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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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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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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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흠이 없는 검정 (2)

DUMMY

‘빨라···!’


아마도 한 녀석이 가시를 던진 틈을 타서 다른 녀석이 곧장 나에게 달려든 것 같았다. 가시에 집중하느라 검을 위로 휘두른 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몸의 가드를 열게 되어 버렸다. 그 틈을 몬스터가 파고들었다.


“케, 케겍.”

“조심해요. 녀석들은 한둘이 아니라서요. 잠깐 빈틈을 보이면 공격당할 수 있어요.”

“...미안. 방심했어.”


하지만 그 몬스터의 공격은 나에게 닿지 못했다. 언제 자신 쪽의 몬스터를 정리한 것인지 펠리스는 순식간에 자신의 클로로 나에게 파고든 몬스터의 머리를 올려 꿰뚫었다.


정말로 방심했다. 아니, 방심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건 내 버릇이었다. 펜하임님과 훈련했을 때에도 나에게는 무심결에 본능적으로 나타나는 움직임이 있었다. 펜하임님도 여러 번 그것을 지적하셨다.


-난 약해 빠진 녀석들을 싫어해.


잠깐만 집중이 흐트러지면 본능적인 움직임이 나를 지배하는 기분이었다. 그건 폰더레이 마을에서 또 다른 나에게 주도권을 뺏겼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배리어!”


자신에게 붙은 녀석들을 처리했는지 오멜이 우리 세 명을 감싸는 배리어를 전개했고, 그 위로 가시가 비처럼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오멜, 괜찮아?”

“아직까지는··· 여기 주변에 풀숲이 너무 많아서 사방에서 둘러싸이게 돼. 진형의 이점을 살리기가 힘들어.”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계곡이 있어요. 계곡을 끼고 싸우면 훨씬 시야가 확보될 거예요. 제대로 마법을 써서 녀석들을 한 번에 없앨 수 있어요.”

“거기까지 뚫을 수 있겠어?”

“해봐야죠.”


펠리스는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다시 한번 몸을 풀었다.

드래곤이니 뭐니 해도 방심해서는 짐짝밖에 되지 않는다. 나도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했다.

펠리스는 풀숲이 우거진 한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오멜은 고개를 끄덕이고 배리어를 거뒀다. 주변에서 몬스터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것들··· 몇십 마리 정도가 아닌데? 이렇게 많을 수가 있는 거야?”

“이전에 혼자 왔을 때는 사실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요··· 우리의 숫자가 많은 만큼 더 많은 몬스터가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아니면 그 사이에 불어났을 수도 있고요.”


빠르게 앞을 뚫어내는 펠리스의 속도에 맞추어 나는 후위에 서서 진형 가운데의 오멜을 노리고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끝없이 베어냈다. 오멜도 소규모의 마법으로 멀리서 우리를 노리고 가시를 던져오는 몬스터를 차례차례 쓰러뜨렸다. 꽤나 안정성은 높은 파티였다.

천만다행인 점은 하나하나는 그렇게 강력하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다만 그 물량에 밀려 조금씩 피로가 누적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수많은 적들과 길게 전투를 진행한 건 그다지 없었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자.


-우지직!


“냐하하!”


그리고 정말 인상 깊은 것은, 바로 펠리스의 움직임이었다. 아마도 사고 가속이다.

근접전은 보통 거리 싸움이 전부라고도 한다. 그만큼 상대방의 공격이 닿을 거리를 주지 않고, 내 공격 때 거리를 좁히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펠리스의 전투법은 마치 상대의 공격 사거리로 몸을 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찌 보면 굉장히 위험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몬스터의 근접 공격은 펠리스에게 닿지 않았다. 매번 스쳐 지나가거나, 펠리스의 클로에 막혔다.

펠리스가 말했던 자신이 부족에서 가장 강하다는 것도··· 어쩌면 허풍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기예요!”


그렇게 얼마를 끝없는 전투를 하며 나아갔을까. 마지막 풀숲을 뛰어넘자 거대한 벽처럼 솟아오른 절벽과 그 앞에 흐르는 계곡이 나타났다.

펠리스가 말한 대로 탁 트인 공간이었다. 다만 높은 절벽 탓에 우리에게도 자칫하면 막다른 길이 될 수도 있었다.


“크르륵··· 크륵···”


우리를 따라온 몬스터가 액체가 끓는 것 같은 낮고 기묘한 울음소리를 냈다.

계곡을 향해 천천히 뒷걸음질 치는 우리를 보고 그것들은 마치 포위하듯 서서히 넓게 퍼져서 우리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다지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전부 튀어나와 준다면 고마울 따름이다.

오멜은 지팡이를 앞으로 향하고, 그 끝에서 복잡한 형태의 마법진이 순식간에 전개되기 시작했다.


-쿠구궁···


대규모 전쟁에서 상급 마법사 하나의 파괴력은 그 전황을 바꿀 수 있을 정도다. 마법사의 힘은 특별히 광범위 마법에서 빛을 발한다.

쿵, 하고 몬스터들의 발아래의 땅이 진동했다. 그리고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땅이 거꾸로 뒤집어졌다. 마치 거대한 대지의 파도와도 같은 것이 그 발아래에서 생겨서 순식간에 그 자리에 서 있던 모든 몬스터들을 땅속으로 잡아끌고 들어갔다.


“......”


흙과 자갈과 돌들이 부딪혀 내는 시끄러운 소리가 가시고, 그곳에는 피어오르는 먼지와 침묵만이 흘렀다.


“굉장해요! 오멜은 정말로 굉장해요!”

“잠, 잠깐, 너무 달라 붙지 마.”

“자, 거기까지.”


몇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일순간에 사라진 것을 보고 펠리스는 잔뜩 흥분한 듯 오멜에게 달려들었다. 그다지 나와는 상관없었다. 정말로 상관없었지만, 그저 오멜이 곤란해하는 것 같았기에 그 사이에서 펠리스를 만류했다.


“오멜은 몇 레벨인 거예요? 저 같은 동물계들은 선천적으로 마법에 대한 재능이 그다지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리 못해도 7레벨 이상이죠?”

“으응··· 뭐, 그렇지···”

“7레벨?! 아니면 8레벨?!”

“그, 그 정도이려나.”


10레벨의 마법사는 아크라는 별칭까지 있을 정도로 인간들 사이에서는 아주 드물다. 젠탈리온에서도 단 세 명만의 아크가 있을 정도니까. 이런 상황에서 10레벨인 것을 밝히면 오멜의 정체가 너무 뚜렷해진다. 그다지 이런 것으로 펠리스를 의심하려는 건 아니지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다.


“8레벨이라니, 굉장해요··· 모험가 중에서는 처음 봤어요. 저도 저희 부족에서는 그나마 마나 레벨이 높은 편이긴 한데요, 그래도 4레벨 정도여서요.”

“4레벨이면···”

“2레벨 당 마나량이 10배 차이가 나니까요. 마나량으로만 따지자면 오멜과 저는 100배 정도 차이가 나겠네요.”


마나 레벨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기는 했지만 직관적으로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는 처음 들어서 조금 놀랐다.

그렇다면 1레벨의 마나 레벨 차이는 3배 정도의 차이라는 거다. 펜하임님께서 말씀해 주신 지금의 내 마나 레벨이 9라고 하셨으니까, 오멜과는 3배도 넘는 마나량의 차이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10레벨이라는 건 정말로 굉장하네.


“그래도 펠리스는 전투력은 굉장하잖아. 나는 그다지 몸을 잘 움직이는 편은 아니라서···”

“그렇죠, 뭐. 저희 종족의 특징이니까요.”


펠리스는 몬스터의 체액으로 범벅이 된 클로를 자랑스럽게 들어 보였다.


“오멜도 오멜이지만, 루비도 조금 놀랐어요. 조금 실례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루비도 오멜과 같은 마법사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다지 근접전을 잘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굉장한걸요.”

“조금 배웠을 뿐이야. 고마워.”


사실 여전히 펠리스를 백 퍼센트 신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줄곧 의식적으로 마법을 전혀 쓰지 않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다지 우리 쪽의 실력을 전부 보여 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무리의 몬스터를 정리한 후 우리는 다시 숲으로 들어가 지도를 작성해나갔다.

여전히 중간중간에 같은 종류의 몬스터들의 습격이 있기는 했지만 처음과 같이 떼로 몰려나오지는 않았다. 오멜의 마법으로 꽤 많은 숫자를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무리 지어 움직이는 종류의 몬스터들은 번식 속도가 굉장히 빠르거든요. 서식지의 모든 녀석들을 없애지 않는 이상 금세 숫자를 복구할 거예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전체를 정리하는 건 힘들까?”

“조금 전에 대부분이 토벌된 느낌이긴 해요. 거기에 서식지를 아예 소탕했다고 보고하면 의뢰비를 더 올려 받을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옵션이에요. 지도만 잘 작성할 수 있다면 저는 오케이거든요.”


흐흥, 하고 펠리스는 뿌듯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확실히 펠리스의 목적은 자신이 받은 의뢰를 하나도 실패 없이 성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관점에서는 굳이 실패 가능성이 있는 추가 의뢰를 무리해서 할 필요는 없다.


그때, 펠리스를 뒤따라가던 오멜이 입을 열었다.


“...조금 걱정되는 게 있는데.”

“어떤 거죠?”

“이렇게 집단행동을 하는 몬스터들은 집단의 리더가 있을 가능성이 있어. 그렇지 않고서는 집단의 통솔이 불가능하니까.”

“퀸(Queen) 말이네요. 저도 동의해요. 퀸이 아니고서야 무리의 수를 빠르게 늘리기도 힘드니까요.”


그런 수상한 녀석이 있다면 더더욱 완전 소탕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번에는 아쉽지만 펠리스의 말대로 지도 작성으로 마무리하고, 나머지는 엘 메이아의 군대에게 맡겨야겠다.


그렇게 우리는 얼마 동안 숲의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갔다.

중간중간에 그 몬스터들에게서 빠진 가시가 떨어져 있거나, 무언가가 무리 지어 움직였던 길목이 더 뚜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근처인 것 같아요.”


펠리스의 말마따나 조금 앞쪽으로 벽처럼 크게 솟아올라 있는 절벽이 보였다. 이 몬스터들이 어디에 터를 잡는 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절벽 근처가 아무래도 서식지를 삼기에는 좋지 않을까.

그리고 동시에, 처음 이 숲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느꼈던 이상한 느낌이 더 강해졌다. 마치 공기가 내 피부 위를 간지럽히는 듯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이었다.


‘마나의 흐름일까···?’


슬쩍 내 앞에서 가고 있는 오멜을 쳐다보았지만 그다지 나처럼 무언가를 느낀 것 같지는 않았다. 마나의 흐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미약하다. 굳이 말하자면··· 마나의 기시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알 것 같으면서도 알지 못하는, 그런 이상한 느낌이었다.

아마 괜한 기분이거나 착각이겠지. 마나와 관련된 무언가였다면 오멜이 먼저 반응을 했을 거다.


“...여기가 맞지?”


그렇게 절벽 가까이로 다가가니, 그곳에는 텅 빈 공터가 있었다.

공터 자체는 아주 인위적이었다. 자연적으로 형성될 만한 공터가 아니었다. 하지만 몬스터의 서식지라고 하기에는 퀸이든 다른 녀석들이든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작가의말

벌써 40화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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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08. 게일포트 (4) 24.05.13 7 0 11쪽
36 #08. 게일포트 (3) 24.05.09 6 0 11쪽
35 #08. 게일포트 (2) 24.05.06 5 0 12쪽
34 #08. 게일포트 (1) 24.05.02 7 0 11쪽
33 #07. 산맥의 오아시스 (5) 24.04.29 7 0 14쪽
32 #07. 산맥의 오아시스 (4) 24.04.25 7 0 11쪽
31 #07. 산맥의 오아시스 (3) 24.04.22 7 0 12쪽
30 #07. 산맥의 오아시스 (2) 24.04.18 5 0 14쪽
29 #07. 산맥의 오아시스 (1) 24.04.15 9 0 14쪽
28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5) 24.04.11 8 0 13쪽
27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4) 24.04.08 7 0 11쪽
26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3) 24.04.04 6 0 13쪽
25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2) 24.04.01 7 0 11쪽
24 #06. 죽음의 꼬리를 삼키다 (1) 24.03.28 6 0 13쪽
23 #05. 날개 (5) 24.03.25 8 0 14쪽
22 #05. 날개 (4) 24.03.21 7 0 11쪽
21 #05. 날개 (3) 24.03.18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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