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렙 숨기고 꿀 빠는 9급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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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세온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26 09:46
최근연재일 :
2024.08.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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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1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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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이런 눈물이라면

DUMMY

치카치카.


이를 닦으며 생각했다. 역시 혼자서 먼저 돌아오니 참 좋다고.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화장실에서 이 닦을 때 동료 직원과 마주치는 게 참 어색했다. 서로 멀뚱히 거울을 보며 칫솔질을 하는 게 말이다.


슥삭슥삭 혼자만의 양치질을 즐기며 떠올려 보았다.


‘오늘 마법을 몇 번 썼더라?’


우선 출근하자마자 환영 분신 1번. 그 후에는 명료한 정신을 썼고, 고요 마법과 빙결 2번까지 해서 총 5번이었다.


‘오전 중에만 5번이라······.’


조금 걱정되는 횟수긴 하나 대부분이 저레벨 마법이었다. 아직 시스템의 알람도 없었고 말이다. 그 와중에 세우게 된 가설 역시 있었다.


우선 첫 번째 추측.


‘저레벨 마법이라면 제법 오래 지속해도 괜찮다는 것.’


예를 들어 진상 아저씨에게 썼던 고요(silence)는 1레벨 주문이다.


그가 떠들 동안 계속 유지했는데도 별문제가 없었다. 거의 20분 정도 됐나? 내게는 희소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고레벨 마법이라고 꼭 개연성 훼손이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것.’


이 가설을 세우게 된 이유는 식혜에 사용했던 빙결(frost) 때문이었다.


빙결은 의외로 오늘 쓴 주문 중 가장 고위계다. 무려 5레벨 마법이었다.


일전에 썼던 비행이나 투명화보다도 높은 위계.


비록 식혜에 살얼음을 끼게 하는 사소한 행위였지만, 내게는 나름 실험이자 모험이었던 셈이다.


‘한데 2번이나 썼는데도 문제가 없었지.’


그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5레벨 정도 되면 상당한 위력을 자랑하는 편이라, 막 써도 될 것 같지 않은데.


그래서 나름 내린 결론이 그것이었다.


주문의 레벨이 좀 높더라도, 위력의 조절을 하면 괜찮다는 것. 오늘 내가 쓴 빙결은 원래 위력의 10%, 아니 5%에도 미치지 못했으니까.


‘일요일에 주문을 안 쓴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고.’


그렇게 머릿속으로 가설과 추측들을 정리했다.


얻을 건 얻고 버릴 건 버리고. 앞으로도 차차 기준을 세워갈 작정이었다.


최대한 개연성을 건드리지 않는 쪽으로, 유연하게 마법을 활용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였다.


띠링!


[인과율이 당신을 향해 미소 짓습니다.]


‘···응?’


[개연성의 훼손이 상쇄됩니다. 사용자의 능력 발현이 소폭 자유로워집니다.]


‘??’


그렇게 갑작스러운 알람음은 끝났다. 놀란 나는 양치질마저 멈춘 채 굳었다.


‘뭐지? 어떻게 된 거야?’


물론 알람의 내용은 긍정적이었다. 개연성의 훼손이 상쇄됐다니. 그거야말로 내가 바라던 바가 아닌가.


다만 무슨 이유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다시 천천히 칫솔을 움직이며 고민해봤으나 번득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마법 사용에 관해 고민한 대가로 보상을 받은 건가?’


아니다. 말이 안 된다. 너무 나 자신에게 편의적인 해석이었다.


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


‘설마, 아까 임다현씨를 도와준 것 때문에?’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 역시 납득이 가지 않는 얘기였다. 일단 알람이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라도 착한(?) 일을 했다고 보상을 줬다고 치자.


그럼 아까 진작에 줬어야 한다. 어째서 한참 지난 지금에야 알람이 울린다는 말인가. 지금껏 시스템과 함께 지내면서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흐음······.”


끝내 답을 찾지 못한 나는 일단 양치를 마무리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헹궜다.


오글오글, 페. 오글오글, 페.


자리로 돌아가 양치 도구를 정리한 후 휴게실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변수로 새로운 고민이 생겨버렸지만, 이럴 때는 만병통치약이 있었다.


바로 낮잠 말이다.


‘그래. 일단 한숨 자고 생각하자.’


점심시간에 쪽잠을 자던 건 현대의 습관이었다.


원래는 엎드려서 자고는 했는데, 그 대신 의자에 몸을 뒤로 푹 기댔다. 그 상태 그대로 눈을 감았다.


‘엎드린 것보다 훨씬 편하네.’


이게 대체 뭐라고.


예전에는 자세 하나부터 그렇게 눈치를 봤다. 물론 누군가 본다면 안 좋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에이, 몰라.’


내규를 어긴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공공예절에 크게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뭐라고 하면 좀 듣지 뭐.


그렇게 합리화한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

*

*


지이잉!


알람 소리와 함께 잠에서 일어났다. 점심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깊은 숙면을 취한 느낌에 기지개를 쭉 켰다.


“흐아아아······.”


눈을 비비고 부스스해진 머리를 정리했다. 그새 머릿기름이 제법 분비돼 있었다. 마치 휘발된 고민이 남기고 간 흔적처럼.


슥슥ㅡ


떡진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스치는 감각이 찝찝했다.


‘으으······.’


낮잠을 자면 다 좋은데 이게 안 좋다. 꼭 낮잠이 아니라도 오후쯤 되면 이렇게 되는 게 보통이지만.


‘어우, 개기름.’


한때는 이게 싫어서 세수도 해 봤고, 기름종이를 써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큰 효과는 없었다. 당장에만 좀 낫다뿐이지 금방 더 떡이 지는 느낌?


‘별수없지, 뭐.’


마법이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다.


산을 무너뜨리고 하늘을 가를지언정 개기름을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현실을 인정하다 문득.


“잠깐만.”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1층 복도로 나갔다.


‘마법으로 안 된다고?’


cctv의 시선이 닿지 않는, 인적이 드문 한쪽 구석으로 향했다. 예전에 드래곤을 봉인하러 날아갔던 그쪽이었다.


‘그럼 마법이 아니라면 어떨까?’


창밖을 힐끔 살핀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정령 소환(summon elemental).”


용사였던 나는 마법이 아닌 정령술도 익혔다.


물론 마법만큼 잘 쓰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는 소리다. 다만 이쪽 세상에는 정령이 없을 것 같아서 쓰지 않았는데.


‘신성한 예언이 가능했던 걸 보면 될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기대와 달리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역시 정령은 없는 건가?’


입맛을 다시며 돌아가려던 순간이었다.


보그르르ㅡ


허공에 일어나는 작은 물거품. 이내 그것은 반투명한 물빛의 형체로 변했다.


‘오······!’


판타지 세상의 그것보다 훨씬 희미했지만, 분명히 물의 하급 정령이었다.


현대에도 정령이 있었다니.


‘이 세상에서 정령을 소환한 건 내가 최초 아닐까?’


몽글몽글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물의 정령에게 부탁했다.


‘내 몸을 좀 씻겨줄래? 영 찝찝해서.’


보그르르ㅡ


마치 대답하듯 한 차례 거품을 일으킨 물의 정령이 내게로 날아왔다. 익숙한 몸짓으로 두 팔을 벌렸다.


슈아아아!


청량한 물길이 온몸을 훑어내리는 기분.


‘아, 좋다······!’


정령을 이용한 목욕.


이건 판타지 세상에서도 자주 썼던 방식이었다. 전투로 몸이 더러워졌을 때마다 정령에게 신세를 지곤 했다.


혹시라도 누가 지나가며 볼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정령은 일반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냥 창문 앞에서 팔을 벌리고 있는 걸로 보일 것이다.


‘···그게 더 이상하려나?’


잡생각을 하는 와중, 물의 정령은 금방 세신을 마쳤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깔끔히 씻어냈다.


떡진 머리와 기름진 두피를 완벽히 헹구는 것을 끝으로.


녀석은 퐁, 하고 내게서 떨어졌다. 먼지와 유분을 모아서 가둔 회색빛 물풍선을 짐처럼 안고 있었다.


저렇게 가져갈 것만 가져가고 옷은 젖지 않는다.


그 점이 바로 정령 세신술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작업 후 적절한 수분은 남겨두기에 보습 효과마저 있었다.


고마움을 담아 되뇌었다.


‘수고했어, 정령아. 여기서도 우리 자주 보자.’


보그르르르ㅡ


한 바퀴 빙글 회전하는 귀여운 물의 정령. 녀석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읊조렸다.


“소환 해제.”


녀석을 돌려보낸 나는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을 맛봤다.


점심시간에 사우나라도 다녀온 기분이다. 당연히 공무원으로서는 꿈도 못 꿀 행동이었다.


개기름과 작별한 나는 말끔한 모습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뭐야, 민혁씨. 오늘따라 왜 이렇게 깔끔해?”


이선정 주무관의 물음에 빙긋 웃음으로 답했다.


“그런가요? 하하······.”


*

*

*


별일 없이 업무를 마치고 오늘도 정시퇴근했다. 다양한 시선들이 나를 향했다.


부러워하는 눈빛. 저 새끼가 또? 하고 괘씸하게 보는 눈빛. 너도 참 대단하다는 눈빛.


전부 다 깔끔히 차단했다. 재빨리 귀가해서 문을 열며 밝게 소리쳤다.


“다녀왔습니다!”

“아들! 왔어?”


나를 반기는 엄마의 표정도 내 목소리만큼이나 훤했다. 옛날과는 아예 딴 판이었다.


아마도 나부터가 달라져서 그럴 것이다.


예전에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서는, 곧 죽을 것 같은 얼굴로 퇴근을 했었다.


그만두고 싶다고 말은 안 했지만 온몸으로 시위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 너무 힘들다고. 근데 당신들 때문에 억지로 다니고 있다고.


근데 그걸 엄마라고 진짜 몰랐을까?


‘그야말로 천하의 불효자식이었던 거지······.’


후회스러운 과거였다.


보통 이러한 감정은, 진실로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는 게 대부분이다.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과거를 바꾼 기회를 얻은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 놈이었다. 어쩌면 로또 같은 것보다도 훨씬 더.


‘잠깐, 그렇게 되면······.’


판타지 세계에 끌려갔던 것도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 되나? 어쨌든 그것 때문에 회귀할 수 있었던 건데.


묘한 감정을 느끼던 차에 엄마가 말했다.


“아들. 밥부터 먹어.”

“잠시만요, 엄마. 그 전에 할 말이 있어요.”

“할 말?”


*

*

*


잠시 후, 우리 가족은 거실에 모여 앉았다. 엄마와 아버지를 앞에 두고 입을 열었다.


“요즘 재개발 때문에 걱정 많으시죠?”

“으응?”

“허허. 걱정은 무슨.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신경 쓰지 말어. 직장 적응하기도 힘들 텐데······.”


어머니는 되물었고,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두 분을 향해 말했다.


“사실은 제가 돈을 좀 마련했거든요.”

“뭐?”

“무슨 돈?”


로또에 걸렸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털어놓으면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고민 끝에 그렇게 정했다.


“대출이 잘 나오더라고요. 아시잖아요? 공무원이 워낙 안정적인 직업이라.”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대체로 그렇지만 개개인마다 다르고, 금액 역시 차이가 크니까. 다행히 엄마와 아버지는 그런 쪽으로는 잘 모르셨다.


“아들. 혹시 위험한 거 아니니?”

“전혀요. 1금융권에서 제대로 빌린 거예요. 이자도 거의 없고 기한도 아주 넉넉하고.”

“그래도······.”

“그리고 혹시 알아요? 입주하고 나서 집값 엄청 오를지.”

“아유, 너는 무슨. 별소릴 다 한다, 얘.”

“허허, 민혁이 이놈이. 벌써 그런 생각부터 하는 거냐?”


엄마와 아버지는 어색하게 웃으셨다.


내 말에 분명 마음이 동하셨을 텐데, 무의식적으로 평정을 유지하시는 거다. 기대가 클수록 그만큼 실망도 커질 테니까.


그건 보통의 사람들이 종종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그래서 체득할 수밖에 없는 진리였다.


“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죠, 뭐.”


멋쩍게 웃으며 말했으나 속으로는 다르게 되뇌었다.


‘엄마. 아버지. 이번에는 기대하셔도 될 거예요.’


왜냐하면, 실제로 집값이 오를 거니까요. 그것도 엄청나게.


몇 차례 더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린 후, 다음으로 봉투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이거요.”

“응?”


멋모르고 받은 엄마가 속을 열어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미, 민혁아! 이게 무슨······.”


미리 준비한 그것은 빳빳한 5만 원권으로 채워져 있었다. 제법 두툼하니 천만 원.


“이걸로 아버지 허리 치료 받으세요.”“뭐?”

“이번에 대출이 좀 많이 나왔거든요. 남는 돈 인출해 온 거예요.”

“이놈아. 아무리 그래도 그걸······!”

“아버지.”


나직한 목소리로 불렀다.


“솔직히 허리 많이 안 좋으시죠?”

“······.”

“그거 놔두면 나중에는 진짜 심각해질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제 말 듣고 치료 받으세요. 꼭이요.”


단호한 어조에 아버지의 말문이 막혔다. 엄마는 현찰이 든 봉투를 만지작거렸고, 아버지는 괜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분은 그렇게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그럼 전 밥 먹으러 갈게요. 어우, 배고파.”


괜한 말과 함께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정성스레 차려진 저녁밥을 맛있게 먹었다.


이윽고 들리는 엄마의 훌쩍이는 소리, 아버지가 어깨를 두드려주는 소리가 들렸다.


부모님 눈에서 눈물 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런 눈물이라면 괜찮다.


앞으로 얼마든지 흘리게 해 드리겠다고.


그런 다짐과 함께 묵묵히 수저를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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