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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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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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6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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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드래곤의 기억 (1)

DUMMY

#04. 드래곤의 기억


"...정말로?"

"정말이에요. 오늘 따끈따끈하게 들어온 소식이에요."


왕성의 동편에는 메이드들과 왕성에서 일하는 여러 평민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있다.

나도 보통은 이곳에서 밥을 먹는다. 조용한 시간이 필요할 때에는 전속 메이드의 특권으로 종종 식사거리를 챙겨 와서 도서관에서 먹기도 하지만 오멜은 워낙 낮에는 바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혼자서 먹는 쓸쓸한 식사 시간이 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최대한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 하는 편이다. 친한 사람들은 그다지 없지만, 그래도 주변이 북적이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 드니까.


그런 나에게 왕성에서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인 엘리샤는, 식당의 다른 사람이 들을새라 나에게 바짝 몸을 기울인 채로 속삭이듯 말했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전쟁이겠죠···?"

"뭐라고 변명할지는 들어봐야 알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른 나라의 사신을 죽였다는 거는··· 엘 메이아가 젠탈리온에 선전포고를 한 거와 다름없어 보이는데."


엘리샤가 비밀스럽게 말해 준 것은, 젠탈리온이 보낸 사신을 엘 메이아에서 죽였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는 얼마 전에 있었던 왕성 침입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멜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가 그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사자가 됐던 그 사건 말이다.

내가 의도치 않게 같이 휘말리게 되기는 했지만 사실 그 사건에서 나의 존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핵심적인 인물은 바로 같이 보름꽃을 보며 이야기했던 그 여자- 바로 젠탈리온 왕실의 공주님이었다.


그녀의 신분이 공주라는 것이 밝혀지고 난 이후부터 그 사건은 '젠탈리온 공주 암살 미수'라는 대형 사건이 되었다. 거기에 그녀는 단순한 현왕의 딸 정도가 아니라, 왕위 계승 순위가 가장 높은, 젠탈리온 최초의 여왕이 될 가능성이 높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암살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암살자가 바로 옆 나라인 엘 메이아에서 왔을 확률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렇게 조사 결과를 받아 든 젠탈리온 왕실에서는 공식적으로 정치적인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암살자를 보낸 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엘 메이아의 입장을 듣는 것이 필요했으므로 사신을 엘 메이아에 보냈으나 아무런 답변도, 심지어 보낸 사신조차 연락이 끊긴 후 젠탈리온에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뭐, 엘리샤의 말을 듣지 않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어떻게 됐을지는 뻔하다. 이미 공공연한 비밀같은 것이었으나 왕실에서 공식적으로 사신이 살해된 것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엘 메이아에서는 아무런 답변도 없었다.


"왕성 메이드는 말이죠, 되게 여러 소문을 듣게 된다구요. 언니는 전속이시라 잘 모르시겠지만요."

"그치, 나는 그다지 왕성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지는 않으니까··· 기껏해야 다른 메이드들 정도라서."

"궁금하신 게 있으면 저에게 물어봐 주세요! 비밀스러운 연애 이야기도 잔뜩 있다구요?!"

"아, 아하하··· 연애 이야기 말이지."


확실히 왕성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특성상 왕성의 이런저런 소식은 메이드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메이드들끼리 서로 친하게 지내는 편이라 한 명의 소식이 곧 왕성 메이드의 소식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다만 그것들은 엄청난 기밀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잡다한 소식들이다. 누구와 누구가 뒤에서 몰래 사귄다든지, 어느 귀족이 왕에게 된통 깨졌다든지··· 그러나 가끔씩 오늘처럼 꽤 중요한 이야기가 들릴 때도 있다. 정말 민감한 이야기는 메이드에게 전달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서 나도 적당히 이 메이드 소식통을 즐기고 있다.


"그나저나 전쟁이라니··· 괜찮은 걸까요."

"젠탈리온의 기사단이 엄청 강하다고 들었어. 드래곤 나이트도 있잖아."

"그렇지만요. 저는 그래서 좀 더 걱정이 돼요. 엘 메이아도 그걸 모를 리가 없거든요."


오멜도 예전에 같은 이야기를 했었다. 항상 젠탈리온이 전투력으로 엘 메이아를 이겼는데 엘 메이아가 정말로 전쟁을 원할까, 라는 것이었다.

만약에 이렇게 본격적으로 전쟁을 일으킨다면, 분명 이번에는 무언가가 다르다는 이야기다. 엘 메이아의 기사단에 강력한 전력이 추가 되었나? 아니면 유명하다는 마나 공학 기술로 전황을 뒤집을 무언가를 개발한 걸까?


그때, 내 머릿속에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변수가 될 만한 것, 과거와는 다른 것.


"큰일 났어."


엘리사로부터 소문을 들은 그날의 저녁, 방으로 돌아온 오멜이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했다.


"몬스터 카니발이 시작됐어."

"젠탈리온에서는 이미 예상하고 대비하던 거 아니었어? 그래서 얼마 전에 외벽 보수도 했었잖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규모일 줄은 아무도 몰랐어. 기록과도 달라."


방으로 허겁지겁 들어온 오멜의 외투를 겉으로 가서 슬쩍 받아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 그 사이에 오멜은 급하게 책장을 뒤져 몇 권의 책을 찾아 들기 시작했다.


"드래곤이 퇴치된 지점이 왕도와 가까워서 예상되는 몬스터 습격 지점을 왕도로 잡은 게 실수였어. 아니··· 완전히 실수한 건 아니야. 분명 근처의 몬스터들이 왕도를 직접 공격하기는 할 거야. 그런데 생각보다 몬스터 카니발이 일어난 범위가 넓어. 드래고니아 산맥 전체에서 몬스터들이 밀고 내려올 거야."


책상 위에 책들을 바쁘게 쌓아 놓고 오멜은 지도를 펼쳤다. 젠탈리온과 근처의 여러 나라들이 모두 포함된 대륙 지도였다.

이전에 들은 대로 젠탈리온의 동쪽에는 국경을 길게 맞대고 있는 엘 메이아가 있었다. 그리고 그 국경의 북쪽 꼭대기에 큰 산이 있었고 그 산에서부터 엘 메이아와의 국경을 따라 길게 산맥이 형성되어 있었다.

즉, 젠탈리온과 엘 메이아의 국경은 꽤나 길어 보이나 대부분이 산맥이라 마차가 통행할 수 있는 곳은 남쪽 정도였다. 특이한 지형이었다.


"여기가 드래고니아 산맥이야?"

"응. 옛날부터 드래곤의 서식지가 주로 발견되던 곳이라서···"


오멜은 지도 위에 젠탈리온 왕도로 향하는 단순한 화살표를 하나 그려 넣었다.


"이게 처음 예상되던 몬스터 카니발의 경로."


이어서 오멜은 드래고니아 산맥을 따라 길게 선을 그은 후, 선 위에서 젠탈리온 내륙으로 향하는 여러 화살표를 그렸다.


"그리고 이게··· 실제로 발생한 몬스터들의 경로."

"이렇게나 많이?"

"이렇게나 많이. 젠탈리온 동쪽의 대부분의 영토가 공격 대상이 되는 거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그저 왕도로 올 녀석들만 방어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예전에도 몬스터 카니발은 여러 번 있었다며? 이런 자료가 없었어?"

"전혀 없지는 않았어. 처음에 왕도를 향할 거라고 예상한 것도 자료를 바탕으로 한 거고··· 다만 이렇게 광범위하게 발생했다는 자료는 없었어."


오멜은 가져온 책 중 하나를 폈다. 이미 곳곳에 책갈피와 메모, 밑줄이 잔뜩 쳐져 있는 책이었다.


'...몬스터 카니발이 발생하여 한 마을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 후 동부 지방군 대장이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예상되는 경로에 진지를 구축하였고, 일주일 간 전투를 하여 완전 토벌할 수 있었다. 아군의 피해는···'


"이게 200년 전에 있었던 가장 최근 몬스터 카니발의 기록이야. 그 이전 몬스터 카니발의 기록은 너무 오래돼서 자세하게 기록된 건 없지만 이걸로만 보면 발생 범위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어. 한 마을이 파괴되었고 임명된 지휘관도 지방군 대장이야. 분명 젠탈리온의 피해가 있었던 건 맞지만 국소적인 피해였다는 말이지. 이번처럼 광범위하게 발생하지는 않았어."

"옛날 기록은 이제 됐어. 중요한 건 이제 어떻게 하느냐잖아. 대책은 있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젠탈리온의 전투력은 충분해. 범위가 넓다고 해도 몬스터 카니발이라면 막을 수는 있어. 그런데 왕실에서 걱정하고 있는 건···"

"엘 메이아지?"


계속해서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이긴 적 없었다는 엘 메이아에서 갑자기 이렇게 노골적으로 전쟁을 걸어오다니. 확실한 무언가가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엘 메이아에서 이번 몬스터 카니발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면, 특히 이렇게 광범위로 몬스터 카니발이 발생한다는 것을 예상했다면. 그렇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응. 적의 적은 나의 아군이다- 라는 거지. 엘 메이아의 입장에서는. 우리는 두 적을 동시에 상대하게 되는 거고."

"엘 메이아에 보냈던 사신이 죽었다고 들었어."

"벌써 들은 거야? 소식이 빠르네··· 맞아. 정기 연락이 끊긴 시점에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설마 했었거든."


오멜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뭐랄까, 나는 분명히 오멜의 감정과는 다른 무언가, 정말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나는 지금 젠탈리온에서 지내고 있고, 이곳에는 오멜과, 펜하임님과, 그리고 엘리샤가 있다. 내 인생의 전부가 젠탈리온에서 있었던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거꾸로, 드래곤의 습격을 받은 나를 발견한 것이 오멜이 아니라 엘 메이아의 누군가였다면, 나는 엘 메이아에서 모든 기억을 만들어 나갔을 거다. 슬프지만 젠탈리온이라는 나라는 아직은 나에게 그 정도다. 솔직한 내 마음이다.


"갑작스럽지만··· 나를 발견한 곳이 젠탈리온 땅이었다고 했지?"

"...응."

"그렇다면 나는 젠탈리온 사람이었을까?"

"그건···"


오멜은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다.


"...위치는 젠탈리온의 영토였지만 산골 마을이었어. 아마 젠탈리온 사람이라는 인식은 없었지 않았을까."

"그래?"

"...쉽게 납득하는 거야?"

"지금의 나로서는, 응. 그래도 혹시나 기억을 잃기 전의 내가 젠탈리온 사람이었고 엄청난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었거든. 산골 마을이었다면 별로 그렇지도 않았겠네."


오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의 일을 신경 쓰고 있는 걸까.


"너는? 너야말로 젠탈리온의 애국심의 상징 아니야? 왕실 기사단에, 드래곤 나이트에, 거기에 무슨 이 나라에 세 명밖에 없는 아크라고 했잖아.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오멜이 바쁘게 넘기고 있던 책도 얼어붙은 듯 멈춰 있었다.


"...너한테만 할 수 있는 이야기겠네. 사실 별로 그렇지도 않아. 나를 속물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젠탈리온에서 여러 역할을 하는 건 순전히 내 이익 때문이야."

"이익? 왕실에서 돈이라도 많이 줘?"

"돈···도 충분히 주지만 그것보다 연구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니까. 왕실이 소유한 대부분의 자료를 다 볼 수 있고, 연구 재료나 환경도. 도서관 전체를 내 방으로 쓰고 있는 것도 그 이유야. 마법사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게 내 인생의 목표거든. 그리고 마법 연구 관련해서는 개인적인 사정도 있어서···"

"뭐, 멋지네."


이익이라 하길래 돈만 생각한 내가 오히려 더 속물처럼 보였다.

오멜의 말에는 조금 놀랐다. 그저 부스스한 머리카락의 어설픈 마법사라고만 생각 했었는데, 의외로 이런 속 깊은 목표가 있을 줄이야. 그 얘기에 정말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나저나 인생의 목표라. 기억을 잃기 전의 나에게는 무언가 있었을까. 지금의 나에게는 그저 기억을 찾는 것밖에 없는데. 인생의 목표 같은 거창한 건 우선 기억을 찾고 난 다음 생각할 일이다.


나야말로 이기적인 속물이네, 정말.


작가의말

네 번째 타이틀의 시작입니다.


편 수를 세어보니 생각보다 네 번째 타이틀이 길지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세이브본이 더 없다는 뜻이네요. 씁쓸합니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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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08. 게일포트 (4) 24.05.13 7 0 11쪽
36 #08. 게일포트 (3) 24.05.09 6 0 11쪽
35 #08. 게일포트 (2) 24.05.06 5 0 12쪽
34 #08. 게일포트 (1) 24.05.02 7 0 11쪽
33 #07. 산맥의 오아시스 (5) 24.04.29 7 0 14쪽
32 #07. 산맥의 오아시스 (4) 24.04.25 7 0 11쪽
31 #07. 산맥의 오아시스 (3) 24.04.22 7 0 12쪽
30 #07. 산맥의 오아시스 (2) 24.04.18 5 0 14쪽
29 #07. 산맥의 오아시스 (1) 24.04.15 8 0 14쪽
28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5) 24.04.11 8 0 13쪽
27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4) 24.04.08 7 0 11쪽
26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3) 24.04.04 6 0 13쪽
25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2) 24.04.01 7 0 11쪽
24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1) 24.03.28 6 0 13쪽
23 #05. 날개 (5) 24.03.25 8 0 14쪽
22 #05. 날개 (4) 24.03.21 7 0 11쪽
21 #05. 날개 (3) 24.03.18 8 0 11쪽
20 #05. 날개 (2) 24.03.14 1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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