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했더니 검신이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봉미
작품등록일 :
2024.03.10 12:07
최근연재일 :
2024.07.22 05:34
연재수 :
77 회
조회수 :
83,893
추천수 :
1,578
글자수 :
409,810

작성
24.04.09 07:20
조회
1,173
추천
20
글자
11쪽

26화 탈각

DUMMY

“휘유~ 이런 외진 곳에서 용케도 사는군.”


벽력일무문의 모습을 본 곽지성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그런 말이 나오는 건 무리도 아니었다.

마치 외부를 거절하는 듯한 산세를 따라 지어진 건물들을 보고 있자면 충분히 들 법한 생각이었다.


“들어가시지요.”


백노경이 일행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산문에서 백노경의 얼굴을 본 외문제자가 소식을 전하자 벽력일무문의 사람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용운휘와 백노경의 어깨를 두들겨주는 곡후부터 시작해서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곽맹은 물론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홍령까지. 모두 드러내는 방법은 달랐지만 용운휘와 백노경의 귀환을 기뻐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저 분들은?”


지객당주 왕양이 간만에 온 손님들을 보자 자신의 사질들에게 물었다. 외부의 소식을 전달해주는 외문제자 손적이 죽었기에 왕양은 바깥의 사업체들을 점검하며 들은 것으로 짐작되는 바는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었기에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저희들에게 협력해주시는 분들입니다.”


백노경이 말하자 왕양이 바로 나무랐다.


“그런 분들이라면 바로 소개를 알려줘야 할 것이 아니냐.”


사숙의 꾸중에 백노경이 바로 진광혼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진광혼은 바로 인사했다.


“생사마도라 하오.”


“오오!”


제자들은 무슨 문파의 어른들까지 감탄성을 냈다. 생사마도라는 위명은 그들 또한 한 번 두 번 정도는 들은 탓이었다.


“저 소협은?”


“곽지성이오.”


자못 건방진 인사였지만 왕양는 웃는 낯으로 인사했다.


“왕양이라고 하네. 본파를 도와주러 와서 고맙네.”


벽력일무문의 다른 이라면 노기를 품을만한 상황임에도 왕양은 특유의 성품으로 유연히 넘길 뿐이었다.


“소저께서는...?”


마지막으로 왕양의 시선이 닿은 곳은 모용교가 있던 자리였다.


“어른들에게 인사 올립니다. 용 소협을 지아비로 섬기게 된 모용교라 합니다.”


“...!!!”


인사라는 것은 자신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용교의 인사는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상대의 머릿속에 아주 낙인을 남겨 놓았으니까 말이다.


용운휘는 얼굴을 찌푸리며 손으로는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주위의 시선은 모두 용운휘에게 쏠려 있었다.



***



백노경과 왕양이 자리의 분위기를 어떻게든 수습하여 자리를 물렸지만 문파 내로 번진 파문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파문은 전간 안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설명해 보거라.”


전각 안에서 악령화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용운휘의 내가요상술과 홍령의 시기적절한 치료 탓에 온전히 회복한 그녀의 목소리는 굉장히 싸늘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용운휘였지만 여기서는 입을 여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만은 느끼고 있었다. 그런 용운휘 옆에 모용교는 뭐가 그리 즐거운 것인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용운휘가 말을 잇지 못하자 악령화는 모용교에게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경위로 그런 말씀을 하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어머. 낭군님의 사저라면 제 윗사람이 되실 터이니 편하게 말씀 놓으셔도 됩니다.”


“...이 아이는 평생을 산에서 자라 물정을 모르는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가 갑자기 선배님에게 책임질 만한 일을 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 것 봐라?’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 모용교의 얼굴이 잠깐 굳어졌다가 풀렸다. 악령화가 힘을 주어 말한 선배님이란 단어 때문이었다. 결국 문장의 속 뜻을 풀이하자면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늙다리가 주책이다 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호호. 낭군님이 사흘씩이나 저를 놓아주시지 않으셔서요. 같은 지붕아래 한 방에서 보냈으니 이제는 쌀이 익어 밥이 된 형편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모용교의 말에 악령화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그녀의 고개가 인형처럼 삐걱이며 돌아갔다.


용운휘는 일견 무심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도 무서워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질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빌어먹을. 내가 도대체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되냐고.’


용운휘는 그렇게 속으로 외칠 뿐이었다.



***



벽력일무문의 또 다른 적각.


이곳에서는 문파의 어른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 설마하니 령화의 호적수가 이렇게 나타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곽맹이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그 말은 설마 령화가 운휘에게 맘이 있다는 이야기요?”


곽맹의 앞에 있던 왕양이 되물었다.


“척하면 척이지 이 사람아. 그렇고 그런 게 아닌가.”


“글쎄...자식처럼 키워온 애에 대한 마음 정도가 아닐까?”


곽맹의 말에 입을 연 것은 잠자코 듣고 있던 곡후였다.


“어허. 사형도 참 그렇소이다. 사제, 사제 하며 평생 찾고 부르다가 어느 사이에 상공이 되어버리는 것이 우리네 일상 아니오.”


그랬다. 산 속에서 수련만을 하는 도가 문파들 중에서도 일례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일이었다.


“이것들아. 지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려 드는데, 사문의 어른이란 것들이 아주 지랄들을 하고 자빠졌구나.”


홍령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분노했다.


“거...사저는 뭔 말을 그리 하시오. 하여간 나이를 먹어서도 그 성정은 변함이 없구려. 어떻게 시집을 간 것인지.”


“시집을 간 게 아니고 남편을 잡아 온 거지.”


곽맹과 왕양은 손발이 맞아도 너무 잘 맞았다. 하지만 조금 후 일이 어떻게 될지 알았다면 그들의 행동도 달라졌을 테지만, 그들이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부르르르.


홍령의 전신이 떨렸다. 곧 찾아올 폭발의 전조였다.


채앵!


그녀의 허리춤에서 가검이 뽑혀 나왔다. 날이 서 있지 않은 탓에 언제나 둔탁하게 울렸던 검의 소리가 오늘따라 날이 서있는 느낌이었다.


“사...사저.”


“읊어봐라. 그간의 정리도 있고 하니 마지막 유언 정도는 들어주마.”


홍령의 낌새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곡후는 방 안에서 자취를 감춰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쯧...나이들 먹어서 하는 짓들하고는.”


그렇게 말하는 곡후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옛날로 돌아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과거에 대한 향수라고 해야 할까?


우지끈!! 와당탕.


“...”


물론 그것도 안에서 격타음이 터져 나오기 전까지였지만 말이다. 전각 근처에 있던 곡후의 자취는 순식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



“도대체 무슨 생각이오?”


용운휘는 악령화에게서 물러나자마자 모용교를 인적 없는 곳으로 데려가 물었다.


“생각은 무슨 생각?”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들쑤시는 거요.”


“...그럼 내가 그 자리에서 뭐라고 하면 좋았을까?”


“그야 당연히-”


용운휘는 말을 하다 바로 멈추었다. 붕혼지음 모용교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곧 그 말의 여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붕혼지음이라는 말을 그 자리에서 하는 것보다는 지금 하는 것이 조금 더 낫지 않겠어?”


모용교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더 문제 삼지 않겠소?”


“네 문파 사람들이? 너의 목숨을 구해준 나를?”


“어쨌든 우리는 적 사이가 아니오.”


“적은 무슨. 이젠 아닌 거지. 그 말을 증명하는 것은 내가 널 살린 것이고.”


“하후악이 나를 원해서 그의 뜻에 따라 살렸을 수도 있지 않소. 그도 아니면 첩자라던가”


“그건 네 생각이겠지. 나이도 어린 꼬마가 의심 많기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


“의심은 무슨 의심. 당연히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지 않소.”


“그래. 그렇기야 하지. 하지만 내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곧 알 수 있지. 마문일세의 동향을 살펴보면 말이야.”


“...”


“게다가 하후악의 성격에 자신을 공격한 것이 이 문파라는 것을 안다면 즉시 공격오고도 남았을 걸? 너도 그것이 두려웠기에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던 거잖아.”


용운휘는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본 바로는 충분히 그럴만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당신의 진심을 내가 아무리 물어본들 말해주지 않을 것 같으니 한 가지만 묻겠소. 당신과 하후악의 관계는 뭐요.”


“관계라...”


그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글쎄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군.”


“숨기는 거요?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소.”


“아니. 숨기는 건 아니야. 단지 어떤 단어로 우리의 관계를 정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그것은 그 녀석의 입에서 나와야 할 답이야.”


씁쓸함이 담긴 모용교의 표정에 용운휘는 더 이상의 답변을 들어내기란 어렵다는 것을 직감했다.


“단지 내가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마문일세를, 아니 그 녀석을 멈춰 달라는 것뿐이야.”


“...”


“...너는 그 녀석과 싸울 생각이지?”


“내가 피한다고 피해질 성격의 문제가 아니지 않소.”


“그래. 그렇지. 하지만 결국 누군가는 그 녀석과 싸워 이겨야 너희 쪽에 승리가 찾아오는 것도 불변의 사실이고.”


“...”


“적어도 산서에서 그 녀석과 맞상대 할 수 있는 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가 싸울 거라면 조언 정도는 해두지. 하후악 그 녀석의 경지는 이미 절정의 경지를 넘어섰어. 초절정의 경지에 선 그 녀석은 이미 다음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어. 그 녀석이 말하기를 의기충천(意氣衝天)의 단계에 이르는 것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고 하더군. 한없이 멀지만 한없이 가까운 경지라는 것이 그 녀석이 넌지시 말한 것이었어.”


“의...기...충천”


용운휘는 알 듯 말 듯한 화두에 사로잡혀 생각에 잠겼다.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묘하게 와닿는 말에 용운휘의 사고는 한곳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모용교는 자신이 던진 화두에 사로잡힌 용운휘는 복잡한 기색으로 바라보며 호법을 섰다. 용운휘가 자신의 껍질을 한 꺼풀 벗고 있는 상태임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모용교의 호법은 반나절이 지나고 나서야 끝이 났다.


중간 중간, 벽력일무문의 인원들이 모이기는 했으나, 그때마다 모용교가 호법을 서고 있음을 주지시켜 큰 소음이 일어나지 않게 했기에, 용운휘의 탈각에는 지장이 없었다.


“후우우우.”


용운휘는 숨을 토해내고 운기를 마쳤다. 그리고 곧 자신이 기억이 어느 순간에 사라져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언제...앉아서 좌선을 하고 있었지?’


분명 마지막 기억에 자신은 서있던 게 아니었던가. 용운휘는 어두웠던 풍경에 어느새 낮이 되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어라?”


용운휘가 풍경을 바라보며 말을 토해내자 모용교 또한 입을 열었다.


“아주 길게도 생각하는구나. 우리 가가는.”


“...내가...계속 이 자리에 있었소?”


“그럼 여기 있었지, 딴 델 가기라도 했어? 그래서...뭔가 좀 얻었어?”


“...모르겠소. 얻은 것인지. 얻지 못한 것인지.”


“쯧. 말이나 못하면...”


“...고맙소.”


“얻은 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놈이 인사야. 네 덕분에 밤이슬만 맞았으니 먼저 들어가서 잔다.”


“후우...”


용운휘는 모용교가 떠나는 것을 보며 자신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선작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빙의했더니 검신이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1 51화 제왕검형(帝王劍形) +2 24.05.18 452 17 11쪽
50 50화 남궁세가 +5 24.05.17 478 14 11쪽
49 49화 팽호 +1 24.05.16 500 16 11쪽
48 48화 황산으로 +1 24.05.13 564 14 13쪽
47 47화 십이사도의 죽음 +1 24.05.11 568 16 11쪽
46 46화 십이사도 +1 24.05.10 563 15 12쪽
45 45화 끽채교의 정체 +1 24.05.09 630 15 11쪽
44 44화 파리 날리는 객잔 +1 24.05.06 758 16 11쪽
43 43화 강호는 넓다 +1 24.05.05 823 17 11쪽
42 42화 소중유도 강찬운(수정) +1 24.05.02 801 18 12쪽
41 41화 칠대악인의 제자 +3 24.05.01 828 20 11쪽
40 40화 곡예단 +1 24.04.29 850 23 11쪽
39 39화 악인촌(수정) +1 24.04.27 913 21 11쪽
38 38화 복수 +1 24.04.26 970 19 11쪽
37 37화 귀검문의 최후 +1 24.04.23 1,040 22 12쪽
36 36화 재회 +1 24.04.22 1,039 18 11쪽
35 35화 살수 +1 24.04.21 1,020 18 11쪽
34 34화 강호인들의 도전 +1 24.04.20 1,048 19 11쪽
33 33화 영육쌍전(靈肉雙全) +1 24.04.17 1,164 18 11쪽
32 32화 다른 풍경이었다. 하지만... +2 24.04.16 1,174 17 11쪽
31 31화 승부의 끝 +4 24.04.15 1,149 23 12쪽
30 30화 의기충천(意氣衝天) +2 24.04.14 1,089 23 12쪽
29 29화 격전 +2 24.04.12 1,105 19 11쪽
28 28화 탈혼악경(奪魂樂經) +2 24.04.11 1,170 21 13쪽
27 27화 습격 +3 24.04.10 1,103 21 12쪽
» 26화 탈각 +2 24.04.09 1,174 20 11쪽
25 25화 모용교 +4 24.04.07 1,201 24 11쪽
24 24화 결착 +4 24.04.07 1,196 24 11쪽
23 23화 재격돌 +3 24.04.05 1,249 24 13쪽
22 22화 투귀 곽지성 +5 24.04.04 1,280 2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