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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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작품등록일 :
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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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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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 사는 사람들

DUMMY

“안녕하세요.”


“그래. 오랜만이네. 한재영 초단.”


“어··· 안녕···”


몇 명이 주르르 인사를 하는데 모두 십대, 이십대 기사들이다. 아는 사람 반 모르는 사람이 반이다.


재국이 형의 소개로 요즘 같이 공부하고 있다는 공동 연구모임에 참석했다.


오게 된 계기는 나름 복잡했지만 말로만 들어봤던 공부모임의 실체가 일단 궁금했었다, 그리고 얼마 전 대국을 치르면서 기풍 분석을 당했단 느낌이 있었는데 요즘 다른 기사들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는 욕구가 간절했다.


‘지피기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인 법이야. 뭘 알아야 대비를 하지.’


요즘 또다시 한계를 느낀다. 돌파구가 필요했고 거기에 가장 결정적으로 아주 한가했다.


국기전은 내년 본선 시드를 확보했지만 도전자가 되지 못한 이상 이번 기 대국은 더 이상 없었다. 다른 기전들은 거의 조기에 탈락해 올해 대국 스케쥴이 거의 남아있질 않았다. 그래서 겸사겸사 젊은 기사들의 공부방이라는 이곳에 왔다.


과거 바둑은 폐쇄된 집단 안에서 도제식으로 지식과 경험의 전수가 이루어졌고 그 후 기타니 도장과 같은 곳에서 경쟁의 장이 펼쳐졌지만 그 때도 공부는 여전히 대부분 개인적인 영역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다 그때까지 바둑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생각으로 공동연구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 흐름을 타고 그런 모임들이 활발하게 교류한 한국, 중국으로 바둑패권이 넘어오면서 지금의 공동연구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동안 혼자서 풀어야 하던 문제들의 또 다른 해법에 대한 기대감도 살짝 있어. 그렇다고 내가 알고 있는 밑천을 다 털어 보이겠다는 건 아니야, 다만 부분적으로 드러내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거지.’


내 AI 20국은 공개대상이 아니다.


‘그래. 나 착하지 않아.’


어쩌면 이기적이고 음험한 성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바보는 아니다. 이 험한 승부의 세상에 살면서 내가 우위에 설 수 있는 유일할지도 모르는 강점을 왜 스스로 포기하겠는가!


내가 유리한 상황을 일부러 공평하게 만들어 경쟁할 생각 같은 건 추호도 없다. 이 좋은 걸 왜 그래야 하는지··· 한동안은 혼자 가져갈 것이다. 그래봐야 10년이다.


‘사실 조금만 더 지나면 되면 공동연구는 거의 없어져. 손 안에 AI라는 쪽집게 선생님을 모셔두고 개인적으로 수를 분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야. 그때가 되면 복기하는 기사도 찾기 어려지지. AI를 이용해 기보를 분석하면 더 정확한데 왜 불완전한 사람끼리 머리를 맞대겠어.’


어쨌거나 오늘 모임의 참석 인원은 나까지 총 6명인 것 같다.


재국이 형에게 미리 듣기로는 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모이고는 있지만 별도의 모임 공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란다. 모임은 주로 협회의 기사 휴게실을 이용하던지 아니면 회원들과 연고가 있는 시설을 물색해 부정기적으로 모여왔다고 한다. 오늘은 협회다.


‘이건 즉흥적인 만남에 가까운 것 같은데···’


회원들 중 이미 안면이 있었던 기사들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조직을 좋게 말하자면 회원 개인의 자율성에 방점을 둔 느슨한 공동체이다. 나쁜 게···


‘아니, 그건 말하지 말아야겠어. 아직은··· 잘 모른다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어정쩡하게 한쪽으로 붙어 서 있는데. 누군가 잘 모르는 사람이 하나 다가 왔다.


“나하고는 초면이지?”


“예.”


물으나 마나 그런 것 같다.


“그나마 그건 다행스러운 일이었어. 요즘 네 기보를 좀 보니까 장난 아니게 세던데. 갓 입단 했다고 들이댔으면 영문도 모르고 당했을 것 같더라구.”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는 인사치고는 내용이 좀 이상하다.


‘어허! 이거 칭찬 맞아? 초면에 사람을 왜 이리 띄우시지? 괜히 불안하게···’


“내가 누군지는 아냐?”


“알죠. 강민호 5단이시잖아요. 지나며 몇 번 뵙긴 했어요. 혼자 본거지만.”


바둑을 매개체로 한 좁은 동네다. 거기에 생활하는 누구나 그 정도의 마주침이 없을 수가 없다,


“하하. 이렇게 유명인사가 날 다 알아보고···”


내가 유명인사인지 잘 모르겠다. 잡지에 한 번 나온 걸로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건 아주 오버 같다.


“나쁘지 않네. 오늘 초면인 사람이 누가 또 있지?”


강 5단은 내 반응에 상관없이 마이 페이스를 유지한다.


내 반대쪽에 뻘줌하게[ 서 있던 두 사람이 그렇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강 사범이 바로 알아채고 소개를 해줬다.


“여긴 조성래 4단 이고 저 친구는 최성국 2단이야. 나이는 잘 모르겠고 편하게들 해. 여긴 바둑 세면 형이야. 다 그것 때문에 모이는 건데···”


“그건 그렇죠. 그게 아니면 이렇게 화창한 날 형들 얼굴 보러 여기 오진 않았겠죠.”


잘 모른다지만 내가 가장 어릴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도 다들 그것에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래도 나보고는 형이라고 해라. 바둑 세다고 너한테 형 소리는 못하겠다.”


‘음. 다 그런 건 아닌가 보네.’


“예. 잘 부탁드립니다.”


괜찮은 것 같다. 한두 마디 나눈 말로 사람을 파악하긴 어렵지만 일단 크게 모난 사람은 없어 보여 마음에 든다.


“자! 인사는 했으니 이제 공부하자.”


“?”


느닷없이 내뱉는 강 5단의 말에 어안이 벙벙하다. 이 사람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난 공부에 대해 아무런 사전 설명을 듣지 못했다. 당연히 준비도 없었고. 그런데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한쪽 구석에 있던 세우는 바둑판을 당겨 가져왔다.


해오던 방식이 있는 것 같은데 처음 온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단 좀 지켜보는 수밖에.


“공부라고 특별한 걸 하는 건 아니고 돌아가면서 본인이 가장 최근에 둔 대국을 복기하면서 자전해설을 하는 식이야. 그럼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대한 질문이나 본인의견을 내는 거지. 아! 지나간 것을 해도 되는데 내가 요새 시간이 좀 지나면 기억을 못해서···”


강 5단이 공부 방식에 대해 보충설명을 했지만 여전히 썰렁한 기분이다.


‘여기서 웃어줘야 하는 건가? 나만 황당하게 느끼는 건가? 음. 아무도 안 웃네. 크큿. 이러는 걸 보면 다들 상황에 대해 느끼는 감각이 비슷한 건가?’


이모저모로 혼란한 와중에 다들 가져온 바둑판을 중심으로 모여 앉았다. 얼렁뚱땅 이루어진 일이지만 이것만은 일사분란(一絲不亂)하다.


“음. 오늘 신입부터 해 볼까? 저기서 하면 돼.”


원래 계획했었던 것처럼 나에게 턴이 돌아왔다. 별로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어느 조직이든 처음엔 다 어색하다. 의례히 이럴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예.”


이건 내가 가장 자신 있고 근래 가장 많이 고민과 고뇌한 일에 대한 설명을 하면 되는 건데 사실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었다. 가져온 바둑판 앞으로 가 지난번에 국기전에서 뒀던 바둑의 기보를 놓아 보였다.


“잠깐만, 거기 왜 젖혔지? 보통은 늘어야 하는 것 아니야?”


아직 중요부분의 수순을 재현하기도 전인데 바로 태클이 들어온다.


“그게···”


조금만 기다리면 자세히 설명해 줄 텐데 그 정도를 못 참다니 성격이 너무 급하다.


“아니, 형 그게 무슨 소리야? 거기서 어떻게 늘어? 보통이라니 짜장면도 아니고 그런 게 어디 있어? 젖혀야지 당연하구만.”


어디에선가 반론이 튀어 나왔다.


“성래야 난 네가 이해가 안 되네. 취향도 어느 정도까지지 그걸 젖힌다고 무슨 득이 있겠어? 왜 젖혀야 해?”


“아니, 잠깐만요. 형들. 일단 재영이 설명부터 들어봐야지.”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말들이 튀어 잠시 당황했는데 다행히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매번 느끼는 점이지만 확실히 재국이 형이 이 동네에서는 가장 사람답다.


“아니, 당연한 수를 당연히 놓았는데 무슨 설명이 필요해.”


어디나 청개구리는 있었다. 주변을 전혀 돌아보지 않고 끝내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아! 쫌···’


이상한 일은 당연히 격렬한 반론이 따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아무도 더 이상 말릴 생각이 없는지 조용해졌다.


‘이거 뭐야? 너무 끝까지 우겨 상대하기가 싫어졌나?’


도대체 무슨 이런 분위기가 다 있나 싶기도 하고 정말 묘하다. 시끄러울 땐 다 같이 입을 열고 다 같이 입을 다물어 조용해진다.


‘한 명만 빼고··· 아니 두 명인가? 재국이 형도 입 다물었네.’


잠깐의 소강상태 왔다, 이젠 그만하려는가 싶었는데 천만의 말씀. 한 순간이 지나자 다시 정제되지 않은 말들이 튀기 시작했다. 정말 격렬하게 의견들을 주고받는다. 곧 몸의 대화로 발전할 듯도 했지만 거기까지 가지는 않았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질 지경이다.


갑자기 강 5단이 자리에서 뛰쳐나왔다. 바둑판 앞에 서더니 돌을 잡아 뒤의 수순을 몇 개 놓았다.


“이게 이렇게 전개가 되면 위쪽을 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니? 그럼 늘어서 현찰 챙기는 게 득이야.”


조 4단도 질세라 앞으로 나와 돌을 몇 개 더 바둑판에 붙였다.


“아니 형. 이렇게 전개가 되면 여기 맛이 남는데 이건 어떻게 감당 하려고, 하변 늘어서 집이 되면 얼마나 된다고 그렇게 두겠어?”


두 사람이 몇 수씩 후속 수단을 계속 두다가다 바둑판이 다 메워질 지경이다. 난 어느새 구경꾼이 되었다.


‘그래, 인파이팅 좋아. 연구회라고 밋밋한 것 보다야 이런 분위기가 괜찮지.’


때마침 재국이 형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상황을 수습해 보려다 바로 까이자 지금까지 입 다물고 있더니 더 이상은 참기 어려운가 보다.


‘늦은 것 같지만 지금이라도 상황 수습해야지. 그래 형이라도 좀 말려라.’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지하게 의견 교환이 이루어져야지 이런 난장판은 곤란하다.


“잠깐만요. 진정들 하시고···”


‘그래 그렇게 해야지. 그래도 재국이 형이··· 엉? 뭐하는 거야?’


내가 잘못 판단했다. 그 역시 참전을 위해 일어선 것이다.


“좀 흥분을 하셨나 봐요. 여기 수순이 잘못 되었어요. 여기서 선수하고 이렇게 갔는데 이게 선수인지는 좀··· 이렇게 받으면··· 선수라고 보기 어려운 것 같네요.”


“그건··· 그런가?”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다는 여운을 남긴다.


“좀 애매한데요. 맛이 안 좋다고 꼭 수가 나는 건 아니죠. 이렇게 해봐도 별거 없는 것 같은데···”


이제는 가만히 있던 최성국 2단까지 이 난장토론에 참여했다.


“그러면 일단 좀 뒤로 물러 보자고.”


바둑판에서 한 무더기의 돌이 우수수 떨어졌다.


“형들 지금까지 의견은 잘 들었는데··· 이건 애초에 발상에 문제가 있는 거라니까. 지금 여기가 문제가 아니야,”


많이 참고 참았다는 듯 포효한 최 2단이 순식간에 몇 개의 수순을 바둑판에 그려냈다. 다시 그에 대한 반발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다섯 명이 우르르 바둑판 앞에 서서 돌들을 떼어 냈다 붙였다 하면서 중구난방이 되었다. 난 아직까지 말 한 마디도 제대로 못했다.


‘푸하하··· 아주 미친 모임에 온 것 같네. 좋아. 아주 좋아. 크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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