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자에게는 아내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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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kapo
작품등록일 :
2024.07.23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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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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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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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후(邂逅), 그러나 오직 나만이 기억하는.

DUMMY

수십 대의 마차가 들어섰다.

하나둘씩 마차에서 검은 관을 든 짐꾼들이 내렸다.

그 수만 족히 수백.


정원을 가득 메운 관들의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게임에서 자주 등장하던 용사 물의 프롤로그 같다고 할까.


괴물에게 살해당한 부모님.

이에 분노하며 복수를 다짐하는 어린 소년.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소년에게 나타나 힘을 선사해주는 여신.


마지막으로 동료들과 함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주인공의 모습.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게임 숫자만 해도 족히 열댓 가지는 되었다.

그만큼 눈앞의 광경은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스킵 버튼이 있다면 누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더라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버튼 같은 게 존재할 리 없었다.


“엄마! 아빠!”


소녀가 관을 향해 달려간다.

당연하게도 주변에서 관을 지키던 시종들에 의해 저지되었다.


눈물 콧물 되는대로 흘리면서 소리를 치는 소녀의 모습은 어렸다.

이제 겨우 5살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5살이면 이 시대를 기준으로도 충분히 어린아이다.

그런 어린아이가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었다.

꽤 상당한 비극이다.


한참을 울며 떼쓰던 소녀가 누군가에게 밀렸는지 엉덩방아를 찧었다.

더 큰 울음을 터트릴 거라 예상한 것과는 달리 소녀는 울지 않았다.

대신 충격을 받은 것처럼 사람들을 올려다보며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처량한 소녀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관을 한곳으로 모아 그 위에 짚을 쌓는다.


미리 짚에 기름을 먹였는지 횃불을 던지자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가 치솟으면서 뭐라 말할 수 없는 역겨운 냄새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시작하겠습니다.”


부적을 든 이들이 등장했다.

마차에서 함께 내렸던 동료 퇴마사들이었다.


자세히 보니 익숙한 면면들이 몇 보였다.

며칠 전 부모님과 함께 웃으면서 다과를 즐기던 이들이었다.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생기가 넘쳤던 그들의 얼굴은 송장처럼 차갑게 굳어있었다.


장례식이라는 이름의 화장은 계속되었다.

시체가 타고 타올라 재마저도 남지 않을 때까지.


-큰일이군. 전멸이라니. 무언가 정보가 잘못됐던 것 아닌가?


-잘못됐다? 겨우 그 정도로 끝날 일인가? 이번에 잃은 전력을 복구하는데 대체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무튼 당분간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는 게 좋겠어.


뜨겁게 불타오르는 화염과는 대조되는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


화장이 거의 끝나갈 무렵 등장한 이들의 말이었다.

하나같이 얼굴에 새하얀 가면을 쓰고 있는 그들은 재조차 남지 않은 빈 공터를 보며 몇 마디 던지더니, 곧 사람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장례식에서 응당 보여야 할 사자에 대한 예우 따위는 없었다.


이 시대에서 사람의 생명이란 겨우 그 정도의 가치밖에 없었다.

요괴가 존재하고, 괴이가 존재하고, 그들이 버젓이 날뛰는 세계에서 인간이 한없이 무력하고 연약한 존재였다.


그건 요괴를 사냥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퇴마사여도 마찬가지다.

도리어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괴물들과 자주 접하기에 위험도는 더 높다.


비극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일상이 되었고.

끝내 지인의 죽음에도 눈물 하나 흘릴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보통’이었다.


관을 모아 화장을 하는 이유도 전우에 대한 마지막 배웅 같은,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그저 영력을 가진 퇴마사의 시체를 잡귀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일 뿐. 만약 퇴마사가 아닌 일반인의 시체였다면 까마귀들의 밥이 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


그러한 곳이었다.

내가 태어난 「명월가」라는 이름을 가진 퇴마사 가문은.


“히끅.”


숨죽여 울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떠난 빈 공터에는 어느새 나와 아까 전의 어린 소녀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소녀에게 다가갔다.

이유는 그녀가 혈육 상으로 나의 ‘여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후에 복수라도 꿈꾸게 되면 귀찮아진다, 딱 그 정도의 생각이었다.


“참 빌어먹을 세계라고 느끼지 않아?”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햇빛을 받지 않아 뽀얀 얼굴에, 양 볼에 남아 있는 젖살.

너무 울어서 팅팅 분 눈가를 포함해도 꽤 귀여운 아이였다.


“...누구?”

“가족이래. 너랑 내가.”

“...가족?”

“그래.”


내가 여동생을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소녀가 나를 몰라보는 것도 당연했다.


소녀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울고 있는 아이를 상대할 때는 먼저 눈높이부터.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나만의 노하우였다.


바닥에 주저앉자 소녀의 눈동자가 내게 고정된다.

이슬이 맺힌 투명한 눈망울에 나라는 인물이 투영된다.

저 아이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추어지고 있을까.


“...가족이면 오라버니인 거야?”

“그런 셈이려나.”


뺨을 긁적였다.

새삼 들어보니 낯간지러운 호칭이 아닐 수 없었다.

5살짜리 꼬마애한테 오라버니 소리를 듣는 날이 올 줄이야.


“예전에 엄청 큰 잘못을 저질러서 따로 떨어져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나와 여동생이 가족임에도 그동안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던 이유였다.


“뭐, 비슷하려나.”


사실과 조금은 다르지만 구태여 정정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말해봤자 어린 그녀는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일어설 수 있겠어?”

“...응.”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운다.

라고 해도 거의 키가 같았기에 손을 잡고 함께 일어난 모양새였지만.


“저기, 오라버니.”

“왜?”

“오라버니는 이름이 뭐야? 나는 소빈, 천소빈.”


빈 화장터에서 본당으로 돌아오는 길.

질문을 받는 나는 잠시 고민했다.

순수하게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였다.


내가 이름으로 불린 게 언제더라?


아주 아기였을 때를 제외하면 딱히 누군가에게 불렸던 기억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혼자서 쭉 살아왔었으니까.


“뭔 산이었는데...”

“산?”

“아, 적산이었다. 천적산.”

“이상한 이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소빈이 꺄르르 웃었다.


어린아이답게 감정의 변화가 빠르다.

아니면 말로만 듣던 가족의 등장에 슬픔보다는 호기심이 앞선 걸지도.


일각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했다.

주로 질문하는 건 소빈이었고, 나는 적당히 대꾸해주는 느낌이었다.


“오라버니는 슬프지 않아?”


그리고 그 수많은 질문 중에 이러한 것도 있었다.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고아가 되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내가 신기하게 느껴진 듯했다.


“슬프지.”

“...별로 안 슬퍼 보여.”

“...그래?”

“다른 사람들도 이상해. 친했던 아저씨들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는데도 울지 않아.”


어린 소빈은 벌써부터 죽음이라는 개념을 깨닫고 있었다.


“죽음에 익숙한 거야.”

“...이런 거에 익숙해질 수가 있어?”


묻는 소빈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인다.

싸늘한 시체가 되어 불타오르던 부모님의 모습이라도 떠올리고 있는거겠지.


“안타깝게도 사람은 적응의 생물이라서, 그 어떤 비극도 반복되다 보면 무덤덤해져.”

“...”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마음을 죽여버리는 거야. 그렇게 하면 어떤 슬픈 상황에서도 울지 않을 수 있어.”

“...잘 모르겠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처럼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


어떤 전생을 지녔는가?

솔직하게 말하면 기억나는 건 그렇게 별로 없었다.

그건 내 기억력이 부족해서가 아닌, 기억해야 할 전생이 너무나 많았던 까닭이었다.


세기의 영웅이 된 적도 있었고, 희대의 악당이 된 적도 있었다.

구한 사람의 숫자만큼 사람을 죽였고, 사람을 죽인만큼 사람을 구했다.

스쳐 지나간 인연의 숫자만 물경 몇만에 달하는데 그걸 어떻게 기억할까.


수년이 지나 17살이 된 나는 어떠한 연회장에 있었다.

이 시대에서는 17살부터 성인으로 본다.

아이의 테를 벗어나 한 사람의 사람으로서 자립하게 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피곤해.”

“오라버니 괜찮아요? 이거 드셔보실래요?”

“아, 고마워.”


13살이 된 소빈이 건넨 접시를 받아든다.

오색으로 반짝이는 떡은 쫄깃쫄깃해서 맛있었다.

그동안 주로 먹었던 오래되어 푸석푸석한 백설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황궁에서 파견된 궁중음악단이 자아내는 음악 소리와 각 지방에서 몰려든 관리들의 웃음소리로 연회장은 활기를 띄우고 있었다.


그러한 연회장의 한복판에서 나와 소빈은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소빈을 보고 말을 걸려던 이들이 나를 보고서는 흠칫 놀라 돌아섰다.

입가에 비웃음을 띄우면서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는 게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뭐, 명월가의 무능한 자식이 어쩌고 하고 있겠지.

이 자리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내가 이토록 경원시 되는 데는 당연하게도 이유가 있다.


내가 태어난 명월가(明月家)는 나라에서 두 손가락 안에 꼽히는 퇴마 명문가다.

요괴를 사냥하는 것을 업으로 삼았고, 이를 명예로 여겼다.


가문의 피를 이은 자식들은 모두 하나같이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났었고, 이는 근 500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단 한번의 예외도 없었다. 천적산이라는 돌연변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뭐, 나야 편하기는 한데.’


천적산에게 퇴마의 재능은 없다.

그것도 그냥 없다, 정도가 아니라 아예 퇴마사가 되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요괴와 대항하기 위한 힘 ‘영력(靈力)’을 다루기 위해서는 영골(靈骨)이라는 신체기관이 필요했다. 그게 없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영력을 깨우칠 수 없고 퇴마사로서 인정받지도 못한다.


그리고 천적산에게는 그 영골이 없었다.

이름 높은 퇴마사 집안에서 태어난 자식에게 영골이 없다니.

전례 없는 사태에 사람들은 당황했고,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허나 후천적으로 영골을 만드는 방법 따위는 없었고, 결국 천적산이라는 남자는 명월가에 있어서 남들에게 숨겨야 하는 수치가 되었다.


수군거리는 소리를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구석진 자리로 이동한다.


누군가는 저주로 받아드릴 현 상황을 나는 도리어 축복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요괴와 싸우는 건 상상 이상으로 힘들고, 괴로운 일이다.


수백, 수천 년 동안 요력을 축적하여 터무니없는 능력과 요술을 사용하는 그들은 어쭙잖은 퇴마사 따위는 단숨에 핏덩이로 만들 정도로 강력하다. 어설픈 재능으로 요괴 퇴치를 나서 봤자 남는 건 시체가 되어 화장되는 미래뿐이었다.


그럴 바에는 아예 지금처럼 다소 무시를 당할지언정 유유자적하게 사는 편이 낫다.


“놔주세요!”

“놔주면 어떻게 하려고?”

“당연히 감히 오라버니한테 저런 소리를 지껄이는 녀석들에게 한마디 해주려고 그러죠!”


뭐,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뿐인 것 같지만.

분기탱천하여 앞으로 나서려는 소빈의 팔을 붙잡아 제지한다.


수년 전 부모님의 장례식 이후로 소빈은 나를 잘 따르게 되었다.

재능도 없는 무능한 오라버니가 실망스러울 만도 한데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오늘처럼 나를 무시하는 소리가 들리면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들기까지 했다.


입술을 앞으로 내밀면서 삐져있는 소빈을 적당히 달랜다.


-오오오.


그때 모인 이들이 연회장의 입구를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들이 이곳 연회장을 찾은 진짜 목적이 도착한 듯싶었다.


“누구예요?”

“귀영가의 사람일걸?”


한(嫻)나라에는 수도를 양분하는 두 개의 거대한 퇴마사 가문이 있다.

하나가 내가 있는 「명월가」, 또 하나가 「귀영가」다.


-저 아이가 바로 성인이 되기도 전에 천(天)에 도달했다는 천재인가...!

-듣기로는 설산에 있던 한빙수왕(寒氷獸王)을 잡았다고 하더군.

-궁정에서도 애를 먹었다는 대요(大夭)를 말인가?


조금씩 거리를 벌리는 사람들 사이로 한 명의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황금빛의 봉황이 새겨진 검은 한복을 입고서 인파들 사이를 걷는 소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군계일학(群鷄一鶴).


약관조차 되지 못한 소녀보다 수 배는 넘게 산 노괴들을 존재감만으로 압도하고 있었다.


저게 연월령인가.


귀영가의 두 자매 중 차녀로, 성인이 되자마자 퇴마사로서는 최상위라 불리는 천(天)에 도달한 괴물.

수년 동안 설산에서 군림하며 백성들을 괴롭혔던 한빙수왕을 토벌한 건으로 현재 그녀의 인기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


잠시 주변을 살피며 무언가를 찾던 그녀의 눈이 순간 나와 마주쳤다.


“초대에 예를 표하도록 하지. 귀영가의 연 월령이다.”


좌중을 헤치며 내게 도달한 연월령이 내게 목례했다.

어디까지나 오늘의 연회는 나의 성인식.

주인공격인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월령의 갑작스러운 인사 자체는 그렇게 놀랍지 않았다.

내가 놀란 건 완전히 다른 이유였다.


“네가 왜 여기에?”


가까이서 월령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러한 말을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곳에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겉모습이 아무리 바뀌었어도 몰라 볼 리가 없다.


그건 분명 과거에 나와 연(緣)을 맺은 사람.

그것도 모든 인연 중 가장 깊다는 부부의 인연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모두가 선망하고, 동경하는 천재 퇴마사는 과거 나의 아내였었다는 소리였다. 물론 그녀 자신은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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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후(邂逅), 그러나 오직 나만이 기억하는. 24.07.23 7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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