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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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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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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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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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화. 인간의 단면

DUMMY

***


이른 새벽.

서주가 교회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건 꼭 어미 오리 뒤에 새끼들이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 같았다.


“얘들아, 잘 따라오고 있지?”

“네.”

“네.”

“이렇게 벽 쪽으로 잘 붙어 다녀야 해. 사각지대라서, 사람들 눈에 덜 띄거든.”


그런 겉모습과는 달리, 하는 말은 꼭 첩보원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마저도 오리와 비슷할지도 몰랐다.

순박한 동물도 날아다니는 매를 경계하는 법이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조심해야 해요?”


문득 한 아이가 질문했다.

자신은 오리가 아니기 때문이겠지.


“아, 불편해?”

“그게 아니라요, 조금 이상해서요. 이제 학교에 기자들이 기웃대지도 않고요.”

“응? 그런 일이 있었어?”

“네. 그런데 이제는 잠잠해졌어요. 1년 정도 지났으니까요.”


학교는 대중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다.

관심은 그렇게 오래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사건을 재조명하지 않는 이상, 졸업할 때까지 똑같을 터였다.

반쯤 안심해도 되겠지.


“사실 너희는 상관없는데 목사님께서 받는 시선이 많거든.”


문제는 도플갱어다.

그렇기에 보안은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한 번이라도 삐끗했다간, 쌓아온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다.


신분은 빼앗기고 교도소로 가야 할 테지.

그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될지도 모른다.

어느 날 지하실이나 실험실에서 발견될 확률이 높다.

정신이 완전히 무너진 채로 말이지.


“누군가는 뭐라도 꼬투리를 잡고 싶어 해. 그런데 여고생 여럿이 목사실에 들락날락하면 어떻게 되겠어?”

“아. 성추행으로 오해를···.”

“파헤치겠지. 의혹을 기정사실로 만들 테고.”


문제는 확인하지 않은 부분에서 터진다.

그렇기에 사전에 막을 수만 있다면, 미리 꽉꽉 틀어막는다.

혹여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


교장실.

이곳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손님 자리에 앉아있었다.

상석에는 당연히도 교장이 위치했다.


“저···.”


하지만 안색이 영 불편했다.

꼭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 같았다.


“커피는 입에 맞으십니까?”

“그렇다네. 솜씨가 좋군.”

“감사합니다.”


그랬다.

예현이 여기에 존재했다.


“그러니까 천선이라는 분이···.”

“그래, 내가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지.”

“아, 예. 그렇습니다.”


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세 사람이 한 명이다.

천선과 녹호도 이를 내버려 두는 중이지.

제 3자가 보기엔 협력관계라고 생각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어쨌든 세 분이 한 몸 아니십니까. 그러니 저 아이들에게도 신경을 쓰시는 편이고요.”

“그렇다네.”

“그럼 제게 무엇을 바라시는 중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상당히 무서울 터였다.

한 사람은 사업에서, 또 다른 이는 거대한 방화 사건을 계획하고 실행했단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인간은 아예 사이비 종교 목사다.

묻지 마 살인을 지시할 힘이 있었다.


“무슨 일이든 돕겠습니다.”


하지만 교장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위험한 상황인데도 눈빛이 번들댔다.

분명 바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지.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토록 대단하다면, 끈을 대는 것도 좋았다.

권력이란, 무엇이든지 관철할 수 있는 힘이었다.


“딱히 바라는 일은 없네만.”

“그러지 말고 무슨 상황인지 알려주십시오. 그럼 알아서 맞춰드리겠습니다.”

“흠.”

“분명 그 학부모들과 악연인 듯한데, 왜 자녀들에게는 호의를 베푸는지···.”


아이를 배려하는 행동이라.

모순적이다.

겉보기로는 그랬다.

하긴, 그 누가 도플갱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

예현은 이에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인기 연예인들을 보게. 다들 아름답지 않은가?”

“예? 아, 예.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사고가 나서 절단상이라도 났다고 생각해봄세. 그 상처까지 빛날 수 있겠는가?”


교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언젠가 겪어본 화법이겠지.

전혀 다른 사람이 보인, 그 한 번의 경험으로는 도저히 익숙해졌을 리 없지만.


“아닙니다.”

“마찬가지라네. 한 명의 인간을 주욱 지켜본다면 개연성을 느낄 수 있지. 설령 그 사람이 도덕적이든 아니든.”

“흠···.”

“자기합리화라는 단어를 생각해보게나. 떳떳하지는 못해도, 항상 그럴 만한 사정은 있었지 않은가?”


자신에게만 너그러운 태도라.

심지어 지금도 그랬다.

카르텔에 손을 뻗으면서도 죄책감은 없었다.


“하지만 타인은 항상 행동 하나만을 보고 판단하지 않는가? 모든 것이 단면이지. 그런데 어떻게 일관성을 느낄 수 있겠는가?”

“아, 확실히 맞는 말 같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단면만을 본다네. 그런데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고 끔찍하기만 할 뿐이지.”


타인을 향한 혐오를, 예현은 이를 이렇게 결론지었다.


“좋은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로 한 말씀이신지···.”

“단면만 본 자네가 어떻게 모든 일을 이해하겠는가? 그저 똑같은 단면이 되어 움직일 뿐이지.”

“예?”

“손발은 결코 머리가 될 수 없는 법일세.”


이 말은 거대한 집단에서도 통했다.

각자가 자신의 업무를 하기에 다른 부서가 하는 일은 잘 몰랐다.

그러니 깊게 캐묻지 말라는 뜻이다.

어차피 이해하지도 못할 테니.


“몇 마디로 설명해봤자, 오히려 꺼림칙하기만 하지 않겠는가?”

“확실히, 그렇긴 할 겁니다.”


교장이라는 직책이기에, 대강 납득한 모양이다.

동시에 입가의 미소는 숨지도 못하고 진해졌다.

상대 너머에 거대한 집단이 있다고, 지레짐작했겠지.

아직 그 정도는 아닌데도 말이다.


“어쨌거나 제가 그 과업의 톱니라도 될 수 있다면, 언제든 맡겨만 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허허, 여부가 있겠는가? 그때까지 아이들을 열심히 돌봐주게.”

“아, 가십니까?”

“할 일이 남아서 말일세.”


예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으로 향했다.

교장은 그러거나 말거나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치 권력자에게 존경이라도 표하듯이.


중후한 발걸음은 느긋하게 학교를 나섰다.

보랏빛 하늘을 천장 삼아, 조용히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제 야간 자율 학습이 시작되어서 그런지, 누군가와 마주칠 일은 없었다.

그렇게 막 차량에 올라타고서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아직 아이들은?”

“저녁은 먹고 차에 타려나 봐요.”


그곳에서 서주가 말을 받았다.


“그런데 꼭 학교를 다니도록 둬야 할까요?”

“왜 그러니? 혹시 다니기 싫다고 하든?”

“그건 아니에요.”

“만약 그렇다고 해도, 고등학교는 졸업하게 두는 편이 좋단다. 시간이 지나고서 다시 배우려고 마음 먹기가 힘드니.”


결국, 쓴웃음을 짓는다.

요지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저희가 부담이잖아요. 교회에서 먹고 자는 아이들이 있다고 소문이라도 들리면, 구설수가 생겨날지도 모르고요.”


틀린 말은 아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한들, 사람이 오가면 흔적이 남는 법이다.

운이 나쁘면 누군가가 볼 수도 있겠지.

앞서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했듯, 끔찍한 의심을 할지도 모른다.


“혹 내가 아이들을 내치기를 바라니?”

“네, 저는 목사님이 안전한 게 먼저니까요.”


예현이 서주를 바라보았다.

차분한 얼굴이 낡은 눈동자에 담겼다.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다만, 너 역시 내 변덕으로 곁에 있는 것 아니니?”


진지하게 답했다.

도플갱어는 이 부분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제아무리 자신에게 손해가 될지라도 말이다.


“불만이 있던 건 아니었어요. 그저 의아하다는 얘기였죠.”

“탓할 생각은 없단다. 과잉 충성 덕분에 너를 곁에 두고 있으니.”

“감사해요.”

“그나저나 몇 명이나 교회에 머문다고?”

“네 명이요.”


예현은 미미하게 눈가를 떨었다.

생각보다 그 수가 많은 모양이다.


“옛날엔 가정교육이 그랬잖아요. 말 안 들으면 속옷 바람으로 쫓아내고.”

“그건 옛날이지. 더군다나 소란에 휘말려서 인간관계까지 박살이 났는데.”

“죽으라고 쫓아냈을까요?”

“이제까지 연락이 없었다면야, 그렇다고 봐야겠지.”


서주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갸웃했다.


“학교 폭력을 저질렀고, 집에서 쫓겨났다···. 꼭 잘못된 일일까요?”


어떻게 보면 인과응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죄를 저지른 사람이 이제는 그 대상이 됐을 뿐이니.

누군가는 참교육이라고도 이야기하겠지.


“아무래도 좋을 일이고 수단이 상관없다면, 정말 모든 게 허용되겠지. 범죄자만 모아서 온갖 궂은일을 시킨다든가.”

“음, 그 정도는···.”

“여자 교도소로 사창가를 열어도? 그래도 괜찮을까?”

“네?”


단어가 과격하긴 하지.

하지만 결국 같은 일이다.

가출 청소년은 하루 만에 충분히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다.

아니, 사실 그 정도 시간도 필요 없다.


“과하죠, 그건.”

“그럼 죄보다 큰 죗값에 혹은 오판으로 이루어진 징벌에, 국가의 주인은 그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책임이라면요?”

“본인이 고개를 끄덕인 부당한 일들을, 스스로 당해도 괜찮을까?”


부당한 짓을 저질렀다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되는가.

욕을 먹어도 되고, 맞아도 되고, 강간당해도 되는가?

감정적으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 환호하며 정의가 살아있다고 외치겠지.

그래서 본인 차례가 와도 기꺼이 감당할 것인가?


“판결이 잘못 나올 때마다 그런 짓을···. 사실 판검사가 한 잘못이잖아요?”

“그렇다면 이들은 유독 형량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지 않니? 책임이 있으니까.”

“음, 그러게요. 그분들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기도 하겠네요.”


엄벌은 그 누가 책임질까?

어쩌면 이를 감당하고 있는 사람은 피해자라고 불리는 중이 아닐까.

가해자는 아무도 없는, 그런 사건에서.


“그래도 그런 생각은 드는 걸요.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누군가가 보복해줬으면 좋겠다고.”

“정의가 부당함을 미워하지 않는구나.”

“······.”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건만, 사람을 미워하면서도 죄는 미워하지 않는구나.”


사회는 호의를 의심한다.

도덕에도, 범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유독 정의에는 책임이 없었다.

그저 흑의 반대편에 있기에 백이라고 생각했다.


“용서는 어렵네요.”

“나는 용서를 말하지 않았단다. 무엇보다 죄를 먼저 미워하라고 했을 뿐이지.”

“네?”

“길은 생각보다 많단다.”


서주가 입을 닫았다.

무슨 뜻인지 곱씹는 듯했다.

그 사이, 차 문이 열렸다.


“목사님, 저희 내려왔어요.”


테이와 함께 우르르 주차장으로 몰려왔다.

야간 자율 학습은 하지 않았다.

이제는 입시와 크게 상관없는 길을 가고 있으니.


“그래, 레저 피노키오로 가자꾸나.”


작가의말

가출 청소년에게 접근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고작 몇 시간이면 된다고 합니다.

언젠가 신문으로 본 내용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납니다.


어쨌거나 저는 공권력은 상황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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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151화. 관찰과 통찰의 싸움(1) 24.09.14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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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141화. 손해 24.08.22 10 0 12쪽
140 140화. 이런 취미 24.08.20 10 0 12쪽
139 139화. 질투 24.08.17 9 0 12쪽
138 138화. 방탕함 24.08.15 12 0 12쪽
137 137화. 웹 드라마 24.08.13 11 0 13쪽
136 136화. 녹음실 24.08.11 9 0 12쪽
» 135화. 인간의 단면 24.08.08 11 0 12쪽
134 134화. 무료 배식 24.08.06 9 0 12쪽
133 133화. 가출 청소년 24.08.03 13 0 13쪽
132 132화. 카드 24.08.01 10 0 12쪽
131 131화. 포기 24.07.30 10 0 12쪽
130 130화. 접대 24.07.27 9 0 12쪽
129 129화. 도련 24.07.20 8 0 12쪽
128 128화. 1조 24.07.18 15 0 13쪽
127 127화. 주인님 24.07.16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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