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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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
작품등록일 :
2024.07.22 16:37
최근연재일 :
2024.09.17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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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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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DUMMY

나는 꿈을 꿨다.

최근에 매번 꾸는, 굉장히 생생하고 밀도가 높은 꿈이었다.

꿈에서 나는 한 영지의 기사였다.

이상하게 나한테 집착하는 것처럼 치근덕 거리는 영주의 딸과 밀어내며 훈련에 매진하는 따분한 일과를 보내던 중에, 갑자기 야만인들이 영지에 쳐들어왔다.

나를 비롯한 병사들은 필사의 항전을 했으나, 압도적인 전력차로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말도 안되는 괴력을 가진 야만인 장군이 도끼로 내머리를 내려치기 전에, 나는 잽싸게 그 도끼를 피하며, 칼날을 잡고 손잡이로 투구를 내리쳤다.

그러자 투구가 벗겨지고 야만인 장군의 얼굴이 드러났는데,


나를 두들겨 팼던 그 망할 놈이었다.


***


“헉!”

나는 그 순간 숨을 들이키며 잠에서 깼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온몸이 식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건 또 무슨 개꿈이야?

나는 손으로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훔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낯선 방이었다. 온통 새하얘서, 이전에 있던 병실로 착각할 정도로.

병실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것은, 몸을 일으키기 위해 침대를 짚었던 손이 매트리스 안으로 푹푹 빨려 들어갔을 때 였다.

딱봐도 고급스러운 매트리스다,

······여긴 대체 어디지?

그리고 나는 왜 다 벗고 있고?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사장이 속옷에 와이셔츠 한 장 달랑 대충 걸친 채로 등장했다.

“자기, 일어났어?”


······예?


나는 순간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아직도 꿈인가 싶어 내 옆구리를 꼬집어보았다.

꿈은 아닌데······?

나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어본다는, 나로서는 거의 하지 않았던 짓을 반복했다.

하지만 내 기억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여지는 추호도 없었다.

“어, 음······. 혹시 무슨 일이 있었죠? 제가 어제 갑자기 이상한 남자가 제 얼굴에 뭘 뿌린 이후로 기억이 없는데요.”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우리 결혼한지 일주일 지났잖아.”

“······진짜요?”

“그리고 웬 존댓말이야. 자기 좀 많이 이상해.”

진지하게 말을 놓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장이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동시에 문을 열고 비서가 나타났다.

“진짜 순진한 사람 놀리니 재밌어요?”

“응, 엄청!”

“개소리 말고 옷이나 챙겨입어요.”

비서는 들고 있던 옷을 던지듯이 사장에게 건네준 다음, 그리고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미안해요. 저 인간이 좀 사람이 덜되서.”

“아니, 저 이게 어떻게 된······.”

비서는 곱게 개인 정장을 침대에 조심스럽게 올려두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해드릴 테니, 여기 옷을 둘 테니 갈아입고 나와주세요. 저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 옷 갈아입는거 보고 싶은데.”

“지랄도 적당히 하세요. 진짜.”


***


소름끼칠 정도로 내 사이즈와 딱 맞는 정장을 입고 밖을 나서자, 어디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고급스러운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사장은 와이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거실 쇼파에 누워서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비서는 부엌에서 다가와, 내게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정신 없으시겠지만, 커피 한잔 하세요. 설탕 안 넣으시죠?”

“아, 네.”

나는 어안이 벙벙한채로, 두 손으로 머그잔을 받았다. 사장은 누워서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다 툭 내뱉었다.

“나도 커피 줘.”

“진짜 윗사람만 아니었으면 확······.”

비서는 살벌한 말을 중얼거리며 사장을 노려보다, 한숨을 내쉬며 다시 커피머신으로 향했다.

나는 부엌과 거실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혼란스러운 머릿 속을 달랬다.

사장은 용수철처럼 유연하게 쇼파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내게 다가와서 히죽 웃었다.

“잘 잤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아주 많은 일이 있었지.”

사장은 뭔가를 말하며, 내게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그건 인터넷 뉴스 기사였다.


오피스텔 폭파사고로, 내가 사망했다는 내용의.


“······허?”

“뭔가 반응이 놀라기만 해서 재미없는데.”

“아, 아니 잠깐만요. 이게 뭡니까?”

“뉴스 기사잖아. 혹시 한글 몰라?”

나는 이마를 감싸쥐었다.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이게 대체 무슨······.”

이죽거리는 사장의 얼굴을 머그컵으로 밀어내며, 비서가 말했다.

“사전에 동의를 얻지 못한 건 미안하지만, 필요한 일이었어요. 그쪽이 해야 할 일은 불법적인 일이니까요. 기존의 신분을 버릴 필요가 있었죠. 집은 나중에 저희가 마련해드리겠습니다. 그전까진 회사에서 지내셔야 할거 같아요.”

그렇게 말한 뒤에 비서가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혹시 가족이······.”

“아, 그건 없어요. 혼자라서.”

내 말에 비서의 표정이 내가 보기 미안해질 정도로 어두워졌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는 찰나, 사장이 불쑥 비서를 밀어내고 튀어나왔다.

“새 사람이 된 기분은 어때?”

“아직 실감이 안나는데요.”

“이거 보면 실감이 날거야.”

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 앞 탁자에 올려 놓았다.

나는 그걸 집어 들었다. 그건 신분증이었다.

그 신분증에는 한쪽 눈에 길게 흉터가 나있는, 사나운 인상의 남성 사진이 있었다.


연상현.


그건 내 본명을 에너그램처럼 교묘하게 바꾼 것 같은 이름이었다.

나는 사진의 인상과 이름을 한참동안 보다가 말했다.

“설마 이게 제 새로운 신분인가요?”

"맞아, 사진 멋있지? 솔직히 인상이 너무 순해보여서 내가 좀 고쳐달라고 했어.”

“완전히 다른 사람인데요?”

“코디 좀 하면 돼. 설마 남자는 화장하면 안된다는 고리타분한 사람은 아니지?”

이건 사장이 아니라 어디 특수분장 수준인데?

사장의 말에 딴죽을 걸고 싶은 부분이 한 두개가 아니었지만, 나는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 어차피 새 신분을 얻을 거면, 얼굴도 바꿔야하는게 맞겠지. 성형수술 안하는게 어디야?

“그리고 자, 여기 명함.”

사장은 내게 신분증과 함께 명함을 같이 해서 돌려 주었다.

유한회사 라그나로크라 쓰여진 명함에는, 연상헌 이사라고 쓰여 있었다.


······이사?


나는 명함 양면을 꼼꼼히 확인한 끝에 그게 오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처구니가 없어 사장을 보자, 사장은 탁자에 양손을 얼굴에 궨채로 미소짓고 있었다.

“대리에서 이사로 승진 축하해.”

“아니, 갑자기 이사라니······.”

“너무 부담가질 필요없어. 그냥 대외적으로 내 역할을 대신하는 것 뿐이니까.”

충분히 부담스러운 일인데?

내 근심 가득한 표정을 읽었는지, 비서가 말했다.

“업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도와드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진심으로 안심이 되네요.”

내 말에, 비서가 사이에 끼어드는 사장의 얼굴을 밀어내며 미소지었다. 그리고 사장은 커피잔을 양손에 잡은 채, 심술 가득한 표정으로 외쳤다.

“뭐야, 둘이 그린라이트야? 우리회사는 사내연애 금지야.”

“제가 좀 전에 적당히 하라고 했어요. 안했어요??”

“기억 안나.”

“사장님한테는 그런 변명은 말도 안되는거 알죠?”

나는 혀를 삐죽 내미는 사장과, 그런 혀를 당장이라고 잡아당기고 싶어하는 비서를 번갈아보다 입을 열었다.

“근데 여기가 회사인가요?”

“아니, 여긴 내 별장. 회사는 이따 바로 갈 거야, 우리 직원들에게 신입 인사시켜줘야지.”

그 말에 나는 문득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가 이사로 들어가는 게 괜찮을까요?”

“안 괜찮을게 뭐가 있어?”

“다른 직원들 입장에서는 새로 들어온 신입이 자기보다 높은 직급으로 훅 들어온 거 잖아요?”

“그런데?”

“기존에 있던 직원들에게는 충분히 기분 나쁠만 하지 않나요?”

내 말에 비서와 사장은 갑자기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시 나를 보고 웃었다.


사장은 짓궂게,

비서는 난처하게.


사장이 말했다.

“내가 당신을 채용하고 싶다고 하면서 뭐라고 말했었는지 기억해?

“죽다 살아남은 사람한테 멀쩡해서라고 그렇다고 했잖아요."

"그거 말고, 다른 직원한테 없는 상식이 있어서 뽑았다고 했잖아."

"뭐, 그러시긴 했지요."

솔직히 직원에게만 없는게 아니라 사장에게도 없는거 같다만.

“오늘 다른 직원들을 만나보면 이해하게 될거야. 우리 연 이사가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지······.”

사장은 통에서 각설탕을 집어 머그잔에 떨어뜨리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왜 당신을 뽑았는지 말이야.”


***


회사는 데이터센터 지하에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알법한, 모두가 쓰는 유명한 통신회사의 데이터센터였다.

검문소를 통과하며, 사장은 농담삼아 말했다.

“여기에 문제 생기면, 모든 전산와 통신망이 다 마비되는거야. 어때? 근사하지 않아?”

“······그게 근사한 일입니까?”

“우리한테는. 저들한테는 아니겠지만.”

사장은 불이 환하게 들어와있는 데이터센터 건물을 바라보며 섬뜩하게 웃었다.

비서는 직원 전용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내려갔다.

더 이상 내려가면 안된다는 표지판이 가로막을 때까지.

그러자 비서는 차에서 내려서, 그 표지판을 치운 다음 계속해서 내려갔다.

머리가 어지러워질때까지 빙빙 돌아 내려가고 나서야, 조명하나 없는 어두운 곳에 도착했다. 전조등을 켜지 않고서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비서는 익숙한 듯이 차를 몰았다. 아직 공사 흔적이 남아있는지. 전조등을 통해 주변에 여기저기 산처럼 쌓인 폐 자재들이 보였다.

“여기가 회사 맞아요?”

“응, 맞아. 비밀기지 가는 것처럼 흥분되지 않아?”

“다른 의미로 심장이 뛰긴 하네요. 이거 돌아갈 수 있는거 맞죠?”

차로 한참을 직진하자, 굳게 닫힌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비서가 손바닥만한 무전기를 들었다.

“도착했어. 열어.”

그러자 천천히 문이 천천히 위로 열리기 시작했다. 완전히 열린 것을 확인 한 뒤에, 비서는 차를 직진시켰다.

지하공간처럼 어두웠던 복도를 지나고 나자, 환한 조명과 함께 커다란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터 한 중간에 차를 세운 뒤, 비서가 말했다.

“다 왔어요.”

내가 문을 열고 내리려는데, 비서가 먼저 내려서 문을 열어주었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비서가 방긋 웃었다. 그리고 사장이 이쪽 문도 열어달라고 징징대는 말은 깨끗하게 무시했다.

그곳은 마치 공사를 하다만 사무실 같은 공간이었다. 아스팔트가 훤히 드러나있는 바닥과 벽과 달리, 천장은 깔끔하게 마감된 LED 조명으로 가득했다.

작은 학교의 운동장 만한 넓은 공간을 둘러본 다음, 나는 사장에게 말했다.

“여기가 사무실인가요?”

“그런 셈이지.”

“책상이나, 의자 같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없긴 왜 없어? 저기 있잖아. 여기도 있고.”

사장이 가리킨 곳에는 탁자랑 소파, 그리고 책상이랑 의자가 마치 어디 누가 버리고 간 물건처럼 여기저기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제대로 된 회사가 아닌거 같은데?

“더 필요하면 창고에 있으니 아무데나 가져다두고 쓰면 돼. 그럼 비서, 다른 직원들 전부 불러와. 우리 신입 소개 시켜줘야지.”

비서는 사장의 지시에 따라 공터를 돌아다녔다. 그러자 여기저기에 있던 사람들이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이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나는 다가오는 직원들의 인상을 살폈다.


보이쉬한 소녀,

날카로운 인상을 한 근육질의 아가씨,

성질 고약해보이는 할아버지,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 있는 음침한 인상의 청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험악한 인상을 한 거구의 사내.

······근데 사내가 웬지 낯이 익다.

고개를 갸웃하는 나를 보고 사장이 웃었다.

“누군지 알겠어?”

“설마, 저한테 이상한거 뿌렸던 그 사람입니까?”

“맞아.”

그렇게 비서를 제외한 다섯 명이 주르르 우리를 마주보고 섰다.


잠깐, 설마 이게 다야?

나랑 사장과 비서 합쳐도 채 열 명도 안되잖아?

그리고 심지어 저 소녀는 아직 성인도 아닌거 같은데?

나는 이게 어떻게 된거냐는 시선으로 사장을 봤지만, 사장은 씩 웃으며 짧게 박수를 두 번 쳤다.

“자,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을 소개할게. 연승현 이사야. 인사해.”

어쩔 수 없지. 추궁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나는 정장 옷 매무새를 다듬은 뒤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이 회사에 근무하게 된 연승현 이사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사장의 박수와 환호 소리가 공터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제일 먼저 반응 한 것은 소녀였다. 소녀는 씩씩하게 번쩍 손을 들고 질문했다.

“질문 있습니다!”

“뭔데?”

“이사가 뭐에요? 높은 거에요?”

그 말에 더벅머리 청년이 안경을 고쳐올리며, 더듬더듬 말했다.

“이, 이사면 사, 사장 다음으로 노, 높은 직급입니다.”

“그럼 사장 다음으로 약해빠졌다는 소리네.”

근육질의 아가씨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러자 나를 습격했던 거구의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반응도 제대로 못하더군.”

사장은 어처구니 없어하는 내 표정을 보고,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말했다.

“이제 이해했어?”


조졌네, 진짜.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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