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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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
작품등록일 :
2024.07.22 16:37
최근연재일 :
2024.09.15 18:28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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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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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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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화

DUMMY

살다보면, 억울할 정도로 불행한 일이 연달아 닥치곤 한다.


그 날이 그랬다.

며칠 내내 아주 지독한 꿈을 꿔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출근길의 지하철은 사고가 나서 운행도중 멈췄으며,

급히 택시를 잡으려고 했지만 잡히지 않았고,

헐레벌떡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골목길을 가로질러가다 실수로 부딪힌 사람에게,


“너 잘걸렸다, 새끼야.”


죽을 때까지 두들겨 맞았기 때문이다.


***


“헉!”

나는 그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곧 그게 악몽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몸을 옴짝 달싹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신이 들어?”

나는 눈을 떠 그 목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눈꺼플 위에 뭔가가 붙어있는 것처럼, 시야가 흐릿하게 보였고 목도 뭐에 고정된 것처럼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곧, 뜨거운 물수건이 내 눈가를 닦아주자 겨우 시야가 선명해졌다.


낯선 천장이었다.


새하얀 천장과, 링거대를 보고 나는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제야 나는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곧이어 온몸을 지긋이 기계로 찍어누르는 듯한, 어마어마한 고통이 엄습해왔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이 바싹 말라 비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목에서는 어두운 산길에서 고라니가 우는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신음소리만 흘러나왔다.

“많이 아파?”

미성의 목소리를 따라 눈동자를 굴리자 아슬아슬하게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밝은 금발과 앳된 외모의 미인이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달라붙는 니트와 플랫스커트를 입고 있어 마치 새내기 대학생처럼 보였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그 사소한 동작에도 어마어마한 통증이 느껴졌다.

“말은 할 수 있겠어?”

나는 한동안 고통과 함께 침을 삼킨 후에,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그쪽은 누구시죠?”

“생명의 은인.”

“네?”

“생명의 은인이라고. 내가 당신이 쓰러져있는걸 발견했거든. 병원에서는 조금만 늦었으면 위험했을 거라던데.”

나는 고개를 숙이려고 했지만, 고개조차 움직일 수도 없었다. 대신 그 반향으로 어마어마한 통증이 온몸을 강타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사례를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사례는 됐고, 어떻게 그렇게 다친건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

그 말에 나는 눈을 찌푸렸다. 그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여성이 말했다.

“일주일 간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고. 의사가 혹시 어디 트럭에 치였냐고 물어보더라. 어떻게 된거야?”

여성은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 앉은 채로 턱을 궤고 나를 보았다.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교차했다.


이 여자는 나이도 나보다 어려보이는데 초면부터 반말인지,

일주일이 지났다니 회사에는 뭐라고 말 하지,

하필 내게 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지.


그 외 온갖 질문과 짜증이 고통과 함께 머릿속을 뒤집어 놓았다. 하지만 나는 이내 체념하고 입을 열었다.

불행한 일을 겪은 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고서는 억울해서 버틸수 없었기 때문이다.


***


“너 잘 걸렸다, 새끼야.”

“예?”

달려가던 나는, 그 순간 하늘을 날았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다 날아오르는, 그런 과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주먹에 맞고 날아간 것이다.

당시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정신이 들고 보니 마치 차에 치인 것 같은 충격과 함께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NPC새끼 주제에 사람을 쳐?”

겨우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어깨를 돌리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다가오는 그의 표정을 보고, 분위기를 짐작하고 뒤로 기어가며 소리쳤다.

“사, 사람 살······.”

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달려와 나를 걷어찼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오른팔로 막았지만, 어마어마한 힘이 내 몸을 꿰뚫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내 몸은 또 다시 하늘에 떠 있었다. 그리고는 곧 쓰레기더미 속에 처박혔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타는 듯한 열과 쥐어짜는 듯한 고통은 생생했다. 하지만 목에서는 비명 대신 숨넘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아, 씨. 냄새나게. 거기 처박히냐.”

그는 내 머리채를 붙잡고 나를 쓰레기더미에서 끄집어내었다. 힘이 얼마나 센지, 나를 한 손으로 들면서도 여유로워보였다. 나는 머리카락이 뿌리 채 뽑힐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안간힘을 다해 빌었다.

“지, 지짜 재···재송합니다. 잘모탰슴니다···.”

그는 내 말에 코웃음 쳤다.

“뭘 잘못했는데?”

“부, 부디히고 사, 사가를······.”

내가 주저하는 사이에 그가 다른 한손으로 내 뺨을 후려갈겼다. 말이 뺨이지, 얼굴 통째가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나는 날아가서 길 한가운데 쓰러졌다. 이빨도 부러졌는지 입안이 피로 왈칵하고 가득 찼다.

“그건 당연한거고 새끼야. 진짜 뭘 잘못했는지 몰라?”

“어, 으······.”

남자는 사납게 웃으며, 내 귀에 속삭였다.

“주제를 알아. 병신아.”

다시 한번 걷어 차여 날아가면서,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하여간 이번 월드world는 이런 거 말곤 마음에 안든다니까. 진짜.”

그의 영문 모를 혼잣말이었다.


***


“이상한 말만 중얼거리고 완전 정신이 이상한 놈이었다니까요, 진짜 재수가 없으려니까.”

“······맞아······.”

“맞아요. 처맞아 죽일 놈이었다니까요.”

“맞아! 드디어 찾았어!”

“예?”

여성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난 다음, 흥분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서 침대를 흔들었다.

“진짜야? 정말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여성이 침대를 흔들때마다 온몸이 부서지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으어어, 하고 꼴사납게 신음했다.

참다 못해 죽일 생각이냐고 비명을 지르고 나서야, 여성은 내 침대를 손에 놓고서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 좀 흥분해서.”

“흥분 두 번만 하면 사람 잡겠습니다.”

“어떻게 알았어? 종종 직원한데 그런 소리 들었는데.”

“직원이요? 어디 사장이십니까?”

“맞아. 회사 하나 운영하고 있지.”

나이도 얼마 안되어 보이는데 사장이라니, 어디 재벌집 따님이라도 되는 건가?

이제 보니 입고 있는 옷이나, 외모에서 제법 부티가 나긴 한다.


아, 현타오네.


누구는 쥐꼬리만한 월급 받으려고 매일매일 뼈 빠지게 일하다 이렇게 병신이 되었는데, 새파랗게 젊은 애는 부모 잘만났다고 사장이라니······.

현실의 불평등함에 좌절하고 있는 내게, 여성이 얼굴을 불쑥 들이 밀고서 말했다.

“나한테 말한 거, 정말 사실이지?”

“당연히 사실이죠. 이렇게 다친 걸 직접 보셨잖아요?”

“다친 건 다친 거고, 그거 말고 널 두들겨 팬 자식이 말한 거 말이야. NPC니 월드니 하는 거, 정말 그렇게 말한 거 맞지?"

“저 기억력 좋아요. 한 번 들은 건 절대 안 까먹습니다. 이번 일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도 없고요.”

내 말에 여성은 한참동안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바라보다가,


“그럼 당신, 내 밑에서 일하지 않을래?”


느닷없이 이직을 제안했다.

“······예?”

나는 갑작스러운 말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아니 이 여자가 갑자기 뭐라는 거야?

“지금 헤드헌팅 하시는 겁니까?”

“맞아. 우리 회사에는 당신 같은 인재가 필요해.”

“인재요? 제가요?”

“응.”

“혹시 절 아세요?”

“아니, 몰라.”

여성의 태연한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그럼 저 같은 인재라는게 무슨 뜻입니까?”

“멀쩡하잖아.”

“지금 제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깁스를 하고 있는 손을 슬쩍 들어보였다. 그러자 여성은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괜찮아. 여기 병원은 목숨만 붙어있으면 감쪽같이 고쳐주니까. 내가 멀쩡하다고 한 건 이거지.”

여성은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되물었다.

“지능이요?”

“상식.”

“······그게 없는 사람도 있습니까?”

“우리 회사에는 있는 사람이 드물던데.”

내 직감이 이 여성과 얽히면 좋을게 없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성숙한 사회인의 방법으로 거절했다.

“제안은 고맙습니다만, 제가 꼴이 이래서 당장은 결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고 이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일단 내 말 좀 들어봐. 그러면 생각이 달라질 걸.”

여성은 그렇게 말하며, 의자를 당겨 내게 바짝 다가와 앉았다. 나는 당장이라도 이 여자한테서 도망가고 싶었으나, 침대에 미라처럼 묶여있는 상황에서 그건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딱 잘라 거절해야 겠어.


사이비 종교나, 영업 전화도 그렇고 이런 경우에는 아예 처음부터 확실히 거절해야한다. 괜히 돌려서 말해봤자 여지만 주고 시간만 빼앗기고 만다.

“제안은 고맙습니다만······.”

“아, 참고로 말하지만 병원비는 내가 냈으니 걱정하지마. 나한테는 푼돈 정도 밖에 안되서.”

······여기서 갑자기 그런 말을 꺼내는건 좀 비겁하지 않나?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쉰 뒤에, 최대한 관심없는 척 물었다.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사람을 찾는 일.”

전혀 의외의 말이 나를 당황케 했다. 나는 여성의 말을 두어번 더 곰씹어본 뒤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사채업 하십니까?”

내 말에 여성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사채업이라니. 돈은 충분한데 내가 왜 그런 일을 해?”

“그럼 뭣 때문에 사람을 찾으시는데요?”

“으음······ 나쁜 놈이라서?”

여성의 말에, 나는 재벌집 자식이 박쥐로 변장한 뒤 범죄자를 소탕하는 한 만화를 떠올렸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찾아서 손 봐준 다음, 나쁜짓 하지 말라고 야단이라도 치나요?”

"비슷하지만 좀 달라. 일단 사로잡는게 목표니까. 사냥한다는 표현이 맞겠네. 필요하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고문도 좀 하고.”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고문요?”

“필요하면. 하지만 아마 필요하지 않을까?”

여성의 태연한 말에, 나는 기가 차서 소리쳤다.

“그건 범죄잖습니까!”

“그건 이 세상이 멋대로 정한 거야.”

사상범이 테러를 저지르고서나 할 법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뻔뻔한 변명이었다.

내가 말했다.

“저는······, 저는 못합니다. 아니, 안해요.”

“의외네. 나는 바로 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회사 때려치고 범죄자가 되라구요? 제가 왜 그런 미친 짓을 합니까?”

내 말에 여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손바닥을 펴보인 다음, 엄지를 접었다.

“첫째, 돈을 많이 준다.”

“아니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둘째, 미인 상사가 있다.”

“······설마 자기 말하는 거 아니죠?”

내 말을 깨끗하게 무시하며, 여성은 마지막으로 중지를 접었다.

“우리가 찾는 사람이 널 그 꼴로 만든 놈이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고문은 제가 해도 될까요?”

“당연하지.”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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