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가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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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nic
그림/삽화
......
작품등록일 :
2024.01.2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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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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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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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헤븐으로

DUMMY

시야가 밝아지자 현수는 자신이 경계를 서고 있던 야영지로 돌아왔다.

역시 현수의 생각대로 이쪽도 영혼이 이동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자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자고 있는 아름이와 일행들을 둘러보던 현수는 안전지대 안에서 자고 있던 잔느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봤다. 그런데 잔느가 옆에 놓아두었던 장궁을 손에 쥐었다. 잔느의 움직임에 깊이 잠든 줄 알았던 아름이 역시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잔느와 아름이가 왜?’


그때 현수는 뭔가 신경을 거스르는 이상함을 느꼈다.

풀벌레 소리로 시끄럽던 야영지 주변이 조용해진 것이었다. 대신 아주 작지만 무언가가 수풀 사이를 스치는 소리들이 들렸다. 무언가가 야영을 한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은밀히.......


‘숲 속에 무언가가 있어. 뭐지?’


숲 속에 무언가 있었다.

그것도 많은 수의 무언가가......, 돌아오자마자 위험이 닥친 것이다.

이 세상에 와서 몇 차례 험한 일들을 겪어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현수는 긴장으로 심장이 쫄깃쫄깃해졌지만 그렇다고 지금 상황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불과 눈을 감았다 뜰 정도로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손에 잡힐 듯 알 수 있었다. 레벨이 겨우 두 단계가 올랐을 뿐인데......, 기감이 더 넓어졌다. 자신에게 일어난 현상에 현수는 4성에 좀 더 가까워져서 그런가 했다.

비록 이쪽저쪽 두 세상을 오고 가고 있어 번거롭긴 하지만 양쪽 세상에서 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것이 가득한 이쪽 세상에서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인근 숲에서 자신들을 노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포식자들을 두고도 현수는 조금씩 기분이 나아졌다. 다만 등에 맨 장도를 손에 든 현수는 미리 석궁을 꺼내 놓지 않은 게 아쉬웠다.

어쩌면 이번에 준비한 카트리지 교환 방식의 7연발 석궁의 성능 시험을 할 좋은 기회였는데, 하지만 굳이 자신이 그 실험을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석궁은 무력이 낮은 짐꾼들을 위해 준비한 무기였기에 플레이어인 자신이 굳이 이 상황에서 7연발 석궁을 실험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던 것이다.

현수는 수중의 장도를 꽉 움켜쥐었다.

그때 어두운 주변 숲을 지켜보고 있는 현수의 귀에 향긋한 들풀 향기와 함께 뜨거운 숨결이 다가왔다. 언제 옆에 다가왔는지 장궁을 든 헬레나와 셀레나가 현수 옆에 있었다. 갑작스러운 주변의 변화에 저쪽 세상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고 왔던 현수는 자신의 주위에 살케 종족의 사냥꾼이자 전사인 쌍둥이 소녀들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헬레나와 셀레나가 같이 보초를 섰지. 두 사람 다 워낙 숲에 동화되어 있어 나조차 그녀들이 옆에 있는 것을 잠시 잊었네. 잔느는 그렇다 치고서라도 아름이까지 나보다 먼저 주변 변화에 대해 느꼈어. 역시 이건 레벨 따위와는 달리 생존 경험의 차이야. 나 역시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좀 더 분발해야겠는 걸.. ’


현수가 옆을 흘깃 보니 숲을 지켜보는 청색과 녹색인 헬레나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서늘한 헬레나의 모습에 쫄렸지만 그래도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배우를 닮은 여인이 아닌가? 현수는 그녀의 몸에서 나는 향기에 심장이 빨라지는 것을 느껴졌다.

티 안 나게 헬레나의 체향을 들이마시고 흐뭇해하는 현수의 모습에 좀 떨어져 있던 셀레나의 입술이 약간 삐쭉 튀어나왔다.


“주인님, 블랙 킬이에요. 아마도 아까 아웃사이더들이 있던 곳에서부터 쫓아온 것 같은데 눈치 채지 못했네요.”

“블랙 킬? 그런데 저것들이 거기서부터 우린 쫓아왔다고?”

“예, 아마도 그 곳에 있던 시체들을 처리한 뒤, 우리를 만만한 사냥감으로 여기고 뒤를 쫓아온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저들을 발견했기에 다행이지 시간이 지나서 더 많은 무리들을 몰려들었다면 상당히 곤란할 수도 있었겠네요.”

“블랙 킬 따위에게 뒤를 잡히다니. 기가 막히는군.”

“........”


블랙 킬은 현수의 기억 속에도 있는 마수였다.

현수는 야영지 주변에서 작은 소음을 일으키며 그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던 것들이 블랙 킬이란 말을 듣자 긴장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찌꺼기 청소부란 별명을 가진 블랙 킬은 이름에서 풍기는 잔인함과는 다르게 마수 중에서도 한 개체로 떼어내 보면 일반인들도 사냥이 가능한 마수였다. 하지만 작고 보잘것없는 마수지만 무리 사냥에 익숙해 아주 드문 경우로 수백수천의 무리를 형성했을 때, 이들이 지닌 광기는 어지간한 플레이어라 해도 상대하기 부담스러운 마수였다. 실제 많은 플레이어들이 이들 무리에게 사냥을 당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이 일어났을 때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의혹이지만 이 정도 내용이라도 알려진 게 추적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의 추측이 첨가돼서 세상에 퍼진 것이다.


“제법 많은 수가 모여들었지만 아직은 우리에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에요. 그래도 이 시점에서 끊어줄 필요는 있겠네요. 이미 저놈들은 인육을 맞본 뒤라 우리가 만만한 사냥감이 아니란 걸 보여줘야 떨어져 나갈 거예요.”

“그렇지?”


현수는 헬레나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현수 역시 소수의 블랙 킬을 상대한 적이 있어 쉽게 생각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 많은 수의 무리를 형성했다면 자신은 몰라도 일반인이 많은 일행들 중에서 다수의 희생자들이 나왔을 것이다. 현수는 아웃사이더들도 화장을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식인종들에게까지 은혜를 베풀고 싶지는 않았다.


“음, 저 정도의 숫자라면 저희가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도 있고요. 그래도 저것들은 먹을 것은 별로 없지만......, 작긴 해도 마석도 나오고, 저들의 가죽 역시 그래도 쓸 만하니까 도시나 콜로니에서 물물거래에 사용할 수도 있어요. 주인님, 그렇게 보면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

“마석과 가죽이 도움이 된다면......, 헬레나 같이 하자. 잔느와 아름이는 이곳에 남고 헬레나와 셀레나는 나를 도와서 저것들을 빨리 처리하고 좀 쉬자.”

“예, 주인님.”

“주인님의 뜻이라면 그렇게 해요.”


현수는 헬레나와 셀레나를 데리고 숲으로 뛰어들었다.

숲 안으로 몇 걸음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긴 채찍 같은 블랙 킬의 혀들이 현수에게 뻗어왔다. 장도를 휘두르자 몇 가닥 가까이 접근한 블랙 킬의 혀들이 잘려나갔다. 아웃사이더들의 야영지에서 배를 채웠을 텐데 그게 부족했는지 물러나지 않고 공격해오는 블랙 킬 무리를 현수의 장도와 쌍둥이의 장궁과 손에 빼어든 화살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건 학살이었다.

블랙 킬들이 죽어나가는 소리에 잠에 취했던 전기동과 일행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마수들이다. 아정, 애들을 깨워. 기옥이는 석궁을 챙기고. 재숙아 재희야, 다들 일어나 무기를 잡아. 서둘러.”

“으-앙-.”

“아저씨, 대장님이 안 보이는데요? 그분들도 안보여요? 이게 무슨 일이래요?”

“마수들이 온 것 같아. 음-, 저 특이한 비명소린 아무래도 블랙 킬 같은데?”

“블랙 킬 요? 아저씨, 그 광야의 청소부들을 말하는 거예요? 그럼 그곳에서부터 우리를 따라온 모양이네요?”

“그렇겠지. 저 놈들 때문에 대장님과 그분들이 저 숲 속에 있는 것 같은데? 따라서 들어가야 하나?”

“그리 소란스러울 필요는 없어요. 주인님과 누님들이 저것들을 모두 처리할 겁니다.”

“그래요 잔느 말대로 대장 오빠와 언니들이 갔으니 저것들은 모두 죽은 거나 다름이 없어요.”

“잔느 님이라고 그러셨죠. 대장님과 그분들은 무사하실까요?”

“아저씨, 블랙 킬 정도라면 주인님이나 누님들에겐 그저 손쉬운 사냥감에 불과할 겁니다. 여기서 기다리는 게 좋을 거예요.”

“그건 잔느의 말이 맞아요. 다들 조용히 여기서 기다리세요.”

“아름 님, 생각도 그런가요?”

“예, 아저씨.”


사람들은 주변 경계를 섰던 현수와 쌍둥이들이 보이지 않고 숲 속에서 마수가 죽어나가는 비명소리가 들리자 처음엔 당황했지만 태연한 아름이와 잔느의 모습에 이내 상황을 인지하고 조용해졌다.

잔느와 아름이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금도 숨소리가 흐트러지지 않은 현수와 쌍둥이들이 어두운 숲 속에서 걸어 나왔다.


“대장님.”

“이거 너무 시끄러웠나요? 모두 일어났네요.”

“블랙 킬입니까?”

“예, 아저씨가 저것들 좀 처리해 주세요. 마석과 가죽은 챙기시고 나머지는 버리세요.”

“대장님, 저 아까운 고기를 왜 버리려고 하십니까?”

“아저씨, 마수 고기는 정화하지 못하면 먹을 수 없잖아요? 보유한 식량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요. 굳이 저것들을 먹을 것까지는 없어요.”

“저흰 머릿수도 많은데 굳이 아까운 고기를 버리는 것은 아무래도.......”

“자 자, 미련은 버리시고 마석과 가죽만 챙겨오세요.”

“예, 대장님.”


모닥불에서 불이 붙은 장작을 빼어든 전기동이 아정, 기옥과 염 씨 남매들을 데리고 숲 속으로 들어가자 아름이가 그들의 뒤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헬레나와 셀레나 쌍둥이가 현수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본 아름이가 아무래도 일반인들만 숲으로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하긴 위험은 어느 순간에 닥칠지 모르는 것이었기에 현수도 아름이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잠시 숲을 지켜보던 현수가 잔느가 만든 안전지대 중앙에 피어 놓았던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좀 더 집어넣고 불 앞에 앉자, 세옥이와 세정이가 쌍둥이의 눈치를 보더니 다가와 현수 옆에 앉았다. 점심때의 그 독기가 어디로 갔는지 순한 양 같았다.

피식 웃은 현수의 손이 세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지 때에 찌든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세정이가 웃었다. 깡마른 아이들이었다.

문득 안됐다는 생각이 든 현수가 이번에 사부가 자비를 털어 마련해주어서 아공간(룬)에 넣어두었던 과일 중에서 사과 두 개를 꺼내 아이들 손에 쥐어주자, 그래도 사과를 먹어본 적이 있는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과를 먹었다.

아이들을 끼고 앉아있지만 현수의 신경은 숲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숲 속으로 죽은 블랙 킬의 피비린내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현수는 상당한 거리까지 기감을 펼쳐도 다른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자 조금은 편안한 심정이 되었지만, 그가 노련한 플레이어였다면 여자와 아이들이 많은 자신의 일행을 보호하기 위해 블랙 킬 정도의 마수라면 사냥하지 않고 레벨이 꽉 찬 3성급 플레이어의 기감만으로 그것들을 쫓아버렸을 것이다.

곧 마수들이 저 피냄새를 맡고 이곳으로 몰려올 것이다.

그 중엔 자신이 상대하기 어려운 마수도 있을 수 있었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 일이지만 오히려 그들을 위험에 빠트린 것이다. 저들이 돌아오면 밤길이지만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맞았다.

이렇게 된 되는 몸의 주인의 기억을 대부분 흡수했다지만 아직 현수가 이쪽 세상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잠시 후 아름이가 푸른 피가 묻은 블랙 킬 가죽 수십 장씩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숲에서 나왔는데 전기동이나 사람들이 자꾸 뒤를 돌아봤다. 아무래도 버리고 온 블랙 킬의 부산물이 아까운 것 같았다.

물론 마수 고기를 한두 번 먹는다고 마력에 침식되진 않겠지만 정화되지 않았다면 먹지 않는 것이 좋았다. 하물며 현수의 아공간(룬)에는 오철웅이 준비해 준 상당한 양의 식량이 있지 않은가....... 현수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마력이 정화되지 않은 음식을 먹일 생각이 없었다.

사람들이 건네주는 블랙 킬의 가죽들을 모두 아공간(룬)에 챙겨 넣은 현수에게 전기동이 새끼손톱보다도 훨씬 작은 희미하지만 적색을 띈 마석들을 건네주었다. 그래도 마수라고 블랙 킬의 몸에서 나온 마석들이었다.

현수는 전기동에게 다시 마석들을 건네주며 챙겨 넣어두라고 하자 그는 현수의 권유에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가 가족들을 데리고 현수의 밑으로 들어간 것은 자신과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서였다. 그저 죽지만 않으면 노예 같은 삶이라도 감수할 생각이었는데 이런 호의라니, 전기동은 새삼 현수에게 붙은 자신의 결정에 만족스러웠다.

전기동은 사양치 않고 낡은 가죽 옷 안주머니에서 더러운 가죽주머니를 꺼내 마석들을 조심스럽게 넣었다. 아무리 효율이 떨어지는 마석이라도 화폐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만족해 하는 전기동의 모습을 흐뭇한 시선으로 그의 가족들이 지켜봤다.


“자, 아직 어둡지만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죠. 대장님, 인근에 저리 블랙 킬의 부산물들이 널려있는데 이를 노리고 곧 마수들이 모여들겠지요. 그런데 대장님, 아이들이 있어 밤길에 이동하는 것이 조금은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이곳을 벗어나야만 해요. 그럼 기존대로 헬레나는 나와 같이 선두에 서고 아름이와 잔느는 중앙에 셀레나가 후위를 맡아줘. 자 그럼 출발할까요?”

“알았어요. 대장 오빠. 뒤는 내게 맡겨줘요.”

“저 그런데 대장님. 저흰 이런 장작에 붙은 불로 긴 시간을 어둠 속에서 걸어갈 수는 없어요. 어두운 밤길을 가자면 별도로 제작한 횃불이 있어야 합니다.”

“별도로 제작된 횃불이요? 이거 미처 그 생각까지는 못했네요. 다행이도 모닥불이 있으니 기옥 씨와 재희가 모닥불로 횃불을 좀 만들어 봐요.”

“알았어요. 대장님, 재희야, 가자.”

“예, 기옥 언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연이은 실수에 얼굴이 붉어졌던 현수는 전기옥이와 염재희가 횃불을 만들어 일행에게 돌리자, 서둘러 야영지를 벗어났다. 그의 판단이 맞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피냄새를 맡고 마수들이 모여들었다.

비록 일반인인 전기동 등은 횃불에 의지했지만 선두에선 현수 덕분에 어렵지 않게 길을 재촉할 수 있었다.

현수의 느낌으로 대략 두세 시간 걸었을까?

어느덧 어둠이 물러갔다. 자다가 일어나서 마수들을 해체하고 어둠 속에서 상당한 거리를 이동을 했지만 의외로 여자들과 아이들의 발걸음은 밤길인데도 뒤처지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이동 생활이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았다.

비록 이번에 아웃사이더들에게 걸려 불행한 일을 당했지만 조잡한 무기를 가진 광야인들이 그 정도 규모의 세력을 광야에서 꾸리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을 거고,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이들을 관리하며 리더 역할을 했던 전기동의 능력이 뛰어났단 말이었다.

현수로서는 능력 있는 좋은 사람들을 수하로 거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아이들을 옆에 두고 부지런히 주위를 살피며 현수의 뒤를 따르던 전기동이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저 대장님, 물 냄새가 납니다, 인근이 물이 있는 것 같은데요?”

“아저씨는 그런 것도 알 수 있어요?”

“어찌 살려고 발버둥 치다보니 그렇게 되더군요. 믿으셔도 됩니다. 제 코가 확실하거든요.”

“그럼 거기서 잠시 쉬면서 아침이나 들지요.”

“아침이면 혹시 밥을 먹자는 겁니까?”

“예, 아이들도 쉬어야하니 그렇게 하지요.”

“예, 대장님.”


현수의 말에 일행들에게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사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들에겐 어두워질 때까지 끊임없이 움직이던 이동 중에 잠시 틈이 생기는 그때가 식사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먹을 있다는 말에 예상하자 않았던 야간 이동으로 지친 아이들의 눈에도 생기가 돌았다.

광야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은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물론 지천에 뜯어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는 작정을 하고 찾아보면 있었지만 쫒기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그런 것을 채집할 정도로 여유 있는 시간이 주어질 리 없었다.

이처럼 위험 요소가 도처에 널려있는 이 세상에서 항시 생명의 위협 받으며 살아왔기에 어린 세옥과 세정이에겐 아침 식사란 개념 자체가 없었기에 해이 뜬 지금 옆에서 들려온 현수의 말은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전기동이 찾아낸 것은 빼곡히 둘러싼 나무들에 가려진 암벽에서 흘러나오는 겨우 목을 축일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물줄기였다. 이런 것을 냄새만으로 찾을 수 있다니 전기동은 일반인이긴 해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름대로 최적화된 능력자였던 것이다.

현수는 주위를 살펴봤지만 워낙 작은 물줄기가 암벽에서 흘러나와 두세 손바닥 거리 아래 있는 땅으로 스며들었기에 이곳을 근거지로 삼는 무리는 따로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몸이 큰 마수들은 나무들 때문에 이곳에 오기에도 불편했지만, 다행이 나무들과 암벽 사이에 약간의 간격이 있어 일행들이 겨우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자리가 비좁지만, 잠시 이곳에서 식사도 하고 쉬었다가 출발합시다.”

“예, 대장님.”


이곳에서 불을 피워 조리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안 현수는 아공간(룬)에서 육포와 미숫가루, 과일 등을 꺼내 아정과 기옥에게 꺼내주었다. 현수가 건네준 미숫가루가 최상급 곡물 가루이며 과일들 역시 싱싱하고 질 좋은 물건이란 것을 알아본 아정은 이런 식량들을 아낌없이 베푸는 플레이어의 밑으로 들어간 남편의 선택이 옮았다는 것을 알고 만족스러웠다. 양은 충분했기에 모두 만족스런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휴식을 취하는 이들을 지켜보던 현수가 주변 경계를 위해 인근에 있는 큰 나무 위로 헬레나와 셀레나를 올려 보냈다.

두 사람이 경계에 서자 안전한 것을 느꼈는지 밤새 이동을 한 세옥과 세정은 피곤을 이기기 못하고 곯아떨어졌고 염 씨 남매들 역시 힘들어 해서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이 장소에서 머물기로 했다. 다행이 주변엔 그다지 위험 요소들은 보이지 않았기에 현수도 조금은 날선 긴장감을 늦출 수 있었다.


“대장 오빠, 헤븐이란 곳은 어떤 곳이에요? 사람들은 많겠지요?”

“헤븐은......, 글쎄 뭐라고 해야 할까? 가보면 알아. 그런데 아름인 무기가 장도와 석궁이 다야? 낡아 보이던데.”

“예. 그래도 이것들이 있어서 콜로니가 무너진 뒤 지금까지 버텨왔는데요.”

“콜로니가 무너져?”

“예. 작지만 평화스러웠는데 아웃사이더들에게 그만...... 살아서 도망친 사람은 저뿐이었어요. 가족들과 친구들이 모두 그 놈들에게....... ”

“그래서 아저씨 일행이 곤란한 상황에 있을 때 그들을 공격했던 거군.”

“예, 대장 오빠.”


현수는 왜 이름이가 아웃사이더들을 공격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렇다하더라도 타인의 불행에 과감히 뛰어든 소녀라니......, 어찌 보면 거친 야생마 같은 아름이를 보며 현수는 꽤 괜찮은 동료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는 아공간(룬)에서 주섬주섬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건틀렛과 완갑, 견갑 그리고 여자 야차대원이 쓰던 여성용 호심경과 질 좋고 깨끗한 여성용 상하의의 가죽 옷에 가죽 신발까지......, 이것들은 모두 아차대 소속 플레이어들이 입던 무구들이었다. 연이어 현수는 아름이의 장도에 이가 나간 것을 보았기에 쓸 만한 장도도 하나 꺼내 놓았다.

아름이의 눈이 현수가 꺼내 놓은 무구에 머물렀다. 그것들을 갖고 싶다는 아름이의 욕구가 현수의 눈에 뚜렷하게 보였다.


“대장 오빠, 이것들을 왜?”

“아름이도 이젠 야차대 소속인데 이 정도는 걸쳐줘야지.”

“저 주는 거예요.”

“그럼.”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즐거운 기성과 함께 아름이의 손으로 무구들이 넘어갔다.

헬레나 등이 야차대의 무구를 걸친 것이 부러웠던 아름이는 어쩔 줄을 모르며 좋아하더니 현수의 앞에서 상의를 훌렁 벗었다. 탐스런 메론 두 덩이가 현수의 눈앞에 나타났다.

다행히 유일한 성인 남자인 전기동이 재희, 재하 남매와 같이 암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가죽주머니에 담고 있었기에 부끄러움은 오로지 현수의 몫이었다. 하지만 아름이 역시 마음에 두고 있는 현수 앞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야성적 성격의 아름이라 해도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뜻밖의 상황에 얼굴이 벌게진 현수가 얼른 고개를 돌렸지만 그런 현수의 상태를 의식하지 못한 아름이는 치부를 겨우 가린 속옷만을 남기고 옷을 전부 벗어버린 뒤 가죽 옷을 입고 무구들을 장착했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현수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대장 오빠, 저 어때요?”

“멋지네.”


그 외에 현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큰 키에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 몸을 갖고 있는 아름이가 야차대의 기본 무구를 걸치고 나자 폭발적으로 야성미가 넘치며 단단해져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과 동일한 복장을 하자 한층 끈끈한 유대감을 느꼈다.

아름이가 새로운 장도를 휙휙 휘둘러봤다. 손에 무게가 맞는지 곧 익숙해져 보였다.

그런 아름이를 지켜보던 현수는 인근에 있는 가장 큰 나무 밑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긴 호흡을 통해 마력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아침 수련을 시작한 것이다. 현수는 호랑이 호흡을 통해 대기 중에 존재하는 마력을 거침없이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몰아지경에서 호흡을 하면서도 기감을 열어두고 있던 현수는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의 목소리도 들리자 눈을 떴다.

어느덧 시간이 꽤 지나간 것 같았다.

현수가 집중하던 호흡을 마치고 눈을 뜨자,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신의 장비에 대해 자랑하던 아름이의 얼굴에 궁금한 것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아름이는 현수가 나무 아래에서 한 행동이 이상했겠지만 그것에 대해 물어오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선을 지키는 아름이의 모습에 현수는 헬레나 등에게 가르쳐 준 일전에 사찰에서 배웠던 학승들이 수련하는 초급 호흡법인 청명선사의 단전호흡법을 아름이도 가르쳐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사부인 오철웅이 허락을 했다지만 그에게 배운 호랑이 호흡법은 좀 더 신뢰가 쌓이면 가르치는 것이 합당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일반인들에도 정신을 맑게 하고 기를 모으는 이 단전호흡법을 알려주면 마력이 풍부한 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 이면엔 사부인 오철웅을 도울 방도를 찾는 것의 일환이기도 했기에 한 번 시도해볼 가치가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대상은 이번에 자신이 받아들인 사람들이었다.

아직 중천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있었지만 다들 기운을 차린 듯하자 현수는 경계를 서고 있는 헬레나와 셀레나를 비롯해서 모두 불러 모았다.

다들 모이자 현수는 아공간(룬)에서 각자가 입은 다양한 크기의 가죽 옷들과 이번에 제작한 7연발 카트리지 교환 방식의 석궁들을 꺼내 놓았다.

깨끗한 옷과 뛰어난 성능을 가진 석궁을 아이들을 뺀 사람들에게 나눠주자 다들 열광했다.

사람들이 좀 진정되자 현수는 새로운 7연발 석궁과 장도로 무장한 전기동과 염 씨 남매들을 주변으로 내보내서 경계를 하도록 했다.

현수로부터 청명 선사의 단전호흡법을 전수받을 자는 헬레나, 셀레나, 아름이와 잔느 등 이렇게 플레이어 네 사람이었다. 어느덧 명상과 흐흡에 적응을 한 셀레나 등과는 달리 아름이에겐 생소한 단전호흡 구결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해주고 명상을 하는 방법도 보여주었다.

어느 정도 호흡법을 익힌 것으로 보이자 현수는 이동을 차비를 했다. 간단히 점심 요기를 한 뒤 현수를 선두로 헤븐을 향한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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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이언 콜로니(4) 24.02.24 31 0 16쪽
12 아이언 콜로니(3) 24.02.24 30 0 16쪽
11 아이언 콜로니(2) 24.02.18 30 0 20쪽
10 아이언 콜로니(1) 24.02.17 26 0 16쪽
» 헤븐으로 24.02.12 25 0 24쪽
8 집으로 돌아오다(2) 24.02.11 26 0 20쪽
7 집으로 돌아오다.(1) 24.02.11 24 0 16쪽
6 아포칼립스에서 짐꾼들을 구하다. 24.02.10 28 0 30쪽
5 살케 종족 노예를 얻다.(3) 24.02.03 34 0 21쪽
4 살케 종족 노예를 얻다(2) 24.01.29 33 0 19쪽
3 살케 종족 노예를 얻다(1) 24.01.27 41 0 11쪽
2 아포칼립스(2) 24.01.23 49 0 16쪽
1 아포칼립스(1) 24.01.22 8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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