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는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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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os
작품등록일 :
2024.01.0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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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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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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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주인이냐?

DUMMY

“어떻게 된 거냐?”


이 실장의 질문에 태준의 변명이 장황하게 이어졌다.


석주의 몸놀림에서 오리지널의 냄새가 풍기자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일부터, 익숙하지 못한 육체의 컨트롤 때문에 농락당한 일, 어쩌다 성공한 공격으로 의심이 풀렸음에도 이성을 잃은 일···


“이어지는 공방에서 어느 정도 진정되어 저도 모르게 이성을 되찾았습니다.”


장황한 변명을 듣고 있던 이 실장은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정확히 어떤 거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 블레이드의 모습이 어딘가 달랐다.


“힘줘.”


왼쪽 팔을 접어 삼두근에 잔뜩 힘을 준 태준에게 주먹이 날아들었다.


퍼억~


정확히 힘이 들어간 부위를 맞은 태준이 몇 미터를 날아 벽에 부딪혔다.


때리는 힘도 힘이지만, 이 실장의 주먹에 징 박힌 너클같은 무기를 찾아볼 수 없음에도, 태준의 팔뚝이 무언가에 찔린 듯 검은 액체가 방울져 흘러내렸다.


“야! 이것들이 어디서 쇼야? 눈앞에서 그런다고 내가 봐줄 거 같아?”


강하게 뱉어낸 하윤의 말은 둘의 모습을 같잖은 짓거리라 타박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행동에 적잖이 당황한 듯, 입꼬리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일어나.”


벌떡 일어선 태준의 팔에서 흘러내리던 검은 액체는 서서히 상처 자국으로 스며들었다.


“네가 누구냐.”


“블레이드입니다.”


“나는?”


“메이스 입니다.”


이정도 공격에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는 블레이드의 몸 상태, 자신의 클론명을 기억하는 모습.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칼 꺼내.”


태준이 오른손을 힘있게 펼치자 손바닥에서 뻗어나온 검은 액체가 순식간에 서슬 퍼런 태도로 변했다.


나타난 검을 역수로 쥐고 등 뒤로 돌리는 태준의 행동은 날카로운 흉기를 상급자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한쪽 팔을 들어 올린 이 실장은 눈짓으로 자신의 팔을 가리켰다.


“죄송합니다. 지금 제힘에 대해 자신이 없습니다. 메이스께서 원하시는 결과를 얻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자신의 힘을 믿지 못한다? 두렵다? 그 말은 이 실장의 힘도 믿지 못한다는 뜻이 되는 게 아닌가?


“베어라. 두 번 말하지 않겠다.”


“이 실장. 지금 뭐하니? 쇼도 적당히 해야 재밌는 거야.”


하윤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자신이 어릴 적 괴롭히던 수준의 장난이 아니라 진짜 두 동강 내려는 건가?


아무리 인간이 아닐지라도 눈앞에서 흉측한 몰골을 보고 싶지 않았던 하윤은 이것들이 이런 식으로 반항하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잠시 눈을 감아주셔야겠습니다.”


“이 새끼나 저 새끼나 오늘따라 왜 이렇게 고집이 세? 빨리 끝내.”


표독스럽게 쏘아붙였지만, 하윤은 이미 뒤로 돌아 눈을 감았다.


태준이라면 몰라도 이 실장이 저렇게 나올 때는 무언가 있다는 뜻이었다.


성질에 못 이겨 화를 내고 있지만, 아무래도 이 실장이 진지하게 나오면 성격대로 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머니를 배후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한몫하는 것이리라...


“베어라. 있는 힘껏. 너 자신을 못 믿겠다면 나를 믿어라.”


한쪽 팔을 내민 이 실장의 단호한 명령은 쉽게 거역하기 힘든 준엄한 목소리로 태준에게 내려졌다.


어쩔수 없다는 표정으로 검을 돌려 정수로 고쳐 잡은 태준은 가볍게 고개 숙여 보인 후, 이 실장이 내민 팔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간결하지만 힘있게... 무심한 듯 절도 있게... 가볍게 펼쳐 보인 내려치기였지만, 익히 알고 있던 그만의 검술이었다.


팔꿈치 밑으로 깔끔하게 갈라진 이 실장의 오른팔은 잠깐 너덜거리는 듯싶더니, 검은 액체들이 서로 잡아당겨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무엇 하나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모습에 이 이상 의심하는 게 이상한 상황인데도, 말끔하게 사라지지 않는 위화감은 가슴 한편에 고스란히 남아 마치 x 싸고 덜 닦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블레이드의 존재를 의심할 만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기에 이 실장은 이쯤에서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죄송합니다. 이사님. 아직 적응하지 못한 육체에 실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익숙해질 때까지 외부활동은 금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걸로 되겠어? 폐기하는 게 낫지 않아?”


겨우 이 정도로 그런 처분을 내리는 건 너무 과한 처사가 아닌가? 그런 말을 쉽게 내뱉는 하윤의 행동은 난 너희를 언제라도 없앨 수 있는 사람이라고 과시하는 것에 불과했다.


물론, 폐기처분은 오로지 명 여사의 고유 권한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이 실장에게 그다지 의미 있는 행동이 아니었지만,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서 하윤의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명 여사가 딸의 강력한 요구를 거절할 것이란 확신도 없었다.


“지금까지 저를 도와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이사님의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지시해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때려봐야 아프지도 않잖아? 육체적인 고통은 벌이 될 수 없고. 네가 제시해봐.”


당연히 ‘이번 한 번만 봐준다. 다음부터는 조심해라.’ 정도로 끝내면 될 것 같지만, 괜히 엄한데 화풀이하는 하윤의 생떼를 적당한 선에서 맞춰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육체적 고통을 주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저희는 소멸하는 순간이 아니면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숙주의 고통을 간접 경험하는 것이 가장 유사한 느낌이지만, 그마저도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무뎌진 상태입니다.”


“됐어! 누가 그딴 게 알고 싶다고 했어?”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들에게 적잖은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하윤에게 이들에 관한 정보는 쓸모없는 TMI 정도의 취급도 받지 못했다.


어릴때는 단순 호기심으로, 혹은 재미삼아 장난치듯 괴롭힘을 일삼았지만, 철이 들면서 이들을 괴롭히며 희열을 느끼던 자신이 바보였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감정이 혐오로 바뀌었다.


때리는건 물론, 불로 지지고 바늘로 찔러도 표정변화 하나 없는 클론의 모습은 돌을 괴롭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좀 더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실제로 어머니에게 관련한 교육을 받은 뒤에야 그나마 사람 취급해주고 있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때 가장 먼저 화풀이하는 곳이 이들이었고, 그 외에 필요할 때가 아니면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불가촉천민’ 취급을 하고 있었다.


“가. 데리고 꺼져. 연락할 때까지 내 눈에 띄지 마.”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이 실장과 함께 허리 숙여 사과하는 태준의 모습은 쳐다보지도 않고, 두 번 말하지 않겠다는 듯, 하윤은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모습으로 나가라는 말을 대신했다.


할 만큼 했다. 여기서 사죄한답시고 더 매달려 봐야 좋아질 게 없다는 건 오랜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이쯤에서 미련없이 빠지는 게 현명한 태도라고 판단한 이 실장은 서둘러 태준과 함께 하윤의 방을 나섰다.


***


“그래서. 이제 네 뜻대로 움직인다는 거야?”


[그렇다고 볼 수도 아닐 수도.]


사무실 소파에 편안한 자세로 널브러져 마른미역을 씹어먹는 유연은 머리에 꽃 꽂은 놈이 자문자답하며 노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떨어져 지낸 지도 오래돼서 정체성을 많이 잃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놈을 보니 나름의 발전이 있더라. 마주치면 무조건 제거하려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아서 실험 삼아 한번 해봤지.]


“그러니까. 선문답같이 네 생각만 떠들지 말고 알아듣게 설명 좀 해보라고.”


[지금은 아냐. 나중에.]


이정도 말하면 알아들을 법도 하건만, 정리되지 않은 결과를 과정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는 건 베르에게도 무척 피곤한 일이었다.


“나중에 언제?”


[결과를 보고 정리 좀 해서.]


“그게 언제냐고?”


[기다려.]


주종이 바뀌었다. 아니, 애초에 주종관계는 아니었던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웬수 놈의 말투는 한 손을 내밀어 흥분한 강아지를 진정시키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씹고 있는 건미역을 뱉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할까 생각하는 유연의 눈에 문자가 왔다는 핸드폰의 알람이 보였다.


- 뒤질래?


단 세 글자.


“으아~~~”


벌떡 일어나 통화버튼을 누른 유연은 폭풍같이 몰아칠 잔소리에 대비해 몸과 마음을 굳건히 했다.


뚜르르~~~


[누구세요?]


“죄송합니다. 누님. 제가 일각이 여삼추같이 공사가 다 망한 관계로 백골이 진토되어...”


[헛소리 그만 하시고 누구 신데 전화하셨냐고요.]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익숙한 지예의 목소리가 분명 하건만...?


“서지예 씨 번호... 맞는데...?”


핸드폰 화면에도 ‘이쁜 척하는 누이’라는 이름이 떠있었다. 문자창에서 바로 통화버튼을 누른 거니 잘못 걸 리가 없잖아?


[한두 번도 아니고 며칠씩 연락을 씹은 건 손절 하자는 뜻 아닌가요?]


뒤질거냐고 상냥하게 물어본 게 누군데...


“누이야. 미안. 내가 좀 바빴어.”


[말 한마디로 퉁 치려고 하지 말고 당장 튀어와.]


“아... 음... 저기...”


[셋 센다.]


뚜... 뚜... 뚜...


이미 삼 초 지났다.


무슨 이유로 저런 의미 없는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몇 년 일찍 태어난 것을 평생 쥐고 갈 권력으로 생각하는 지예의 정신상태를 오늘은 확실히 고쳐주리라 마음먹은 유연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


“음... 케이크까지는 좀 그렇고, 꽃이라도 하나 사 들고 가는 게 좋으려나?”


뭐 일단은 잘못 한 게 있으니까... 그럴 수 있어. 그럼...


똑똑...


이곳을 찾는 사람은 노크는커녕 발로 걷어차며 등장하지 않으면 다행인 부류의 인간들이었기에, 이 시간에 저 문을 노크하는 사람은 열이면 열, 무조건 고객이다.


“들어오세요~”


약간은 들뜬 유연의 목소리에 태준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혹시 누가 같이 온 건 아닌지 뒤를 확인하려는데, 태준의 손에 들린 서슬 퍼런 태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손에 익은 무기를 들고 많은 사람 앞에서 보인 추태를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 것인가?


“왜 왔어요? 리벤지 매치하려고요?”


[내가 불렀어. 잠깐 우리끼리 얘기 좀 하게 빠져있어.]


손에 들고 있던 건미역을 놓치는 유연의 눈동자가 까맣게 변하며 흰자위를 잠식했다.


그래. 니 맘대로 해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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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아가야 24.03.22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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