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선검향醫仙劒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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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민
작품등록일 :
2024.07.1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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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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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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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석고창席藁倉 3

DUMMY

“이놈아. 찾기는 뭘 찾는다는 말이냐?”

창노한 목소리와 함께 굳게 잠긴 문고리가 살아서 뒤로 밀리더니 문이 열렸다.

“할. 할아버지?”

한세각에 있어야 할 조부가 들어섰다.

무쌍이 깜짝 놀라 일어났다.

“할아버지 오셨네요? 하지만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사를 조부의 손을 잡는 것으로 대신했다. 평소 두 조손의 친밀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하하. 우리 막내 손자 녀석이 장가를 간다더니 헛말이구먼. 아직도 떼나 쓰는 애야.”

언태세는 심통 난 손자가 귀엽게만 보였다. 그래서 손자를 보며 놀렸다.

“웬걸요. 저 아버지 주특기로 죽을 뻔했는데......,”

무쌍은 불만이 가시지 않아 표현이 배배 꼬였다.

“주특기라니?”

“제 다리 몽둥이 부러뜨리기에요. 아주 입에 달고 사세요. 그런데 제가 무슨 장가를 갑니까? 둘째 형도 그러더니.”

“쯔쯔쯧. 애에게 겁을 주는 애비나 겁먹은 아들이나 매한가지구나.” “겁먹을 나이는 지났고요.”

“그래? 장가를 갈만큼 꼬추가 여물었는지 모르겠구나?”

언태세가 무쌍의 아랫도리로 손을 뻗었다.

“헤∽. 이건 반칙인데.”

무쌍이 기분이 풀려 웃으며 엉덩이를 뺏다.

“하하하. 녀석. 이리 와 앉아라. 객쩍은 농담은 그만하자구나.”

언태세는 무쌍이 하는 짓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오늘 이 손자 녀석에게 할 말이 있다.

무쌍은 그걸 눈치채고 먼저 입을 열었다.

“아실지 모르지만, 제가 오늘 아버지에게 제법 혼났거든요. 할아버지마저 저를 나무라시면 오늘 많이 슬플 것 같습니다.”

애써 밝은 표정이지만 그것이 무쌍을 처량하게 했다.

“동정표라면 이 할애비에게 충분히 한 표를 얻었다. 혼내려는 말이 아니니 그냥 들어라.”

“네.”

무쌍이 대답하자 할아버지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 무쌍을 빤히 보다가 말을 이어갔다.

“세상의 어떤 것은 모기나 날파리처럼 달려든다. 이것은 원래 있었고 네가 없앤다고 사라지는 것들이 아니다. 그것을 숙명이라고 한다. 네가 짊어진 태양광성지체란 천형은 마치 모기나 날파리 같은 것에 불과하다.”

할아버진 무쌍을 살피며 조언을 했다.

“하지만, 네. 알겠습니다.”

무쌍은 말대꾸하려다가 참았다. 곧 고개를 숙여 수긍하며 대답했다.

“네가 살아가는 게 조금 불편하고 돌아갈 뿐이다. 천형은 단지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지 문제다.”

“어떻게요?”

무쌍이 되물었다. 혹시 다른 희망이 있을까 싶었다.

“네 문제는 호흡 즉 숨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알고 있느냐?”

“.......,”

뜻밖에 말에 무쌍은 대답을 못 했다. 언태세 역시 답을 원하고 묻는 말이 아니라 계속해 말했다.

“호흡이란 단어에서 보다시피 숨을 뱉고 마시는 방법이다. 그럼 왜 들이마시는 숨보다 뱉는 숨이 먼저 나왔겠느냐?”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맞다. 숨을 뱉는 방법에 따라 기를 갈무리하는 동작이 나온다.”

“저는 호흡을 통해 내기를 축기가 어렵사옵니다. 체질상으로......,”

무쌍에게 운기는 양기를 촉발하는 뇌관이자 도화선이다. 그는 이태 전부터 운기조식을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다.

“틀리지 않아. 알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언태세는 무쌍의 말을 끊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다음에 있었다.

“너의 호흡은 체질상 양기는 축적하고 음기는 내뿜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따라서 체질을 개선하는 호흡이 중요하다. 하지만 가문에는 네게 마땅한 내공심법이 없다. 전설의 열화신공이나 북명신공 혹은 구음진경 등이 그 종류겠지. 하지만 그 인연이 쉽지 않은 일.”

“소손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나 역시 그것들이 너에게 한 가닥 인연이라도 이어지기를 기원하고 있다.”

“하면 저에게는 달리 방도가 없는 것이옵니까?”

무쌍은 할아버지의 말이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오자 실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쉽지만 현재는 그렇구나. 다만 이것은 가문의 심법이지만 너에게 어느 정도 소용이 있을까 싶어 챙겨왔다.”

탁.

언태세가 탁자 위로 책 한 권을 올려놨다.

무쌍은 조부가 올려놓은 책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혼원수단기混元修丹記란 제목이 적혀 있었다. 언씨세가에서 장로만이 혼원이란 단어가 들어간 심경을 익혔기 때문이다.

“혼원일기공의 심법 편만 따로 추렸다. 주석을 달아놨으니 언해본이다. 심득도 만만치 않으니 내공심법으로는 강호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을 것이다.”

“할. 할아버지.”

무쌍의 목소리가 떨렸다.

“쯔쯔쯧. 사내가 그리 마음의 기복이 커서야.....,”

언태세가 놀리는 말투다.

그 후로도 무쌍은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반 시진이 지나 언태세는 무쌍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소월각을 나섰다.


무쌍은 한동안 멍하니 혼원수단기를 봤다.

조부는 그가 어릴 적부터 누구보다 그에게 살뜰했다. 그런 조부라 오늘도 가련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한참 이것저것을 물어봤다.

요약하면 몸에 불편함이 있으나 삶에 문제는 없다 하신다.

더불어 의학에 대해 몇 가지를 물으시더니 혼원수단기를 건네주시고는 암기하고 태우라 한다.

그는 이렇게 혼원수단기가 막상 눈앞에 놓이니 비로소 현실을 직시했다.

혼원일기공混元一氣功.

언씨가문 최고급 무공이다. 가문의 대표적인 무공 혼원강시공混元彊尸功과 강시권彊尸拳 그리고 귀백무심검鬼魄無心劍이 여기에서 파생했다.

무엇보다 오직 언가의 직계 중 중요 인사만 익히는 무학이다.

무쌍은 한참을 머리를 굴리고도 이 책이 왜 그의 손에 들렸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조부의 변덕이라기에는 많은 의문이 남았다.

어찌 됐든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다가 보니 그 서문序文 안에 답이 보였다.

혼원일기공은 제목과 다르지 않은 도가계열의 무공이었다.

본래 전진파의 도사였던 진주 언가의 시조始祖 언중락은 환속해 상문喪門에 몸담았다가 산서성 진주에서 가문을 열었다.

그래서 언가는 전진파의 혼원일기공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 수련에 있어 재물욕財物慾·명예욕名譽慾·식욕食慾·수면욕睡眠慾·색욕色慾의 오욕과 희喜·노怒·애哀·낙樂·애愛·오惡·욕欲의 칠정을 끊음으로써,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기복을 없애는 무욕지계無慾之界와 항상지심恒常之心의 경지를 추구했다.

살펴본즉 혼원일기공의 운기행공이 마음공부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혼원일기공의 화후가 높을수록 언가의 직계들은 감정이 삭막해지고 세속에 초월했다.

그리고 기氣를 능히 사용하는 노화순청의 경지가 되기 전까지는 오욕칠정을 다 끊어 몸과 행동이 강시와 같이 변했다.

언가의 정수인 혼원강시공은 이런 외형에서 온 무공의 명칭이다.

물론 조부는 혼원강시공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혼원일기공混元一氣功만 적어서 줬다. 당연히 후반부에 있어야 할 경천동지驚天動地의 무공초식인 강시권과 혼원강시공 그리고 귀백무심검은 없었다.

이러니 눈 감고 고민하지 않아도 조부의 의도를 알 수 있는 일이다. 마음공부를 통해 육체의 질병을 극복하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앞의 몇 장을 읽어보니 묘하게도 정법대사가 준 현현심경의 법문 일부와 혼원일기공의 법문이 교차했다.

탁.

무쌍은 일단 읽던 서책을 덮었다.

“후-우.”

그리고 긴 숨을 내쉬며 책을 내려놨다.

조부는 그를 어여삐 봐주셨다. 말수는 적으셨으나 온정을 항상 곁에 두셨다. 혼원일기공의 심법 부분을 전해주셨으니 그 고심이 어땠을지 짐작이 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부가 머무는 한세각을 향해 허리를 숙여 예을 올렸다.

“태양광성지체. 모기나 날파리처럼 귀찮을 존재일 뿐일 수도.”


늦은 저녁이 되었다.

언무쌍은 저녁이 되기도 전부터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더니 심장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정말 개만도 못한 체질!”

늘상 겪는 일이지만 적응이 되지 않는다.

얼마지 않아 심장이 거칠게 뛴다. 그래도 오늘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형을 넘어보려고 한다. 아니 반대편이 보이지 않는 높은 벽을 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고작 한 시진(두 시간)이 지났다.

“헉. 컥. 컥.”

지금 무쌍은 폐를 꺼내 불나기 직전 검은 연기가 가득한 밀폐된 공간에 한 식경을 쳐박아 놓은 것 같다. 입에서는 침이 질질 샜고,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된 지 오래다.

죽을 것 같다.

그때 부드러운 손이 무쌍의 입에 묻은 침을 닦아내고 그 자리를 다른 입술이 차지했다.

“소....,소?”

무쌍의 물음 대신 포의 앞섶이 열리고 옷이 벗겨졌다. 그는 자연스럽게 소소를 끌어안고 침상으로 갔다.

그리고 한참 정신이 없었다.

무쌍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았을 때는 소소와 한 몸이었다.

그는 당과에 정신 못 차리는 네 살 나이의 아이가 됐다. 본능만 남아 정신없이 소소를 탐했다.

물고 빨고 어느 순간 소소의 등은 활처럼 휘어졌고, 무쌍은 머리에서 등까지 내려오는 전율을 느꼈다.

이미 무쌍의 호흡은 편안해져 게으른 고양이가 됐다. 심장 주변에서 일어난 양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그는 옆에 누운 소소를 껴안았다.

몸이 부드럽다. 몸을 만지는 그의 손끝으로 소소의 진정이 전해졌다.

“아침에 서운했지.”

무쌍은 상체를 세웠다.

“그냥 계세요.”

소소가 무쌍의 팔을 잡았다. 지금은 그의 품에서 잠자리에 여운을 느끼고 싶은 모양이다.

“소소야. 령령에게서 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공. 공자님.”

무쌍을 보는 소소의 눈빛이 흔들렸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야.”

무쌍은 오늘 억울한 일을 겪고 방금 소소의 헌신을 새삼 느꼈다.

“이상해요. 마치 떠날 사람 같이.”

소소의 말을 들은 무쌍은 속이 뜨끔했다. 조부가 혼원수단록을 내주기 전에 잠시 가출을 생각했었다. 여자의 촉이란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나빠?”

“아니요. 좋았어요. 날 아껴주셔서 서방님의 여자가 된 것 같아요.”

소소는 무쌍의 입에 입술을 맞추고는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눈을 감고 이 순간의 여운을 즐겼다.


한 달 후.

어둠을 깨는 유일한 빛줄기가 한 뼘 크기의 쪽창을 통해 들어왔다. 사방 벽은 진흙을 발라 거칠었고, 바닥은 다진 흙 위로 돌을 촘촘히 박아놓아 눕기에 불편했다.

무쌍은 석고창 중앙에 석 자 넓이의 멍석 위에 산발인 채로 앉았다.

스으으-.

쪽창을 지나치는 바람에는 풀잎끼리 비비는 한미한 소리가 실렸다. 침묵의 바다에 잠겨 인세와 격리된 연옥이 따로 없었다.

그가 이곳에 든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그는 혼원일기공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한기가 가득 찬 석고창에서 오직 단전에 매몰되었다. 오감까지 주변과 격리했다.

호흡은 규칙적이며 심해와 같이 고요했다.

들숨과 함께 백회를 열어 천지지기를 끌어와 단전에 밀어 넣는 흡吸과 단전에 잔심을 남기는 지止 그리고 탁한 날숨을 밀어내는 평平의 순환이 이어졌다.

단전의 기는 내규를 따라 왼쪽으로 돌다가 회음혈을 따라 명문혈로 치솟는다. 이런 내 호흡은 점점 느려져 열 호흡이 반각半刻에 달했다. 혼원일기공의 기초가 완연하게 잡혔다.

불과 한 달 전과는 사뭇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처음 혼원일기공을 접하고 막막했다. 다행히 열세 살 때 언씨세가의 기본 심법 양의선공養意先功을 깨우쳤던 경험이 통했다.

삼년 만이었다.

무쌍이 체질 때문에 여자를 안아야만 했고 혈단을 복용해야만 했다. 천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견딜 만하다.

확실히 혼원일기공은 신공神功으로 불릴 장점을 명확히 지녔다.

운기조식과 운기행공을 기본적으로 병행했다.

풀어 말하면 운기조식은 단전에 기를 축적하는 호흡법이고, 운기행공은 단전에 축적한 내공을 운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단전에 축적된 기를 진기라 칭하며 진기를 공고히 하는 과정이 경기硬氣다.

더불어 경기가 수준 이상으로 오르면 발경發勁을 하는데 여기까지가 운기행공이 초식의 영역과 겹친 결과다.

여하튼 무쌍은 혼원일기공으로 인해 운기조식과 행공의 삼매경에 빠졌다.

“쉬-이.”

탁. 탁.

무쌍은 턱 끝까지 붙었던 숨을 내쉬며 운공을 끝냈다.

그리고 곧장 굳었던 몸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가부좌로 뭉친 근육과 살에 혈액을 순환시켰다. 이 27형 연근제형술延筋齊型術은 세가의 무인이라면 절정의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 달고 사는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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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수하석산 樹下石山 2 +8 24.07.21 4,792 91 13쪽
14 14. 수하석산 樹下石山 1 +5 24.07.21 5,008 90 14쪽
13 13. 풍광유희 風光遊戲 3 +5 24.07.20 4,910 98 14쪽
12 12. 풍광유희 風光遊戲 2 +4 24.07.20 5,118 98 14쪽
11 11 풍광유희 風光遊戲 1 +5 24.07.19 5,524 98 16쪽
10 10. 귀백무심鬼魄無心 3 +4 24.07.19 5,603 101 16쪽
9 9. 귀백무심鬼魄無心 2 +6 24.07.18 5,945 105 16쪽
8 8. 귀백무심鬼魄無心 1 +7 24.07.18 6,473 107 17쪽
7 7. 혼원일기混元一氣 3 +8 24.07.17 6,702 122 13쪽
6 6. 혼원일기混元一氣 2 +7 24.07.17 6,767 114 13쪽
5 5. 혼원일기混元一氣 1 +6 24.07.16 7,264 115 13쪽
» 4. 석고창席藁倉 3 +7 24.07.16 7,611 119 14쪽
3 3 석고창席藁倉 2 +9 24.07.16 8,597 136 15쪽
2 2. 석고창席藁倉 1 +9 24.07.16 9,660 148 14쪽
1 1. 서장. +9 24.07.16 13,955 13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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