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자에게는 아내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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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kapo
작품등록일 :
2024.07.23 01:49
최근연재일 :
2024.08.0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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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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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탕도화(赴湯蹈火), 때로는 불길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가야할 때도 있다.

DUMMY

“이쪽에 있는 서류는 정리가 끝났다. 다음은?”


귀영가의 어느 방.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여있는 종이들을 처리한 월령이 시종에게 물었다.


“남은 서류는 그게 전부예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러한 월령의 맞은편에 앉아 서류정리를 돕고 있던 여성의 말에 월령은 어깨에 들어갔던 힘을 빼고 기지개를 켰다. 장시간 펜을 쥐고 움직였던 손가락에서 기분 좋은 뼈 소리가 났다.


“정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작업이 끝난 서류들을 다른 시종들에게 넘기고 온 시종이 재차 감사의 말을 전한다.


가문의 사람으로서 가문의 일을 처리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일에 이토록 감사하는 게 조금 의아해할수 있으나 여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아가씨께서 자리를 비우시면 저택이 제대로 돌아가지를 않는다고는 들었지만 진짜였군요.”

“언니가 보이지 않기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지?”

“이제 한 2개월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그런가.”


월령이 머리를 짚었다.


“참고로 당주님께서는...”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 귀영가에 귀영가의 피를 물려받은 인물은 월령이 유일했다.


그녀보다 두 살배기 언니의 경우는 1년 중 집에 돌아오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며,


조금 전 시종이 언급하려고 했던 그녀의 아버지, 그러니까 귀영가의 당주 같은 경우는 그보다 한술 더 떠 언제 얼굴을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간혹 주기적으로 날아오는 식신으로 그저 살아있다는 걸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어린애들도 아니고 진짜.”

“무슨 말씀하셨을까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되묻는 시종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현재 귀영가는 가주도, 장녀도 아닌 차녀에 불과한 월령이 대행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월령이 자리를 비운다는 건 가주의 결정이 필요한 일들이 모조리 멈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고 보니 가셨던 일은 잘 되셨어요?”


방랑벽이 도져서 대책없이 떠돌아다니는 두 사람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는 월령.

그러한 월령을 보며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시종이 새로운 화두를 꺼내들었다.


“무슨 말이지?”

“이전 명월가에서 정식으로 초대받아 성인식에 갔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거 말인가.”


이미 다 식어버린 녹차를 손에 들면서 월령은 며칠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본인이 주인공인 연회에서조차 철저하게 무시당하던 한 남자.

소심하고 겁도 많아, 대놓고 비웃는 이들에게 한 마디도 못하던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사실은 누구보다 노력하고 재능도 뛰어난 천재(天才)였다.

자신보다도 수 배는 큰 흑랑을 상대로도 여유로웠던 그의 모습은 머릿속에 생생했다.


“그래서 소문으로만 듣던 명월가의 그 사람은은 어땠나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고 할 수 있겠지.”


월령의 말을 들은 시종이 순간 기묘한 얼굴을 했다.


“왜 그러지?”


“아뇨, 아가씨께서 그렇게 누군가를 칭찬하시는 경우는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아서 소인의 생각 없는 행동으로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사죄토록 하겠습니다.”


”본인은 괜찮으니 그렇게 요란 떨지 않아도 된다.“


시종이 무릎을 꿇으려는 것을 손을 뻗어 제지한다


가주 대행으로서 위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건 물론 중요하다.

한번 무너지면 그것을 되찾는 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뿐더러,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뒷이야기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허나, 그렇다고 그게 오랫동안 월령을 보필해온 시종을 책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애초에 월령은 권위를 지킨답시고 시답잖은 일에 집착하는 이를 무척 싫어했다.


”그렇게 가만히 말고 같이 하도록 하지 않겠나? 나 혼자 먹기에는 양이 좀 많다.“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시종을 손수 일으켜 세운 월령이 어디선가 쟁반을 가져왔다.

쟁반에는 엿이나, 과자 등의 주전부리들이 가득했는데, 이는 서류를 처리하던 중간에 또 다른 시종이 들러 가져온 것이었다.


”감히 저 같은 것이 어찌...“

”...같은 것인가는 나쁜 말이다. 적어도 내 앞에서는 쓰지 않았으면 하는군.“

”화, 황송할 따름입니다.“

”작업은 끝났으니 조금 더 편히 있어도 된다. 이곳에는 눈치를 볼 다른 이도 없으니 말이다. 아니면 이대로 돌아가서 더 일하는 편이 취향에 맞나?“

”그, 그건 아닙니다!“


시종이 황급하게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사람은 누구나 일하기를 싫어한다.

또한, 일을 하면 이에 대한 보상을 받기를 원한다.


보상이라고 대단한 포상 같은 건 아니다.


지금과 같이 조금의 휴식, 수고에 대한 약간의 치례.

그것만으로도 쉽게 충성심을 얻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 요전번에 말이죠...“


월령과 조금 떨어진 옆자리에 앉아 다과를 집어먹던 시종의 입이 열렸다.


얼마 전에 누구누구가 신입으로 들어왔다느니, 퇴마사가 요괴와 싸우는 모습을 봤는데 엄청 멋있었다느니, 말도 안 되는 일로 자꾸 트집 잡는 나쁜 선임이 있다느니 같은 별로 중요한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한 일이 있었나.“

”네. 그렇다니까요!“


어느새 완전히 긴장이 풀린 시종의 말을 경청한다.

월령이 수없이 많은 시종을 놔두고 구태여 아직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시종을 데리고 이유였다.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말의 파급력을 알기에 입조심을 하는 경향이 있다.

불만이 있어도 쉬이 밝히지 않으며, 문제가 발생해도 본인에게 해가 갈까 감추기 급급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지금의 잡담은 서류로는 알 수 없는, 귀영가의 숨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인셈이다.


”아, 벌써 시간이! 슬슬 돌아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신나게 떠들던 시종이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아무리 아가씨의 청으로 왔다고 하더라도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버렸다.

이래서는 돌아갔을 때 선임들에게 혼날 게 분명했다.


”오늘 정말로 즐거웠습니다.“

”그래. 본인도 즐거웠다. 이후에도 종종 같이 차라도 하지 않겠나?“

”저, 정말인가요?“

”본인도 적적함을 달랠 친구 정도는 갖고 싶군.“


시종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월령이 자신을 총애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뭐, 상관없으려나.’


월령이 이와 같은 권유를 한 이유는 지극히 단순했다.

시종의 입이 예상보다 더 가벼웠으니까.

자택의 동향을 확인할 때 참고할만한 정보원으로 당분간은 쓸만하겠다.


딱, 그 정도의 생각이었다.


”여, 영광입니다.“


허리까지 90도까지 꺾어가며 기뻐하는 시종의 모습이 사라지고 월령은 자리로 돌아간다.


”...사람을 만난 지 너무 오래되었나.“


어렸을 때부터 방랑벽이 심했던 두 사람 때문에 월령을 반 강제적으로 가주의 역할을 수행 해야만 했다. 항상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려야 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따라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이와 놀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느샌가 사람을 자신에게 쓸모가 있냐, 없냐로 판단하는 몹쓸 인간이 된 것 같아 입맛이 씁쓸했다.


”아가씨!“


그때 닫혔던 장지문을 열고서 누군가가 다급하게 월령을 부른다.

조금 전의 시종이 돌아왔나 싶었으나, 다른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지?“

”대문 밖에 웬 소년이 안으로 들여 보내달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소년이?“

”예, 그런데 그것이...“

”말 흐리지 말고 똑바로 이야기하라.“

”머리가 조금 이상이 있는 것 같아서, 아무튼 직접 보고 판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다.“


고개를 끄덕인 월령의 신형이 일순 모습을 감췄다.

시종이 눈을 잠깐 뜨고 감은 그사이에 방에서 사라진 월령이 등장한 곳은 시종의 바로 앞.


”대문이라고 했나? 위치는 어디지?“

”남쪽입니다.“

”안내를 부탁하지.“

”네. 알겠습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시종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역시, 우리 아가씨는 굉장하다면서.


”저, 저희 마을을 구, 구해? 뭐였지. 아, 붉은 피, 안개가!“

”...“

”예쁜 누나다. 꿈인가...? 이히힛 꿈이겠지.“


월령은 말없이 횡설수설 떠드는 소년을 바라봤다.

몇 번이나 기운 자국이 보이는 옷, 곳곳에 묻은 흙먼지.

얼마나 오래 신은 건지 낡은 신발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거리에서 동냥질을 하다가 머리가 맛이 간 아이처럼 보였다.


”이게 어느 안전이라고! 예의를 갖추지 못할까!“

”되었다. 물러나도록.“


소리를 지르는 시종을 뒤로 무른 월령이 소년의 앞에 섰다.


”그래.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이냐.“

”...여기는?“

”귀영가다. 들어본 적 없나?“

”...귀영, 퇴마사신가요?“

”그렇다.“


소년의 탁했던 붉은 눈에 총기가 돌아온다.


”도, 도와주세요! 온통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서!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급해요. 빨리 도와주시지 않으면 마을이...!“

”마을?“

”아아아! 또, 또야! 제발 그만! 붉은색이, 피가, 시체가! 엄마, 아빠!“


허나 그러한 총기는 이내 돌연 소리는 지르는 소년의 목소리에 가려져 지워졌다.

보통의 요괴퇴치와 이번 일은 결이 다르다는 걸 인지한 월령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아, 맞아! 팥떡! 팥떡을 가져가야 했어. 그래야 할머니가 혼나? 아니 기뻐했던가?“

”준비해주도록.“

”아가씨.“

”본인의 지시에 토를 달 생각인가?“

”아닙니다.“


그렇게 시종을 보낸 월령의 눈에 아까전에 보이지 않았던 무언가가 보였다.


”쪽지?“


바닥에 엎드려 울부짖는 소년의 손에 보이는 흰색의 종이쪼가리.

그것을 펼쳐 보이자 보이는 건 유려한 글씨체로 적혀있는 편지였다.


【붉은 태양 아래 서쪽으로 오래된 잣나무】

【검은 까마귀가 세 바퀴를 돌아 울부짖으니】

【붉은 안개가 피어올라 지옥을 강림시키더라】

【동이 트면 포효하던 괴수들은 진정되리】


암호문이었다.


”퇴마사가 있던 것인가.“


등급이 높은 요괴의 경우는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

당연하겠지만 글 또한 읽어낼 줄 알기에 전쟁 초반에는 중간에 전략이 노출되어 공략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이 암호문.



이걸로 확실해졌다.

소년의 말들이 그저 정신병자의 헛소리가 아니라는 게.


”잠시 나갔다 오겠다.“

”다른 이들을 부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편지를 고이 접어 품속에 간직한다.

암호문의 수준을 미루어 보아 이 편지의 주인은 상당한 실력자다.

어중이떠중이들을 데려가 봤자 희생자만 늘어날 뿐이겠지.


‘게다가.’


소년과 편지에 계속 등장하는 붉은 안개.

소년의 이상행동과 연관이 없지 않아 보였다.

만약 월령의 예상대로 붉은 안개가 사람의 정신에 간섭하는 종류의 것이라면 인원수가 많으면 도리어 불리했다.


”본인이 돌아올 때까지 이 소년을 돌봐주도록.“


그러한 말과 함께 월령의 신형이 사라졌다.


**


같은 시각.


”도련님의 말씀대로 붉은 안개를 관측할 수 있었습니다. 위치는 수도로부터 서쪽으로 약 오백리 정도 떨어진 마을. 말을 타고 이동해도 족히 일주일은 걸리겠죠.“

”...일주일인가.“


딱 남은 월령의 수명이 그쯤이다.

이 정도면 거의 확정이라고 봐야 했다.


”가실 예정이십니까?“

”가야지.“

”...알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잠깐만!“

”...?“


여행의 채비를 갖추고 떠나려는 나를 붙잡는 목소리가 있었다.


”오라버니 또 말도 없이 어디 가시려는 건가요?“

”...소빈?“


전혀 뜻밖의 인물에 등장한 나도 모르게 당황해버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조금 전까지 코앞에 있던 여인의 모습은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진짜로 귀신이 아닌가 싶다.


”저도 데려 가주세요.“


말에 올라탄 나를 올려다보며 소빈이 애원한다.


”...그건 안돼.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더더욱이죠! 약해빠진 오라버니 혼자 보낼 수는 없어요! 저번에 산에 가셨다가 다쳐서 돌아오기도 했잖아요?“


소빈의 눈을 바라본다.

고집으로 가득한 것이 웬만해서는 물러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소빈은 어리지만 철부지는 아니다.

본인이 할 일과 안 할 일은 명확하게 구분하고, 오늘처럼 떼를 쓰는 일도 거의 없다.

나만 관련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져서 문제지.


”그래. 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오랜 여동생과의 실랑이 끝에 항복 선언을 한 내가 최후로 내건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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