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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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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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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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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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날 보험 증서를 꺼내다.

DUMMY

처참하게 이번 주를 끝냈다. 토일에 걸쳐 1승 3패. 그전까지는 3승 5패였다. 고전하면서도 억지로 버텨내긴 했는데 이번 주에 완전히 망해 버렸다. 타격이 심각하다. 현재 총 전적 4승 8패. 이대로라면 강급이 확정적이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이 허허로운 기분으로 대국이 끝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보통 리그전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PC방으로 가 스타 한판으로 울적함을 풀었는데 오늘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재국이 형이라도 있었으면 함께 갔을지도 모르지만···’


얼마 전 그는 용문을 거슬러 오르며 이무기의 탈을 벗어 던졌다. 한창 입단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그에게 우울한 목소리로 연락하고 싶지는 않았다.


‘친한 형들은 다 입단했는데 나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졸라게 쪽 팔린다. 이미 처지가 달라진 사람에게 하소연을 해봐야 스스로의 얼굴을 깎아 먹는 꼴이다. 그 짓은 도저히 못하겠다.


정석적인 행동은 도장으로 가 복기를 하며 대국을 검토해야 마땅하지만 그런 마음이 1도 안 생겼다. 그래서 조용히 집으로 왔다.


‘중1이라는 껍질은 이런 계기가 주어지면 일탈을 하기에 아주 적당한 나이지. 내가 정신적으로 조금만 덜 성숙했었어도··· 이럴 때 한잔 하면··· 음.’


소주 한잔이 간절했지만 참았다. 덕분에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집밥을 먹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같이 저녁 식사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이렇게 일찍 귀가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나 정도면 집에 아주 충실한 편이다. 보통의 연구생은 기숙학원에서 생활하는 재수생과 다름없다. 기껏해야 한 달에 한두 번 집 구경을 한다.


어머니가 후식으로 가져다 준 과일을 먹으며 기분이 좀 풀어지려는 참에 TV에서 들려온 소리가 신경을 건드렸다.


[지난 5월11일 1464.70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던 코스피지수가 한 달 째 하락을 거듭하며 이제 1200선 마저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전문가 분들을 모시고 이번 사태를 정밀 진단하는 시간을···]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위기를 암시하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설득력이 없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려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다.


‘개판이 되면 개들은 잘 살겠지. 망하든 흥하든 살 놈은 사는 거야.’


역시 바둑이 잘 안되니까 아주 비관적이 된다. 주식에서 선견지명(先見之明)을 발휘한 것 만큼만 바둑을 둘 수 있다면 아주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놈의 바둑은 정말 마음대로 안 된다.


“너 예전에 내가 주식 계좌 만들어준 것 아직도 사용하고 있니?”


오랜만에 장남과 함께하는 자리가 마음에 드셨는지 아버지가 엉뚱한 걸 물어보신다. 나하고 이야기 나누려고 해도 막상 생각나는 화제가 잘 없었나 보다. 우리 집 안에서는 바둑에 관련된 이야기 같은 건 되도록 하지 않는다.


다 나 때문이다. 내가 연구생으로 잘 나갔으면 좀 더 나은 분위기에서 화기애애하게 지냈을 텐데 몇 년 동안 연구생 리그에서 허덕이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다. 편안해야 할 집인데 가족들에게 할 말 못할 말 가리게 한 내가 이래저래 죄가 많다.


[아이칸-스틸 파트너스 연합의 기업사냥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던 것이 이 사태를 촉발하는 방아쇠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경과를 조금 말씀드리자면 지난 2월 케이티앤지의 지분 6.6% 보유를 공시한 뒤 경영권을 위협했었지요. 표면적으로는 배당금 확대, 유휴 부동산 처분, 기업공개 등을 요구했지만 케이티앤지가 이들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 발전전략을 발표해 주가가 상승한 후 보유했던 776만주 중 700만주를 팔아치워서 단기간에 수익을 얻어··· 외국인 매도세가 본격화된 지난 4월25일 이후로 순매도액은 8조가 넘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시장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합니다만 최근 미국 주택시장의 불확실성 문제와 맞물려 각 투자처의 비중 조절에 들어간 시기가 묘하게 맞물렸을 뿐 중장기적으로 보면 시장이···]


TV에서 저런 소리나 하고 있으니 무엇이라고 말하기가 좀 애매하다. 저런 거 다 멍멍이 소리니 염려하지 마시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왜 갑자기 궁금해지셨어요? 그거 아버지 이름으로 만든 계좌잖아요. 들어가서 보신 적 없으세요?”


“그 때 네 명의로 하면 복잡해진다고 해서 내 이름으로 만들기는 했다만 난 패스워드도 기억 못해. 사실 저런 이야기가 나와서 갑자기 기억이 난 거지 그거 만들어준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잘 사용 중이고 수익도 꽤 났어요. 혹시 요즘 힘드세요? 필요하시면 말씀 주세요. 지금 대략··· ”


아직 만족할만한 액수는 아니지만 가족에게라면 미리 좀 써도 괜찮다.


‘기분도 꿀꿀한데 돈이라도 쓰면 좀 나아질까?’


“그럴 일 없다. 그냥 생각난 김에 말해본 거야. 특히 나 같은 공무원은 저런 사회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아. 나라가 망하기 전에는 그만 둘 일도 없을 테고. 너야 알아서 잘 할 아이지만 혹시나 해서··· 아니 어쩌다 말이 헛 나온 거야.”


나름 잘하고 싶어서 한 말이었는데 뜨거운 것이라도 만진 것처럼 아버지가 너무 펄쩍 뛰셔서 조금 무안할 지경이다.


“재영이 한테 그런 게 있었어? 아빠는 싫어하시는 것 같은데 모아서 엄마에게 다 쓰면 돼. 난 좋아. 우리 아들이 어느새 다 커서 이런 말을 다 하네. 뭘 사주려나? 간단하게 치킨 정도 시킬까? 주영아! 형이 야식으로 치킨 사준데···”


역시 말은 엄마가 잘 통한다.


‘그런데 겨우 치킨이라니··· 후훗. 이 아들은 그 정도 사이즈가 아니랍니다.’


“엄마. 나 아직 배 불러. 치킨 안 먹으면 안 돼? 아이스크림.”


‘이런···’


어디서든 초딩이 문제다.


‘어휴! 분위기 파악 못하고··· 쟤도 바둑을 가르쳐야 하나? 분위기 파악에는 그만한 게 없는데···’


하나 뿐인 동생이라서 참아준다.


“아니, 이 사람이 이제 중학교 다니는 애한테 별 소릴 다···”


“뭘 그래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이런 게 다 경제관념을 키우는 교육이기도 하다구요.”


아주 교육적으로 훌륭한 말씀이다..


“엄마, 좀 더 큰 것도 괜찮아. 뭐 가지고 싶은 거 없어? 가방 같은 거라도 하나 어때요?”


“호홋. 마음은 고맙다만 그런 건 좀 더 나중에 해주면 어떻겠니? 한 10년 후? 너무 이른가? 가방은 나중에 프로가 되고 우승이라도 하면 생각해 주렴.”


‘하아! 우승이라··· 프로가 되려는 것도 이 모양인데···’


우승은 고사하고 입단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애써 올려놓은 기분이 다시 다운된다. 어깨에서 힘이 빠진다.


“어허! 이 사람이··· 생각 좀 하고··· 으음.”


경고 발령이다.


‘에고, 티 났나 보네.’


“재영아, 그게··· 그러니까 부담 가지지 말라는 말··· 어휴! 입이 방정이라서··· 오해는 하지 말고···”


정말 죽겠다. 내가 뭐라고 부모님이 내 기분의 오르내림에 이렇게 쩔쩔 매야 한단 말인가! 언제부터인가 난 이 가정의 트러블메이커가 된 거 같다.


“아이! 엄마. 뭘 걱정하는 거야. 나 이제 중1이잖아. 아직 기회가 많다고. 아직 1조는 못 되었지만 이제 2조야. 곧 1조 승급을 한다고. 혹시 안 되더라도 바로 입단하면 되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때로는 인생에 과장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음성을 낮춰 진심을 담아 조근조근···


‘아! 설득력이 별로였나?’


나 보다 한 살 위인 재국이 형이 이번에 입단한 건 다 아는 일이다. 그 형은 1조에서만 3년을 놀았다. 내가 봐도 비교가 확 되는데 부모님의 관점에서는 어떨지··· 자식새끼 예체능계 몇 년 뒷바라지 하다보면 부모도 그 분야의 준전문가가 된다.


“그럼. 기초가 가장 중요한 거야. 서두르지 말고 정진하다 보면···”


금과옥조와 같은 아버지의 말씀인데 내용에 앞서 왠지 기운이 빠진 듯 느껴진다.


“아빠 말씀대로야. 인내심을 가지고··· 우린 널 믿고 얼마든지 기다려줄 수 있단다.”


아주 입맛이 쓰다. 어쩌면 내 스스로에 대한 믿음보다 날 향한 부모님의 신뢰가 더 확고한 것 같았다.


‘바둑만 좀 더 잘 두면 다 평화로울 텐데··· 그게 안 되서···’


“저기 잠시만요.”


“?”


거실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가서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이럴 생각은 없었지만 힘 빠진 부모님에게 기운을 좀 북돋워 주고 싶었다.


“이게 증권사와 연결된 HTS라는 건데요. 이걸로 주식 거래를 해요. 아버지는 보신 적 있으시죠?”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프로그램을 열었다.


“그렇기는 하다만 지금 이걸 왜?”


“여기저기 숫자가 많이 나오는데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구요. 이 숫자만 보시면 되요. 이게 현재 제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들을 금요일 장이 닫기 전에 처분했으면 받을 수 있었던 금액이에요. 당연히 내일 월요일 장이 열리면 팔 수 있지요.”


“2천? 이렇게나 많이 벌었어?”


“재영아!”


부모님이 너무 흥분했다.


“저기 단위가 조금 틀렸어요. 2천에서 0이 하나 더···”


“뭐라고? 어?”


“여보. 재영이가 지금 뭐라는 거예요?”


잠깐이면 충분했다. 이런 쇼가 길어질 필요는 없다. 실적을 자랑하고 싶어 한 치기 어린 행동은 아니다. 부모님이 가장 빨리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불안감을 해소 시켜 드리고 싶었을 뿐이다.


자식이 걸어가려고 하는 길에 대한 응원의 마음과 불확실한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충돌해 어지러운 마음이 이것으로 조금은 치유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공부하는 자식 못지않게 뒷바라지 하는 부모도 힘들다.


‘이것도 일종의 금융 치료인가? 이래저래 불안한 것 보다는 이런 보험이 있다는 걸 알면 좀 안심하시지 않을까?’


“어떻게···”


칭얼거리는 동생을 데리고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시고 아버지는 한동안 말을 잃으셨다. 이윽고 하신 말씀이 좀 짧다. 원래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할 것을 보게 되면 표현에 어려움을 느낀다.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데요. 그냥 감이죠. 지금은 아닌데 원래는 주로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을 거래했었어요. 그걸···”


그동안 해왔던 주식 투자 방법에 대해 가급적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모두 진실만을 이야기했다. 해준 이야기가 그렇다는 거다. 당연히 하지 않은 이야기도 있지만 아주 일부일 뿐이다.


“허헛.”


“이건 그냥 머리 식히기 용도였을 뿐이에요. 어느 날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냥 실행을 해봤는데 어쩌다 보니··· 이 정도면 저 프로가 못 되더라도 밥 굶고 살진 않겠죠?”


“허허. 미안하구나. 이 애비가 부실해서 자식한테 걱정을 끼치다니···”


이러시는 게 싫어서 벌인 일인데 계속 이러면···


“아뇨. 저도 답답한데 옆에서 보기에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그런 부분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나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으음. 알아서 잘 하겠지만 노파심에서 한마디 하자면 가급적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외부에 알리지 마라. 사람이라는 게··· 음. 네게 이런 말해서 미안하다만, 사돈이 땅을 사면 배 아파 하는 게 보통 사람이야. 네 엄마한테는 내가 말해 놓으마.”


“예.”


아주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이렇게 걱정스러워 하는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다.


‘나라고 인생을 어떻게 다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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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사노라면. 24.08.28 10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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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 24.08.13 143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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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한 날 보험 증서를 꺼내다. +2 24.08.10 155 2 12쪽
35 위기 관리 24.08.09 157 3 12쪽
34 변화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24.08.08 167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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