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는 이지스 전투순양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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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노트
작품등록일 :
2024.03.1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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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0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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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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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창. 어느 쪽으로

DUMMY

한동안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행궁 앞 마당은 침묵만이 지배한 채 양측이 대치하고 있었다.


“그들을 들이도록 하라.”


선조는 마침내 옥음을 내렸다.

천조국의 사신들을 만나기로 이미 마음은 먹었다.

조금 그들에게 기다림의 긴장감을 심어 준 것뿐이다.


전쟁을 통해 입지가 강해질 신하들을 명을 이용해 그 군공을 깎아 냈다.

이제 콧대 높고 안하무인인 명의 장수들도 적당히 눌러 줄 필요가 있었다.


강철용을 가진 자들.

천조국의 장수들이 그 패가 될 수 있을지 볼 요량이었다.



# # #



- 저벅저벅.


앞선 내시의 등을 따라 최영환과 이준원, 강형범과 우명식이 걸었다.

나머지 병력들은 행궁의 마당에서 마린온과 함께 사주경계를 취하고 있다.


‘작다······.’


궁궐로 들어선 일행.

가장 먼저 강형범의 머릿속에 들어온 것은 그 생각이었다.


‘초라하다.’


빛바랜 두꺼운 나무마루.

단청과 화려한 색으로 칠해진 벽들과 기둥.

하지만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뭔가가 촌스러웠다.

드라마에서 보던 휘황찬란한 호화로운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웬만한 임대 아파트의 거실도 이것보다는 호화로울 것이다.


아무리 임시 행궁이라고는 하지만 왕족이 살던 집.

그럼에도 절대로 살고 싶지 않은 느낌의 후줄근한 시골집이다.

다만 천장만은 뛰어올라도 닿지 않을 만큼이나 꽤나 높았다.


‘궁궐이 이렇다면 민가는 어느 정도인 거야······.’


문득 강형범은 앞으로의 생활이 두려워졌다.

가장 두려운 것은 적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불편이 될 것이었다.


대전으로 들어서자 끝에 왕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양쪽으로는 신하들이 줄을 지어 시립해 있다.


- 탁.


그 가운데에 네 사람이 섰다.


“국궁~”


그들의 앞에서 내시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누구나 임금을 만날 때는 절을 네 번(국궁사배)을 해야 한다.

한 번 손을 짚고 엎드려서 머리를 네 번 조아리는 것이 국궁사배.

황제를 만날 때는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다(삼궤구고두례).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나더라도 절을 해야 한다.


“국구우웅~”


눈치 없이 서 있는 최영환 일행을 보며 내시가 다시 길게 목청을 뽑았다.


“국··· 구우우우~웅~”


이쯤 되면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하지만 최영환은 가볍게 목례할 뿐 그의 허리도 무릎도 굽혀지지 않았다.

강형범도, 이준원도, 최영환의 등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엄하다!”

“어느 안전이라고!”


대신들에게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허어··· 하늘에서 신물이 나타났다고 하더니 알고 보니 오랑캐였구나.”

“어찌 저리도 법도를 모르는고······.”


그러나 최영환은 고개를 든 채 묵묵히 왕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공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혔다.


익선관에 곤룡포.

오조룡과 구름이 금실로 화려하게 수놓인 40대 중반의 살찐 얼굴의 그를 뚫어질 듯 보아 왔다. 마치 그의 속까지라도 뚫어 보려는 듯한 무표정한 눈길이 최영환을 훑는다.


‘쉽지 않은 하루가 되겠군.’


선조가 어떤 사람인가.

조선 왕조 최초로 적통 출신이 아닌데도 왕이 된 남자.

그럼에도 동서로 분열된 신하들을 적절히 이용해서, 강력한 왕권을 확보한 왕이다.


현대로 말하자면 정치 9단, 혹은 만렙에 가까운 정무 감각.

임진왜란 당시의 출중한 인재들을 등용한 것도 바로 선조.


임란의 영웅 이순신.

그는 당시 종6품 정읍 현감에 불과했다.

대간들의 필사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정3품인 전라좌수사에 올린 것도 선조.


현대로 말하자면

대대장급의 사무직 소령을 중장급의 전장의 함대제독으로 파격 승진시킨 것.

과장 정도의 직급을 사장으로 승진시킨 것.


이때 모든 신하들이 전례가 없다며 반대를 했다.

류성룡조차도 반대할 정도였다.


- 전하! 한번에 그렇게까지 승진시킨 예는 없사옵니다.

- 그렇군. 그렇다면 순차적으로 승진시키도록 하지.


그래서 선조는 단계적으로 승진시켰다.


종6품 정읍현갑에서 종4품 진도군수로.

부임도 하기 전에 다시 종3품 가리포첨사로.

임지에 부임도 하기전에 다시 정3품 전라좌수사로.


거기까지 단 1개월이 걸렸을 뿐이다.


이순신만이 아니다.

40세까지 백수로 지내던 권율을 도원수에 올린 것도 그다.


인재가 많기로 소문났던 선조시대.

하지만 그 대신들 중 누구도 이순신의 인사에 찬성한 사람은 없었다.


조선의 왕 중 그 누가 이런 파격적인 인사를 할 수 있었을까.

단언코 아무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선조가 아니라면 이순신이 있었을까.

인재는 쓰지 않는다면 창고에서 썩어 갈 뿐이다.

그만큼 선조의 인재를 보는 눈과 상황을 인식하는 능력은 탁월했다.

거기에 필요하다면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이는 의지까지 있었다.


그는 누구도 믿지 않았고 자신의 능력만을 믿었다.

신하들을 끊임없이 의심했고, 끊임없이 발탁했다.

이용하면서 견제했고, 견제하면서도 발탁했다.


때문에 율곡 이이조차 이렇게 대놓고 말했을 정도였다.


[전하께서는 총명하고 지혜로움은 많으시나 덕을 쓰심이 넓지 못하고, 좋은 말 듣기를 매우 좋아하나 많은 의심을 버리지 못하십니다. 그리하여 여러 신하들이 힘써 건의하는 것을 지나치지 않은가 의심하고, 기개와 절조를 숭상하는 자를 교만하거나 과격하다고 의심하십니다··· 더욱이 명령을 내리실 때면 말씀하시는 기풍이 곱지 못하고, 좋아하고 싫어함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 율곡 이이 (만언봉사)]


쉽게 말하자면 변덕이 심하고 말본새도 좋지 않았다는 것.


게다가 그는 아들인 광해군보다 더욱 똑똑했다.

아들은 궁궐을 새로 짓느라 민심을 잃고 자리에서 쫒겨났지만.

그는 파탄 난 국고를 알았고 민심을 알았기에 궁궐을 새로 짓지 않았고, 행궁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것이 백성을 위함은 아니다.

그것이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것을 두려워했음이다.

그의 모든 행동을 결정하는 원칙은 왕권과 보신이었다.


‘이런 자에게 한번 밀리기 시작한다면 끝없이 밀릴 것이다.’


위력을 투사하고 강압적으로 나간 것에는 남원성 전투가 시급한 것도 있지만, 선조의 그런 평판을 들은 이유도 있다.

한번 마주친 눈빛은 육식동물의 눈빛.

최영환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국~구우우우웅~”


내시가 다시 한번 길게 소리를 뽑았다.

선조의 입술이 마침내 열렸다.

중저음의 굵은 음성이었다.


“그만두어라. 조선의 예의와 타국의 예의가 다르니 강요하는 것도 예가 아니니라.”


술렁이는 대신들을 한마디로 제지시킨 선조.

그의 눈빛은 여전히 최영환에게 고정되어 있다.


“그대들은 누구고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바다 건너 6천 킬로미터 떨어진 천조국이란 곳에서 왔소.”


“킬로미터? 천조국?”


선조가 고개를 갸웃한다.

최영환은 실수를 깨닫고 다시 말했다.


“대략 이곳에서 10만 리 정도 떨어진 곳이오.”


“그대들은 어찌하여 조선말을 하고 있는가? 그대들의 나라 천조국에서도 조선말을 사용하는가?”


“이런 것쯤이야 아무일도 아니오.”


“그대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조선말을 할 수 있는가?”


선조의 눈길이 다른 일행들을 훑었다.

강형범은 그 눈길을 받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자신이 선조의 말을 이해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과 마찬가지.


“10만 리라··· 그대들의 나라에 대해서는 차차 듣도록 하지.”


시공을 초월해 왔으니 대략 10만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대답을 들은 선조는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이 말로는 아국을 도와 왜적을 몰아내는 것을 돕겠다고 하면서도 도리어 감히 궁에서 행패를 부린 연유가 무엇인가?”


“사안이 급박하기 때문이오. 전쟁이 하루가 길어질수록 무고한 백성들이 의미없이 죽어 가오. 우리는 강화도 부사를 통해서 그대에게 접견 요청을 할 수도 있었소. 하지만 그랬다면 최소 십여 일 이상이 더 소요되었을 거요.”


“그대들의 나라에는 왕이 없는가? 사안이 급하다해서 함부로 타국에서, 그리고 궁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최영환은 선조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는 명분을 내세워 말꼬리를 잡고 기세를 선점하려 하고 있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라지고, 임금이 죽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겠소?”


왕의 면전에서 터무니없는 망언.

대신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무엄하다!”

“어찌 그와 같은 망발을 입에 담는가!”

“이곳이 어디라고!”

“전하! 이들은 왜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분명하옵니다.”


그러나 선조는 무심하게 되받았다.

이자의 터무니없는 도발에 넘어갈 이유는 없었다.


“내가 죽는다? 나라가 망한다?”


최영환은 술렁임을 뒤로하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는 그들을 설득할 차례였다.


“우리나라에는 위대한 예언자가 있소. 그가 말하기를 조선이 망할 위기에 처해 있으니 가서 도우라고 했소.”


“예언? 그대들의 나라는 한낱 점사에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가?”


선조가 등을 뒤로 기대며 코웃음을 친다.


“예언대로 원균이 패하는 것을 우리가 막았고.”


“무슨 소리인가? 원균이 패하는 것을 그대들이 막았다니?”


“장계를 믿지 말고 사람을 내려보내 진상을 조사해 보면 알 것이 아니오?”


최영환은 선조의 말을 한 번에 막아 버렸다.

그리고 따라 들어온 명나라 장수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대들이 남원성전투에서 패하고! 호남이 유린당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오. 예언에 따르면 남원과 진주가 함락되고, 호남의 수십만 백성이 죽소.”


“그··· 것을 어찌······.”


대신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제독 마귀와 양원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호남의 곡창지대를 보호하고, 왜적의 북상을 막기 위한 남원성전투.

조선 정부와 그들은 어제까지도 그 전략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자들이 서로 내통한 것인가······.’


마귀의 얼굴이 조정대신들을 훑어보았다.

천조국이라는 자들과 조선인들의 외모는 거의 같다고 볼 정도로 흡사했다.

말 또한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키는 대부분 8척 장신이고, 골격은 북방인처럼 장대하군.’


마귀의 의심스러운 눈길.

그것을 감지한 선조의 입이 열렸다.


“천자의 군대가 이미 우리를 돕는데 우리가 어찌 그대들의 도움이 필요하겠소?”


선조는 시립한 양원과 마귀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최영환은 단호했다.


“일이 벌어진 후에는 후회해도 늦을 것이오.”


선조는 고민에 빠졌다.

남원성작전은 비변사(전시특별기구)와 명의 제독 마귀만이 알고 있는 극비.


‘이들이 어찌 그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


지금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혼란이었다.

하늘에서 용을 타고 날아온 사람들.

이들은 화력으로 자신들을 증명했고, 때문에 예언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임금이··· 죽는다······.’


그것은 분명 자신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무시하기에는 불편하다.

떠보기로 한다.


“그대들은 몇 명이나 원군을 보낼 것이오?”


“30명이오.”


“30명? 삼십이라니! 장난치는 것인가!”


오가는 대화를 듣고 있던 양원이 혀를 찼다.

지금 조선의 왕은 허튼소리에 넘어가 명 이외에도 다른 나라까지 전쟁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

그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전하, 이자의 말은 더 들을 것도 없소. 30명이라니! 어처구니가 없군.”


“우리군 30명이면 왜군 10만을 상대할 수 있소. 사실 30명도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얼마 정도면 되겠나?”


최영환의 눈길이 우명식을 향했다.

우명식은 간단히 대답했다.


“마린온이 지원하면 1개 분대. 없다면 2개 분대면 충분합니다.”


“20명이면 된다는군.”


최영환이 양원을 향해 말했다.

양원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다.


“적병들은 5만이 넘는다! 어디까지 이 허튼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전하, 이들의 도움을 받겠다면 우리는 조선에서 당장 철군하겠소. 그리고 천자께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고하겠소.”


“허튼소리같이 들리시오? 한번 시험해 보시겠소?”


“얼마든지!”


생각없이 대답한 양원은 잠시 망설였다.

상대가 그 신묘한 조총을 사용한다면··· 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떠오른 것이다.

양원은 다급히 수습했다.


“칼과 창! 어느 쪽으로 하겠는가.”


“나는 이걸로 하겠소. 그대는 아무것이나 사용하시오.”


대답한 상대가 꺼낸 것은 손바닥만 한 단도였다.


날이 서 있지도 않다.

그저 묵색의, 빛을 반사하지도 않는 한 치 길이의 검은색 칼.


“당장 나오시오!”


양원의 목소리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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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치외법권이라 함은... +5 24.04.04 2,367 6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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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전투식량 1형 +2 24.04.02 2,393 73 12쪽
18 일방적인 학살 +3 24.04.01 2,504 74 13쪽
17 살려둘수는 없겠구나. 24.03.31 2,469 64 12쪽
16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 24.03.30 2,393 74 12쪽
15 한산도의 노장(老將) +4 24.03.29 2,511 60 12쪽
14 충(忠)을 향한 걸음 +2 24.03.28 2,522 68 13쪽
13 남원성 전투 +2 24.03.27 2,613 62 12쪽
12 화폐가 없는 나라 +4 24.03.26 2,654 63 12쪽
11 독을 타다니! +5 24.03.25 2,665 68 12쪽
10 데모크라시호에 탑승을 환영하오 +4 24.03.24 2,752 76 12쪽
9 화약이나 비누부터 만들던데요? +2 24.03.23 2,856 67 13쪽
8 왜성들까지 없애주겠소. +4 24.03.22 2,905 72 13쪽
» 칼과 창. 어느 쪽으로 +1 24.03.21 2,994 66 13쪽
6 보이지 않았다. +7 24.03.20 3,092 72 12쪽
5 천조국의 사신 +4 24.03.19 3,243 71 12쪽
4 민주주의를 배달하실 겁니까? +11 24.03.18 3,496 7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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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597년의 조선 +7 24.03.16 4,483 8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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