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자에게는 아내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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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kapo
작품등록일 :
2024.07.23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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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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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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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몽환(彼岸夢幻), 붉은 안개는 악몽을 선사한다.

DUMMY

명월가(明月家)는 전형적인 옛 가옥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문의 크기가 곧 권력을 드러낸다고 믿었던 그 예전의 규수집처럼 대문의 크기만 해도 수십 명의 장정이 나란히 들어와도 문제없을 만큼 커다랬다.

또한 나라에서 황제 다음으로 가는 권력을 지닌 집안답게 그 안쪽 역시 어마어마했다.


전문가의 손길이 엿보이는 정원과 연못만 해도 몇 개나 있었고, 현시대에서는 보기 드문 잘 정비된 길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차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겉을 잠깐 떠돌 뿐 그 안쪽까지는 발을 들이지 못했는데, 중심부는 「명월가」 중에서도 선택받은 자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었던 까닭이었다.


강력한 결계와 함께 신력이 깃든 돌담으로 이루어진 진입로는 마치 미로와도 같아, 영력을 가지지 못한 이의 방문을 거절한다.


그렇다.

거절하고 마는 것이다.


타고난 영골(靈骨)이 없어 영력이 전무(全無)한 나를.


만나기 껄끄러운 존재를 피해서 몰래 집으로 돌아왔더니 이 꼴이다.

몇 번이나 똑같은 길이 반복하여 걷다 보니, 슬슬 다리도 지치기 시작했다.


「명월가」는 영(零)을 타고나지 못한 이의 방문을 거절한다.

즉 영력이 없는 나는 집에게 항시 거부당하는 상태라는 뜻이다.


태어나서 자라난 집에 혼자서는 돌아가지도 못하는 신세라니.

어처구니가 없겠지만 이게 이 집안의 규칙이다.


「퇴마」를 업으로 삼지 않은 자, 영(零)의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자.

「불운」을 두르고 「미련(未練)만이 남은 이.

그들은 결코 명월가(明月家)에서 살아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명월가의 내부는 복잡한 결계가 몇 겹이나 중첩되어 있었다.


그 위력은 위의 살벌한 가훈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흉악하다.

어설픈 침입자 따위는 일각도 채 되지 않아 한 줌의 핏물로 산화시켜버린다.


“언제봐도 살벌한 가문이란 말이지.”


그나마 내가 이렇게 사지 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퇴마의 핏줄을 이었기 때문.


「영」에 재능은 없어도 「명월가」의 내성이 결계의 효과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뭐, 오감에 작용하는 「방황」만큼은 예외인 것 같지만.


그렇게 돌아다니다 지친 나는 적당히 반들반들한 돌 위에 주저앉았다.


어딘가 약점이 있을까, 잠시 둘러 봤지만, 그 흔한 균열조차 보이지 않았다.

고명한 퇴마사들이 수년에 걸쳐 완성한 결계라고 하더라니, 과연 허언은 아니었던 모양.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련님.”


돌아다니다 지쳐 바위에 앉아있으니 나를 발견한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지금쯤 돌아오시지 않을까 싶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는 언제봐도 무서워.”

“칭찬 감사합니다.”


노골적인 비아냥에도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시종임을 뜻하는 푸른 소복 차림의 그녀는 내가 이 집안에서 가장 껄끄럽게 여기는 존재였다. 재능을 타고나지 못해 실패작이라 불리는 내게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것부터가 정상이 아니다.


소빈의 경우는 같은 피를 타고난 가족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지, 여성의 경우는 그러한 것도 없다. 수년간 그녀를 옆에서 봐온 나였지만 여전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영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나와 정면으로 마주 선 여인이 두 무릎을 꿇는다.

코앞에 보이는 건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이 아닌, 새하얀 민무늬의 가면.


【月】이라는 글자가 붙어있는 저것의 이름은 「월혼(月魂)」

명월가에 존재하는 결계의 효과를 무효화 하는 일종의 주구(呪具)였다.


따라서 처음 만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녀의 맨얼굴을 본 적이 없다.


“손을 내밀어주시겠습니까? 별당까지 안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보다 한층 더 낮은 위치를 잡은 여인이 새하얀 손을 내밀었다.

더러운 흙먼지에도 주저하지 않고 무릎을 꿇은 그녀의 모습은 마치 사랑하는 지아비를 대하는 듯이 정성스러웠다.


“손까지 잡을 필요는 없지 않아?”

“결계를 통과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입니다.”

“...뭐 그렇긴 하지.”


영력이 없는 내가 결계를 뚫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력이 있는 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저번 성인식처럼 외부에서 손님이 찾아올 경우에는 영력이 깃든 초대장 같은 것을 소지하게끔하여 일시적으로 결계를 통과할 수 있게 하나, 나의 경우는 매번 그렇게 하는 것도 번거로운지라 이처럼 신체접촉을 통해서 해결하고 있다.


“아니면 제가 업고 들어가기를 바라시는 건가요? 도련님이 바라신다면 얼마든지 등을 빌려드릴 의향이 있습니다만.”

“아냐. 손이면 될 것 같아.”


내밀어진 여인의 손에 나의 손을 더한다.

따뜻한 온기와 함께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네. 감사합니다. 도련님.”


나의 손을 정말로 소중한 듯이 부여잡은 여성이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 시종은 늘 이랬다.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알 수 없는 채, 가면의 뒤에 숨어 항상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여기서 소름 돋는 것은 여성의 모습은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전혀 변함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항상 내미는 손은 주름 하나 없이 매끈했으며, 세월의 풍파를 맞은듯한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인간의 범위를 초월한 무언가였다.


“너는 이름이 뭐지?”

“한낱 시종의 이름 따위를 도련님이 기억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물어도 이렇게 회피하기만 할뿐.

그렇기에 나는 눈앞의 시종을 자처하는 이 괴물이 무척 껄끄러웠다.


“도착했습니다.”




여인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별당.


다 깨진 기왓장 몇 장이 올라가, 폐가를 연상케하는 이곳은 놀랍게도 내가 어렸을때부터 먹고 자고 살아왔던 보금자리였다.


내게 퇴마사로서의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은 이들은 나를 명월가의 일원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으며, 꼴도 보기 싫다는 이유로 본당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이곳에 나를 방치했다.


소빈을 비롯한 명월가의 사람들이 기거하는 본당은 물론이거니와 하인들이 숙소로서 이용하는 행랑채와도 도보로 1시간 이상 떨어져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말이 별당이지, 죄인을 격리해놓은 일종의 유배지(流配地)였다.


“...괜찮으십니까?”

“들어와.”

“도와줬으니까 차 정도는 내어줘야지.”


마당에서 공손하게 손을 모은 채 대기하고 있는 여성을 안쪽으로 불러들인다.


아궁이에 불을 붙이고 주전자에 물을 올린다.

기겁하며 도와주려는 여인을 손을 물러나게 한 다음 오면서 따온 찻잎을 둥둥 띄웠다.


껄끄럽다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타인의 호의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분명 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함이 마땅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일수록 더욱 가까이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감사히 잘 마시겠습니다.”


두 손으로 공손하게 찻잔을 받친 여인이 입가에 가져간다.

가면의 극히 일부만을 올려 요령 좋게 마시는 여인의 입술은 생기가 넘치는 붉은 빛을 띄고 있었다.


“부탁이 하나 있어.”

“네.”


약 일각 반쯤 되는 짧은 티타임이 끝나고, 진짜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녀 역시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놀라는 일 없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안개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정확하게 어떠한 정보를 말씀하시는 걸까요?”


“목격정보야. 조만간 어딘가에서 핏빛처럼 붉은 안개가 피어오를 거야. 안개가 등장하자마자 그에 대한 정보를 곧장 내게 가져다줬으면 해.


“...붉은 안개 말씀이시군요. 알겠습니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도 모르는 사건의 정보.

단서라고는 붉은색의 안개, 하나밖에 없는 무리한 부탁임에도 여인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게 내가 그녀를 껄끄럽게 생각하면서도 거리를 벌리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녀는 정보수집이라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


어떠한 정보든 빠르고 정확하게 내게 가져다줬으며, 이에 대한 경위도 묻지 않았다.

다루기 너무나 쉽기에 오히려 꺼림칙했다.


다과를 정리하고서 방을 빠져나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며 쓰게 입맛을 다졌다.

저건 악마다. 달콤한 이야기로 사람을 꼬드겨 끝내 파멸로 이끄는 악마.


당장 편리하다고 계속 남용하다가는 끝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거다.

수많은 전생을 반복한 나의 직감이 그렇게 고하고 있었다.


품속에서 물건을 꺼냈다.

흑랑의 시체 밑에서 발견한 주먹만 한 크기의 붉은 보석이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보석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을 보면 조금 다른 걸 알 수 있다.

루비처럼 밝은 붉은색의 안쪽에 검은색에 가까운 검붉은 무언가가 꿈틀대는 게 보인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건 자연적으로 발생한 보석 같은 게 아니다.


“설마하니 살면서 이걸 두 번이나 보게 될 줄이야.“


수백 년 전 단 하룻밤 만에 수천이 넘는 사람을 몰살시켜 사상 최악의 재앙이라고까지 불리던 괴이가 하나 있었다.


그 괴이의 이름은 피안몽환(彼岸夢幻).


이것은 피안몽환(彼岸夢幻)이 출현하기 직전임을 알리는 일종의 사전징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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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부탕도화(赴湯蹈火), 때로는 불길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가야할 때도 있다. 24.08.01 14 0 13쪽
8 백절불굴(百折不屈) 절망속에서도 소년은 꺾이지 않는다. 24.07.30 14 0 10쪽
» 피안몽환(彼岸夢幻), 붉은 안개는 악몽을 선사한다. 24.07.29 15 0 9쪽
6 명재경각(命在頃刻), 곧 숨이 끊어질 듯이 위태위태하다. 24.07.28 16 0 12쪽
5 경천동지(驚天動地), 세상을 놀라게 할 광경을 목격했다. 24.07.27 21 0 12쪽
4 누란지세(累卵之勢), 곧 무너질듯이 아슬아슬한. 24.07.26 22 0 15쪽
3 불우지변(不虞之變),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마주하다. 24.07.25 25 0 14쪽
2 낙화유수(落花流水), 시든 꽃과 흐르는 물. 24.07.24 33 0 12쪽
1 해후(邂逅), 그러나 오직 나만이 기억하는. 24.07.23 7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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