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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2
최근연재일 :
2024.09.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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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3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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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2

DUMMY

혼이 빠진 듯 멍한 표정의 그, 몸을 부들부들 떨고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비급에서 읽었던 주화입마의 현상과 비슷했다.


나원평,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야! 야! 팽욱! 정신 차려!! 야, 인마!”


나원평은 대뜸 팽욱의 뺨을 정신없이 갈겼다.


순간 정신이 돌아왔는지 얼떨떨한 표정의 그, 널브러진 세 소년의 모습을 발견하고 당황했는지 달변의 말까지 더듬었다.


"나, 나도 잘 모르겠어. 뭐가 뭔지···."


팽욱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나지 않아 고통스러웠다.


아까 엄습했던 그 공포의 존재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시작일 줄 꿈에도 몰랐다.


그 누구 때문에. 한편 나원평은 주화입마란 엄청난 일까진 벌어지지 않은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은 길게 내쉬었다.


“애들 목숨엔 지장 없는 것 같아!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알았어!”


풀 죽은 목소리가 팽욱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사이 혁린천은 계곡에서 찬물을 떠와 의식 잃은 두 소년의 얼굴에 끼얹었다.


“어푸!”


찬물을 끼얹자 정신이 든 두 소년,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커다란 덩치의 어른 두 명과 무시무시한 괴짜 소년이 눈에 들어오자 벌떡 일어서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야! 거기 서!"

"거기 서지 못해!"


내력이 담긴 혁린천의 목소리가 천둥 치듯 두 소년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도망가던 소년들은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못했다.


"친구는 어쩌고 너희들끼리 도망가냐! 빨리 오지 못해!"


그제야 의식 없이 누워있는 친구를 발견하곤 다급히 불렀다.


"황소돈(黃少墩)! 소돈아!"


누워있는 소년의 이름은 황소돈, 인근 윗마을에서 고리 대금업으로 많은 사람에게 눈물과 고통을 준다는 오로지 돈만 밝히는 황대팔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다.


두 소년은 덩치 소년의 옆에 와 앉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였다.


"흐흑! 소, 소돈이 죽은 것 아니지요?"

"다행히."

"아이쿠! 아야!"


세 사람이 악귀나찰처럼 보였던 두 소년은 친절한 목소리에 안심이 됐는지 "휴~" 한숨을 내쉬다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깜빡 잊었던 부러진 코뼈의 통증이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아프게 찔러 왔기 때문이다.


"린천아! 미안하지만 네가 이 덩치를 업어라!"

"그래 알았다."


조심조심 머리를 보호하며 혁린천의 등에 소년 황소돈을 업혔다.


나원평은 멍하니 넋을 잃고 서 있는 팽욱에게 말했다.


"욱!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야! 이제 앞으로 어떻게 풀어야 할지 그거나 잘 생각해!“


그렇지 않아도 골머리가 아팠다.


자의든 타의든 결과적으로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써야,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원평과 혁린천, 그리고 나머지 소년들은 자갈밭을 밟으며 천천히 마을 어귀를 향해 걸어갔다.


짜그락! 짜그락!


자갈 부딪치는 소리마저 심란하게 들렸다.


팽욱은 코뼈를 감싸 쥐고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걷는 소년들에게 물었다.


"야! 너희들, 이름이 어떻게 되냐?"

"저는 장두삼이고 얘는 왕소칠 입니다.“


아까의 혈기왕성했던 기백은 어디로 갔는지 맥 빠진 음성이 장두삼이라는 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장두삼, 왕소칠! 너희들 오늘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물론 우리가 형들을 몰라뵙고 무례한 짓 했습니다. 무조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팽욱이 나원평, 혁린천과 말을 놓고 있는 것을 보고 소년들은 그가 키는 작지만, 자신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 것이라 짐작하고 존댓말로 대꾸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아까 너희들 소행을 생각하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데."

"아닙니다. 이일은 전적으로 저희 잘못이니 절대, 절대 형님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말을 믿어 달라며 한 손으로는 아픈 코를 감싸 쥐고 한 손으로는 땅을 짚은 채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다.


소년들의 눈을 유심히 살펴보던 팽욱은 이들이 아까의 엄청난 무력에 놀라 아직도 경황이 없는 상태지만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고 판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들! 이 덩치 소년과는 어떤 관계냐?"

"이 덩치 황소돈은···.“


어느덧 그들의 말투도 팽욱처럼 덩치라 호칭하고 있었다.


"동네에서 천삼웅(天三雄)이라고 부르며···"

"뭐! 천삼웅?"

"아, 아니 지삼졸(地三卒)입니다."


팽욱이 인상 찌푸리며 노려보자 금세 말투가 바뀌었다.


"계속해!"

"예, 그러니까 우리는 동네에서 아이들을 돌봐 주고 외부에서 깡패나 건달들이 들어와 행패를 부리면 앞장서서 해결해 주는 그런 역할을 해 오고···"

"그게 아니겠지, 아이들한테 돈 뜯어내고 깡패들한테는 상납하고 그랬던 것 아니야? 안 그래!"

"예! 맞습니다."

"그럼 순, 나쁜 놈들 아니야!"


말을 잇지 못한다.


"너희 부모님도 이런 사실, 아시냐?"


팽욱이 언성을 높여 나무라자 소년들은 기가 죽어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두 소년 중 장두삼이란 소년의 아버님은 마을 촌장으로 마을 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성실하고 청렴한 분으로 이웃에도 그 소문이 자자한 분이고 왕소칠의 아버님은 동네 서당 훈장으로 동네에서 가장 먹물을 많이 먹은 지식층이셨다.


그 사실을 걸어오며 확인한 팽욱은 그들의 가장 취약한 부위를 건드리며 지시했다.


"너희는 지금 즉시 가서 반성문하고 너희들이 피해 입혔던 아이들을 찾아가 이제까지 저질렀던 악행에 대해 사과하고 그 전모를 밝힌 글을 써서 서명받아 와! 알았지!"

"어떻게 그걸 다···."

"이 자식들이 저지른 짓이 엄청 많았던 모양이구만! 대표적인 것만 추려서 받아 와, 만약 허투루 써 온다든지 아이들에게 사과하지 않고 왔으면 나와 이 형들이 직접 너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담판을 벌일 것이니까 그렇게 알아, 알았어?"

"예..."

"목소리가 작다. 크게 복창해!"

"예!"


의기양양해진 팽욱은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여기 이 황소돈이란 아이가 깨어나거든 너희들이 잘 말해서 올바른 길로 인도해! 우리가 어디 사는지 잘 알지?"

"자, 잘 모르는데요."


모른다고 말하며 맞을까 봐 두 소년은 얼른 손을 머리에 얹었다.


"우리는 요 아랫마을 대장간에서 쇳물을 다루고 계시다. 서찰을 가져올 때는 아무도 모르게 여기 이 크신 어른을 찾아 전달하고 가도록 아! 그리고 그 부러진 뼈, 우리가 치료비 줄까?"

"아, 아니옵니다. 이것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알아서? 그럼 이 상처, 어디서 다쳤다고 할 건데."


팽욱은 무릎 꿇고 앉은 두 소년 앞에 턱을 괴고 무섭게 쏘아봤다.


무시무시한 괴력의 소유자가 눈을 빤히 뜨고 쳐다보자 두 소년은 황급히 눈을 깔았다.


"잠룡산에 놀러 왔다가 늑대를 만나 도망치면서 넘어져 다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늑대? 자식들아! 둘러대려면 그럴듯하게 해야지, 잠룡산에 늑대가 어디 있다고 늑대라고 하냐."

"그, 그럼 무어라고."

"이런 멍청한··· 너희 같은 놈들을 낳고 덩실덩실 춤추신 너희 부모님이 불쌍하구나, 이 바보들아 잠룡산에는 뱀이 많잖아! 그러니까 계곡에서 목욕하다 갑자기 나타난 살모사에 놀라 달아나다 발을 헛디뎌 코가 깨지고 머리가 터졌다고 하면 될 것 아냐."


두 소년은 졸지에 멍청이가 됐지만, 그것을 깨달을 상황이 되지 못했기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며 오케이 했다.


이정도 했으면 잘 알아들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모두 돌려보내며 사건은 일단락된 듯했다.


하지만 충분히 공포를 체감한 둘은 감히 다른 생각 품을 엄두도 못 냈지만, 초반에 기절하며 그의 광기를 보지 못했던 소돈은 열흘의 시간이 흐른 뒤 복수하겠다며 장정들을 대동, 그의 집으로 쳐들어왔다.




* * *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한 낮.


수십의 사람들이 팽욱의 집에서 왁자지껄 소란이다.


“중원 땅이 한족만의 땅입니까? 우리 고려인은 살 자격도 없다는 말인가요?”


한족이 어쩌고저쩌고하는 비하에 흥분한 팽욱이 꽥 소리쳤다.


“어렵쑈! 이놈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뭘 잘했다고 대들어!”

"그리고 제가 언제, 누굴, 인정사정없이 팼다고 무더기로 몰려와 윽박지르는 겁니까?"


핏대 올려 소리치던 팽욱은 싸리문 뒤에 숨어 동정을 살피던 뚱뚱한 소년 황소돈을 발견했다.


인상이 찌푸려진 건 불문가지.


“야!! 황소돈!”


팽욱의 외침에 장정들은 일제히 뒤를 돌아봤다.


"도련님은 언제 따라오셨냐. 잘됐다. 도련님! 이쪽으로 와 보십시오, 걱정하지 마시고."


장정들이 오라 손짓하자 황소돈은 마지못해 싸리문을 열고 우물쭈물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장정들 뒤에 몸을 숨기고 슬쩍 고개만 내밀었다.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 역력했다.


황소돈! 그의 머리에는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있었고 얼굴의 부기는 아직 가라앉지 않아 살찐, 돼지처럼 퉁퉁해 보였다.


황소돈은 그때의 공포가 아직 생생히 남아 감히 나설 엄두도 못 내고 장정들 뒤에 숨어 바락바락 욕을 해 댔다.


"저기 저 이상한 머리한 저 새끼가 저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뭐? 저 자식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까불고 있네."


팽욱이 주먹을 불끈 쥐고 때릴 듯 으르렁거리자 황급히 입을 다문 황소돈은 후닥닥 장정들 뒤에 숨어버렸다.


팽춘길은 상황파악 못 하고 철없이 날뛰는 자식이 안타까워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이 녀석아! 지금 어느 자리라고 또 주먹을 흔들어!"


아버지의 호통에 팽욱이 아무 말 못 하고 뒤통수만 긁적이자 털북숭이 장년인이 의기양양한 말투로 말문을 열었다.


"요구는 간단하오. 도련님을 이렇게 만들어놓았으니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똑같이 해 놔야 한다는 것이 우리 요구사항이오!"


두들겨 패겠다는데 이를 흔쾌히 받아들일 부모 어디 있겠는가.


"원하신다면 부족하지만, 돈으로 변상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그런 요구는 거두어 주심이···."

"무슨··· 절대 안 되오!"


털북숭이 장년인의 단호한 음성은 김춘길의 요구를 일언지하, 묵살했다.


불한당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업신여기며 무시하고 죄인처럼 다루자 팽욱은 열이 뻗칠 때로 뻗쳤다.


‘잘됐네~ 까짓거 맞는다고 내가 다칠 것도 아니고.’


팽욱은 육체적 자신감에 성큼 그들 앞에 나섰다.


"정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를 저 녀석처럼 만들어야 속이 풀린다면 말입니다."

"호! 제법 용기가 가상하구나. 좋다, 원한다면 그렇게 해 주지."

"진오 아저씨! 저 녀석은 어지간해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 괴물 같은 놈이니 사정 봐주지 말고 마구잡이로 패야 해요"


구박하는 시어머니보다 깐죽대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황소돈이 그 짝이었다.


울화통이 치밀어 황소돈을 째려보던 팽욱, 하지만 여기가 어디인가.


부모님이 계신 자리다.


자존심 부릴 계제가 아니다.


털썩 무릎 꿇고 앉은 그는 머리를 푹 수그렸다.


눈 딱 감고 있는 것이 처분을 기다린다는 듯 의사였다.


‘뿌드득! 너, 이 자식 나중에 모두 돌아가면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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