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빌딩과 후보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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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7.0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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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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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군사훈련(6)

DUMMY

***

불씨는 갑작스레 총기수입을 하게 된 후보생들의 입에서 시작되었다.


[왜 갑자기 휴일에 총기수입을 시키는가]


[PX 음식은 왜 갑자기 걷어가는가]


[훈육관은 왜 짜증이 나있는가]


보급받은 강중유를 묻힌 청소포로 약실을 닦고 또 닦아도 계속해서 묻어 나오는 탄매처럼 후보생들의 머리속에서도 갑자기 시작된 일과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작업 하는 군인의 입만큼 마르지 않는 샘물이 또 있을까. 어느새 하나 둘 그 의문을 입 밖으로 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생활관이 그 이야기를 씹기 시작했다.


“2소대 2분대에서 여 후보생이 놀다가 훈육관한테 걸렸나본데?”


“아니 그 병신같은 새끼들은 그걸 걸리냐?!”


“걸린게 아니고 대대장 후보생이 꼰질렀다는데?”


처음 여론은 2분대의 잘못으로 흘러갔다. 어찌되었건 규정을 어긴 건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2중대 1소대 1분대]


“근데 굳이 그걸 위에 보고 했어야 됐나?”


약실에 뻑뻑하게 낀 꽂을대를 뽑으며 중기대 후보생이 말했다.


“걔 입장에서는 말을 쳐 안들으니까 빡쳐서 말했겠지!”


열변을 토하며 말하는 성민, 그는 저녁시간에 먹을 간식을 빼앗겨 분개한 상황이다.


“근데 내 생각에도 유도리가 쬐끔 없었다고 본다.”


총열을 들어 형광등에 비추며 지훈이 말했다.


“뭐 얼마나 똥꼬를 빨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혼자 급발진 한 건 맞지 않나?”


같은 학교 출신인 지훈이 석훈의 편을 들지 않자 열변을 토하던 성민도 잠시 주춤했다. 지훈의 말에 민호를 포함 다른 1소대 1분대 인원들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정도 하지 않았다. 특히 민호는 그저 열심히 총만 손질할 뿐이었다.


[2중대 2소대 1분대]


“하··· 이걸 도대체 지금 왜 하냐···”


건한대 후보생 동준은 볼멘 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자 처음 맞는 주말로 일과없이 쉴 수 있는 날이었다. 원래 총기수입은 다음 주 사격을 시작 하루 전, 즉 일요일 오후부터 예정되어 있던 터이다.


“여자애들은 왜 여기 찾아와서는 일을 만드냐···”


동준은 지민을 염두해두고 한 말이 아니었지만 그녀 역시 뜨끔해 평소와 달리 입을 다물고 총기손질에 집중했다.


“아까보니까 유정이 울던데··· 봤어?”


유림여대 박혜민 후보생은 지민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걔 원래 그런 애야? 별거 아닌 일에 발끈하고······일 크게 만들고.”


“으응··· 사실 나도 친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


혜민에게 공감하기도, 그렇다고 반박하기도 뭐한 지민은 말을 얼버무렸다.


“준영아 너네 황무대 애잖아. 관리 좀 해.”


준영 역시 짜증스레 한마디 하는 타 학교 후보생들에게 뭐라 할 말이 없어 멋쩍게 웃고 넘길 수 밖에 없었다.


[2중대 2소대 2분대]


“아 진짜 그 병신새끼 때문에 뭐하냐 진짜.”


황동훈.

홍서대학교 학군단 출신이며 직속이라는 이유로 훈육관에게 끌려가 한 번 더 혼난 그는 독이 바짝 올라있었다.


“분대장. 너네 학교 애들은 다 저렇게 병신이야? 아니 진짜 어이가 없네.”


“야! 왜 또 다은이한테 그래! 걔가 이상한게 다은이 잘못은 아니잖아.”


유정의 제지에 동훈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심한 말을 삼켰다. 하지만 울분이 남아있던 터라 그런지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타인에게 ‘나 화났어요.’ 를 강조하듯 거칠었다.


“청소포 떨어졌다.”


조용히 침대에 걸터앉아 총을 닦던 소영 툭 내뱉듯 말했다.


“그러네, 분대장 출발.”


그들은 당연하게 분대장인 다은에게 잡일을 떠맡겼다.


“아까도 다은이가 가지고 왔잖아. 이번엔 우리끼리 가위바위보 해서 다녀오자. 응?”


오직 유정만이 표면적으로 나마 다은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강한 주장을 동반한 것은 아니었다.


“왜 우리가 가져와? 분대장 하는 것도 없는데 이런거라도 해야지. 이런 것도 안하고 상점 날로 먹으려고?”


“아~~ 나 같으면 양심적으로 시키기 전에 했다! 누구네 학교 때문에 이 고생인데.”


그들은 분대장이라는 명분과 석훈이라는 연좌제도 생겼겠다, 은근하게 다은의 착한 성정을 건드렸다. 유정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은을 응시했다.


“알았어, 내가 가져올게. 내가 가져오는 게 맞지.”


다은은 싸움을 싫어하지만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그녀가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그림이 아니면 하이에나 같은 분대원들이 이 일을 수료식날까지 우려먹을 것을 알았기에 분리된 총을 내려놓고 생활관 밖으로 향했다.


“야! 노리쇠 훔쳐! 숨겨놓자.”


“개웃기네 진짜.”


그녀가 나간 뒤로 키득거리며 작당모의 하는 그들을 애써 무시한채 행정반으로 향했다.


행정반으로 가는 길.


반대편에서 오늘 가장 인상깊게 본 얼굴이 지나쳐갔다. 아직 황무대 동기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한 그녀였지만 제일 먼저 기억나는 사람을 적으라면 고를 첫번째 인물.


“저···저기···”


그녀는 말하고 싶었다. 미안했다고. 애초에 다은과 유정이 남 후보생 생활관에 오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일로 기분이 상했을 그를 보며 분대원을 대표해서라도 사과하고 싶었다. 비록 그들의 분대원들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규정을 어긴 자신들은 쏙 빼고 그의 잘못으로 몰아가지만 그녀 만큼은 규정에 따라 행동한 그의 올곧음을 비난할 수 없었다.


“왜.”


찬바람이 쌩하고 부는 그의 태도에 다은은 움찔하고 멈췄다. 3인칭으로 보았을때야 성인과 성인의 대치상황이었지만 1인칭 시점에서 자신보다 머리 하나 이상 큰 사람이 굳은 표정으로 내려다보면 누구나 몸이 굳을 것이다.


“······”


다은이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자 이미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자신을 향한 비난에 예민해진 석훈의 사고회로는 편향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너도 개인정비시간 뺏긴 것 때문에 항의하려고?”


한번 편향적으로 작용한 사고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를 자극했고, 그런 그가 다은이 사과를 하려고 했다고는 쉬이 생각할 수 없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먼저 규정을 어긴건 너희 2소대 2분대고 난 FM대로 처리했을 뿐이야.”


석훈은 거기까지 말하고 휙 고개를 돌려 생활관 방향으로 향했다. 다은은 그런 그를 잡을 수 없었다.


***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오늘을 기회교육으로 삼아 후보생들에게 군기를 불어넣어 주기로 작정한 최 대위는 저녁점호 시간이 넘어서도 총기 검사를 강행했다. 취침시간이 한참 넘은 시간까지 행정반으로 이어지는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00 시가 조금 넘은 시간.

드디어 마지막 한 명의 후보생까지 통과 사인을 받고 2대대는 취침에 들어갔다.


“취침수 뿌릴게.”


불침번 초번 근무자는 수통에 담긴 물을 바닥에 뿌렸다. 한 통을 냅다 부어버렸기 때문에 바닥은 금방 흥건해졌다.


“소등한다?”


모두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였고 이내 생활관은 어둠에 잠겼다. 사람의 심리란 시각정보가 차단되었을때 다른 쪽이 활성화된다. 누군가는 소리에 예민해지고, 또 다른 이는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이 떠오르고는 한다. 1소대 2분대 후보생들이 잠들지 못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 또한 이런 환경적 요인 때문이었다.


“이제 몇 주 남았지?”


“3주. 아직 세는 거 아니다.”


1소대 2분대 인원들은 아직도 까마득하게 남은 기간을 확인하고 저마다 푸념을 늘어놨다.


“아니 이거 4주도 이렇게 안가는데, 앞으로 4년 더 이 지랄하는게 맞아?”


“진짜. 그냥 탈단할까?”


“나는 그냥 참으련다. 탈단하면 논산에서 이거 한 번 더해야 하잖아? 어후, 아까워서라도 싫어.”


반복적인 일을 극도로 싫어하는 민수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누가 뭐래도 현재를 가장 즐기는 청년이었지만 한 번 깬 게임을 다시 쳐다 보지 않는 것처럼 같은 훈련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야, 석훈아.”


분대원들의 노가리에도 구석에서 기역자 랜턴을 키고 수양록을 작성하고 있던 석훈이 부스럭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교육여단장이 뭐라냐? 지랄해?”


아까 다은과 마주쳤을때 석훈은 사실 교육여단장 실로 따로 불려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석훈은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잘 모르겠어.”


석훈은 교육여단장 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풀었다.


***


“어, 대대장 후보생? 앉아.”


“14번 후보생 정석훈! 알겠습니다!”


교육여단장실이라고 해봤자 후보생들이 쓰는 생활관과 다를 바 없었지만 차이점은 생활관 하나를 혼자 사용하는 것 정도였다. 교육여단장 안석원 대령은 미리 끓여놨던 포트에서 원두커피를 한 잔을 따라 그에게 내밀었다.


커피를 건넨 그의 손에는 빗겨갈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동시에 그 거친 주름 속에서도 풍화되지 않은 두꺼운 손, 타고난 골격과 단련된 근육, 비록 그가 앉아있었지만 앉은 키만으로 상상되는 큰 신장까지 그야 말로 타고난 무골이었다.


그의 옆에 서면 그 강민호도 멸치가 될 것 같았다.


“후보생들이랑 갈등이 좀 있었다고?”


“갈등···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저 규정을 어긴 후보생들에게 대대장 후보생으로서 통제를 내렸습니다.”


여단장은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어번 주억거렸다.


“지휘라는게 그래서 힘들지. 분명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게 지휘를 받는 입장에서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어서.”


여단장은 석훈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는 애매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사람을 얻어야 하는거야. 결국 군은 사람으로 돌아가거든. 아니 군 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이 그렇거든.”


여단장은 이어서 자신의 소위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석훈은 10분간 잠자코 듣기만 했다.


“이야기가 딴데로 새긴 했는데 핵심은 사람이다. 이해가 되나?”


한마디로 좀 더 유도리를 발휘하라는 뜻이다. 석훈의 신념과는 잘 맞지 않았지만 그는 우선 알겠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남은 차를 다 마시고 석훈은 여단장 실을 나왔다.


***


“고도의 돌려까기 같은데?”


석훈의 이야기를 듣던 민수가 질문했다.


“에이, 그건 너무 간거 아니야? 그냥 좀 더 유도리 있게 하라는 거겠지.”


민수 옆 침대에서 그건 억측이 아니냐는 반문이 들어왔다.


“가능성 있어. 들어봐. 이 지휘관이라는 양반들은 원체 이곳저곳에서 많이 찔려서 중령 계급 이상부터는 자기 속내를 직접 들어내지 않고 스윗해지거든? 이 양반도 그런 케이스 일수도 있거든.”


“어떻게 그렇게 잘알아?”


“나랑 나이 차이 좀 나는 사촌형이 지금 전방에서 대대장하고 있거든? 이 양반이 부대에서는 완전 부처 코스프레 하는데 명절에 본가로 오기만 하면 장교, 부사관, 병사 할 거 없이 모두까기가 장난아니야. 사이코야 그냥.”


민수가 나름 근거있는 사례를 들어 설명하자 후보생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반응이었다.


“아무튼 석훈아 일단은 좀 사리자. 어차피 내일이면 대대장도 끝나니까 네가 군기반장할 필요는 없잖아?”


“그래, 우리 건한대 애들 중에 몇명도 오늘 일이 그냥 네 책임으로 알고 있는 애들도 있더라고.”


후보생들의 조언에 석훈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마음속으로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22년간 정형화된 틀과 규칙속에서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그에게 일탈의 세계는 공감되지 않았기 때문에.


“알겠어. 어차피 대대장 한 번 하면 이제 다른 자치근무자도 못하니까 나도 그냥 내 할 것만 할게.”


“그래 잘 생각했다. 그리고 조심하고 2소대 2분대 애들이 너한테 앙심품고 보복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석훈은 또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겨우 그런거에 앙심을 품는다고?”


겨우 통제 한 번 한 것 뿐인데 조금 짜증날 수는 있어도 그런거로 보복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기우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설령 그런다해도 뭐 꺼리가 있어야 까지 않을까? 나는 퇴소일까지 규정 어길일 없으니까 괜찮아.”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다시 수양록을 작성하던 석훈이었지만 내심 마음속에 일말의 찝찝함은 지울 수 없었다.


“그래, 정석훈 거의 편집증 환자 수준이니까.”


“나도 처음에 청소하는 거 보고 뭐하는 새끼인가 했잖아. 크큭.”


“넌 장기해라, 새끼야.”


“그거 욕이야 인마!”


1소대 2분대 후보생들의 애정어린 합심 다구리에 석훈도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1소대 2분대의 밤은 노가리와 웃음, 그리고 순찰도는 빨간 모자를 피하기 위한 침묵을 반복하다 점차 조용해졌다.


***


H년 1월 2일 일요일


18:30


“그러니까 너희 다 자치근무자 지원자인거지?”


권 대위는 당황스러운 듯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예! 그렇습니다!”


좌에서 우로 인원을 훑어보니 대략 20여명이었다.

대대장 1명, 중대장 3명, 소대장 6명이 2주차 자치근무자의 정원이었다. 고로 이 중 절반이 자치근무자로 임명된다는 것인데.


그 절반이 전부 유림대학교 후보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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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기초군사훈련(7) 24.08.09 5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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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기초군사훈련(4) 24.07.28 6 0 16쪽
8 기초군사훈련(3) 24.07.28 7 0 7쪽
7 기초군사훈련(2) 24.07.28 6 0 13쪽
6 기초군사훈련(1) 24.07.28 2 0 13쪽
5 면접준비 (2)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24.07.10 4 0 8쪽
4 면접준비 (1) 24.07.10 3 0 8쪽
3 체력검정 24.07.10 6 0 12쪽
2 모집 24.07.05 9 0 10쪽
1 위기의 학군단 24.07.03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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