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선검향醫仙劒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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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민
작품등록일 :
2024.07.1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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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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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석고창席藁倉 1

DUMMY

그날 오후. 언씨세가 가주 집무실 현령전玄靈展.

무쌍은 현령전으로 불려와 입구에서 무릎이 꿇려졌다. 사실 그는 이 상황이 억울하기 짝이 없다.

‘내가 왜? 장령령. 이 미친 것이 스스로 옷을 벗고 달려들 때는 언제고. 이제 와 내가 겁간을 해?’

장령령이 이숙 언관천에게 무쌍이 겁탈하려 했다고 생떼를 썼단다.

손녀 일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드는 객원장로 장두식이다. 이 늙은이가 도끼눈으로 현령전 입구에서 무쌍을 보며 들어간 것이 반 시진이다.

곧 현령전 내에서 장두식이 개 거품을 무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이숙과 삼숙 그리고 큰 형과 둘째 형이 호출됐다.

지금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냥 현령전에 들어가 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부친의 성격상 공연히 매만 벌 뿐이다.

일단은 꾹 참았다. 변명할 기회가 오겠거니 했다.

“으으음.”

시간이 흘러 한 시진 넘어섰다. 무릎을 꿇어 종아리가 땅겼다. 무쌍이 발을 폈다. 그때 마침 현령전 문이 열렸다.

끼이익.

무쌍 앞으로 그림자가 다가왔다.

탁.

“억,”

그는 뒤통수의 고통과 함께 고개가 앞으로 푹 숙여졌다.

“어지간히 껄떡대야 믿음이 가지.”

언씨세가의 소가주이자 큰형 언무극이 휑하니 지나치며 손바닥으로 무쌍의 뒤통수를 갈기며 말했다.

“아이쿠∼. 우리 막내 크게 한 건 했네.”

뒤따르던 둘째 형 언무한이 조롱 가득한 말투로 무쌍의 가슴을 후벼 팠다.

“.....,”

어찌 됐건 현 상황만 보면 입이 있어도 열 처지가 못 되는 무쌍이다.

“너 때문에 큰형도 나도 폐관에 들어간다. 계집 하나 자빠뜨린 것이 무슨 대수이겠느냐만 상대를 봐가며 눌러야지. 크크크. 아무튼 너 장가가게 생겼다.”

둘째 형이 앞에 서더니 무쌍의 코를 비틀었다.

“아씨. 아프게.”

무쌍은 큰형 언무극과 달리 둘째 형에게는 짜증을 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같이 고추를 내놓고 누구 오줌발이 더 나가나 내기도 했고, 정주간鼎廚間에 보관된 30년 된 여아홍을 몰래 꺼내 먹으며 같이 말썽을 피우던 사이였다.

좋게 말하면 친구 같은 형이고 나쁘게 말하면 같이 말썽을 피던 동기간이었다.

만만함이 입으로 표출됐다.

“하아. 너는 고추라도 써먹었지. 무고한 큰형과 난 석굴에서 반년을

연좌제로 폐관수련에 들어간다고. 이놈아.”

꿍.

언무한은 말하면서 더욱 억울했나 보다. 분기가 치솟아 결국 무쌍의 머리에 주먹질했다.

“윽.”

무쌍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지만 구차한 변명을 더 늘어놓지 않았다. 둘째 형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도 마찬가지지만 둘째 형도 잠자다가 홍두깨로 머리를 맞은 격이니 화가 날만도 했다.

둘째 형이 물러서고 얼마지 않아 다시 닫혔던 현령전의 문이 열렸다.

“애야. 들어와 봐라.”

삼숙 언관현이 무쌍을 불렀다. 그리고 다가가는 무쌍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언관현은 항상 무쌍에게 관대했다. 무쌍이 실수하면 이유를 따져 묻고 가형과 자식 사이를 중재했다.

“이번에는 내가 편을 들지 못할 수 있겠구나.”

그는 아주 작은 말로 조카의 귀에 대고 말했다. 무척이나 안타까운 표정이다.

무쌍은 갑자기 감정이 격해졌다.

억울해서도 서러워서도 아니다. 아직도 가문에서 그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복받쳤다.

그는 감정을 추스르려고 주먹을 꽉 쥐었다.


무쌍이 현령전 안으로 들어가자 싸늘한 시선들이 꽂혔다.

객원장로 장두식은 공력까지 일으켜 압박을 보냈다.

무쌍은 자라목이 되었다. 평소 느껴보지 못한 중압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리고 아버지 언관운을 보자 무쌍의 목은 절로 움츠려졌다.

언관운의 눈에는 싸늘함도 없고 짜증과 분노만 보였기 때문이다.

“쯔쯔쯧. 사내놈이.”

장두식이 끌탕을 쳤다.

그 말로 언관운의 얼굴에 짜증이 왈칵 올라왔다. 이로써 싸늘한 분위기가 더욱더 무쌍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 상황이 답답한 무쌍이다.

잠시 현령전에 정적이 흘렀다.

“놈-.”

침묵이 이어지던 현령전에 언관운의 일갈이 무쌍을 향했다.

동시에 언관운이 가 긴 그림자를 그리며 자리를 바꾸었다. 극성에 이른 괴뢰보였다. 동시에 강시철권의 한 수가 무쌍의 허벅지를 때렸다.

무쌍은 경악했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아버지에 의도를 알아챘다.

다음에도 계집을 건들면 다리 몽둥이를 부러트리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아버지다. 그 말을 그대로 행한 것이다.

무쌍은 눈을 질끈 감았다. 곧 있을 고통에 볼이 떨렸다.

팡-.

그때 파열음과 격앙된 목소리가 들렸다.

“가주. 다리 병신을 손서로 내줄 셈이시요?”

뜻밖에도 장두식이 나서줬다.

“후우-.”

무쌍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안도감이 끝나기 전 뒤통수가 휑했다.

언관운는 그대로 끝내고 싶은 맘이 없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막내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쳤다.

탁.

“악.”

뒤통수를 맞은 무쌍이 앞으로 털썩 쓰러졌다.

“썩을 놈.”

언관운이 진정한 속내를 드러냈다.

“아이고.”

무쌍은 휑한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곤 양손으로 뒤통수를 감싸며 일어났다.

“형님!”

그제서야 삼숙 언관현이 무쌍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가주가 이리 나올 줄 몰라서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가솔도 아닌 아들에게 혹독한 손속이라니요,”

그리고 무쌍의 편을 들었다.

“일단 애 말도 들어보기로 했잖습니까?”

그것은 무쌍의 천적인 이숙 언관천 역시 마찬가지다. 그도 황망한 얼굴이 됐다.

‘자기는 내 얼굴을 죽통으로 만들어놓고 말이야.’

무쌍은 이숙에 이어 부친에게도 당하자 억울하기만 했다.

“이것요.”

머리에서 양손을 내린 무쌍이 오른손을 품에 넣었다. 그는 오전에 장령령이 가지고 있던 사향을 품은 그 향낭을 꺼냈다. 이것을 아버지 앞에다 내려놨다.

툭.

떨어진 향낭이 열렸다. 동시에 사향이 비산했다.

무쌍이 입과 코를 막고 물러났다.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향기지만 그에게는 최음제나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언관천이 나서서 소매를 흔들었다.

“독은 아니구나.”

언관천이 냄새를 맡으며 인상을 구겼다. 아무리 불만이 많아도 자식이 아비 면전에서 할 행동이 아니었다.

“사향!”

하지만 장두식이 중얼거리며 얼굴이 붉어졌다. 전후 사정이 눈에 밟힌 까닭일 것이다.

금지옥엽 키운 장령령이 항상 지닌 향낭을 그가 모를까?

꽃송이 몇 개 집어넣는 주머니에서 사향이 나왔다. 그리고 언가에서  무쌍의 천형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태양광성지체太陽抂垶之體

진주 언가의 막내아들이 가진 기괴한 병증이다. 12경락 중 유독 소택小澤과 지음至陰에 양기가 뭉쳐 여자가 없이는 못 사는 몸이다.

이러니 사향은 미꾸라지에게 소금을 끼얹은 격이 아닌가?

“무엇을 하는 짓거리냐?”

언관운은 무쌍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자식 중 불손한 놈이 없었다. 눈앞에 무쌍이 말썽을 부려도 이리 대들지는 않았다.

“령령이 갖고 있던 향낭입니다. 오전에 그것 때문에 곤혹스러웠습니다.”

무쌍은 무례한 행동으로 강간미수의 전말을 이야기했다.

그는 욕정에 거품을 물면서도 장령령이 흘린 향낭을 찾아 꼭 쥐었다. 그 와중에 이숙에게 주먹으로 얼굴이 죽통이 되도록 맞았지만, 그것은 그에게 실낱 같은 구명줄이었다.

동시에 지금 아버지에게 반론할 구실이 됐다.

“크흠. 가주. 아이가 한 실수를 책하려니 안타깝습니다. 그려.”

장두식이 헛기침을 하며 나섰다. 그런데 말이 참 묘했다. 아이가 무쌍인지 장령령인지 모호하다.

이 말에 무쌍이 미간을 접었다. 실체적 진실이 밝혀진 시점이다. 허물을 벗어야 한다.

“아버지!”

“가주!”

무쌍과 언관천이 동시에 나섰다.

언씨세가의 가주로서 언관운의 시선이 무쌍과 동생을 번갈아 봤다.

무쌍은 무죄를 피력하려고 향낭을 지목했다. 반면 언관천은 미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언관운의 속이 복잡해 보인다.

머리가 미역 줄기가 아닌 이상 셋째 아들인 무쌍이 하려는 말을 모를까? 그래도 세상은 항상 진실에만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나 보다. 

“크흠. 이 일은 장장로의 말이 일리가 있소. 어린 것의 실수를 들춰봤자 헛물만 켤 일.”

언관운이 객원장로 장두식과 둘째 동생의 편에 섰다.

현재 언씨세가와 객원장로 장두식 사이에 복잡한 인과관계가 얽혀 있다지만 너무한 처사였다.

“이리 지나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영문 모르는 두 형님이 폐관수련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제 억울함은요?”

무쌍이 앞에 놓인 사향 주머니를 엄지와 검지로 집어 들며 항변을 했다.

“네 말은 쥐가 고양이 앞에서 얼쩡거리며 고양이 수염을 건드렸다는 말이렸다?”

조용히 지켜보던 삼숙 언관현이 나서줬다.

“적절한 표현이고 비유입니다. 삼숙.”

무쌍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닥쳐라. 너는 방금 이 아비에게 말하기를 곤혹스럽다고 했다. 그 말은 령령이가 뭘 어쨌든 넌 자리를 피할 여력이 있었다는 뜻과 같다.”

언관운은 자식을 매몰차게 꾸짖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뜻대로 다 됩니까? 당시 상황은 불가항력이었습니다. 저와 소소가 있는데 령령이 와서.....,”

“그만. 의당 네가 한 짓거리는 온전히 네가 책임져야 한다.”

이번에도 무쌍의 말은 처절하게 잘려나갔다.

“.....,”

무쌍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표정 자체가 없어졌다.

원망? 분노? 그런 것 따위는 남지도 않았다. 가문에서 그가 설 영역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하면 저의 처분은 어찌 됩니까?”

무쌍의 목소리에 고저가 없다.

“.....,”

언관운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내일부터 석고창席藁倉에서 석 달간 근신을 명한다.”

“......,”

이번에는 무쌍이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부친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형. 형님.”

언관현은 가형과 무쌍을 번갈아 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비는 아들의 등에 시선을 두었고, 아들은 아버지를 외면하고 나가버렸다.

이제는 부자간의 의무만 남고 정情이 갈라서는 순간이었다.

“애. 애야.”

언관현이 무쌍을 부르며 급히 따라나섰다.

“저. 저런.”

장두식이 무쌍의 등을 보다가 무안해진 얼굴로 가주를 봤다.

언관운 역시 무쌍만큼이나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크흠. 오늘 일은 가주께서 큰 양보를 해주셨소이다. 내 체면 뿐 아니라 손녀의 청명을 지켰으니 세가의 일에 백번 양보하겠소이다. 하지만 부자지간에.”

“제깟 놈이 뭘 어쩌겠습니까?”

언관운은 별 일 아닌 듯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현령전을 나서는 무쌍의 귀에 아버지와 객원장로 장두식의 대화가 들렸다.

이날의 일은 그렇게 무쌍에게 일방적인 붙임으로 끝나버렸다.


그날 늦은 오후.

언관운은 전대 가주이자 그의 부친인 언태세를 찾았다.

“아버님. 들어가겠습니다.”

그는 부친에게 이틀에 한 번 아침 문안 인사를 드렸다. 그것이 오늘이다. 따라서 이번 방문은 두 번째로 당연히 의도가 있다.

“들어 오거라.”

노회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전각 안에서 돌아왔다.

언관운은 안으로 들어섰다.

학창의에 백발, 긴 수염을 기른 노인이 난을 쳤다. 그 옆에는 똘망한 아이가 벼루에 먹을 갈고 있었다.

한세각閑世閣에 들어선 언관운은 움직임을 자제했다. 그 역시 그림을 좋아한다. 감정선이 흐트러진 그림은 망작이다. 기다림은 당연했다.

게다가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는 마당이다.

언태세는 화선지에 난을 친 붓을 벼루로 옮겼다. 그리고 먹물을 묻힌 붓이 화선지 위에서 멈췄다.

툭. 툭.

붓끝에 먹물이 맺혀 화선지로 떨어져 번졌다.

“이런.”

언관운이 안타까움에 탄식을 했다. 그의 시선이 시동을 향했다. 점성이 떨어지게 먹을 제대로 갈지 않았다고 여겼다.

시동이 안절부절 하며 낯빛이 파랗게 질렸다.

“무진이 탓이 아니다. 내 일부러 난을 치지 않았다.”

언태세가 붓을 내려놓으며 화선지를 반으로 접었다.

“이것은 못 쓰겠구나. 무진아. 문방사우를 내가고 다구茶臼와 차를 내오거라.”

“알겠습니다. 할아버님.”

언무진은 고개를 숙이고 문방사우를 챙겨 나갔다. 그러자 부자간에 독대할 자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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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 귀백무심鬼魄無心 1 +7 24.07.18 6,476 10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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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서장. +9 24.07.16 13,958 13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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