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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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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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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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날개 (1)

DUMMY

#05. 날개


"올리비아··· 말인가요?"


엘리샤는 내 물음에 먹던 빵도 내려놓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뇨, 제 주변에는 없어요. 그래도 꽤 흔한 이름이지 않나요?"

"왕실 기사나 드래곤 나이트에는?"

"글쎄요··· 왕성 안에서는 들어 본 적 없어요."


드래곤을 직접 보러 간 그날 이후로 나에게는 더 이상 드래곤을 봐야겠다는 이상할 정도로 심한 집착은 사라졌다.

역시나 그건 저주였을까. 만약 저주였다고 해도 이제는 풀렸다고 생각한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드래곤의 시체가 보관된 가건물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있었다.

건물을 나오면서 전개된 마법들을 철저하게 복구해 놓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의심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도둑이 제발 저리듯 괜한 마음에 일부러 그곳 근처까지도 피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여전히 이상한 기분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건 또 다른 일로, 드래곤과 접촉하는 순간 보았던 그 기묘한 환상 때문이었다.


혼자서 찬찬히 기억을 되짚으며 정리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두 가지의 별개의 사건일 거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첫 번째는 젠탈리온의 드래곤 나이트의 드래곤 토벌이다. 그 자리에 사울로 기사단장님과, 로웨나, 그리고 오멜까지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건 확실했다.

그 환상에서 로웨나가 어떤 마법을 사용했고, 이건 이전에 들었던 로웨나가 특이한 마법을 써서 드래곤 토벌에 공을 올렸다는 이야기와도 일치했다.


두 번째는 토벌된 두 드래곤의 대화다. 이건 몇 마디 정도의 아주 짧은 대화였는데, 거기에서 '올리비아'라는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이름의 주인공이 누군지가 궁금했다. 분명 토벌된 드래곤은 두 마리가 맞다. 실제로 드래곤이 세 마리었다면 한 마리를 놓쳤다는 말이고, 그 상황에서는 드래곤 나이트가 성대하게 토벌을 축하하지도 않았을 거다. 남은 드래곤이 언제 젠탈리온으로 와서 복수를 할지 모르니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올리비아가 인간이라는 것도 이상하다. 애초에 드래곤과 인간이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다. 애초에 드래곤은 인간의 적이 아닌가.

다만 드래곤이 마을로 내려간다고 했고, 올리비아는 이미 내려갔다는 것으로 보면 오히려 인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드래곤이 마을로 당당하게 내려갔다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을 거니까.


혹시나 우리 가족이 죽은 것과··· 이 올리비아가 관련된 것이 아닐까, 라는 근거 없는 생각에 사로잡힐 뿐이었다. 그것이 드래곤이든 인간이든.


"엘리샤, 그러면··· 드래곤에도 이름이 있어?"

"글쎄요, 있는지 없는지 물으시면 있다고는 생각해요. 자기들끼리 서로를 불러야 하니까요. 드래곤 같은 고등 생명체에게 이름이 없다는 것도 이상하구요."

"하지만 사람들이 알지는 못 하는 거지?"

"드래곤의 이름이 밝혀졌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어요. 일종의 이명으로만 부르고 있으니까요. 대표적으로 언니도 잘 아시는 그 드래곤도 그렇잖아요."

"나이트메어···"


전설적인 드래곤이자 젠탈리온에 저주를 남긴 드래곤인 나이트메어. 그것이 사람들이 나중에 붙인 별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이명은 인간들에게 악몽과도 같았던 드래곤이었다는 의미었겠지. 그 드래곤의 강력함과 무자비함을 나타내는 이명이기도 했다.


"이번에 토벌된 드래곤들도 이름은 모르는 거야?"

"음, 듣지 못했어요."


먼저 대답을 하고 잠깐 생각에 잠긴 엘리샤는 무언가 떠올렸다는 듯 덧붙였다.


"다만 두 마리 다 수정(Crystal)의 드래곤이라고 누군가 말하는 것을 들었던 것 같아요. 아직 공식적인 이명은 아니지만요."

"수정의 드래곤?"

"네에. 드래곤이 살았던 산이 수정이 많이 나오는 산인가봐요. 어마어마한 가치의 수정과 보석을 드래곤이 숨겨놓고 있었대요."

"...소문이지?"

"...소문이지만요."


호로록.

엘리샤는 딴청 피우듯 내 눈을 피하며 찻잔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럴싸하지 않아요? 그 수정이 마법석으로 사용될 수만 있다면 드래곤이 분명히 자신의 둥지에 잔뜩 챙겨 두었을 거라구요. 마법석으로 쓸 수 있는 수정이 쏟아져 나오는 산이라니··· 상상할 수 없이 어마어마한 가치예요."

"뭐··· 일리는 있어. 진짜 소문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원래 보물 이야기를 다들 좋아하잖아."

"진실은 드래곤 나이트 분들만 아시겠죠, 뭐."


엘리샤의 말에 무언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엘리샤, 혹시··· 드래곤 토벌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드래곤 나이트 밖에 없어?"

"네? 글쎄요··· 그렇지 않겠어요? 드래곤 나이트야말로 젠탈리온의 최고의 전력이니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전투 인원 말고도 다른 지원이 붙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원정이니까."

"어, 음. 그렇죠. 얼마나 작전이 길어질지 알 수 없으니까요."

"혹시 그중에 아는 사람이 있어?"


으응, 하고 엘리샤는 신음했다.


"조리장···님?"

"조리장님?"

"사실 드래곤 토벌 작전 자체가 작전 전까지는 극비여서 '나 드래곤 토벌에 지원으로 함께 가게 됐어~ 자리 비울게~' 같은 말은 하지 않으니까요··· 정확히 누가 기사단 지원으로 참가했는지는 직접 물어봐야 알겠지만 생각해보면 조리장님이 당시 부재중이셨거든요. 메이드장님이 이 바쁜 와중에 조리장님 어디 갔냐고 언짢아 하셨던 기억이 나요."

"고마워 엘리샤!"

"엇, 언니, 어디 가세요?"

"갑자기 볼일이 생겨서. 먼저 일어날게! 이따 봐!"


서둘러 식기를 정리하고 자리를 일어난 내 등 뒤에서 제가 말했다고는 하지 말아주세요, 라고 엘리샤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생긴 볼일이라는 건 당연히 조리장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드래곤이 정말로 값비싼 수정을 챙겨두고 있었는지, 이런 소문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올리비아라는 이름에만 관심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조리장님이 우연히 이 이름을 알고 있다는 형편 좋은 이야기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드래곤 나이트가 아닌 사람들 중에 드래곤 토벌에 참가한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귀한 기회다.

직접 드래곤 나이트의 기사를 찾아가 물어볼 수도 있지만, 모든 정보를 극비로 꽁꽁 싸매고 있는 드래곤 나이트에게 내가 드래곤 토벌과 관련된 일을 캐묻고 다닌다는 사실이 들어가는 건 아무래도 껄끄럽다. 그다지 나쁜 짓을 하는 건 아니지만···

거기에 오멜은 논외다. 이번 건만은 오멜 외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다.


조리장님은 왕실의 조리실을 총괄하는 분이시다. 서열로 보자면 왕실 메이드를 총괄하는 메이드장님과 같지만, 아무래도 조리원보다 메이드들이 왕실에서 인정받는 경향이 있어 메이드장님이 조리장님보다 미묘하게 힘이 센 관계이다.

그래서 여러모로 여러 방향에서 치이는 분이시다. 일개 메이드인 나까지 가끔씩 그런 조리장님이 안쓰러울 때도 있을 정도니까.


"저기··· 오멜 마나필드님의 전속 메이드인 루비라고 합니다. 카터 조리장님을 찾고 있는데···요···"

"소스 준비 됐어? 빨리 준비해! 와인은?"

"먼저 들어간 고기 빼야되지 않아?"

"아직 안 뺐어? 빨리 빼!"


왕성의 조리실은 오멜의 도서관과 같이 별관에 위치해 있었다. 다만 본관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별관에서 오멜의 도서관은 서쪽이고 조리실은 남쪽에 위치해서 평소에는 그다지 들릴 일은 없다.

조심스레 조리실의 문을 열고 용건을 말했으나, 그곳은 그야말로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여러 조리원들이 조리실을 종횡무진 누비며 시간이라는 적과 싸우고 있는 전쟁터였다.


"카터 조리장님을 찾고 있는데요···!"

"뭐야?"


난리법석인 조리실의 풍경에 잠시 당황했으나 목을 가다듬고 한 번 더 소리내어 나의 존재감을 어필하자, 머리에 두건을 둘러 쓴 남자가 커다란 웍을 불 위에서 휘젓다가 나를 휙 돌아보았다.

왕실 조리장인 카터 리버(Carter Liver)다. 꽤 나이가 든 중년으로 제법 큰 덩치에 거친 피부를 가진 사람이다. 아저씨와 할아버지, 그사이 어딘가에 있는 분이다. 스스로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시는 듯했지만.


"어, 루비 아니냐. 무슨 일이야? 메이드장이 또 심부름 시키던?"

"아뇨, 그게 아니라··· 조리장님이랑 이야기를 좀···"

"그게 아니야? 루비, 바쁘냐?"

"그··· 아뇨, 바쁘지는 않습니다."

"잘 됐다. 이리 잠깐 와봐."

"...예?"


얼떨결에 조리장님의 옆으로 간 나의 허리에는 하얀색 앞치마가, 머리에는 조리용 두건이 둘러지고 손에는 식칼이 쥐어졌다.


"자, 저쪽에 썰어놓은 모양대로 야채들 썰어 주기만 하면 되거든."

"아뇨··· 그···"

"서둘러라. 오늘 왕실에 만찬이 있어서 말할 시간도 없어."

"......"


-


"흐에엑···"


그야말로 전쟁터에서의 두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완성된 요리들을 하나씩 밀어내었고, 마침내 마지막 요리가 마무리되는 순간 나는 쓰러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제법인데. 어디서 요리를 배우기라도 한 건가?"

"요리요? 아니요. 한 번도 없는데요···"

"재료를 써는 솜씨가 제법인데. 조리실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아차, 이러면 오멜님께 실례려나. 모처럼의 전속인데 말이야."


허허허, 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조리장님 옆에서 나는 아하하, 라고 애매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완전히 다른 종류의 칼이지만 어쨌든 펜하임님께 마법과 함께 검을 배우고 있으니까. 그게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이 정도 사이즈의 칼을 이전 몬스터의 사건으로 실전에서 쥐어본 적도 있었다.


"그래서 조리실에는 왜 온 거냐?"

"그···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조리장님이랑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

"응? 그런 말을 했었나?"


조리장님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뭐··· 아까는 정신없이 바빴으니까. 나조차도 현장에서 하나도 정신이 없었으니까 조금은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자리를 옮길까, 하고 조리장님은 조리실을 나와 별관과 본관 사이의 공터에 있는 벤치에 앉으셨다. 나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있나?"

"...네? 언제쯤이라뇨?"

"조리원으로 지원하겠다는 이야기 아니냐?"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런 건 아니에요."

"쩝, 아쉽구만. 그럼 일개 조리장한테까지 와서 할 이야기라는 게 뭔지 좀 궁금해지는 걸."

"드래곤 토벌 작전에 함께 가셨다고 들었어요."

"드래곤 토벌 말이지."


조리장님은 테이블에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작가의말

다섯 번째 타이틀의 시작입니다.


감사합니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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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08. 게일포트 (3) 24.05.09 6 0 11쪽
35 #08. 게일포트 (2) 24.05.06 5 0 12쪽
34 #08. 게일포트 (1) 24.05.02 7 0 11쪽
33 #07. 산맥의 오아시스 (5) 24.04.29 7 0 14쪽
32 #07. 산맥의 오아시스 (4) 24.04.25 7 0 11쪽
31 #07. 산맥의 오아시스 (3) 24.04.22 7 0 12쪽
30 #07. 산맥의 오아시스 (2) 24.04.18 5 0 14쪽
29 #07. 산맥의 오아시스 (1) 24.04.15 9 0 14쪽
28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5) 24.04.11 8 0 13쪽
27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4) 24.04.08 7 0 11쪽
26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3) 24.04.04 6 0 13쪽
25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2) 24.04.01 7 0 11쪽
24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1) 24.03.28 6 0 13쪽
23 #05. 날개 (5) 24.03.25 8 0 14쪽
22 #05. 날개 (4) 24.03.21 7 0 11쪽
21 #05. 날개 (3) 24.03.18 9 0 11쪽
20 #05. 날개 (2) 24.03.14 1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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