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자에게는 아내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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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kapo
작품등록일 :
2024.07.23 01:49
최근연재일 :
2024.08.0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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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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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절불굴(百折不屈) 절망속에서도 소년은 꺾이지 않는다.

DUMMY


“다녀오겠습니다.”

“또 숲까지 가는 거니?”


근심이 가득한 노파의 말에 문밖을 나서던 소년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섰다.


“아뇨. 오늘은 이 근방을 돌아다녀 볼 생각이에요. 의외로 괜찮은 약초밭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옆구리에 커다란 소쿠리를 맨 소년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인근의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직접 제작한 소쿠리는 소년이 이미 다 늙은 할머니를 돌볼 수 있게 한 1등 공신이었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저잣거리의 아이들처럼 얄팍한 인심에 기대, 구걸이라도 해야했다.


그리 생각하면 아무리 배고프고, 춥고, 힘들어도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지금이 훨씬 낫다고 소년은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일찍 들어오려무나.”

“네 할머니. 올 때 팥떡이라도 사다 드릴까요?”

“후후, 그래. 있으면 좋겠구나.”


노파가 힘없이 웃었다.

소년의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랜 기간 이어온 요괴와의 싸움으로 나라에서 가져가는 곡식의 양은 점점 늘어만 갔다.

쌀이나 콩 같은 곡식들은 물론이거니와 주식이었던 보리나 조마저도 세금으로 내야만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가장 비싸고 고급스러운 쌀로 만든 떡이라는 건 임금님 수라상에나 올라 올법한 사치품이다.


주변에서 팔지도 않거니와 너무 비싼 가격 탓에 팔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팥은 「소요」를 내쫓는 힘이 있어 지금은 부르는 게 값이다.

떡과 팥, 둘 모두를 사용한 팥떡이라는 건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로 비싼 음식.

즉, 소년은 그걸 살 정도로 대박을 터트리고 오겠다고 말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만 하루 발이 부르터지도록 약초를 모아도, 하루 식량을 사기도 빠듯하다는 걸 알고 있는 노인이었기에 이처럼 안타까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조심해야 한단다?”


희망에 가득 찬 어린 손주의 얼굴에 냉정한 현실을 들이밀 수도 없던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겨우 그런 말뿐이었다.


**


옆구리에 커다란 소쿠리를 짊어진 소년이 집 밖으로 나섰다.

동시에 집 앞에서 기다리던 남자가 소년을 향해 다가왔다.


“잠깐 할 이야기가 있는데 괜찮을까?”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뺌에는 오래된 칼자국이 새겨져있었다.


“네. 말씀하세요.”

“...여기서 이야기하는 조금 그렇고 자리를 옮기자.”


잠시 눈치를 살피던 그가 소년을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간다.

소년은 그러한 그의 행동에 의아함을 가졌으나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배려해서 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전직 방랑 퇴마사라고 자신을 밝힌 남자는 마을에 이따금씩 찾아오는 요괴들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소년의 마을은 요괴들의 습격으로 진작에 붕괴되고도 남았다.

소년이 늙고 병든 할머니를 두고서 약초를 채집하러 다닐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허나 그것도 옛말.

현재 소년이 살고 있는 마을은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이야기라는 건 다름이 아니라....아, 씨 또 저 지랄이네. 개새끼들이.”


소년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던 그가 돌연 험한 욕설을 내뱉었다.

마을 입구에 모여있는 요괴의 새끼 유요(幼妖)가 원인이었다.


어느새 잔뜩 모여든 유요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앞다투어 울타리를 들이 박고 있었다.

이마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계속해서 돌진하는 모습은 성난 멧돼지 그자체였다.


퇴마사의 말에 따르면 유요는 겁이 많아, 저렇게 미쳐 날뛰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저리 안 꺼져!?”


소년을 두고서 급하게 달려간 남자가 다 닳아버린 부적을 들고서 위협한다.


이에 유요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입구를 두들겼다.

사내가 말했던 ‘유요는 쫄보 새끼들밖에 없어.’라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유요의 습격은 오늘 처음이 아니다.

약 열흘 전부터 무언가에 홀린 듯이 나타나서는 주기적으로 저렇게 마을의 입구를 두들기고 있었다.


혹시나 부모인 「소요」에게 버림받아 오랫동안 굶주림에 지쳐서 저러나 싶어, 마을 입구에 말린 육포들을 던져놓았으나 저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더러운 발자국과 흙먼지를 묻히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육포를 보고 있으면 저들의 목적이 식량이 아님은 명백했다.


유요들의 숫자는 나날이 갈수록 증가하여 이제는 혼자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미안하군. 기다리게 했어.”


결국 유요들을 쫓아내는 건 포기한 남자가 소년의 곁으로 돌아온다.


실시간으로 유요들에게 공격받고 있는 마을의 울타리는 언제 부수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웠다. 즉, 소년과 남자에게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이야기는 너도 짐작했을지 모르겠는데, 이 편지를 관리가 있는 도시까지 갖고 가줄 사람이 필요해. 가능하겠어?”


소년의 시선이 남자의 품에서 나온 편지에 고정된다.

계속되는 요괴들의 난동으로 마을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상인의 발길마저 끊긴 지금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직접 외부로 나가야만 했다.


평생을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소년에게 있어서 그건 큰 모험이었다.

약초나 따면서 근근이 먹고살던 자신이 할 수 있을까, 소년은 불안했다.


“해보겠습니다.”


그래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마을에서 사지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건 남자와 소년뿐이었으니까.


“미안하구나. 원래라면 퇴마사인 내가 가야 하는 일인데.”


면목 없다는 듯이 말하는 남자의 눈 밑은 거멓게 죽어있었다.

그건 오랫동안 계속 잠도 못 자고 마을을 홀로 지켜왔다는 증거였다.


외부인에 불과한 그라면 얼마든지 다른 젊은 사람들처럼 도망을 가도 됐을텐데 그는 끝까지 마을에 남아주었다. 그러한 그를 눈앞에 놔두고 거절의 말을 입에 담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남자에게서 편지를 받아든다.

마을 밖에 있는 도시에 편지를 전달하는 일.

오랫동안 숲에서 약초를 캐며 단련된 체력을 가지고 있는 소년에게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허나 이 역시 과거의 이야기.


현재 마을 밖으로 나가는 건 자살행위다.

마을 주변을 가득 둘러싸고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 유요는 사실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그렇게 된 원흉이지.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보인다.

마을 입구에 위치한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안개가.

유요들이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것도 마침 저 안개가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오랫동안 방랑 퇴마사로서 많은 요괴들과 괴이현상을 본 그도 저 붉은 안개의 대해서는 모르는 눈치였다. 기껏해야 짐작할 수 있는 건 요괴들을 광분(狂奔)시키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정도.


붉은색을 넘어 핏빛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안개는 마치 저승의 입구와도 같은 오싹함을 자랑했다. 그리고 소년은 지금부터 저 숲을 뚫고서 편지를 전달해야 했다.


미지에서 찾아오는 공포는 사람의 심리를 잠식한다.

저 안에 무엇이 있을지, 어떠한 일을 겪게 될지. 저도 모르게 추측하고, 두려워하며 상상 속의 괴물을 만들어낸다. 그건 소년에게 있어 어떠한 요괴보다도 끔찍하고 잔혹한 생물이었다.


실제 편지를 받아들고 숲을 바라보는 소년의 다리는 알게 모르게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몇 번이나 왕복했던 길이건만 안개가 낀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달라지는 걸까.


점점 더해가는 불길한 상상을 떨치고자 소년이 제 뺨을 힘껏 두들긴다.


해야만 했다. 두려움에 떨고 있을 늙고 병든 어르신들과 그런 그들을 지키기 위해 밤낮 부적을 만들며 마을을 지키고 있는 아저씨를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도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을 소년의 유일한 가족을 위해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거라도 챙겨가.”


편지를 품속에 넣고서 각오를 다지는 소년에게 남자가 허리춤에 매고 있던 단검을 풀어서 건넸다. 완전히 녹이 슬어버린 그것은 단검이라기보다는 몽둥이였으나, 남자의 말에 따르면 수도에서도 구하기 힘든 영력이 깃든 물건이라 했다.


“...감사합니다.”


남자가 내민 단검을 받아든 소년이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망설이는 얼굴을 했다.


“혹시 두려워졌어?”

“그건 아닙니다. 단지...”

“단지?”


소년의 머릿속 집을 나오기 전에 했던 할머니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정말로 죄송한데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래. 괜찮아. 뭐든지 말만 해.”

“혹시 은자 석냥만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돌아오면 꼭 갚겠습니다.”

“그건 문제없는데, 갑자기 왜?”

“...오면서 팥떡이라도 사다 드리고 싶어서요.”


소년은 두 가지의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


하나는 곧 돌아온다는 거짓말.

두 번째는 숲에 들어가지 말라는 할머니의 말을 무시한 것.


나중에 이 사실이 들통났을 때를 대비한 변명거리가 필요했다.

그게 소년에게 있어서는 가져온다고 약속했던 팥떡이었다.


“할머니에게는 귀중한 약초를 구해서 도시로 팔러 갔다고 전해주세요. 걱정하시고 계실테니까요.

”...그래. 알았어.“


마지막으로 소년은 남자에게서 석냥의 은자가 들어간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현재 변변찮은 수입도 없는 그의 입장에서도 상당한 거금이었을 텐데도 넘겨주는 남자의 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면목없다 생각하지만, 무사히 돌아와.“

”네. 물론이죠!“


소년은 상상했다.


무사히 저 안개속을 뚫고서 편지를 관리에게 전하는 상상을.

소식을 들은 관리가 퇴마사와 병사를 이끌고 마을에서 발생한 이변을 해결한다.

그러면 마을을 떠났던 다른 사람들도 돌아올거다.


‘잔치라도 열까?’


한쪽에는 싸구려 막주를, 또 한쪽에는 비싼 값을 주고 어렵사리 구한 팥떡을.

분명 즐거울 거다. 우중충했던 분위기의 마을도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겠지.


”...힘내자.“


두 주먹을 불끈 쥔 소년이 마을을 떠나 붉은 안개가 피어오른 숲으로 진입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년이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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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부탕도화(赴湯蹈火), 때로는 불길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가야할 때도 있다. 24.08.01 13 0 13쪽
» 백절불굴(百折不屈) 절망속에서도 소년은 꺾이지 않는다. 24.07.30 1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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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낙화유수(落花流水), 시든 꽃과 흐르는 물. 24.07.24 3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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