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자에게는 아내가 너무 많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Dakapo
작품등록일 :
2024.07.23 01:49
최근연재일 :
2024.08.01 15:35
연재수 :
9 회
조회수 :
225
추천수 :
0
글자수 :
50,193

작성
24.07.24 08:20
조회
32
추천
0
글자
12쪽

낙화유수(落花流水), 시든 꽃과 흐르는 물.

DUMMY

창작물에서는 사랑을 극적인 무언가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도서관에서 만난 소녀와 우연히 같은 책을 집으려다가 손이 닿는다던가.

차에 치이기 직전의 여성을 몸을 던져서 구해낸다던가.

10년 전에 헤어졌던 소꿉친구를 같은 학교에서 조우한다거나.


흔히들 사람들이 로망이라고 말하곤 하는 이야기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경우는 지극히 극소수다.


대부분 현실에서 이뤄지는 연애는 필요로 의해서 이뤄지는 게 대다수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결혼이나 커플들 소식에 조급해진 나머지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동아리에 들어가거나, 아는 지인에게 부탁하여 소개팅을 받기도 한다.


내가 그녀를 만난 계기도 비슷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에 들어가고, 취업준비를 하다 보니 이성을 사귈 시간이 부족했다.


매달 날아오는 지인들의 청첩장과 함께 명절마다 듣는 잔소리에 압박감을 느낀 나는 결정사를 신청하게 되었다. 당시 7급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나는 괜찮은 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결정사를 통해 성사된 첫 맞선자리에서 나는 한 명의 여성을 만났다.


깔끔하게 다려진 정장과 결코 과하지 않은 은은한 메이크업.

손목에는 최신 스마트워치와 함께 귀에는 은빛의 별 모양 귀고리.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상케 하는 그녀는 대놓고 커리어우먼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보다 더 굉장한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유명 대학교 졸업, 대형 로펌 소속의 변호사, 자가와 자차 보유, 덤으로 상당한 미인.


고작 7급따리 공무원에 불과한 나와 매칭되기에는 너무나 과분한 인재였다.

결정사 측의 실수가 아니라면 분명한 결격사유가 있을 거라 예상했고, 이는 실제로 들어맞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연애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른바 계약 결혼이라는 것이었다.


귀찮은 연애는 생략하고 곧장 결혼식을 올리자.

아내로서 최소한의 의무는 다하겠으나 그 이상은 바라지 말 것.

한동안 일에 집중하고 싶기에 자식을 낳을 계획은 현재로서는 없다는 말까지.


이야기 동안 여성이 웃는 일은 없었으며, 목소리 또한 고저없이 사무적이었다.

소개팅이 아니라 거래처와 미팅을 하는듯한 여성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왜 나 같은 인물과 매칭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잘나가는 변호사에 미인이면 뭐하는가.

사람을 자신의 체면치레를 위한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게 눈에 보이는데.

앞으로 인생을 함께 걸어갈 반려자로서는 빵점이었다.


“좋습니다.”

“뭐, 당연히 거절하시겠...네?”

“그 이야기 받아들이겠다는 말이에요.”


딱딱하기만 했던 여성의 표정에 처음으로 감정다운 감정이 피어올랐다.

조금 눈을 동그랗게 뜨기만 해도 저렇게 인상이 달라지는 데 미소를 지으면 얼마나 더 예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이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인가요?”

“이런 일로 제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을까요?”


상식적이지 않은 건 알고 있다.

누가 봐도 터무니없는 제안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는 게.

아는 지인이 비슷한 짓을 했다면 분명 너 제정신이야? 라고 물었을 거다.


놀란 표정을 수습한 여성이 자신의 제안을 다시 이야기했다.


혹시라도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던걸까?

처음 설명을 할 때보다도 정중하고 보다 자세했다.


결혼 후에는 각방을 쓰되, 본인의 허락 없이 함부로 들어오지 말 것.


당연한 이야기지만 꼭 필요할 때를 제외한 스킨쉽은 일절 금지.


아는 지인을 집으로 부르는 것도 최대한 자제해달라는 이야기는 덤.


들으면 들을수록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조건이었다.


“네. 뭐, 그렇게 하죠.”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자신이 나중에 마음이 바뀌게 될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면 일찌감치 접어두라는 이야기였다.


‘굉장히 불운한 사람이네.’


뭐랄까, 이쯤되니 짜증보다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비슷한 맥락일지도.


사람을 대하는 게 너무 서툴다.

보통은 이러한 제안을 할 때는 나름 포장을 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성향이 조금 보수적인 편이라 스킨쉽에는 별로 익숙하지 않다거나, 사정이 있어 연애 기간은 가능하면 짧았으면 좋다던가. 아이에 관해서도 딩크족이라는 훌륭한 변명거리가 존재했다.


그렇게 조금만 요령을 부렸다면 지금처럼 대놓고 이상한 여자 취급은 받지 않았을거다.


본래라면 어떤 전문직도 만날 수 있을 그녀가 고작 공무원 따리에 불과한 나를 만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아왔을지 나름 짐작할 수 있었다.


“식기 전에 먼저 들도록 해요. 음식을 앞에 두고 가만히 있는 것도 뭐하니까.”


보란 듯이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결정사에서 추천한 레스토랑인 만큼 요리는 맛있었다.


내게 연애에 대한 특별한 로망 같은 건 없다.


주변에서 하도 연애 관련해서 시달렸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사귄다는 행위에 약간의 염증 비스무리한 느낌마저 있었다. 그러한 내게 있어 여성의 제안은 반갑기까지 했다.


만남 이후 곧장 결혼식 날짜가 정해졌다.

그 기간은 정확하게 딱 한 달.

그녀의 말처럼 연애 기간은 정말로 없는 수준이었다.


아주 가까운 지인과 부모님만을 불러 치러진 형식적인 결혼식 이후에는 신혼여행도 갔다.

바다가 보이는 동해의 호텔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혼 특유의 뜨거운 밤 같은 건 없었다.


하루아침에 유부남이 되었지만 크게 바뀌는 건 없었다.

나는 여전히 공무원이었고, 그녀는 여전히 변호사였다.


같은 집에서는 살지만, 업무 특성상 거의 얼굴을 맞댈 일이 없었다.

어쩌다가 같은 날에 비번이 겹쳐도 각자의 방에서 자기 할 것만 하며 일절 터치하지 않았다. 나름 서로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한 통의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교통사고였다.

사고 당시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3 퍼센트.

완벽한 음주운전이었다.


피해자는 재판을 마치고 돌아오던 아내였다.

다행히 병원으로 빠르게 옮겨져 목숨은 구할 수 있었지만, 대신해서 큰 걸 잃어버렸다.


“걸을 수 있겠어?”

“됐어요.”


부축하려던 내 손을 아내가 쳐냈다.

아니, 쳐내려 했으나 손바닥은 애꿎은 허공만을 가를 뿐이었다.

반동으로 균형을 잃으려는 아내의 몸을 붙잡아 지탱했다.


가까이서 본 그녀의 얼굴에는 커다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사고의 후유증이었다.


사고 직후 수술대에 오르던 아내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완전히 두 눈이 뭉개지고, 아름다웠던 얼굴에는 끔찍한 자상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현대 의학에서 뭉개진 안구를 소생시키는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즉, 앞으로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다는 뜻이었다.


“이건?”

“이혼서류예요.”


퇴원 후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된 아내의 대응은 지극히 간단했다.


“저는 이제 변호사로서 일할 수 없어요. 거기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죠.”


붕대를 푼 아내의 얼굴은 생각보다 지독했다.


희멀겋게 변해버린 두 눈.

울긋불긋한 화상 자국.

그리고 무엇보다 얼굴 전체를 기운것만 같은 수십 개의 바늘 자국.


그 어디에도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던 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의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미묘하게 아내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싸인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그래.”

“위자료가 불만이라면 그쪽이 좀 더 원하는 비율로 조정해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 이혼의 귀책사유는 어디까지나 제게 있으니까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기존 판례로 위자료는 최대 4할까지 받을 수 있다느니, 재산분할의 여건이 어떻다느니 하는 법률적인 이야기. 전직 변호사답게 설명은 간결하고 명료했으며, 나 같이 법을 모르는 일반인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쉬웠다.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시다면 괜찮습니다. 애초부터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것도 아니니까요.”

“할 말은 그게 전부야?”

“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내가 말하도록 할게.”


만약 아내의 눈이 멀쩡해서 앞이 보였다면 현재 내 얼굴은 어떻게 보일까.

화가 잔뜩 난 얼굴이라 확신할 수 있다.

그도 그런게 아까부터 가슴이 뜨거워져서 제대로 된 생각을 못하겠거든.


“이혼할 생각은 없어.”

“어째서죠?”

“맹세했으니까.”


결혼식에서 부모님과 지인들 앞에서 말했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함께 하겠다고.

으레 결혼식에서 흔하게 하는 맹세였으나, 나는 진심으로 지킬 생각이었다.


“나를 이런 일로 맹세를 저버리는 쓰레기로 만들 셈이야?”

“...그렇지만, 저는 이제 아내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더이상 예쁘지도 않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 따위는 상관없어.”


애초부터 그녀와 함께하기로 한 건 그녀가 빼어난 미인이어서, 라는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도도한 척하면서 사실은 누구보다 여리고, 요령도 없어서 상처받기 일쑤인 어떤 푼수가 눈에 걸려서였지.


“여기서 다시 맹세할게. 네가 어떤 모습이든, 어떠한 말을 하든 네 곁을 떠날 생각은 없어.”


**


전생의 인연을 현재까지 가져올 필요가 있을까?

반복되는 삶 속에서 계속 쭉 물어왔던 질문이었다.


사람의 영혼은 유한하고, 내 삶은 무한했다.

그렇기에 아주 가끔 먼 과거의 인연을 마주할 때가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못 본 척 넘어갔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추억에 매달려봤자 돌아오는 건 상처뿐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기대를 하지않는다.


그건 과거 아내였던 월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말이지.”


남몰래 한숨을 내쉰다.

얼마만이더라? 무언가를 이렇게 고민해본 게.


가벼운 인사 직후 곧장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버린 월령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길게 쭉 뻗은 팔다리.

상처 하나 없이 새하얗고 매끄러운 피부.

투명하고 맑은 눈망울.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어디에도 내가 알던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가 예전 내가 만났던 아내임을 확신했다.


그건 나와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는 붉은 실이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내 새끼손가락에는 나밖에 보이지 않는 붉은 실이 있었다.


「인연의 실(因緣絲)」


나는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이 실은 전생에서 나와 인연을 맺었던 이를 알려준다.


친우였다면 청(靑). 적이었다면 흑(黑).

부부의 연을 맺은 이는 적(赤)이었다.


새끼손가락에 매여있는 붉은 실은 눈에 힘을 주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었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건 상대의 운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이 실이 완전히 사라지면 대상은 생을 다한다.


한나라에서 손꼽히는 퇴마사 가문 「귀영가」의 천재 퇴마사 연월령.

나라를 빛내고 시대의 희망이라고까지 불리는 미녀 퇴마사의 사망까지 앞으로 한 달 남짓.


갑작스러운 병사를 제외하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


요괴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살해당하는 것.

이 시대의 퇴마사들이 주로 겪는 말로이기도 했다.


‘그건 조금 싫은데.’


요괴들이 사람을 습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굶주림에 식량으로 삼고자, 또 하나는 번식이다.


기본적으로 요괴는 생식기능이 없어, 자력으로 번식이 불가능한 생물이다.


따라서 이들이 번식하기 위해서는 새끼를 잉태할 암컷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영력도 있으면서 젊고 아름다운 퇴마사의 몸은 훌륭한 모체(母體)였다.


“잠깐 지켜볼까.”


과거 나는 맹세했었다.

옆에서 지켜주겠다고.


딱히 세상의 모든 위협과 적으로부터 안전하게 그녀를 지키자, 라고 마음 먹은 건 아니었다.


그럴 능력도 안 될뿐더러 그런 건 지켜준다고 표현하는 게 아니다. 지배한다고 하는거지.

그리고 나는 그녀를 지배할 생각이 없었다.


사람 다운 죽음(死).


아무리 그래도 한때 좋아했던 이를 요괴들의 어미로써 만들긴 싫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전생자에게는 아내가 너무 많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 부탕도화(赴湯蹈火), 때로는 불길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가야할 때도 있다. 24.08.01 13 0 13쪽
8 백절불굴(百折不屈) 절망속에서도 소년은 꺾이지 않는다. 24.07.30 14 0 10쪽
7 피안몽환(彼岸夢幻), 붉은 안개는 악몽을 선사한다. 24.07.29 14 0 9쪽
6 명재경각(命在頃刻), 곧 숨이 끊어질 듯이 위태위태하다. 24.07.28 15 0 12쪽
5 경천동지(驚天動地), 세상을 놀라게 할 광경을 목격했다. 24.07.27 20 0 12쪽
4 누란지세(累卵之勢), 곧 무너질듯이 아슬아슬한. 24.07.26 21 0 15쪽
3 불우지변(不虞之變),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마주하다. 24.07.25 25 0 14쪽
» 낙화유수(落花流水), 시든 꽃과 흐르는 물. 24.07.24 33 0 12쪽
1 해후(邂逅), 그러나 오직 나만이 기억하는. 24.07.23 71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