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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8판이나 뒀으니 대회의 아주 초반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성격이 좀 다르긴 하지만 이런 식의 리그전에 대해 5년 가까이 축적된 경험은 대략적으로 어느 정도 승수가 되어야 최후의 일인으로 입단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게 했다.


'승급 가능 성적에 2승 정도 더하면 1등이 가능하지 않을까? 9명과 18명이라는 인원. 모든 대국이 단판이라는 것 이외에는 차이가 거의 없잖아.’


9명 리그전에서는 같은 사람과 두 판씩 뒀었다. 그 때 승급하는 3명에 들어가지 위해 필요한 승수는 대략 12승 정도였다. 12승 6패가 마지노 선이다.


거기서 상위 두 명을 더 젖혀내기 위한 추가 승 수 2승을 더해 총 14승 4패 정도를 해내면 이 입단 결정대회에서 1위가 가능할 것 같다..


‘앞으로 남은 10판. 최소 8승 2패룰 해야 한다는 거네.’


이런 예상은 리그전에서 서로 물고 물리는 상황이 나온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어쩌면 아주 불확실할 수밖에 없는 예상이다. 누군가 어느 순간부터 전승을 한다든지 하는 독주가 나오면 이 모든 예상은 무의미해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 이번 대회에서 그런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제 곧 총 18번 대국의 중 절반을 치르게 된다. 반환점을 돌기 직전인데 제발 누군가 여기서 부터 대회 후반까지 미친 저력을 발휘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내가 최종국까지 총 4패 이상을 하지 않겠다는 계획 자체가 아주 불안한 계산법이다.


‘애매하게 8승 2패라니 안 될 생각이야. 곧 죽어도 전승을··· 이제부턴 2조에게 발목 잡히는 일은 없어야 해.’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건 스트레스가 몹시 많아진다. 애초에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문제는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아주 좋은데 언제나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함정이겠지.’



###


흑번이다. 난 아직도 흑번이 좋다. 아니 편하다.


넓게 펼쳐진 평원을 기병이 달린다. 필마단기지만 바람은 나의 우군. 적이 진영을 미처 펼치기도 전에 돌격한 기병이 적진을 갈랐다.


적들은 기병의 돌격을 저지하려 멀리서 견제하고 때로는 가까이서 몸을 던져 오지만 일일이 상대할 필요 없다. 이제 작은 무리가 된 기병은 멈추지 않는다.


적진을 쪼갠다. 틈이 벌어진 적진 사이를 선두가 돌파하고 후위가 따라 진격하며 간격을 넓혔다. 이것으로 자연스럽게 적군과의 지나친 접근전이 차단된다. 적은 진영을 펼치기도 전에 조각조각 나눠져 각개격파 되고 말았다.


전력의 집중과 견제. 이것이 핵심이다.


적진에 난입해 적들을 쓸어버리는 건 그와 함께 움직이진 않지만 각 요지에서 적을 견제해 움직임을 묶어두는 아군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사소취대(捨小取大,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함)를 위함이라는 대명제에 수많은 거짓들이 묻혔다.


최초의 틈을 벌이기 위한 위계(僞計, 남을 속이기 위한 거짓된 계략)는 성공했다. 그 계획에 소모전 사석(捨石, 의도적으로 버리는 돌)의 헌신은 헛되지 않았다.


난 그들을 사석(死石) 취급 하진 않았으나 결국 결과는 같아졌다. 이어진 기병의 돌진은 이러한 또 다른 헌신들 속에 유지될 수 있었다.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의 큰 부담 없이 상대를 기만하는 이런 과감함이 가능 하겠지만 현실이 된다면 과연 이럴 수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병력의 운용은 유기적이라 칭찬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최후에 찬사를 획득하는 한 줌이 아니라 그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그 과정 중에 쓰러진 수많은 헌신의 무리를.


'그렇지만 이번 삶에서 난 마지막 한 줌으로 남고 싶다고. 기억만으로 남아선 안 되지. 크큭. 애고, 너무 감상적이었나? 단순히 게임일 뿐이야. 감정을 과다이입하지는 말자고.’


울렁이는 마음을 급하게 단속해 다시 흑백의 전장으로 돌아왔다.


또 돌파시도. 2회 차다. 아직도 상대의 저항이 완강하다. 이번엔 살짝 우회하는 척 조각난 적의 전력을 유인했다. 그와 더불어 적들의 연계를 방해하는 작전 역시 동시진행.


이곳에서 난 전장의 신이다. 모든 곳에 존재한다. 격렬했던 적들의 저항이 이제야 슬슬 무디어지고 있었다.


때가 되었다. 이제 각개격파를 해야 할 차례다. 보병이 진군한다. 곧이어 백병전이 벌어지지만 아군의 견제 효과는 여전히 건재하다. 적들은 연계가 여전히 어렵다. 이러한 환경에서 다수의 아군이 소수의 적을 말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기병은 상대 진영을 가르던 돌파를 잠시 멈추고 말머리를 돌려 보병의 전투를 지원한다. 이제 전투는 끝을 향해 달린다. 학살의 시간이다.


적 역시 이미 입단이라는 배수진을 친 상태. 그 때문에 후퇴는 불가능하다. 불굴의 정신으로 저항하지만 정신력만으로는 이미 벌어진 전력의 격차를 메우기에 역부족이었다.


전장에서 적은 산화했다. 장렬한 최후는 통쾌함을 준다. 그러나 어떤 패배라도 결코 아름다울 수는 없다.


흑 불계승.


우여곡절 같은 것은 없었다. 난 예전 보다 많이 자랐다. 올 들어 훌쩍 커진 몸은 성장기의 축복이다. 대회 시작 후 며칠 동안 누적된 피로가 슬슬 집중을 방해할 때가 되었지만 회복력이 탁월한 어린 신체는 조금의 헛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속기는··· 이건 제한 시간 30분 짜리 바둑이니까 속기의 범위하고 봐야겠지. 짧게 두는 건 아무래도 피로가 덜 쌓이는 것 같아.’


하루 두 판이 체력적으로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나중에 초일류들은 공식대국에서 쌓인 피로를 인터넷 연습대국으로 풀었다고 하던데 일로서의 바둑과 취미로서의 바둑이 왜 다른지 요즘 나도 좀 알 것 같아.’


“수고했다.”


“예.”


오늘 오후 대국을 마치고 나오니 함 원장과 아버지가 와 계셨다. 그 동안 내게 부담감 주지 않겠다고 아예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계시더니 더 이상은 참기 어려웠나 보다. 별 말씀은 없으셨지만 얼굴에서 기쁜 표정이 배여 나오는 것을 숨기지 못한다.


오늘로서 이 대회에서 두 번째 패배 후 5연승을 내달렸다. 이제 총전적은 12승 2패가 되었다.


이 대회의 주최측에서는 공식적으로 중간 경과를 발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심 있는 사람은 다 안다. 지금 내가 또 다른 한 명과 공동 1위에 올라 있다는 것을.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 또 다른 공동 1위의 총전적은 같지만 그는 이미 나와 이 대회에서 손을 섞어 낙마했다.


‘내가 이겼다고. 즉, 지금 이 전적이 끝까지 간다면 승자승 원칙에 의해 내가 1위를 할 거라는 거지.’


그 동안 내가 전혀 보여주지 못하던 결과물들을 만들어 내자 나의 성공을 위해 묵묵히 헌신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내 주변의 사람들이 더 마음 설레 하는 것 같았다. 이들은 존중 받고 내 모든 기억 속에 1번으로 남아야 하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쩝! 아직이라서 유감이네요. 곧 편하게 웃게 해드리죠. 한재영 부디 마지막 까지···’


개선군 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 역시 기쁜 표정이셨으나 수고했다란 말씀만 하셨다. 짧은 저녁식사 후 집에는 적막이 흘렀다. 동생조차 칭얼 거리지 않는다. 무언의 배려를 받으며 내일을 기다렸다.



###


‘에구구.’


오늘 따라 유난히 힘들다.


16국 째를 치르고 있다. 2패 이후 아직 전승 중이지만 이제 슬슬 체력이 달리는 것 시점이 된 것 같다.


‘아니, 그건 아닐 거야.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신체 사이클이 좀 아래로 가 있는 날이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


정답이 뭐가 되었든 간에 지금 현재 집중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의 오후 대국. 중반에 일찍 끝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입에 다 넣은 열매를 먹으려다 떨어뜨려 버렸다. 자책이 남은 시간과 기력을 갉아 먹었다.


그 때 결정짓지 못한 대가를 후반에 치르고 있다. 이미 끝내기 단계인데 넉넉하게 유리했던 바둑이 반 집을 다투게 되었다.


그나마 억지로라도 끌어낼 기력이 있을 때 조금 따라 붙어서 이 정도인데 정작 마지막에 와서 조금 회복된 것 같았던 집중력에 다시 빨간 불이 들어왔다.


‘몰입이 안 돼. 수 읽기가 아···’


반상에서 리듬감 있는 착수음이 들려오지 않은지 한참이다. 어렵다. 모든 것은 숨 쉬 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하는 것인데 지금은 억지로 애써도 정밀한 계가가 안 된다. 현재 반 집인 것 같은 것 까진 알겠다. 그러나 그 추의 방향이 어느 쪽인지 확신할 수 없다.


마지막 초읽기다.


“마지막입니다. 하나, 둘···”


진땀이 멍울 지어 등에서··· 머리 끝에서 솟아나 가슴을 타고 흐른다.


지금 상황이란 게 갑자기 시력을 잃었는데 지팡이조차 구할 수 없는 황당한 처지다. 괴롭다. 앞으로 한 발짝 내디디면 그대로 넘어질 것 같다.


‘운수소관에 맡겨야 하나?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지? 내가 아직 프로도 아니고 이건 그것이 되기 위한 일개 과정일 뿐인데 이 과정을 그렇게 어수룩하게 넘기겠다고?’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기보를 그렸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이 터져 나왔다. 불덩이가 솟아올라 기보를 타고 돌았다.


‘언제였던가?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땐 소리가 신호였는데···’


마치 마음이 나눠진 듯 하나에서 하나를 바라보는 관조의 시간이다. 두 개의 시선이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지켜보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허! 이것 참!’


두근. 두근. 두근.


언제부터인가 세찬 심장의 박동이 베이스의 리듬처럼 대국이라고 하는 선율을 감쌌다. 순식간에 전체 선율이 달라지고 있었다.


‘아!’


언제나 그러했듯 미망(彌望)은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이 사그라졌다.


“.··· 일곱, 여덟, 아홉.”


일곱에 돌을 잡고 여덟에 위치를 확인하고 아홉에 놓았다, 어느새 진땀이 마르고 있었다.


‘이겼어. 반 집이야.’


확실히 이겨가는 수순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논리의 게임을 하면서 한순간 직감 능력을 상승시키는 비논리의 순간을 여러 번 맛보게 되는 건 왜 그런 것일까?’


아직까지 나의 공동 1위는 유지되고 있다. 내가 연승을 내 달린 것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를 함께 영위하던 연구생 역시 조금의 물러섬이 없이 살아남았다.


‘좀 쉽게 갔으면 했는데 이 생에서 내겐 쉬운 미션은 주어지지 않나 봐. 그런 운명인가!’


다음 날은 전날의 피로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쾌조의 컨디션이 돌아왔다. 어느 생을 통틀어 이런 느낌을 주는 몸 상태는 처음이었다. 수 읽기가 너무 편하다. 갑자기 뇌의 연산 속도에 걸리는 부하가 사라진 것 같았다.


‘지금 2패가 두 명, 3패도 두 명.’


마지막 날이 된 지금 이 정도 연구생이 최종국의 결과에 마음 조리고 있다. 오늘 내 대국 상대는 3패자 1명과 또 한 명은 이미 탈락이 확정된 상태다.


‘3패인 원생과의 대국은 무조건 이겨내야 해.’


지금까지 정말 훌륭하게 잘 왔다. 그래 왔는데 마지막 날 내가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오늘 남은 두 대국 중 오전 한판을 이기고 오후 3패 자에게 지는 경우를 가정해 보면 나의 총전적은 15승 3패로 이번 입단 결정전을 마무리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결과는 탈락이다.


현재 공동 선두를 달리는 또 다른 2패자가 한 번 진다고 가정해도 난 무조건 2등이다. 만약 그런 경우가 생기면 마지막 순간 날 이긴 3패자가 승자승으로 날 누르고 1위에 등극하게 된다.


‘에이 참! 컨디션이 이렇게 올라 왔을 때 3패인 민현서를 만나야 하는 건데··· 음. 그래도 이 컨디션이 오후까진 가겠지? 이 자식아! 빨리 좀 던져. 니가 먼데 내 앞길을 방해하려고 들어. 이제 제발 좀 던지라고.’


이미 한참 전에 승패가 기울어 중간 중간 이 대국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가 딴 생각을 할 정도인데 이 대국 결과가 자신의 진로에 전혀 상관없는 상대는 성의를 보이겠다는 건지 너무 열심이다.


‘에라이! 빌어먹을 넘. 니가 맨 날 이러니 지금 바둑이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아이고 진정하자. 이제 다 왔어. 수승화강··· 수승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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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패배에 관한 고찰 24.08.26 120 2 12쪽
51 교훈(敎訓)을 얻다. +2 24.08.25 148 3 12쪽
50 외전) 내가 1급이 된 이유 +5 24.08.24 137 4 12쪽
49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24.08.23 144 2 12쪽
48 승리자의 권리 24.08.22 145 3 12쪽
47 트라우마 24.08.21 132 2 12쪽
46 마지막 한 걸음 24.08.20 137 3 13쪽
» 목표에 접근 중 +2 24.08.19 136 3 13쪽
44 제 8국 24.08.18 143 4 13쪽
43 위기와 응전 24.08.17 140 4 12쪽
42 승리와 패배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24.08.16 146 3 12쪽
41 준비 완료 24.08.15 140 3 12쪽
40 지음(知音) 24.08.14 151 4 14쪽
39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 24.08.13 143 4 13쪽
38 도(道)를 아십니까? +2 24.08.12 149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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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위기 관리 24.08.09 157 3 12쪽
34 변화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24.08.08 167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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