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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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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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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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삼월 열 이틀

DUMMY

경운궁 대문 앞.......

윤서의 가마가 도착하자 궁궐의 대문에서 판내시부사 김초시가 직접 윤서를 맞이한다. 그는 내시의 수장으로 임금 측근의 비밀연락을 맡고 있어 궁궐 안에서 실질적인 세력으로 통한다. 이런 그가 직접 윤서를 맞이하는 이유는 그녀가 최이현의 딸이기도 하지만, 백부 최이척에게 감시권 안에 있다는 무언의 경고를 보내는 뜻이다.


윤서가 창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김초시에게 인사를 한다. 매서운 눈으로 가마를 살펴보다 윤서에게 가벼운 미소를 짓는 김초시다. 혹시 인목대비와 연통되는 물건을 찾고자 하였으나 이상이 없는 듯하다.


“이젠 어엿한 규수로 성장했구나.”


“오랜만입니다. 김부사대감.......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계례식(성인식)이 다섯 해 전이니 올해 방년(20세)이 되겠네?”


“그저 나이만 축내고 있어 부끄럽습니다.”


“아버님 최이현 대감의 일은 들었다. 상심이 크겠구나?”



아버지 최이현의 죽음을 들먹이자 윤서의 표정이 굳는다. 윤호산과 조찬한의 짓이지만 그 뒤에는 임금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윤서이다. 그런데 뻔뻔하게도 그녀 앞에서 모르는 척, 걱정하는 듯한 모습이 가증스럽다. 그래도 티내면 지는 것이라 애써 미소를 짓는다.



“포청에서 조사 중이니 범인이 곧 잡힐 것입니다. 잡으면 내 손으로 대가리를 부셔 버릴라구요!”



윤서의 막말에 김초시가 놀라 얼굴색이 노랗게 변한다. 곁에 있던 막란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큭큭’거린다. 윤서가 짜증나듯 막란에게 말한다.



“빨리 앞장 서 막란아! 대비마마 기다리시느라 숨넘어가겠다!


“가마에서 내리셔야 합니다.”



토포사 조찬한이 어느새 나타나 윤서에게 호통 친다. 그를 처음 보는 윤서에게 토포사라고 막란이 넌지시 말해 준다. 아버님을 죽인 원수이다. 할 수만 있다면 도끼로 이놈의 머리를 오차 없이 반으로 쪼개고 싶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더 큰 놈들을 후리기 위해서는.......



“토포사 어른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권한이 없는 궁궐 안에서 뭐하는 짓입니까?


나지막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관직에 있는 사람을 나무라듯 말하는 윤서가 막란이 보기에 민망하다.



“의금부(왕의 직속기관) 일도 보고 있으니 궁궐을 출입하는 사람을 통제하는 일은 제 업무입니다. 가마를 살펴봐야 겠으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이런 일에 대비하여 윤호산이 간밤에 조찬한을 한직이기는 하지만 종육품 의금부 참상도사를 겸직시켜 놓았다. 때문에 궁궐을 출입하는 가마를 수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윤서는 응할 마음이 없었다. 원수의 말을 듣다니.......



“이 무슨 귀신 신나락 까먹는 소리입니까! 궁궐 안에 들어왔으면 내시부 일이지 이게 의금부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요! 김초시 판내시부사님?”



이미 윤서의 기에 눌린 김초시가 토포사와 그녀의 눈치를 번갈아 본다. 관직의 위계는 김초시가 토포사보다 앞서 있지만 조찬한은 윤호산의 사위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궁궐 안은 내시부 일이 맞는 듯하다. 윤서가 더욱 소리 높여 따진다.



“김초시 대감....... 말씀 잘 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의금부 하위 관료 따위에게 눌리면 내시부 고달파집니다.”


“.......대비마마가 기다리신다. 형식적인 것은 면해 줄테니 어서 뵙도록 하여라.”


“가자 막란아! 너무 지체했어! 김초시 대감 만수무강하세요!”



막란 서둘러 가마를 이끌고 멀리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는 조찬한. 비록 소성(인목대비)과 윤서를 만나게 했으나 둘은 어떤 식으로든 연락을 주고받을 것이다.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가마를 조사하지 않았다. 연통이 있다면 그 뒤를 캐야 한다.



“윤서야 오느라 수고 많았지?”



아버지 최이현이 살아 있을 때는 자주 뵈었던 인목대비이다. 윤서의 총명함과 예쁜 외모에 최이현이 죽지 않았으면 아들 영창대군과 혼인 시키려 했던 인목대비이다. 그래서 윤서가 도착하니 무릎이 아파 절어도 버선발로 그녀를 맞이한다.



“대비마마....... 많이 야위셨습니다. 곱던 얼굴이 곱지 않아 보입니다.”


“나이 살이다. 괘념치 마라. 최이현 대감의 일은 묻지 않으마....... 그래 어떻게 지내고 있어? 더 예뻐졌구나? 묻고 싶은 말이 태산과 같다. 봄바람 쐴 겸 궁궐 안이나 돌아다니자.”


“다리가 불편하시니 가마에 오르십시오. 저는 걷겠습니다.”



이들의 행동을 멀리서 조찬한이 지켜본다. 이미 궁녀들과 상궁들은 포섭해 놓아 인목대비의 생활을 빠짐없이 감시하고 있다. 안에서는 바깥으로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인목과 연결되어 있는 반정세력 또한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최이척의 조카 윤서를 이용해 주고받는 대화와 물품으로 인목의 세력들을 밝히려 하는 것이다.


인목대비가 가마에 오르자 그 옆으로 윤서가 따르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서궁이라 해봤자 대비에게 허락된 지역은 사방 이 백보가 되지 않는 좁은 구역이라 담 밑을 빙글빙글 돌 뿐이다.


윤서와 인목대비의 대화내용을 포섭된 궁녀들이 귀를 세워 주의 깊게 들으려 하지만, 바깥에 있는 윤서의 목소리는 잘 들리나 가마 안에 있는 인목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아버님은 명심보감을 좋아 하셨지요. 특히 경행록에 나오는 구절을 좋아하셨습니다.”



윤서는 가마 안에서 잘 들릴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인목대비는 윤서가 하는 말이 재미있는지 듣고만 있는 것 같다.



“〈사람들과 원수지간이 되지 말아라. 좁은 길에서 만나면 피해가기 어렵다.〉는 구절을 제일 좋아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악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숫돌과 같아 갈려 닳아 없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나 날로 이지러짐이 있다.〉는 이 구절이 좋습니다.”



궁녀들과 상궁도 윤서의 말솜씨에 이끌려 정신없이 듣고 있다. 막란도 뒤를 훔쳐보며 윤서의 정신없이 떠드는 모습이 보기가 좋은지 연신 입가가 올라간다.


가마안....... 윤서의 목소리가 주위를 맴돌면 가마의 격벽이 올라간다. 최이척이 보낸 사람이다. 사람 한 명을 더 버티려 가마가 커졌고 허우대가 좋은 가마꾼이 붙은 것이다.



“능양군을 모시는 반정일은 삼월 열이틀로 확정되었습니다.”


“내 비록 폐비는 되었으나 국모인 것은 다름이 없으니 새로운 왕을 옹립하는 이 교지를 능양군에 전달토록 하여라.”



반정을 인정한다는 인목대비의 친필 서한이다. 사실 지금의 임금도 서자출신이라 적통성을 인정받지 못했을 때, 인목대비의 허락으로 왕의 자리에 올라간 것이다. 그것을 뒤집고 능양군을 다시 왕으로 추대한다는 뜻이니 반정을 일으키는데 이보다 더한 힘은 없다.


가마 밖에서는 윤서의 이야기에 모든 사람들이 넋이 빠져 있다. 김초시부사도 조찬한 옆에 서서 이들을 지켜본다.



“별일 없는 듯하네....... 봄바람이 살랑거려 소성(인목대비)도 바깥 공기를 오랜만에 마시니 기분이 좋은 게야. 소성도 아들 영창의 뒤를 따르게 될 테니 오늘은 맘껏 즐기게 놔두게.”


“.......”


“평생 방문 밖을 나오지 않았던 사람인데....... 별일 이야.”



평생을 문밖에 나오지 않은 소성이라....... 그런데 오늘은? 조찬한이 뭔가 집히는 듯 가마 쪽으로 향한다. 윤서가 조찬한을 보자 더욱 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한다.



“어느 부부의 이야깁니다. 서방님께선 요즘 왠일로 우물가를 찾지 않으신지요? 하고 물었답니다. 그런데 남정네가 뭐라고 그랬는지 아십니까? 임자 우물이 너무 깊다고 했다네요.”



모두들 까르르 웃고 있는데 조찬한이 가까이 와서 느닷없이 가마 문을 열어 본다. 인목대비가 날씨가 더운지 윗옷을 벗고 있었다. 얼른 옷고름을 여미며.......



“네 이놈! 지금 무엇을 하는 거냐! 대비인 날 능멸하는 게야!”


“대비가 아닌 폐비입니다. 가마 안을 봐야겠으니 그만 나오시죠?”


“의금부 겸직 도적 잡는 토포사 조찬한 나리!”



윤서의 속 긁는 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인목대비를 재촉한다. 분명 가마 안에 무언가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오랜만에 본 최이현의 딸 윤서를 대면하지 않고 혼자 떠들게 해줄 리가 없다.



“왕명입니다. 나오세요!”


“왕명이라 했느냐? 주상을 불러라! 주상이 와서 날 끌어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가마 안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야!”


“뭣들 하느냐! 어서 폐비를 끌어내지 않고!”



조찬한의 졸개들이 인목을 끌어내려하자 윤서가 윗옷을 벗고 가마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인목대비가 놀라 윤서에게 옷을 걸쳐주자 마다한다.



“이놈들 내 몸에 손만 대기만 해봐....... 여인을 희롱한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줄 테다. 대비마마는 옷 벗지 마세요. 나 혼자 충분합니다!”



인목대비야 임금이 내친 사람이라 두려울 것이 없지만 윤서는 틀리다. 조선 선비의 기개와 청렴의 상징인 최이현의 딸이다. 그녀를 희롱한다는 것은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저렇게 오만방자하게 자신을 마음껏 욕보인 윤서를 끌어내지 못하면 김초시부사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는다. 진퇴양난이다.


그때 토포사 관청에서 사람이 왔다. 참봉집이 화적들에게 털렸다는 것이다. 하인들 모두가 죽고 자신의 정보원인 참봉 일가도 떼죽음을 당했다. 참봉이 토포사 조찬한 사람이란 걸 알고 화적들이 자신을 유인했었고 이번에도 일부러 노린 것이다.



“알겠습니다. 방해하지 않을 테니 두 분 회포를 푸십시오.”



순순히 조찬한이 물러가자 갸우뚱하는 윤서. 인목대비도 그제야 살았다는 한숨을 푹 내쉰다. 막란이 윤서에게 저고리를 입혀준다.



“다음부터 그러지 마세요. 남사스럽습니다.”


“치마도 벗어 버릴려구 그랬어 얘!”


“윤서야 오늘은 그만 돌아가거라. 네 이야기는 잘 들었어....... 최이척 대감에게도 내 말 전하거라.”



윤서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이척한테 충분히 설명을 들었지만 이 번 거사는 윤서에게 모든 것이 달렸다고 해도 틀림이 없었다. 반정을 윤허하는 인목대비의 교지는 그만큼 중요했다. 윤서에게 가벼운 인사를 받은 대비는 다른 눈들을 피해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막란은 전 날 밤 윤서가 타고 갈 가마를 보았다. 겉에서 보았지만 혼자 타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기둥을 두들겨 보니 속은 텅 비어 대나무처럼 가벼웠다. 윤서 이외에 다른 것도 가져가는 것이 분명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윤서를 보호해야 했다. 그래서 솔개에게 신호를 주어 토포사의 이목을 다른데 돌리려 참봉집을 털라고 한 것이다.


가마 밖에서 윤서가 떠들 때, 대비가 정좌로 앉아 있는데 가마가 흔들렸다. 직감적으로 누군가 함께 타고 있음을 느꼈다. 더구나 윤서의 농담 이야기를 듣는 대비가 호응을 해 주지 않았다. 윤서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는 눈치다. 막란은 더 이상 알려 하지 않았다. 윤서 곁에서 그녀만 보호하면 된다.



“막란아 너 또 딴 생각하지? 내가 가자고 두 번 이나 말했잖아!”


“네....... 모시겠습니다.”


“얘 너 정말 정신 안 챙길래....... 자꾸 그러면 꼽추 등짝 확 펴 버린다!”



누구 때문에 큰일을 넘겼는데....... 윤서는 세상 모르고 막란을 쥐 잡듯 잡는다. 이제 궁궐의 대문 대한문만 지나면 윤서와 막란의 일은 끝난다.


그런데 건물의 모퉁이를 돌자 김초시와 형조판서 윤호산이 관군들과 대문 앞에서 이들을 기다린다. 막란 빼곰히 내다보고 있는 윤서의 눈과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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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심청이와 흥부 그리고 가시덤불 24.08.17 14 0 11쪽
39 천으로 세상을 덮다 24.08.16 17 0 11쪽
38 고구마와 감자 24.08.15 2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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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주머니 속의 송곳 24.08.13 21 0 12쪽
35 숟가락과 젓가락 24.08.12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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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몸 하나로 두 임금을 섬길 수는 없다 24.08.10 26 0 11쪽
32 아버지를 죽인 아버지 24.08.09 1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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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명월관에서 일어난 일 24.08.07 25 0 11쪽
29 원수의 집을 찾아 가다 24.08.06 29 0 12쪽
28 도롱이가 비를 맞다 24.08.05 2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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