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빌딩과 후보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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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봉
작품등록일 :
2024.07.0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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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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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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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군사훈련(14)

DUMMY

***

2소대 1분대 생활관.


준영을 포함한 1분대 후보생들이 군장을 싸는데 여념이 없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들의 표정이 밝지는 않다.


“아니~~ 기껏 어거지로 사격 합격했더니 이러는 게 어딨어? 군인의 약속이란게 이렇게 가벼운거야?”


시키는 것이기에 열심히 군장을 싸는 한편 곱씹어 볼수록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이런 불만을 품은 것은 단연 준영뿐만이 아니었던지 누구도 그의 불만에 딴지를 걸거나 말리는 이가 없었다. 매사 침착하던 준호마저 이번 지시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았는지 그의 의견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후보생들의 반응역시 그와 다를 바 없었다.


“다들 시끄럽다. 그럴 시간에 빨리 군장싸서 오늘 저녁 통과할 생각이나 해라.”


다소 엄한 말투로 후보생들을 다그치는 명현에 후보생들은 입을 다물고 군장결속에 집중했다.

그러나 사실 그도 속으로 오늘과 같은 지시는 납득하기 힘들었다. 적어도 그가 기초군사훈련을 받을때와 비교하더라도 오늘 내려온 지시사항은 다소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똑똑


생활관안으로 들어온 또 다른 기훈감독 후보생이 명현을 불렀다.


“훈육관들이 우리 전부 집합하란다. 가자.”


명현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뭐 때문에?”


“그건 나도 모르고.”


그는 하는 수 없이 후보생들을 두고 행정반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행정반에 도착하니 2대대를 관리하는 훈육관 4명이 언짢은 표정을 하고 서있었다.


“어··· 그러니까 너희들을 소환한 이유는 여단장님 지시가 떨어져서다.”


훈육관 최선임인 최 대위는 양쪽 허리춤에 손을 얹고 말했다.

그러나 최 대위도 위에서 내려온 지시가 영 내키는 표정은 아니었다.


“오늘 후보생들 사이에서 군수품 도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이에 교육여단장님이 분개하셔서 훈육관들 포함 후보생들도 진범이 색출될 때까지 제대로 쉴 생각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도난당한 군수품은 방독면이었다.

기훈 감독후보생들은 방독면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누구에게서 이런 불만이 나왔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금일 방독면을 잃어버려 곤란에 처한 후보생은 단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명현은 내심 걱정이 됐다.

자신이 걱정하던 황무대학교 후보생들이 설마 유림대에 불만을 품고 악의적으로 나름대로의 복수를 실행한게 아닌지 하고 말이다.


그것은 잘못되었다.

아무리 그가 황무대학교 후보생들 특히 다은을 포함한 그들의 입장을 안타깝다고 생각해도 그런식의 복수는 결국 그들또한 똑같은 사람이 되는 길이 아닌가. 이런 점은 자신이 지적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집합이 끝나고 그는 제일 먼저 석훈을 찾아갔다.

석훈은 자신이 지켜본 황무대학교 후보생 중에 가장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언제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 고집스럽긴 해도 거짓말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들려온 대답은 의외였다.


“예? 방독면을 말입니까? 제가 왜 말입니까?”


석훈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진짜 아니야? 너희 황무대 인원 중에 한 명이 유림대에 앙심을 품고 그랬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야. 그렇지 않고 말도 안되는 상황이지 않아? 물론 심정은 이해가 간다만 군수품 절도는 범죄다.”


명현의 진지한 어투에도 석훈은 계속해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선배님. 분명 저는 유림대 녀석들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녀석들은 제게 몸쓸짓을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그런 유치한 보복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직 제 실력과 능력으로 그들과의 차이를 보여주려 노력할 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석훈의 완고한 태도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그는 장교의 자격이 없으리라 하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확신이었다.


“그래도 혹시 너 말고 다른 후보생들이 그랬을수도 있으니까 확인해줘. 지금 말해야 돼. 지금 말하면 아직 내 선에서 끝낼 수 있으니까.”


명현은 석훈에게 한번 더 당부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이날 밤은 저녁점호조차 생략하고 군장결속상태 점검과 더불어 소지품 검사에 들어갔다.


“너 이거 뭐야? 분명 PX에서 산 음식은 당일취식이 원칙이라고 했을텐데?”


평소 관물대 개인물품함까지는 열어보지 않던 훈육관들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가차없었다.

덕분에 방심하고 있던 일부 후보생들은 울상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벌점 2점 제출해.”


“여기 생활관은 아주 개판이구만. 너희는 생활관 전체 벌점 4점씩 제출해라.”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듯 한번 훈육관과 빨간 모자가 휩쓸고 간 생활관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후보생들이 지쳐 쓰러지면 바로 다음 훈육관이 와서 으름장을 놨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몰아치던 군장 점호는 23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이렇게 굴린 다음에 내일 아침 일찍부터 또 교장이동을 해야하다니. 후보생들은 막막함과 짜증남에 이런저런 된소리를 뱉어댔다.


“애들아 취침수 뿌리고 불 끌게.”


초번 초를 맡은 지훈은 생활관을 돌며 점등했다.


“지훈! 나 아까 급하게 정리하느라 화장실 못 같는데 화장실 좀 가도 돼?”


“취침 후 30분, 기상 전 30분 유동병력 통제잖아. 안돼.”


“아니, 진짜 쌀 거 같아! 아니면 여기서 싸도 돼?! 다같이 오늘 배변파티 한 번 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해대며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는 민호.

급기야 민호가 침대에서 펄쩍펄쩍 뛰며 난리를 피우자 동기들은 깔깔대며 그냥 보내주자고 권유했다.

지훈은 하는 수 없이 복도를 한 번 슥 살피고는 그를 불렀다.


“싸고 나서 나 불러. 내가 눈치보고 다시 생활관으로 데려다줄테니까.”


두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가고 지훈이 원래 위치로 복귀하려고 할 때 민호가 그에게 말했다.


“방독면 거기 다 버리면 금방 들킬텐데.”


저도 모르게 흠칫하고 놀라 고개를 돌렸다.

민호는 아까와 같은 장난스런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진지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지훈은 재빠르게 표정을 고치고 영문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뭐라고? 너 방독면 누가 가져간 지 알아?”


지훈의 반문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방독면의 행방을 알면서 왜 말하지 않았냐는 책망

자신은 당연히 방독면에 대해 몰랐다는 회피


질문으로 상대의 의중을 떠보는 것은 기초중의 기초.

지훈은 우선 모르쇠와 질문으로 그가 어떤 의도로 저런 말을 했는지 떠보려고 했다.

그러나 민호는 너무도 확실하게 쐐기를 박았다.


“지훈. 정말로 아무도 못봤을거 같아?”


쿵 가슴이 내려앉는 듯했다.

저 확신에 찬 말투. 무언가 심증이 있어서 그런건가 싶었지만 아직 블러핑일 수 있다.


“뭔소리 하는거야? 내가 방독면 훔쳤다는 거야?”


지훈의 시치미에 민호는 한 발짝 그에게 다가와 고개를 낮췄다.

순간 흠칫하고 움츠러들었지만 자신은 의심받아서 정말 화가 난다는 눈으로 그에 맞서 노려보았다.

민호는 그런 그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마. 너를 탓하고 협박하려는 게 아니야. 다만 네가 들켜버리면 당분간 우리가 힘들지 않겠어? 그래서 그냥 조언해주려고.”


지훈은 여전히 자신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마음은 반쯤 꺽여버렸다.

민호는 그런 그의 마음을 꿰뚫어보았는지 그가 혹할만한 묘수를 제안했다.


“방독면을 여후보생 휴게실 아무 관물대에나 넣어.”


민호의 의외의 말이 나오자 지훈에 눈에 이채가 서렸다.

남후보생들이 거주하고 있는 복도 끝쪽에는 애매한 시간때문에 생활관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여후보생들을 위한 생활관 두 개가 마련되어 있다. 이를 여후보생 휴게실이라 부른다.


“여후보생 휴게실에서 방독면이 발견된다면 용의자는 자연히 여후보생들로 좁혀지지 않겠어? 그럼 네가 의심받을 일은 없게되지.”


지훈은 소름이 돋았다. 그의 조언이 꽤나 쓸만한 건 둘째치고 이 녀석이 정말 평소에 헤실거리며 돌아다니는 민호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들키지 않게 쓰레기장이나 어디 야산에 버릴 생각뿐이었던 그도 해당 의견은 거부감이 들었다.


“만약 범인이 그렇게 하면 여후보생들 사이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갈등이 생길거야···”


민호는 피식 웃었다.


“지훈아. 지금 네가 그런 거 따질때야? 이거 들키면 어떻게 될까? 너희 아버지가 힘을 써준다면 징계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넌 적어도 여기 서울권역 애들한테 제대로 낙인찍히겠지.”


“너 왜 아까부터 자꾸 나를 범인으로 단정짓는거야? 증거라도 있어?!”


지훈은 강하게 나갔다. 여기서 밀리면 결국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민호는 머리를 한 번 쓱 쓸어올린 다음 나지막히 말했다.


“난 저 유림대를 포함한 여군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체력도 실력도 책임도 뭣도 없는 것들이 꼴에 욕심은 많아서 자꾸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잖아?”


“지민이, 다은이야 우리 동기이기도 하고 둘 다 착하지. 물론 다은이가 사회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게 그 친구가 왕따 당해야 할 이유는 아니야.”


“그런데 저 유림대 놈들은 어떻지? 장교 후보생이라는 놈들이 실력으로 승부 볼 생각은 없고 어디서 정치질이나 해대면서 타인을 깍아내려 자기 이득만을 취하려 하지.”


“지민이랑 다은이는 우리가 지킬거야. 그러니까 너는 실행만 하면 돼. 걱정마 설마 내가 같은 학교 동기를 고자질 할까봐? 어차피 물증은 어디에도 없고 네가 유리해. 그리고 너도 똑같은 황무대 동기야.”


지훈은 민호가 분통을 터뜨리며 쏟아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민호는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하는 지훈을 보고 잠시간 그를 보았다.


“아 똥 마려.”


이윽고 민호는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 대변 칸으로 향했다.


“근데,”


대변 칸 앞에서 잠시 멈춘 그가 지훈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전투화 건조기는 금방 들킬걸? 기왕이면 좀 더 안전한 곳으로 바꿔.”


그 한마디를 끝으로 민호는 대변 칸 문을 잠갔다.


“나 변비라서 한 30분은 족히 걸릴거야!”


지훈은 멍하니 그가 들어간 곳을 응시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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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초군사훈련(1) 24.07.28 2 0 13쪽
5 면접준비 (2)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24.07.10 4 0 8쪽
4 면접준비 (1) 24.07.10 3 0 8쪽
3 체력검정 24.07.10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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