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했더니 검신이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봉미
작품등록일 :
2024.03.10 12:07
최근연재일 :
2024.07.22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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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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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2화 다른 풍경이었다. 하지만...

DUMMY

“크.....나는 가끔씩 네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용교의 무릎을 베고 있는 하후악이 말을 던졌다.


“...뭐가?”


“넌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거냐. 가족을 비명에 보낸 것은 너 역시 마찬가지인데.”


“...가끔씩 강호에서 살다보면 강호에 몸을 담게 되는 것은 저주라고 생각될 때가 있어. 강호에서는 그저 세상의 가장 더러운 부분만 만나게 될 때가 많으니까. 하지만 이런 구렁텅이에서 끙끙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웃으며 살아가는 것을...죽어간 분들도 바라지 않을까.”


“우..웃기지마. 죽어간 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애초에 죽은 자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알 수 없다고...”


“그래. 그러니까 추측인거지. 그들이라면 이랬을 거다. 저랬을 거다. 남겨진 자로서 그들의 유지를 헤아리는 게 생존자로서의 책임 아닐까?”


“아니. 우리의 책임은 복수였다. 피로 물든 복수만이...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책무였다. 그런데...그런데 내가 이런 곳에서...”


“이런 변방에서 세력을 규합한다 한들 맹과는 애초에 승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네가 가장 잘 알 텐데. 그렇기에 너도 호북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거잖아.”


“...후...후후후. 이런 마당에도 독설은 여전하군. 그래...어쩌면 다른 길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처럼 너와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고-”


“왜 네 망상에 날 끌어들여?”


“큭. 쿨럭. 쿨럭. 크...그래도 지내온 정이 있는데, 이럴 때는 네가 여자인지 의심이 된다. 어느 놈이 너 같은 걸 데려갈지 스스로도 고민 좀 해봐라. 쯧”


“정은 무슨. 우리 관계가 무엇이라 말할 수 있는데? 어린 시절에 몇 번 본 사이? 동병상련의 동반자? 계약 관계?”


“....”


“답할 말이 없나 보지?”


“친구. 친구라고 해두자.”


“친구라고?”


“그래. 넌 내 유일한 친구였고, 앞으로도 그건 마찬가지야.”


“...여태껏 니가 지껄인 이야기 중에 그나마 받아들일 만 얘기군.”


“크.....크크크크. 그래. 다...다...행이군...”


그걸로 끝이었다. 산서를 뒤흔들었던 희대의 풍운아 하후악의 최후였다. 그리고 그것은 곧 마문일세의 종말을 뜻하기도 했다.


“모두들 멈춰라!!!”


모용교의 사자후가 산자락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녀의 사자후가 울리자마자 모든 이들이 싸움을 멈추었다.

그렇게 멈춘 군중들의 몸에 차가움이 스며들었다. 그렇게 혼자 날뛰는 겨울 바람만이 싸움의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



산서에서 오랫동안 군림해왔던 마문일세가 사라졌다. 수많은 전설로 뒤덮인 하후악의 이름과 함께 말이다. 한 지역에 군림하려고 시도했던 방파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유독 마문일세가 무림인들에게 회자되었던 것은 그만큼 성공한 방파들이 적었기 때문이리라.


그런 마문일세의 주인을 이제 막 약관에 이르지도 못한 젊은이가 쓰러트렸다.


이 사실만으로도 강호인들을 경동시키기엔 충분했다.


혹자는 하후악의 실력을 비웃거나, 산서무림의 수준을 깔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중론은 그렇지 않았다. 하후악이 각 문파들을 단신으로 섬멸시킨 일화가 존재하는 이상 하후악의 정확한 실력은 몰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후악 대신 용운휘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산서 무림에서 일어난 돌풍의 핵심으로 말이다.


하후악과의 싸움을 멀리서나마 지켜본 이들의 입을 타고 시작된 소문은 돌고 돌아 검광경천(劍光驚天)이라는 별호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산서에 강호사에서 유례가 드문 검귀가 나타났음을 알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산서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여어.”


산 중턱에 서서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용운휘를 누군가가 불렀다. 용운휘는 들린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모용교가 붉은 얼굴로 서 있었다.


“후우우우우.”


취기를 날려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긴 숨을 한번 토해낸 모용교가 용운휘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뭐하고 있는 거야? 가가. 이런 곳에서?”


용운휘는 무어라 답변하기 위해 입을 연 순간, 그녀의 입에서 달콤한 주향이 풍겨져 오는 것을 맡았다.


“취했구려.”


“아아. 어때? 꼬맹이도 한잔?”


모용교는 양 손에 든 잔과 술병을 내보이며 말했다.


“사양하겠소.”


“쯧. 술의 처음은 어른이랑 같이 있을 때 마시는 거다. 이 녀석아.”


“...”


용운휘는 잠시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다시 원래 바라보던 곳을 바라보았다.


“뭐야. 절세미녀인 얼굴, 그것도 연인의 얼굴인데 보지도 않고 산을 쳐다보다니. 꼬맹이, 설마하니 고자냐?”


용운휘는 대꾸도 없이 그저 풍경을 쳐다보았다.


“뭐야. 뭔데. 저 멀리에 여자 알몸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지 여자의 몸을 닮은 구름?”


용운휘는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는 그녀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뭐 할 말이라도 있소?”


“쯧. 그래. 그러니 이거 받아라.”


“아니...얘기를 하고 싶으면-”


“이 또한 얘기다. 이 녀석아. 술로서의 교감 또한 대화라는 것을 네가 언제쯤 깨달을지 참 걱정이구나.”


“...”


용운휘는 취한 사람, 그것도 취한 여자를 상대하는 것은 고역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그래. 그래서 뭘 보고 있던 거야?”


“그저 여태껏 봐왔던 풍경이 좀 변했을 뿐이라 잠시 지켜본 것뿐이오.”


“하.”


모용교는 정말 놀랐다는 표정으로 용운휘를 빤히 응시했다.


“왜 그러시오?”


처음 보는 모용교의 표정에 용운휘가 궁금증이 들어 물었다.


“정말이지. 네 놈 그 몸뚱아리 안에는 애늙은이라도 들어 있는 것이냐? 정말이지. 이런 점은 정말로 재미없구나.”


“...”


자신이 재미없다는 모용교의 신랄한 한 마디에 용운휘는 할 말이 없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다가오는데 그럼 풍경이 변하지 않고 배겨?”


“...”


말을 마친 모용교는 잔에 술을 따르고는 한 잔 들이켰다.


“캬아아아. 그래, 그래서 풍경이 변한 게 어쨌는데?”


풍겨오는 주향 때문이었을까? 용운휘가 속내를 조금 드러냈다.


“잘 모르겠소. 분명 다른 풍경이 찾아오기를 바랐는데.”


“바랐는데?”


“잘은 모르겠소. 분명 풍경이 바뀌기는 했으나, 내가 보고자 했던 것은 아니니. 뭐랄까. 처음에 생각했던 풍경이 보이는 곳까지는 가봐야겠소.”


“...”


쪼르르륵.


모용교가 다시 술에 잔을 채웠다.


“어지간히 이상한 놈이군. 풍경을 보고 싶다니. 킁.”


모용교의 콧소리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용운휘가 그녀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우셨소?”


“...!! 울긴 누가 울어! 그저 하품하다 눈물이 나온 흔적이다!”


그녀가 새빨개진 얼굴로 황급히 말을 늘어놓았다. 뻔히 보이는 변명이었지만 용운휘는 그것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


그렇기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용운휘였다.


“맹이란 어떤 곳이오?”


“...맹?”


“그 자와 이야기를 하던 맹이 무림맹 아니오?”


“...맹...맹이라.”


모용교가 손가락으로 술잔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무엇을 그리 고민하는지 한참을 그렇게 있던 모용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말해주기는 어렵군.”


“어째서요?”


“꼬맹이 너에게 선입견을 주는 게 아닌가 싶어서. 아마도 맹에 관심이 있으니 이렇게 물어보는 거겠지?”


“...”


대답은 하지 않아도 용운휘의 뜻이 어디 있는지는 둘 다 뻔히 알고 있었다.


“맹이라...크...”


한참을 고민하던 모용교가 흉중에 있던 말을 조금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가 너에게 말을 하지 않아도 꼬맹이 네가 강호에 몸을 담고, 또 하후악 그녀석을 쓰러트린 이상 무림맹과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겠지. 강호라는 곳은 그러한 곳이니까. 단지 내 개인적인 생각만이라도 듣고 싶다면 말해주지.”


모용교의 말에 용운휘가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있어서 맹은 악몽 그 자체다. 가능하면 떠올리기도 싫고, 맹의 본단이 있는 곳은 얼씬도 하고 싶지 않지.”


“...그들이 나쁘단 이야기요?”


“나쁘다라...좋고 나쁘다를 따지기 이전에, 집단이란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군.”


“...?”


“집단이란 커지면 커질수록 하나의 생명과도 같아져 살아 숨쉬기 시작한다. 삶이란 것은 때론 좋기도 나쁘기도 하지. 그런 점에서 맹이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지. 불행하게도 나나 하후악이나 그 중에서도 특히나 나쁜 모습을 마주한 것이고.”


“...그렇다면 맹을 원망하지는 않는 거요?”


“말했잖아.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그곳에는 분명 협객들의 길을 걷는 자들도 있어. 단지 집단이란, 집단 속에서의 권력이란 언제나 위험한 것이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뿐이다. 꼬마.”


“...”


“후우. 그럼 반대로 묻지.”


“무엇을 말이오?”


“만약 맹에 네가 원하는 그런 풍경이 없다면 어찌할 것이냐?”


“...!”


용운휘의 동공이 흔들렸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용운휘는 한동안 깊이 고민하더니 이내 말문을 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내가 보지도 못한 풍경을 놓고 말한다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 풍경을 다시 만들면 되지 않겠소? 눈뜨고 보지도 못할 풍경이라면 존재할 가치도 없을 터. 그저 박살내고 다시 만들어내면 그뿐.”


“푸흡!!!”


모용교의 입에서 술이 튀어나왔다.


“아까 한 말을 취소해야겠군. 너는 이상한게 아니야. 미친 놈이었군.”


“그렇소?”


“그래. 맹을 조금이라도 알면 그런 소리는 하지 못할 테지. 아니...아닌가? 천하의 하후악을 쓰러트린 이의 말씀이니. 부순다...부순다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모용교가 가슴에 쌓인 무엇가를 날려버리듯 허리를 잡고 웃어 댔다.


“끅끅...정말이지 너는 어떻게 보면 하후악을 닮았어.”


“내가 말이오?”


용운휘가 한쪽 눈을 일그러 트리며 물었다.


“그래. 미쳤다는 점이. 후우우우.”


그녀가 슬픈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그렇게 되지 마라. 친구에 이어 낭군님을 잃은 미망인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무언가를 털어낸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눈부시게 아름다워 마치 빛이 나는 듯했다.



***



벽력일무문의 경내는 축제나 다름없었다. 생사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마문일세를 쓰러트리고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모두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흥겨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연합했던 문파들까지 초대해 즐기는 와중 벽력일무문을 빠져나오는 그림자가 있었으니 그림자의 주인공은 용운휘였다.


“후우...골치 아프군. 그렇게 술이 약할 줄이야.”


용운휘의 입에서 주향이 풍겨왔다. 사문의 어른들이 들이미는 술들을 피할 수 없었던 탓이다. 게다가 어른들에 내미는 술에 취해 달라붙던 대사저를 떼어놓는데 상당히 고생한 탓에 몸에서도 술 냄새가 잔뜩 풍겨왔다.


용운휘는 뒤를 한 번 돌아보고는 신형을 돌렸다. 후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후개를 증명하는 신물(信物)을 돌려주기 위해 나선 참이었다.


“뭐야 어딜 가는 거야.”


그렇게 발을 떼려던 용운휘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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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1화 제왕검형(帝王劍形) +2 24.05.18 455 17 11쪽
50 50화 남궁세가 +5 24.05.17 479 14 11쪽
49 49화 팽호 +1 24.05.16 501 16 11쪽
48 48화 황산으로 +1 24.05.13 564 14 13쪽
47 47화 십이사도의 죽음 +1 24.05.11 568 16 11쪽
46 46화 십이사도 +1 24.05.10 563 15 12쪽
45 45화 끽채교의 정체 +1 24.05.09 631 15 11쪽
44 44화 파리 날리는 객잔 +1 24.05.06 759 16 11쪽
43 43화 강호는 넓다 +1 24.05.05 825 17 11쪽
42 42화 소중유도 강찬운(수정) +1 24.05.02 801 18 12쪽
41 41화 칠대악인의 제자 +3 24.05.01 828 20 11쪽
40 40화 곡예단 +1 24.04.29 851 23 11쪽
39 39화 악인촌(수정) +1 24.04.27 913 21 11쪽
38 38화 복수 +1 24.04.26 970 19 11쪽
37 37화 귀검문의 최후 +1 24.04.23 1,041 22 12쪽
36 36화 재회 +1 24.04.22 1,039 18 11쪽
35 35화 살수 +1 24.04.21 1,020 18 11쪽
34 34화 강호인들의 도전 +1 24.04.20 1,048 19 11쪽
33 33화 영육쌍전(靈肉雙全) +1 24.04.17 1,166 18 11쪽
» 32화 다른 풍경이었다. 하지만... +2 24.04.16 1,176 17 11쪽
31 31화 승부의 끝 +4 24.04.15 1,151 23 12쪽
30 30화 의기충천(意氣衝天) +2 24.04.14 1,090 23 12쪽
29 29화 격전 +2 24.04.12 1,106 19 11쪽
28 28화 탈혼악경(奪魂樂經) +2 24.04.11 1,172 21 13쪽
27 27화 습격 +3 24.04.10 1,105 21 12쪽
26 26화 탈각 +2 24.04.09 1,176 20 11쪽
25 25화 모용교 +4 24.04.07 1,202 24 11쪽
24 24화 결착 +4 24.04.07 1,197 24 11쪽
23 23화 재격돌 +3 24.04.05 1,251 24 13쪽
22 22화 투귀 곽지성 +5 24.04.04 1,281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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