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의 시작
20XX년.
이날 지구는 망했다.
인류가 망한 게 아니라, 지구가 망했다.
먹장구름은 온 우주를 물들였다.
그리고는 살아있는 것처럼 태양계로 들어와, 오직 지구를 향해 곧장 진입했다.
쾅!
하늘에 구멍이 뚫리고, 먹구름이 쏟아진다.
먹구름은 지상을 뒤덮으며 제 영역 안의 모든 것을 오염시켰다.
먼저, 지표면이 왜곡되었다.
기상이 왜곡되었다.
인간을 제외한 생명체가 왜곡되었다.
법칙이 왜곡되었다.
안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게 왜곡되었다.
얼마 후 인류는 국적과 언어를 막론한 어떤 지식 하나를 받아들였다.
[ 종말계(終末界) 강림. ]
세계의 종언이었다.
그렇게 전 지구적인 재앙이 막 시작되던 때에, 정도운은 자취방에 앉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다 곧 이상한 책자가 눈에 띄었다.
“뭐지? 여기에 이런 걸 두었었나.”
고개를 갸웃하고 집는다.
고풍스러우면서도 기풍이 있는 겉표지와 책등.
조심스레 펼쳐본 안에는 어떤 내용도 없이 백지만이 드러나 있었다.
“@*!@$&!!@!^(1@(&@*······.”
정도운은 그럼에도 머릿속으로 책이 읽히는 기이한 현상에 홀린 듯 책장을 넘겨나갔다.
때로는 앞으로, 때로는 역순으로.
목차가 있는 지면을 펼칠 때였다.
털썩.
그는 의식을 잃었다.
“허억!”
정신을 차리고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익숙하지만 낯선 천장이었다.
그렇게 표현한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마치 정해진 규격에 억지로 꽉꽉 구겨 넣은, 현대식 집 한 채를 모방한 듯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여, 여긴···?”
정도운은 두리번거리다 손목에 웬 나침반이 시계처럼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새로운 장을 펼칠 때마다, 새로운 던전과 장소, 온갖 모험의 절지(絶地)를 누비는 나날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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