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자에게는 아내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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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kapo
작품등록일 :
2024.07.23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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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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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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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경각(命在頃刻), 곧 숨이 끊어질 듯이 위태위태하다.

DUMMY

눈앞의 광경을 목도한 월령은 의문이 들었다.


왜 저 사람이 이런 곳에 있는 거지?

설마 혼자 도망치다가 길을 잃어버린 걸까?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멍청해도 자진해서 숲에 들어간다는 선택을 할 리가 없다.

요괴의 출현 이후 숲은 더이상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으니까.


월령처럼 고도의 훈련을 받은 이조차 숲에 들어가는 건 오늘과 같이 부득이한 경우일 때뿐이었다.


월령의 시선이 앞으로 향한다.

흑랑과 대치 중인 적산의 모습이 뇌리에 새겨진다.


자신보다 몇 배나 큰 몸집을 자랑하는 흑랑을 눈앞에 두고도 그는 겁먹지 않았다.

도망치려고 하면 곧장 붙잡힐 거라는 걸 예감하고 있는 걸까. 아니, 이 역시 조금 달랐다.


“...붙잡고 있어?”


흑랑의 돌진, 그것을 피하는 적산의 움직임.

공격하는 측과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회피하는 일체의 공방.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월령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언뜻 이리저리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는 그가 그의 뒤편만큼은 흑랑에게 내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어쩌다 빈자리가 생겨도 빈틈을 빠르게 메꾸었다.


마치 흑랑이 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설마?’


돌연 한가지의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정말로 그가 흑랑을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거라면?


흑랑은 빠르다.


좁은 숲길을 벗어나 일행들이 있는 넓은 정상에 도달한다면 흑랑을 막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혹시라도 퇴마사들이 자신을 잡으러 온 것으로 착각한 흑랑이 산을 타고 도망을 가러비면 이 일대에 비상이 걸린다.


실력있는 퇴마사들을 소집하고, 흑랑의 소재지를 파악하여 붙잡을 때까지 일반인들은 언제 습격할지 모르는 늑대를 두려워해야겠지. 그 과정에서 몇 명의 사람이 희생될지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하지만 그게 말이 돼?’


그의 행동원리는 알아냈다.

하지만 그게 현재 실시간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을 이해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숲으로 들어간 자신이 돌아오기까지 흑랑을 붙잡아서 시간을 끈다.

희생자를 만들지 않기 위한 최선의 수임에는 틀림없다.


그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서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상대는 그 무엇도 아닌 흑랑이다.

단순히 강함만 따진다면 「중요」 중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는 요괴.


특유의 경이로운 속도와 영악함에 수많은 요괴들을 상대해본 자신조차도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러한 요괴를 상대로 단신으로 맞선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게 최선이라고 알아도 실행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다.

그런데 명월가의 적자, 천적산은 그 일을 해내고 있었다.


쿵!


나무가 우지끈 소리를 내면서 부러진다.

그 흑랑이 본인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딪히다니,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자세히 보면 적산과 흑랑 모두 지친 티가 여력했다.

월령이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둘의 공방이 계속 이어졌다는 증거였다.


“힘드냐?”


큰일이 나기 전에 얼른 도와줘야겠다면서 월령이 뛰어나려려던 순간.

적산의 말이 들려왔다.


‘앗.’


직후 월령은 반사적으로 수풀 속에 몸을 숨겼다.

어째서인지 보면 안되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겁쟁이라고, 게으르다고 비웃고 있던 그가 사실은 이런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월령의 현재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했다.


정말로 저 사람은 정체가 뭘까.


“나도 힘들다. 그런데 뭐, 어쩌겠냐. 나랑 이렇게 술래잡기하면서 놀고 있어야 하는 게 네 운명인걸.”

“크르르.”


흑랑이 털을 곤두세웠다.

누가 봐도 달려들려는 흑랑의 자세를 보고도 그는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그거 안 통한다니까. 그러네.”


은밀한 사냥꾼으로서 악명이 자자한 흑랑과, 무재(武才)로써 다른 의미로 유명한 적산.

두 사람의 싸움의 주도권은 예상외로 적산에 있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지?’


조금 전까지 흑랑과 싸웠던 월령이었기에 흑랑의 강함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영력으로 신체를 강화한 월령조차도 흑랑의 다리는 끝내 따라잡지 못했었다.


한 마리였기에 어찌저찌 잡는 데 성공했지, 두 마리 이상이었다면 월령조차도 도망치는 데 급급했을 거다. 그만큼 흑랑은 까다로운 난적이었다.


둘 사이의 차이는 명백.

이를 적산은 미래예지에 가까운 예측으로 풀어나가고 있었다.


자신보다 훨씬 빠른 흑랑의 공격에 그보다 먼저 방향을 읽고서 회피한다. 17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전장을 누비던 월령도 이러한 광경은 언니한테서밖에 보지 못했다.


노력을 안해?

재능이 없어?


눈앞의 공방을 보면서 누가 그러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흑랑은 은밀한 사냥꾼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영악했다.


단순히 앞으로 뛰는 것만이 아닌, 순간적으로 옆으로 방향을 틀거나 일부러 돌진 타이밍을 어긋나게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던 월령조차도 잠시 속을 만큼 뛰어난 속임수였다.


그럼에도 적산은 속지 않았다.


그 수많은 변칙적인 흑랑의 공격을 보란 듯이 모두 읽어내고, 피한다.

그건 이미 전투라기보다는 하나의 예술이었다.


-명월가의 천적산이라는 아이를 예의주시하도록 하거라. 언젠가는 봉황이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오를 아이이니.


‘그런 뜻이었습니까.’


잊고 있던 당주의 전언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당주의 말이었으나,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눈앞의 남자.

천적산은 천재다.


비록 월령처럼 퇴마의 재능은 타고나지 못했어도, 이에 꿀리지 않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바로 천재적인 전투 센스라는 재능을. 그것도 언니에게 지지않을 정도로 굉장한.


“오기를 잘했어.”


앞으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라이벌의 발견.


적산을 돕기 위해 수풀에서 나오는 월령의 입가에는 자신도 모르는 희미한 미소가 매달려있었다.


**


뒤늦은 월령의 참전.


상황이 불리함을 깨닫고 도망을 치려했던 흑랑이었으나 오랜 공방과 부상으로 인해 신체능력은 처음과 비교해서 확연하게 떨어졌고, 결과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다.


“다친 곳은 없나?”


흑랑이 확실하게 죽은 걸 확인한 월령이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뭐, 그럭저럭.”


바닥에 주저앉은 나는 무의식적으로 오른쪽 팔쪽을 내려다봤다.

흑랑과 처음으로 부딪혔을 때 어디 잘못 부딪혔는지 팔 전체에 붉은 핏자국이 선명했다.

통증으로 미루어 보아 뼈가 부러지거나 그런 건 아니고 아무래도 흑랑의 털에 쓸리다가 생긴 상처처럼 보였다.


“잠시 실례하지.”


내 맞은편에 앉은 월령이 주머니에서 약초를 꺼낸다.


두 손으로 약초를 짓이기더니 그대로 초록색의 즙을 팔에 고루 바르기 시작했다.


“이런 건 침 바르면 나아.”

“됐으니까 가만히 있거라.”


낯간지러운 감촉에 팔을 빼려 했지만 월령이 손에 힘을 주어 제지한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월령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유해진듯했다.


“아.”


약초를 바르던 월령이 별안간 작게 소리를 내었다.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에 붙어있던 나뭇잎을 떼어내던 나는 급하게 손을 털었다.


“아, 미안.”

“아니다. 괜찮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말로 해주었으면 좋겠군.”


제 머리를 약초가 묻지 않은 손으로 문지른 월령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세계는 여자와 남자간의 접촉에 민감하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존재했던 세계보다도 그 경향이 뚜렷하여, 결혼도 안 한 처녀가 외간 남자와 접촉한다는 사실 자체를 불쾌하게 여기는 이도 많았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조금 전 나의 행동은 굉장한 결례였다.


‘실수했네,’


예전의 그녀도 지금과 같이 내가 아프거나 다치면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나를 간호하다 보니 지금처럼 팔을 두 손으로 붙잡을 때가 간혹 있었는데, 그럴 때면 괜찮다는 의미로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했었다.


나뭇잎이 사라져 텅 비어버린 왼손을 바라본다.

잊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 남아있었나.


“미안하다.”


약초를 다 바른 월령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뭐가?”

“본인의 실수로 그대를 위험에 빠트린 것 말이다. 설마하니 흑랑이 두 마리나 있을 줄은.”

“그런 거라면 괜찮으니까 사과하지 않아도 돼.”


허리까지 숙여가며 사과하는 월령을 잠시 바라본다.

또 다른 흑랑과의 싸움도 꽤나 치열했는지 깔끔했던 월령의 옷에는 더러운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이야.”

“본인을 걱정했던 건가?”

“그야, 물론. 아무리 뛰어난 퇴마사라고 할지라도 언제 어디서나 위험은 도사리고 있으니까.”


월령의 머리가 잠시 밑으로 내려갔다.

나무의 그림자에 가려저 아쉽게도 어떠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는 볼 수 없었다.


“그대에게 또 한가지 사과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잠시 뒤 평소의 늠름한 얼굴로 돌아온 월령이 시선을 나와 마주한다.


“본인은 그동안 그대가 재능도 없이 게으름을 피우는 소인배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고통에 빠질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자진해서 위험에 뛰어들 수 있을 정도로 배짱이 있는 사내였다.”

“...뭐?”

“아니었나?”


월령이 순간 의뭉스러운 표정을 했다.


내가 흑랑을 붙잡아뒀던 건 어디까지나 숲속에 들어간 월령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그녀를 제외한 다른 사람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아냐, 맞아.”


허나 그러한 속내를 구태여 털어놓을 필요성은 없다.

오히려 월령이 착각을 하는 편이 이후 그녀와 함께 행동함에 있어서 플러스 요인이 되면 됐지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을거다.


“역시 그러했나.”


월령이 어쩐지 기쁜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에 대한 사례는 돌아간 직후 하도록 하겠다. 다른 이들에게도 그대의 활약상은 빼지 않고 이야기하도록 하지.“


”아, 그거 말인데. 이번 흑랑은 네가 잡은 걸로 해주면 안될까? 실질적인 마무리는 네가 거의 다 한 거기도 하고.“


”어째서지?“


”눈에 띄기는 싫으니까. 애초에 영골도 없는 내가 흑랑과 싸웠다는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홍귀의 약점을 사람들 앞에서 밝히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였다.


”...그대가 꼭 그래야 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 알겠다. 다만 개인적인 사례까지는 거절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이것도 어찌보면 생명의 빚을 진 것이니 말이다.“

”사례?“

”그건 이후의 즐거움을 위해 남겨두도록 하지.“


그러한 말을 남긴 월령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숲에 들어오면서 놓고 온 말을 데리러 가는 듯했다.


‘뭐, 이제는 안전하겠지.’


두 마리나 되는 흑랑을 물리쳤다.

자신들의 영역에 다른 요괴가 있는 걸 참지못하는 흑랑의 특성을 생각하면 이 주변에 다른 요괴는 없다.


”후.“


짧게 한숨을 내뱉는다.

역시 아무리 그래도 조금은 지쳤다.


”결국 힌트다운 힌트는 발견하지 못했네.“


안전을 되찾으니 잊고 있던 문제가 비상했다.


홍귀의 대규모 습격, 복수체의 흑랑 발견.

이후 월령의 사망 건과 관련하여 무언가 연관점이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보다시피 소득 제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버렸다.


월령과 나름의 안면을 튼 건 분명 좋은 성과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이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야 대비를 하던말던 할텐데 말이지.


...라고 생각하는 내 눈에 무언가 눈에 띄는게 보였다.


”...이건?“


멸화에 의해 새까맣게 타버린 흑랑의 시체.

그 밑에 떨어져있는 붉은색의 보석.


”...설마?“


그건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만약 이 보석이 의미하는 게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다면.


”개입을 해야겠는데.“


어떠한 의미에서는 요괴의 어미가 되는것보다 끔찍한 미래가 월령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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