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자에게는 아내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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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kapo
작품등록일 :
2024.07.23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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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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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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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동지(驚天動地), 세상을 놀라게 할 광경을 목격했다.

DUMMY

“...이건.”


짓눌린 풀 자국을 따라 말을 몰던 나는 조금 전과 비슷한 참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만 아까 전과 다른 건 시체가 된 게 요괴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


정황상 이곳에서 연휘의 지시를 받고 강무를 준비하던 이가 아닐까 싶다.

정상에서 본 요괴들과 똑같이 날카로운 발톱에 당한 것처럼 보이는 그는 자신의 죽음을 인지할 새도 없이 죽었는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소빈이를 데리고 오지 않기를 잘했네.”


자신도 이번 산길에 참여하고 싶다고 떼쓰던 어린 여동생을 떠올린다.


첫 요괴 사냥에서 이런 참상을 목격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분명 굉장한 트라우마가 되었겠지. 공포라는 건 사람에게 필요한 감정이지만 그게 지나치면 사람을 망가트리는 요소가 된다. 나는 아직 여동생이 망가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말에서 내려 말없이 죽은 자의 눈을 감겨줬다.


다음 생에서는 죽음의 위협도, 굶주릴 걱정도 없는 세상 속에서 태어나기를.


명복을 빌어주고서 곧장 말에 올라탔다.

요괴와 마찬가지로 시체는 아직 따뜻했다.


“기묘한데?


손에 묻은 피를 문질러본 나는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요괴와 다르게 사람의 피는 생각보다 빠르게 굳는다.

일각만 지나도 슬라임처럼 끈적함을 가지게 되고, 이각 이상이 지나면 돌처럼 딱딱해진다.


하지만 내 손에 묻은 피는 아직 미끌미끌한 액체상태였다.

즉, 남자가 죽은 건 내가 오기 바로 직전이었다는 이야기.


“싸운 흔적은...딱히 없나.”


나보다 한발 앞서 숲에 들어온 월령이 범인으로 추정되는 흑랑을 발견했다면 곧장 전투에 돌입했을 거다. 「멸화」를 주로 활용하는 월령의 싸움방식을 고려하면 지금처럼 주변이 멀쩡할 리가 없다.


촉이 뛰어난 월령마저 속일 수 있을 정도로 은밀한 사냥이 가능한 요괴라고 한다면 역시.


“두 마리인가.”


두 번째 흑랑의 가능성.

단순히 요괴가 한 명 더 늘어났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흑랑은 무리를 짓지 않는다.


늑대처럼 보이는 외형에 걸맞게 단독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어쩌다 무리를 짓더라도 각자의 영역안에서만 생활하며, 이를 넘는 이는 같은 종족이어도 용서치 않는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결코 멀지 않은 거리에 「중요」급 요괴가 두 마리 있다.

제아무리 천(天)에 오른 월령이라고 할지라도 두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무리가 있다.

하물며 이렇게 사방이 시야를 가리는 나무들로 가득한 숲속이라면 더더욱.


“아직은 어설퍼.”


경험이 조금만 더 많았다면 시체를 보고서 두 번째 흑랑의 가능성을 눈치챘을 거다.

상대방의 최대전력과 내가 낼 수 있는 수단을 모두 고려하고서 승률이 9할을 넘지 않으면 곧장 도망친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 퇴마사는 모두 죽었으니까.


“하는 수 없나.”


시체 주변에 떨어진 행낭을 뒤적거렸다.


예상대로 작은 단도 하나와 피리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단도는 허리춤에 대충 끼워두고 피리를 두 손으로 들었다.

투박한 나무토막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그건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자, 는 물론 아니었다.

내가 지금 불러들이려고 하는 건 다른 존재였다.


오른손 검지와 왼쪽 약지로 첫번째와 네 번째 피리 구멍을 막는다.

가장 높은 음이 나는 운지법이었다.


정면의 수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대로 있는 힘껏 숨을 불어넣었다.



-삐이이익!


고요했던 숲에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듯한 불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효과는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응시하고 있던 수풀이 흔들림과 동시에 검은 물체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생각하기도 전에 앞서 발밑에 있던 시체를 집어 던졌다.


퍼어어억!


무언가를 박살 내는 소리와 함께 시체가 산산조각으로 찢어진다.

손상 정도만 놓고 보면 무슨 트럭에 치인 줄 알겠다.


죽은 자의 피를 잔뜩 뒤집어 쓴 검은 늑대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낮게 울었다.

양옆으로 길게 찢어진 붉은 눈은 분노와 살의로 가득했다.

어지간히도 피리 소리가 귀에 거슬렸나 보다.


‘어떻게 한다.’


검집에서 단도를 꺼내 들었다.

막상 검을 빼들고 보니 생각보다도 날의 길이가 짧았다.

길이로는 1자(18cm) 조금 안되는 정도일까?


집채만 한 크기를 자랑하는 흑랑의 앞에서 이런 검은 이쑤시개나 다름이 없었다.

뭐,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으르렁거리며 주변을 살피던 흑랑이 뒷다리를 뒤로 쭉 뻗으며 자세를 낮췄다.


‘이건 페이크.’


동요하지 않고 자세를 유지한다.


내가 아는 흑랑은 저렇게 노골적으로 돌진 타이밍을 알려줄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저건 어디까지나 빈틈을 만들기 위한 전술이었다.


그 증거로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흑랑이 돌진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흑랑은 똑똑하다.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어떠한 것에 약한지도 잘 알고 있다.


흑랑의 가장 큰 무기는 은밀한 기동성을 활용한 기습.

상대가 반응하지도 못하는 스피드로 단숨에 달려들어 사냥감의 목을 물어뜯는다.


그 말은 즉, 첫 번째 기습만 어떻게든 넘길 수 있다면 위험도가 대폭 내려간다는 뜻이었다.


“크르르르.”


흑랑의 울음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고민하고 있는거다.

한 번 더 공격을 해야 할지, 아니면 후퇴를 해야 할지.


‘그렇게는 안 되지.’


탐색전이 길게 이어지는 건 나로서도 바라는 바지만, 그 결과가 도망으로 이어져서야 본말전도다. 여기서 흑랑을 놓치면 기껏 피리까지 부르면서 불러온 의미가 없어진다.


두 발의 간격을 아주 조금 넓혔다.

단도를 쥐고 있는 손은 조금 아래로, 의식적으로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전형적으로 극한의 긴장감에 지친 인간의 모습이었다.


슈욱-!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뺨을 스쳐지나갔다.


영력으로 오감을 강화할 수 없는 나는 흑랑의 공격을 보는 게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일부러 빈틈을 만들어냈다.


상대가 반드시 공격을 가할 수밖에 없도록.


제아무리 육체 능력이 뛰어난 흑랑이라고 할지라도 돌진 방향을 바꾸지는 못한다.

타이밍과 방향만 예측할 수 있다면 아무리 신체적으로 열세여도 피할 수 있다.


흑랑의 몸이 앞으로 살짝 쏠리는 것을 발견함과 동시에 전력으로 옆으로 뛰었다.


슈욱-!


살 떨리는 바람 소리가 귓가에 닿음과 동시에 코앞으로 검은 빛줄기가 지나쳐갔다.

조금 전 위치에서 정확하게 정반대에서 착지한 흑랑이 천천히 몸을 뒤로 둘린다.


“크르릉?”


두 번째 기습의 실패.

흑랑이 혼란스러운 듯이 잠시 주춤한다.


먹이사슬의 정점으로서 그동안 많은 사냥감을 물어뜯어 왔던 늑대는 연이은 실패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눈앞의 적은 분명 지쳤다.

반면 자신은 아직 쌩쌩하다.


힘도 스피드도 모두 자신이 우위.

내가 더 강하다. 저건 약한 인간. 잡아먹을 수 있다.


“크르르.”


생각을 마친 흑랑이 낮게 울었다.


세 번째 돌격.

속도는 아까보다 조금 느리다.

그러나 그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안하지만, 이미 알고 있어.”


앞으로 뛰면서 단도를 든 손을 휘둘렀다.

가죽을 베는 감촉과 함께 붉은 피가 허공을 비산했다.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흑랑이 순간 비틀거렸다.


흑랑은 영리한 사냥꾼이다.

앞서 두 번의 공방을 통해 내가 공격을 피하기만 한다는 걸 깨달았을 거다.

그렇기에 세 번째에는 변칙을 섞었다.


이전과 똑같이 정면으로 돌격하는 척하다가 중간에 방향을 옆으로 틀었다.

내가 뒤나 옆으로 피하면 즉시 날카로운 송곳니로 물어버릴 수 있도록.


확연하게 느려진 속도에 이를 눈치챈 나는 흑랑이 미리 앞으로 뛰면서 흑랑이 지나갈 방향에 검을 들이밀었다. 그렇게 본인이 직접 날에 몸을 들이밀 게 된 흑랑의 옆구리에는 긴 자상이 생겨 있었다.


“조금 얕은가.”


바닥에 뿌려진 피를 보며 혀를 찼다.

나름의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생각보다 얕게 들어갔다.

요괴 특유의 괴랄한 재생력을 떠올리면 상처라고 보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뭐 상관없나.’


원래부터 이걸로 심대한 타격을 줄 생각은 없었다.

내 목적은 흑랑을 화나게 해서 이 자리에 붙들어 놓는 것.


‘아무리 똑똑해도 짐승은 짐승이지.’


아무리 똑똑하고 영리하더라도 흑랑은 어디까지나 동물에 가까운 요괴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고, 상처를 입으면 포효하고 화를 낸다.


단도를 고쳐세웠다.


이번에 노릴 위치는 눈이었다.

분노에 차 정면에서 뛰어올 흑랑의 얼굴을 그어서 더욱 날뛰게 할 작정이었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다.

그렇게 생각했다. 내 눈앞에 익숙한 철쪼가리들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어라?”


나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진 철조각의 정체는 다름 아닌 내가 들고 있던 단도였다.


겨우 단 한 번 흑랑과 부딪혔을 뿐인데, 충격을 버티지 못한 칼날에 거미줄마냥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끝내 산산조각으로 부숴졌다.


“망했네.”


손잡이만 남아 쓸모가 없어진 단도를 던져버린 나는 뺨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월령이 다른 흑랑을 물리치고 여기에 도착할 때까지 열심히 뛰어다녀야 할 운명인듯했다.


**


두 마리였다니.


월령은 달렸다.


숲에서의 기나긴 추격전 끝에 흑랑을 해치운 그녀는 발견하고 말았다.

그녀가 왔던 길을 빼고도 또 다른 흔적이 남아있는 숲길을.


“어째서?”


영력으로 강화된 다리로 나무 위를 박차면서 월령은 물었다.


어째서 단독으로만 활동하는 흑랑이 두마리씩이나 있는 것인가.

어째서 자신은 흑랑이 한 마리뿐일거라는 어리석은 판단을 했던걸까.

어째서 진작에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징조라면 있었다.


흑랑의 흔적을 뒤쫓아 들어왔던 숲에서 발견한 시체.


돌이켜보면 시간이 꽤 지난 것치고는 상태가 양호했다.

요괴들이 사냥당하기 전에 죽었다고 한다면 각종 벌레들이 들끓는 숲에서 저렇게 멀쩡한 외관을 유지할 수가 없을텐데.


당시에는 또 다른 선량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매몰되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결과 또 다른 흑랑이라는, 심각한 위험요소를 눈치채지 못하고 남아있는 일행을 위험하게 만들었다.


「중요」는 「소요」와는 결이 다르다.

웬만한 퇴마사는 상대도 하지 못할 강적이며, 천(天)에 이른 월령조차도 흑랑을 잡기 위해 꽤 고생을 했었다. 아직 경험이 미천한 그들은 결코 흑랑을 이길 수 없다.


“무사하기를.”


계속 안 좋은 상상들이 떠올랐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이미 늦은 게 아닐까.

숲에서 봤던 시종의 시체처럼 눈을 부릅뜬 채 죽어있을 일행의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


빠르게 달리던 월령의 다리가 우뚝 멈춰섰다.

순간적으로 잊고 있던 한 남자가 떠올랐다.


홍귀들의 습격에 맞서는 일행들 속에서 유일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한심한 사람.

눈앞의 사람이 위기에 처해있는데도 혼자 뒤로 빠져서 구경하고 있던 모습은 월령의 속을 긁기 충분했다. 힘이 없는 걸 혐오하는 게 아니다.

힘이 없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을 혐오하는거지.


혹시라도 새로운 일면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던 자신이 바보 같다.


“도망쳤겠지.”


제 목숨만큼은 끔찍하게 여기는 인간이다.

요괴들이 단체로 살해당한 광경을 보자마자 고립된 일행들은 나몰라라하고 혼자 내뺐을 게 뻔했다.


이제는 기대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이번 명월가의 적자는 겁쟁이에, 재능을 핑계로 노력도 안 하는 소인배다.


당주의 전언 역시 무언가 착각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한 생각과 함께 숲을 헤쳐나가던 월령은 어떠한 광경을 발견했다.


“...흑랑?”


집채만한 크기의 검은 늑대.

붉은 눈을 번뜩이면서 으르릉거리는 그건 월령이 상대했던 흑랑보다도 기세가 사나웠다.


다행히 일행들이 있는곳까지 가지는 않았구나, 라고 안심하기도 잠시.

그 정면에 있는 사람을 발견한 월령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한참전에 도망쳤으리라고 생각했던 천적산이 흑랑과 싸우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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