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가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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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nic
그림/삽화
......
작품등록일 :
2024.01.2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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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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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3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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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케 종족 노예를 얻다.(3)

DUMMY

아직 혈향이 남아있는 땅,

차가운 눈빛에 가죽 면갑으로 얼굴을 절반 정도 가린 붉은 머리칼의 여자가 앉아서 무언가를 찾는지 땅바닥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녀는 질 좋은 마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건틀렛과 완갑, 견갑 그리고 심장을 보호하는 호심경을 착용하고 허리춤에는 황금색 쌍도와 손잡이가 은으로 도금이 된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는 대도를 등에 둘러 맨 키가 작고 뚱뚱한 체형에 인상이 유순해 보이는 남자가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상해. 여기까지 온 마차들이 이동한 흔적은 없는데,....., 할아버지와 상단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남아있는 흔적들을 보면 스콜베어와 부딪힌 것 같은데, 할아버지 친위병들이 있는데 고작 스콜베어 따위에게 상단이 무너질 까닭이 없어. 음......, 그런데 여기에 있는 시체들을 태운 흔적은 뭘까? 만일 그들이 약탈자들이나 상단주 할아버지가 보낸 자들이 일을 치른 거라면 왜 시신들을 태운 거지? 도무지 모르겠어. 도대체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게다가 그 많은 물자들을 실은 마차들을 스콜베어가 가져갔을 리도 없고, 더 이상 마차들이 이동한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것을 보면, 설마 그 많은 물자들을 실은 마차들을 아공간에 넣어 갔을까? 그 정도 공간을 가진 아공간 아티팩트를 소유한 자라면 꽤 알려진 자일 텐데......, 아니 어쩌면 내가 모르는 아공간 스킬을 보유한 플레이어가 아닐까? 근데, 그런 규모의 아공간 스킬을 보유한 자가 있기는 할까? 이 일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동원되었을까?”


그 때 숲 속에서 손에 활을 들고 허리춤에 화살통을 매단 키가 크고 삐쩍 마른 한 남자가 그녀를 향해 뛰어왔다.


“큰 아가씨, 몇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벗어난 흔적을 찾았습니다.”

“토마스, 흔적이 남아 있다면, 그들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겠어요?”

“대략.......”

“대략이라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추적자 스킬을 가지고 있는 토마스 자네가 그런 희미한 답을 내놓는단 말이야.”

“호른, 그게 찾긴 찾았는데, 나도 간신히 그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숫자 만을 짐작할 뿐이야.”

“자네 능력으로 그걸 말이라고 해?”

“그만들 해요. 그래 알아낸 것은 무엇인가요?”

“그건, 남자 하나에 여자가 셋 정도로 보이는데 그게 확실하진 않아요.”

“남자 하나에 여자가 셋이라?”


여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추적술 스킬을 가진 토마스에게서 의외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이끄는 상단과 스콜베어 그리고 의문의 사람들 어쩌면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조합에 여자는 선 듯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현수에게 모든 것을 넘겨준 노인의 손녀딸인 이사벨 구잔이었다.


‘남자 하나에 여자가 셋이라. 이곳을 그들이 거쳐 갔다면 그들이 의심스러워. 하지만 불과 넷에 할아버지의 친위병들이 당했다면 도대체 얼마나 강한 적들일까? 그들 중에 아공간 스킬을 가진 자가 있겠지. 아니 어쩌면 그 많은 물량을 가져가려면 한 명 이상이 아공간 스킬을 가지고 있을 거야. 아공간 스킬을 가진 강한 플레이어들의 조합이라니, 그 정도 능력 있는 플레이어들을 고용하자면 역시 상단주 할아버지의 소행일까?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셨을까? 설마 이렇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돌아가신 걸까? 아니면......’


생각이 복잡해지자 이사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곳을 벗어난 그들은 어디로 갔나요?”

“큰 아가씨, 그들은 북쪽으로 올라갔어요. 제 생각으로는 우회해서 가려는 모양인데 목적지는 역시 헤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제 생각이지만 그들이 북쪽으로 향한 것은 아무래도 추적자가 붙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렇다는 것은 저희가 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떻게 할까요?”

“추적자라......, 길을 잡아. 그들을 따라가야죠.”

“예, 큰 아가씨.”


이사벨과 남자들은 현수 등이 이동한 방향으로 사라졌다.


살육의 현장을 떠난 현수는 빠르게 이동했지만 몸이 가볍고 빠른 숲의 종족인 살케 종족답게 헬레나 등은 어느 정도 현수가 여유를 두긴 했지만 고속으로 질주하는 그의 뒤를 그다지 처지지 않고 따라왔다.


“오늘은 여기서 자기로 하죠?”

“........”


해가 사라지기 직전까지 이동하던 현수는 장정 대여섯 명 정도가 서로 손을 잡아야 겨우 둘러쌓을 수 있는 큰 나무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발견했다. 매끈한 나무줄기로 봐서 현수가 질색하는 기생하는 마수목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 나무들 중 가장 웅장해 보이는 나무를 올려다보며 오늘 밤은 이 나무 위에서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현수가 말하자 헬레나 등은 서로를 쳐다봤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헬레나와 셀레나가 나무 위로 올라가 서너 명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나무 위에서 부르는 헬레나의 손짓에 현수와 잔느가 올라가자 꽤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현수가 자리를 잡자 헬레나 등도 흩어져 자리를 잡았다.

호흡이 안정적인 현수와는 달리 우리에 갇혀 있다가 꽤나 먼 거리를 이동했기에 몸이 굳어있던 헬레나 등은 거친 호흡을 토해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수가 다들 호흡이 조금 잦아들자 아공간(룬)에서 꺼낸 육포를 헬레나 등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들은 현수가 건네 준 육포를 각자 앞에 내려놓고 주변 나무의 결을 따라 표피를 제거한 뒤 촉촉한 나무 속살을 파서 먹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그들은 물기에 젖은 나무 속살을 먹고 생기를 되찾았다.


‘셀케 종족은 채식을 주식으로 하는 비건 종족인가?’


현수의 의문에 답을 하듯이 헬레나 등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육포를 품안에 넣었다. 육포를 갈무리하는 것으로 봐선 육식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입고 있는 가는 나무줄기로 만들어 노출이 심하고 겨우 아래위 치부만 가린 셀케 종족 특유의 옷이 피에 젖어있어 현수의 눈을 불편하게 했다.

현수는 아공간(룬)에서 그들이 입을만한 가죽옷을 꺼내 건네주자 현수가 보는 앞에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했다. 좋아하는 여배우를 닮은 헬레나와 셀레나의 나신을 볼 수 있는 기회였지만 현수는 이성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이었지 양아치는 아니었다.


“이 근처 물이 있는 곳에서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도록 해요.”

“주인님, 굳이 저희가 물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에페리아의 가호를 받는 셀레나가 저희를 씻어줄 수 있습니다.”

“에페리아의 가호를 받는다고?”

“예.”


이미 상태창을 통해 그들의 스킬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뜻하는 스킬의 의미를 알 수 없었던 현수는 자신들의 능력을 드러내는 헬레나의 말에 그녀의 쌍둥이 여동생인 셀레나를 쳐다봤다.

한편 현수의 노예가 된 헬레나는 플레이어의 기본 룰 중에 가장 우선이 되는 법칙 중에 하나인 플레이어라면 상대방에게 자신의 스킬을 밝히지 말라는 광야의 법칙을 어기고 헬레나가 새로운 주인에게 셀레나의 스킬을 밝힌 것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스킬을 속일 생각이 있다면 주인이 물어보지 않는 한 굳이 말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현수의 시선에서 셀레나는 무언의 승낙을 알아차리자 미소를 지으며 예쁜 입으로 말했다.


“물의 수호정령 에페리아여 우리의 더러움을 씻어 주세요.”


정령을 부르는 셀레나의 말이 끝나자 셀레나와 헬레나, 잔느의 몸이 허공에서 생성된 물에 둘러싸였다. 물은 가볍게 회전하며 세 사람 몸에 붙어있는 지저분한 것들과 굳어버린 피를 모두 씻어냈다. 몸이 깨끗해지자 세 사람은 나무줄기로 만든 옷을 벗어버리고 현수가 내준 가죽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들의 행동에 얼굴이 달아오른 현수는 고개를 돌리자, 그의 모습을 본 세 사람은 서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안심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미모가 뛰어난 많은 수의 살케 종족 노예들은 뛰어난 자신들의 능력에 비해서 색노로 취급당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나 인간과의 성관계에서 태어난 하프 살케인들의 삶은 더 비극적이었다.

비록 인간의 우리에 갇혀 있던 짧은 시간이었지만 헬레나 등은 많은 것을 듣고 접할 수 있었기에 현수의 마음씀씀이가 그들의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다들 어떻게 된 일인가요? 아니 내 말은 어떻게 그들에게 잡혀 노예가 된 건지 알고 싶어서 인데, 내키지 않는다면 굳이 이야기 할 필요는 없어요.”

“주인님, 숲에서 살아가던 저희 부족은 약탈자들에게 당해 살아남은 부족민들은 노예가 됐습니다.”

“약탈자라?”


자신을 바라보는 순종적인 이들을 보며 솔직히 노예를 소유한다는 것에 불편한 심정이던 현수는 이들을 풀어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노예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온 순간 그들이 노인에게 보인 살기를 떠올리자 선 듯 이들을 노예에서 풀어주는 것이 망설여졌다.

다만 현수가 반지에 속한 노예 주술을 사용해본 결과 지금 이들의 상태가 노예 주술의 3단계로 자신의 의지를 상실하고 주인이 지시한 것만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란 것을 인지하고 주술의 단계를 1단계로 낮출 생각을 했다. 1단계라면 노예 주술 중 가장 느슨한 단계로 주인의 의사에 반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의사대로 삶을 영위하는 것은 가능한 단계였다.


“%@%@#%%”


현수가 노예 주술의 단계를 1단계로 낮추자 헬레나 등의 서로 색깔이 다른 오드 아이 눈빛이 좀 더 생기를 띄고 지혜로워졌다. 게다가 현수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더 따뜻해졌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사실 여러분을 노예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지만 살케 종족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어요. 어때요. 나와 같이 살아보지 않겠어요?”


헬레나 등은 현수의 권유에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그동안 얼마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사람들 틈에 노예로 있으면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확실히 자각했기에 어쩌면 좋은 주인일지 모르는 현수의 권유에 마음이 동했다. 그들이라고 은혜를 모르는 종족들이 아니었다. 서로 간의 시선에서 마음을 확인한 헬레나는 현수에게 말했다.


“저희는 주인님의 뜻에 따르겠어요. 그리고 저희에게 말을 낮추어주세요. 그런 말투는 타인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도 있어요. 부디 저희를 위해서라도 그리해주세요.”

“알겠어요. 헬레나. 그런 앞으론 말을 편하게 하겠어요.”

“예, 주인님.”


현수는 밤이 세도록 헬레나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면서 이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숲에 대해 막연히 지식만을 갖고 있던 현수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어느덧 아침이 되었다.

현수는 평소대로 단전호흡인 호랑이 호흡을 하면서 마력을 끌어 모으자. 헬레나 등이 주변을 경계하며 그의 모습을 지켜봤다.

살케 종족 중에서도 부족을 지키는 전사이자 사냥꾼들로서 마력에 민감한 헬레나 등은 현수 주변에서 미미하지만 마력이 움직이며 그에게 흡수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들의 시선은 현수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단전호흡과 명상이 끝나자 현수는 평소에 하던 대로 호랑이 격술을 수련했다.

27초의 호랑이 격술은 빠르게 혹은 느리게 현수의 몸에서 펼쳐졌다. 그런 그의 모습을 정신이 절반은 나간 모습으로 헬레나 등이 지켜봤다. 단지 활이나 쏘고 숲을 질주하거나 부족이 먹을 식량이나 채집하던 그들이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던 체술 이었다.

호랑이 격술이 끝나고 호흡을 가다듬는 현수 앞에 그를 추종하는 신도가 된 이들만이 남아있었다.


“다들 배우고 싶나?”

“예, 주인님.”


간절히 원하는 헬레나 등의 눈빛을 보곤 슬쩍 현수에게 장난기가 도졌다.


“음-음-, 이 기술들은 우리 가문에 전해져오는 아주 특별한 무술들이야. 이걸 그대들이 배우면 평생 아니 자손대대로 우리 가문에 종속이 되어야하는데 그래도 배우고 싶어?”


현수의 말에 헬레나 등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세 사람 모두 현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헬레나가 대표로 말했다.


“주인님,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아니 저희들 자손들 역시 영원히 주인님의 자손들을 지키며 살겠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그대들의 뜻이 그렇다면 좋아. 가르쳐주지.

“감사합니다. 주인님.”


나무에 창날을 달아 가죽 끈으로 동여맨 창을 든 남자들과 그 뒤에 조잡한 활을 들고 자신을 노려보는 여자들, 그리고 음식 그릇을 들고 그들 뒤에 숨어 두려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본 순간 현수는 ‘이건 아닌데.’ 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나가던 여행객인데 음식 냄새가 나서 와본 것뿐입니다. 너무 그렇게 저희들을 경계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경계를 풀어주려고 웃으며 한 말이 도리어 저들의 자극 시킨 것 같았다.

재료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끓고 있는 철통을 둘러싸고 앉아 음식을 먹고 있던 이들은 한눈에 봐도 난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추레한 차림을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의 경계심이 한층 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두려움에 떨던 아이들까지 눈에서 적의가 느껴졌다.

당황한 현수는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심정으로 자신들을 쳐다보며 경계하는 이들을 쳐다봤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추격자들을 피해서 헤븐으로 가는 길을 돌아서 가던 중에 우연히 맡아진 음식 냄새에 이끌려온 것뿐인데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란 것은 현수는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현수는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저들이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신을 포함해서 플레이어가 넷이나 되었다.

헬레나 등은 살케 종족이란 것을 가리기 위해 모자가 달린 긴 가죽 로브를 걸치고 있었지만, 그 로브 안엔 현수가 건네준 야차대의 무구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 외에는 주무기로 자신들이 사용하던 장궁을 메고 있었다. 비록 헬레나 등이 아직 플레이어로는 전투에 미숙하지만 사냥꾼으로서는 그 능력이 출중했기에 며칠 동안이었지만 그들로부터 현수는 이 세상에 대한 것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살케 종족은 실로 다양한 것을 알고 있는 이 세상에 특화된 능력자들이었다. 이런 자들이 무슨 이유로 오랜 기간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지 도무지 현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현수는 헬레나 등을 통해 사부에게서 배운 무술이 그리 녹녹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고 또한 상태창을 통해 자신이 가진 플레이어 능력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충분히 일반인인 저들을 제압할 자신도 있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어린아이 팔을 비트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플레이어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된 현수로서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단지 자신이 무슨 건달도 아니고 남들 식사하는 자리에 뛰어들어 이런 불편한 상황을 만들었으니 현수로서는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단지 자신의 뒤에서 아이들이 포함된 일반인들에게 살기를 뿌리고 있는 헬레나 등이 신경이 쓰일 뿐이었다.


“음식이라고? 우리가 먹을 것도 빠듯한 실정이오. 당신들에게 나눠줄 거란 없으니 갈 길이나 가시오?”


날선 목소리의 창을 든 남자가 마치 위협이라도 하듯 창을 앞으로 내밀자, ‘음식’ 이란 말이 현수에게 꽂혔다.

아! 이 세상은 곡식 한 톨을 가지고 목숨을 거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세상이란 몸 주인의 기억을 떠올리자, 현수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바로 알았다.

현수는 자신들이 음식을 탐하는 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런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자신들의 무리가 아니면 극도로 경계하는 광야인들의 속성을 뒤늦게 떠올리자 현수는 이미 자신들에게 적의를 가진 저들과 더 이상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이미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때 현수 일행들을 살펴보던 창을 든 남자가 눈에 띄게 떨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소년과 로브를 걸친 사람들을 살펴보던 그는 처음엔 무장을 하고 있지만 성인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애매한 소년들과 여자들로 보이는 이들을 털 생각도 했지만 저들 잎에 서 있는 소년의 허리춤에 차고 있는 권총을 본 순간 그는 이들이 플레이어란 것을 깨달았다.

창을 든 남자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지저에서 극악한 지상의 동절기가 지나가기를 바라며 어렵게 버틴 후 지상으로 올라온 뒤 처음으로 성공한 짐승 사냥이었다. 그 작은 동물을 잡았을 때 일행들 모두 얼마나 기뻐했던 가......, 그래서 일까? 오랜만에 먹게 될 육고기에 본인 스스로도 위기 상황에 대한 경계심을 망각해버렸던 것이다.

창을 든 남자가 쓰러지듯이 그 자리에 머리를 조아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려주십시오. 음식은 모두 드리겠습니다. 제발 저희는 그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불쌍한 떠돌이들에 불과합니다. 이 미천한 것이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부디 용서를 해 주십시오.”


덜덜 떨며 머리를 조아리는 창을 든 남자의 모습에 당황해 하던 사람들이 무엇을 알아챘는지 모두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공포는 순식간에 그들에게 퍼져나갔다.

그렇지 않아도 소년들과 여자들이 섞인 이들이 나타났지만 지닌 무장이 충실해서 그저 흔한 광야의 떠돌이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던 이들이었기에 무리를 이끄는 수장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이런 젠장.’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현수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저들이 고개를 들기 전에 현수는 헬레나 등을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그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나무 밑에 자리를 잡은 현수는 아공간(룬)에서 약간의 육포를 꺼내 헬레나 등에게 건네주고 자신도 먹기 시작했지만 철통 속에서 끓고 있던 음식이 떠오르자 며칠 동안 계속해서 먹고 있는 육포가 텁텁할 뿐이었다. 육포를 건네받은 헬레나 등은 언제나처럼 육포를 품에 넣고 나무의 껍질을 제거하고 그 속살을 파서 먹었다. 현수가 그간 살펴본 바로는 헬레나 등이 모든 나무 종류의 속살을 파서 먹은 것이 아니라 특히 즐겨 먹은 나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나무들이 없으면 소량이지만 육포를 먹기도 했다.

현수 등이 자리를 옮기자 잠시 소란스럽더니 그들도 이내 조용해졌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큰 피해 없이 플레이어들의 손에서 목숨을 건졌다는 것을 안 그들이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뜨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이동하는 방향이 자신이 가는 방향과 일치하는 것을 알자 현수는 조금 시차를 두고 움직일 생각을 했다.

잠시 갖은 시간에 현수는 나무에 기대어 집 생각을 떠올렸다.

할아버지와 부모님이 생각났다. 아마도 갑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로 얼마나 걱정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집으로 되돌아 갈 수는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자 가슴이 아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부모님이 그토록 원하시던 학교 공부라도 좀 열심히 하는 건데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손에 들었던 육포도 어느새 다 없어지자 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궁둥이를 털었다. 그가 일어나자 헬레나 등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수는 천천히 사람들이 사라진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떨어진 이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서로 원치 않게 불편한 존재가 되었지만 가는 방향이 같았기에 현수는 그들이 지나간 길을 따라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우울했다. 가라앉은 기분 전환을 위해 현수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노래는 현수의 죽마고우이자 여친인 태희가 찍은 초콜릿 광고에 나오는 요즘 세간에서 가장 핫한 CM송이었다.

현수의 흥얼거림을 헬레나 등은 진지하게 들으며 감상했다.

새로운 주인과 함께 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헬레나 등은 그동안 여러 차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주인이 하는 행동과 말들을 그냥 받아드리려고 노력했다.

기분 좋게 흥얼거리며 걸어가던 현수의 얼굴이 흐려졌다.

싸움이라도 있었는지 어질어진 장소에는 핏자국까지 도처에 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부러진 활들과 창날이 사라진 창대가 조각난 채 버려져 있었는데, 창대가 낡은 검정 가죽 끈으로 감게 있는 것으로 봐서 그건 아까 본 창을 든 남자가 사용하던 것이었다. 무리를 이끌던 수장의 무기가 이런 상황이라면 아마도 그들에게 불행한 사고가 일어난 것 같았다.

그냥 지나갈까 하다가 현수는 핏자국이 길게 이어진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플레이어인 것을 자각한 뒤 오감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현수의 귀에 여인의 비명소리와 뒤섞여 사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소리가 들린 곳에 이른 현수는 충격적인 광경을 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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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살케 종족 노예를 얻다(2) 24.01.29 33 0 19쪽
3 살케 종족 노예를 얻다(1) 24.01.27 41 0 11쪽
2 아포칼립스(2) 24.01.23 49 0 16쪽
1 아포칼립스(1) 24.01.22 8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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