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선검향醫仙劒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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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민
작품등록일 :
2024.07.1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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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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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 혼원일기混元一氣 1

DUMMY

“벌써 한 달인가?”

빠르게 지난 시간에 대한 푸념보다는 만족에 찬 중얼거림이다. 그런 무쌍의 눈은 무릎 아래 책으로 향했다.

이 책을 볼 때마다 전투를 앞에 둔 장수의 심정이라 긴장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천천히 책을 들었다. 하루에 대여섯 번은 읽었으니 벌써 백번 넘게 읽었다.

그래도 매일 새삼스러운 마음은 여전하다.

혼원수단기混元修丹記.

“혼원을 수련해 단을 이루는 기록이라.”

책 제목을 보며 중얼거린다. 또 매번 책은 자구 하나하나 살펴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기실, 무쌍의 체질은 운기조식을 하면 내공의 일부가 육양맥을 거쳐 심장에 뭉쳤다. 이때 양기가 승昇 하는데, 이놈이 신진대사를 빠르게 해 신체를 강건하게 했다.

하지만 거센 기운에 심장은 양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양물을 발기시켰다가 정精을 방정을 해 산화케 해버렸다.

따라서 내공이 곧 천형을 악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런 사실은 그도 알고, 부친도 알고 있으니 화경 고수인 조부 언태세가 모르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도 혼원수단기를 내줬을 때는 그만한 확신이 있으리라 믿었다.

그는 조부 언태세를 믿고 혼원수단기의 자구를 정독했다.

혼원수단기는 혼원일기공에 대한 뜻풀이다. 즉 원본을 보여주고 언해와 주석이 달렸다.

내공은 곧 호흡이다. 그 기초를 우주의 원리로 두느냐, 종교에 두는가 혹은 동물의 특정 행동에서 따왔는가에 따라 그 비결이 결정된다.

이 중 혼원일기공은 호흡의 특성을 우주의 원리로 뒀다.

“후우-.”

그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내용은 언제 읽어도 시작부터 어렵다. 우주의 원리란 발상 자체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눈은 여전히 책에 고정되어 있다.

모든 것은 무無에서 시작하고 끝에 가서는 무로 되돌아간다. 이 무는 없는 상태가 아니라 아득하고 광활해 알 수 없음이다. 고로 무에서 시작은 혼돈이고, 혼돈의 질서는 혼원이다. 따라서 혼원은 우주이고 우주가 곧 혼돈이다.

우주는 큰 하나로 혼돈 그 자체를 일기一氣로 보며 일기는 삼청三淸이고, 일기삼청에서 나온 삼동종원三洞宗元은 음양과 태극이다.

언해에 이어 혼원일기공의 원본이 나왔다.

우주천지의 창조는 무無에서 시작하여 묘일妙一을 거쳐 삼원三元으로 나누어지고, 다시 삼기三氣로 변하며 그로부터 삼재三才가 나와 비로소 만물이 갖추어진다.

이 중 삼원을 기점으로 하여 삼보군의 화생으로 연결되면서, 그것들이 화주化主가 되어 삼청경三淸境을 다스린다. 화주의 길은.....,

혼원일기공은 삼청경의 화주가 되는 길을 제시했다. 그 밑으로 주석이 이어졌다.

혼원일기공은 우주의 원리다. 삼청이라 함은 옥청, 상청, 태청, 세 개의 기운을 이른다. 또한 음과 양 그리고 태극이며 궁극에는 시작과 끝이 이어져 하나로 귀결한다. ......,

그렇게 구결은 언해와 원본으로 반복됐다.

‘삼청 중 옥청의 궁극은 음陰, 그 음을 화주로......,’

무쌍은 이 대목에 이르면 항상 마음이 두근거렸다.

‘십이경락 중 육음맥에 내공을 유도해 양기를 누르고, 음기를 끌어내 균형을 이룰 가능성을 엿본다.’

그의 양손이 절로 꽉 쥐어졌다.

‘조부께서는 이런 점을 알고 계셨어.’

한 달 전이라면 심장 주변으로 들끓는 양기를 계집이나 혈단으로 가라앉혀야 했다. 하지만 혼원일기공을 수련한 이래로 심장 주변에 진흙처럼 뭉쳐있던 양기가 풀어졌다.

이것들이 세맥細脈으로 흩어졌다.

태양천광지체가 드러난 이후로 여자를 찾지도 혈단을 복용하지 않았다. 그것이 한 달이다.

후유증 자체가 없다.

뿐인가? 명석한 머리가 어디로 간 것이 아니었다. 혼원일기공을 입문 한 달 만에 2성에 이르렀다.

이래서 오늘도그는 어김없었다. 비급을 온전히 정독하고 나서 글자를 한자한자 파헤쳤다.

구결에 숨은 의미까지 찾고자 했다.

“엉-.”

무쌍은 책 속에서 보이는 기시감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손이 빨라졌다.

촤라락. 촤라락.

책 첫 장을 펼치더니 빠르게 넘기며 뒤쪽 몇몇 곳에 쪽을 접었다.

탁.

“허얼~.”

그는 책을 덮고 기묘한 탄성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부친 언관운의 잔소리에는 버릇이 있었다. 중간에 꼭 '보태서 말하거니와'라는 입말을 했다. 언해본 곳곳에 이 어구가 산재했다. 쪽을 접은 곳에 그 버릇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들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종년을 건들인 것이 한두 번이더냐?’

‘딱 한 번인데요?’

‘크흠. 어쨌건 건든 것은 건든 것. 내 보태서 말하거니와 이런 일이 다시 생기면 다리 몽둥이를 부러트리겠다.’

‘하아∽. 내 보태서 말하거니와 너희 형제들은 언제나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할 것이야.’

‘너는 생각은 짧기만 하구나. 내 보태서 말하거니와 네 병은 인내와 처방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음이야.’

‘내 보태서 말하거니와.......,’

머릿속에서 이 어구가 떠나질 않았다.

“가주인 아버지의 손을 통하지 않고는 내가 만질 수 없는 책이 혼원수단기야.”

그는 하나씩 추론을 해나갔다.

“이런 바보가 있나.”

그는 자신을 자책했다.

할아버지가 아무리 전대 가주라고 해도, 언씨세가 최고의 내공심법을 막내 손자에게, 그것도 한 세대가 지나면 방계가 될 자손에게 막 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가주인 아버지가 용인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할아버지를 통해서 아버지가 준 선물? 그도 아니면 아버지를 닦달해 할아버지가 준 선물인가?”

그는 정해져 있는 답을 미루었다. 한 달 전 아버지가 보인 행동과 너무 괴리가 컸기 때문이다.

“으이구. 쌍아. 쌍아. 머리가 장식품인 무쌍아.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

그는 양 주먹으로 머리를 쿡쿡 때렸다. 돌이켜보니 석고창에서 없는 죗값을 치름으로써 상당한 이득을 보는 중이다.

‘내가 거처인 소월각에서 혼원수단기를 읽었다고 쳐. 그러면 이렇게 수련을 하고 있었을까?’

비록 강제지만 그는 폐관 수련을 하는 셈이다.

폐관 수련은 개나 소처럼 그냥 자연스럽게 네발로 걷는 일이 아니다. 먹고 싸고 입는 일은 다른 사람의 수발을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들어가는 돈도 돈이지만 그만한 관리를 받아야 했다.

‘또 내가 혼원일기공을 익힌다면 관천 숙부가 가만 놔뒀을까?’

이숙의 평소 언행을 떠올렸다. 필시 그의 손 안의 혼원수단공은 며칠 가지 못해 빼앗겼을 일이다.

이뿐이 아니다. 석고창에 갇혀 있어서 장령령과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었으니 어찌 되었든 혼례에 대한 여지를 남긴 셈이다.

‘석고창에 갇히며 오히려 나에게 이득이 되었구나..’

“후-우.”

무쌍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더불어 지난 한 달간 아버지에게 서운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어졌다.

‘남자가 자식에게 주는 정은 이런 것인가?’

그는 부친의 마음을 헤아린다.


다시 두 달이 지났다.

무쌍이 석고창에 머물기를 석 달 가까이. 폐관수련이 이만할까 싶다. 그는 매일 정신을 날카롭게 벼렸다.

하지만 의지만큼 육체의 시간은 아니었다.

세상의 시간은 만인에게 공평하지만, 누구에게는 너무 느리고 어떤 이에게는 너무 빠르게 흐른다.

그런 면에서 그는 복잡 미묘한 시간을 보냈다.

너무 빨랐던 시간이 최근 들어 점점 느려졌다. 혼원일기공의 내공이 정체됐다. 아니 자리를 잡았다.

지난날 용천수처럼 뿜어지는 양기를 제법 억제했지만, 한 달하고 달포 전부터 잠잠하던 양기가 다시 성장했다.

십이경락 중 육음맥에서 키워진 음기가 육양맥으로 이어진 탓이다. 결국 혼원일기공도 진기의 근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때까지 삼청 중 옥청의 음기를 통해 키워진 내공이 태청과 상청의 순환 고리로 인해 음양의 균형이 맞춰져 간다.

무인이라면 최고의 결과지만 그에게는 최악으로 다가왔다. 양기가 날로 커졌다.

요 며칠 따져보니 당연한 결과로 도출됐다.

삼청의 기운은 음양의 균형으로, 음양은 혼원으로 돌아섰다. 이는 혼원일기공이 추구하는 음양의 완벽한 조화로 가는 길이었다.

하기는 심법 하나로 고칠 수 있으면 태양광성지체가 천형이라 불릴 이유가 없다.

현실은 가혹했다.

근 3 년만에 내공을 접할 수 있었으나 여전히 양기가 방정 되어 온전히 단전을 채우지 못했다.

그래서 한 달 전부터 다시 혈단을 복용 중이다. 그렇다고 뚜렷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연일 옥청을 으뜸으로 육음경을 수련을 하고 있으나 반대편에 육양경락은 절로 커져만 간다.

결국 그 커진 음기만큼 불어난 양기가 반서反噬를 일으켰다.

“크흐흑.”

운기조식을 하던 무쌍이 신음을 토했다.

단전의 내규를 따라 돌던 진기가 자연스럽게 회음혈로 빠져나왔다. 곧장 명문을 통해 독맥을 지나 임맥으로 내려가던 진기가 덜컥 심장 쪽으로 쏠렸다.

‘이것은......,’

무쌍은 소소를 겁탈했던 그날 기억이 겹쳐졌다.

열세 살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언씨세가의 기초심법인 양의선공養意先功에 작은 성취를 이루었다.

일곱 살 때 시작해 단전에 내공을 쌓았고, 이즘 진기는 호두만 해졌다. 진기가 단전에서 왼쪽에서 위로, 위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아래로 회전했다.

이는 내규內揆로 진기가 충만해져 명치까지 올랐다가 배꼽 3촌 아래까지 내려오는 과정이다.

그리고 드디어 혈도를 뚫는 충규衝竅가 시작됐다.

충만해진 단전의 진기가 혈도로 향했다. 저수지에 물이 차면 사통으로 흐르는 이치와 같았다. 기항지부氣恒之腑를 여는 출발점이며, 기경팔맥을 하나씩 개방하는 소주천의 단초였다.

[기항지부 註 : 뇌腦, 수髓, 골骨, 맥脈, 궁宮, 담膽]

그날 독맥의 첫 번째 혈도 회음혈을 어렵지 않게 뚫었다. 둘째 형보다 소주천의 시작이 일 년이나 빠른 결과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끔찍했다.

차라리 죽은 것이 낫겠다 싶었다. 내공이 완성되자 천형이 찾아왔다.

운기조식을 마치고 나자 기혈이 들끓었다. 심장이 입으로 토해지는 느낌이 들며, 혈관은 불거져 폭발할 지경이었다. 눈으로 쏠린 신경은 온 세상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이러다가 호흡이 미어졌다.

폐가 연기 속에서 숨 쉬다가 멈추는 것이 이럴까? 이내 작은 혈관들이 터져 아랫입술과 쇄골 쪽 가슴에 반점의 출혈 흔적까지 보였다.

이러길 두 시진,

찬 기운이 도는 새벽이 될 즘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숨이 돌아왔다.

그러고 난 후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오줌똥을 못 가려 옷에 지렸다.

이러한 날이 며칠, 심할 때는 방정을 했다. 짧으면 이틀, 길면 삼일에 한 번씩 이런 일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날 그 일이 벌어졌다.

주화입마에 빠진 줄 알고 허우적대다가 정신을 잃었다.

무쌍은 혼몽에서 시녀 소소를 겁탈했다.

시간이 흘러 이성이 돌아왔을 때는 침상은 난장판이 돼 있었다. 옷이 찢긴 소소는 부모 초상에 상주 마냥 흐느꼈다.

곧장 주위를 살피니 이불보에는 앵혈로 범벅이었다.

그는 소소에게 잠깐잠깐 흉악한 협박과 욕설을 지껄였던 기억이 끌로 판 조각처럼 남았다. 그리고 그 소란에 이숙 언관천이 소월각에 들어왔고,

그날 이후 무쌍은 진주 언가에서 쓰레기가 됐다.

‘안 돼!!’

상념이 깨지고 현실로 돌아왔다. 호흡을 잡으려고 무쌍은 혀를 깨물었다.

아랫입술 아래로 피가 주르륵 흘렀다. 통각이 이성을 잠시나마 붙잡았다.

흔들린 들숨을 길게 내뱉었다.

삼원에서 혼원으로 전환하지 못한 탁기가 개미 눈물만큼 빠져나왔다. 진기를 받아들일 들숨을 쉬기가 무섭지만, 진흙처럼 뭉쳐 심장 주변에 낄 탁기가 더 무섭다.

“흐으읍.”

숨을 쉬었다. 두정을 통해 받은 숨이 아니다. 폐부 가득 머문 공기가 단전으로 내려갔다. 헛숨이었다.

임시방편으로 행한 호흡이 활로를 열었다.

지식止息이 생략되고 날숨 호呼가 탁기를 다시 걷어갔다. 미미하게나마 호흡이 평안을 찾았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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