지 않는 인간이 교화될 리 없기 때문입니다.”

“······.”

“어떤 제도든 오작동은 존재합니다. 이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저희는 이곳에 있습니다.”


정론이다.

어떤 발명품도 오직 악의만을 가지고 태어나진 않는다.

기관총과 핵무기도 전쟁 억지력을 기대하며 만들어졌지.


반성문 역시도 마찬가지다.

재판을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존재했다.

판결이 오래 걸릴수록 국민의 손해는 커지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사회비용에서 모두가 혜택을 받는 중이다.


“끝까지 진실하셨던 점은 정말 잘하셨습니다. 만약 반성문을 쓰고 감형받았다면, 이렇게 찾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무엇이 억울했는지, 어떻게 증거를 잡을지부터 생각합시다.”


법률구조공단.

억울한 유죄 판결을 구제하기 위해 존재했다.

범죄자 뒷바라지를 한다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도, 가능성 낮은 일임에도 매달린다.

‘열 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이를 없게 하라.’

이를 가슴 속에 품고 살기 때문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도는 현묘에게 동아줄을 내려주었다.



***


국회의원 집무실.

유송과 동죽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눴다.

한 명은 불안한 표정을, 다른 한 사람은 평소처럼 정갈한 얼굴을 띠었다.


“정말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조심스러운 어조로 이야기했다.

무언가 껄끄러운 모양이다.


“허락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진실은 밝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의도가 불순한 것 같아서요.”

“장현묘 씨는 방화범이 아닙니다. 죄가 없는 사람을 어떻게 방치하겠습니까?”


동죽이 단호하게 말했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는 정의였다.


“하지만 천선 씨가 도플갱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그럼에도 유송이 망설이는 이유는 하나였다.

이대로 가다간 도플갱어가 위험해지고 만다.


“모든 신분을 박탈당하겠죠. 피녹호는 재산을 빼앗기고, 장천선은 사라져요. 김예현으로서 고발당할 테고요.”

“예. 하지만 그게 순리입니다.”

“언뜻 보면 그렇겠죠. 하지만 손에 쥔 것들을 다 놓치고 난 다음에는요? 무슨 힘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죠?”


돈, 권력, 인기.

이 모든 요소가 신분에 묶여있다.

비밀이 발각된다면, 모든 힘을 잃고 만다.


“동죽 씨가 증명하셨잖아요. 도플갱어가 얼마나 유용한지.”

“그건···.”

“골수는 정말 사소해요. 그뿐 아니라 모든 장기를 제공할 수 있다고요. 한 명만 희생하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데, 과연 우리 사회가 망설이기나 할까요?”


장기이식을 바라는 환자는 많았다.

도플갱어는 이를 무한히 제공할 수 있지.

그렇다고 세상이 그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길까?


“아니요. 무한히 베풀 수 있으면, 무한히 희생시키고 말아요.”

“너무 각박한 생각이십니다.”

“지금도 심심치 않게 들리잖아요. 자기 자식한테 간 이식을 받고도 술을 못 끊는 알코올 중독자 이야기라든가요.”

“······.”

“혈육한테도 그러는데, 타인을 배려할까요? 심지어 범죄자에···, 어쩌면 악마로 보일 사람인데?”


개개인 모두가 잔인해지겠지.

그래도 상관없는 대상이다.

가둬두고 장기만 뽑으라고 외치는 사람도 생길 터였다.

그게 세상에 더 도움이 되겠다고.


“공권력이···, 보호해주지 않겠습니까?”

“네. 그래서 법이 있겠죠. 모든 사람이 한 명을 끌어내리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편을 들어줘야 하니까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법을 존중하던가요? 과정이나 이유는 외면하고서, 죄목이랑 형량만 보고 소리치고 있지 않던가요?”


분명 공권력이 움직이긴 할 터였다.

도플갱어를 보호하려는 듯하겠지.


“갑자기 실종되면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싫어할까요? 이유 없이 의료 서비스가 좋아지면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싫어할까요? 그러는 편이 정부에서도 편하지 않을까요? 계속 비난을 받으면서 지키기보다는?”

“유송 씨!”

“뻔한 일이잖아요. 도플갱어는 음식 한 조각에도 최상의 상태로 돌아와요. 화장실이든 뭐든 필요도 없단 말이에요. 일단 마음만 먹으면 너무 쉽게 통제할 수 있고 또,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어요.”

“······.”

“만약 본인이 결정권자면 혹하지 않으실 건가요? 범죄자 한 명 희생시켜서, 불쌍한 환자 수만 명을 도와줄 수 있다면?”


약품 실험, 장기이식, 온갖 인체 연구에, 다양한 조직 샘플 확보 등등.

선 하나만 넘으면 이득은 넘쳐났다.

심지어 대상은 잔혹한 범죄자다.

동정심따위는 일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그때도 정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보호하겠다고 나서는 정부를 존중할 수 있을까?


“천동죽 씨. 당신도 알잖아요.”

“무슨 뜻입니까?”

“지금 당신이 여기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모두 아버지 덕분이에요. 현직 국회의원 아들이니까, 납치라도 했다간 시선이 너무나 많이 쏠리니까.”


동죽이 움찔했다.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도플갱어라고 밝힌 이후 안전한 이유는 아버지 덕이 크겠지.

만약 평범한 배경이었다면, 진작 납치당했을지도 몰랐다.

꼭 정부가 아니더라도 간첩이나 이익집단은 많으니까.


“···세상은 그렇게 각박하지는 않습니다.”


유송은 그 말을 들으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의 자신과 겹쳐 보였을지도 몰랐다.


“네. 좋은 말이네요. 인류애가 가득하세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 대부분은 동죽 씨를 응원할 거예요. 범죄자를 두둔하고 있는 저보다는요.”


그렇기에 과거 들었던 말과 비슷하게 내뱉었다.


“다만, 확신도 못 할 일에 천선 씨 목숨을 걸고 싶지 않아요.”

“유송 씨···.”

“동죽 씨도 자기가 정의롭다는 걸 증명하려고, 누군가의 생명을 소모하지 않길 바라고요.”


비수 같은 말이다.

도플갱어가 품었고 또, 내뱉은 것이기 때문이다.


“···옳지 않습니다.”


동죽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며 입을 벙끗댔다.


“불우한 시절을 보낸 건 알겠습니다. 괴로웠던 것도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괴로움이 타인을 희생시킬 권리를 주진 않습니다.”


상식.

언젠가 이런 대화도 있었지.

모든 일이 반복이고 또 반복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유송은 지치고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머릿속에 녹호가, 예현이, 천선이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도플갱어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싶어서.


“방법조차 주지 않고 죄를 묻나요? 그럼 나나 송과도 할 말이 없겠네요. 사실상 공범이니까요.”

“두 분은 다릅니다.”

“다르지 않아요. 살려고 도왔고, 지금도 묵인하는 중이니까요.”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모두가 다르지 않아요. 죽는 걸 뻔히 아는데 담담히 옳은 길로 걸어갈 수는···.”


하지만 이내 얼굴이 창백해졌다.

깨닫지 말아야 할 사실을 이제야 깨닫기라도 한 듯이.


“···아니, 어쩌면 더 못하겠네요.”

“자학은 그만두십시오.”

“자학이 아니에요. 그 사람은 자기가 무슨 꼴을 당할지 알았는데도 기회를 줬어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고운 손이 잘게 떨렸다.

깨끗한 눈망울에 붉은 기운이 서렸다.

서글픔이 깨져 목소리에 스민다.


“그 사람은···, 잡혀주려고 했어요. 지하실에서 나오고서, 두오 선배님의 의중을 떠보면서···.”


도플갱어.

피녹호를 죽이고 지하실에서 나왔다.

세상과 법은 이미 그의 적이었다.

그나마 유송이 있었지만, 자신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마두오, 분명 컨베이어 벨트 너머에서 자신을 돌봤겠지.

어쩌면 실낱같은 애착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죗값을 물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위선일 줄 알면서도 만약을 놓지 못했다.


“지하실로 같이 갔었어요···. 그냥 잡혀서···.”


그리고 광소를 터뜨렸지.

어쩌면 진짜 미쳤던 순간은 그 이전까지일지도 몰랐다.

제 발로 다시 지하실로 향하다니.

기꺼이 평생의 지옥을 택하다니.


하지만 그 순간에는 아무도 이를 알지 못했다.

모두 도플갱어의 단면만을 봤을 뿐이다.

그러니 끔찍할 수밖에 없었겠지.


“···알겠습니다. 도플갱어라고 증명하는 일은 포기하겠습니다.”


동죽 역시 마찬가지겠지.

이 부분은 제대로 전해듣지 못했을 터였다.

여전히 그에게 도플갱어는 단면이기만 했다.


작가의말

사실 제도에는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습니다.

검색만 하면 생각보다 쉽게 나옵니다.


사법을 향한 분노가 심한 이유는 아무래도 사회에 합의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법은 오랜 시간에 대화를 통해 만들어져야 정상입니다.


다만, 우리는 독립 후 급하게 체제를 세웠기에 덜컥 받아들인 감이 있습니다.

그 근본은 독일에서 시작되어 일본을 건너 우리나라로 들어왔습니다.

겪지 못한 것에서 왔기에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배움과 대화로 이해하고 다시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필독] 저는 엄벌주의가 싫습니다.(feat. 웹툰 작가의 특수교사 고소 사건) 24.02.22 138 0 -
공지 [필독] 입산 주의 표지판 +3 24.01.03 125 0 -
154 154화. 법치가 말하는 선의 24.09.21 5 0 12쪽
153 153화. 보복 24.09.19 6 0 12쪽
152 152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2) 24.09.16 7 0 13쪽
151 151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1) 24.09.14 10 0 12쪽
150 150화. 맞는 오답, 틀린 정답 24.09.12 9 0 12쪽
149 149화. 재연 24.09.10 8 0 13쪽
148 148화. 반격 24.09.07 9 0 14쪽
» 147화. 단 한 명 24.09.05 11 0 12쪽
146 146화. 그리움 24.09.02 8 0 12쪽
145 145화. 녹호의 존댓말 24.08.31 7 0 11쪽
144 144화. 자격 24.08.29 7 0 12쪽
143 143화. 3인칭 주인공 시점 24.08.26 8 0 12쪽
142 142화. 후원 24.08.24 10 0 12쪽
141 141화. 손해 24.08.22 9 0 12쪽
140 140화. 이런 취미 24.08.20 10 0 12쪽
139 139화. 질투 24.08.17 9 0 12쪽
138 138화. 방탕함 24.08.15 11 0 12쪽
137 137화. 웹 드라마 24.08.13 11 0 13쪽
136 136화. 녹음실 24.08.11 9 0 12쪽
135 135화. 인간의 단면 24.08.08 10 0 12쪽
134 134화. 무료 배식 24.08.06 9 0 12쪽
133 133화. 가출 청소년 24.08.03 12 0 13쪽
132 132화. 카드 24.08.01 9 0 12쪽
131 131화. 포기 24.07.30 10 0 12쪽
130 130화. 접대 24.07.27 9 0 12쪽
129 129화. 도련 24.07.20 8 0 12쪽
128 128화. 1조 24.07.18 14 0 13쪽
127 127화. 주인님 24.07.16 12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