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렙 숨기고 꿀 빠는 9급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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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세온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26 09:46
최근연재일 :
2024.08.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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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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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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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사람을 살리는 데 필요한 것

DUMMY

솔직히 우리나라의 복지는 내가 봐도 괜찮은 편이다.


까놓고 말해서 일을 하지 않더라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면 얼마든지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어쩌면 그런 말로도 부족할 만큼 여러 가지 정책과 프로그램이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지.’


예컨대 아무리 좋은 약이 있으면 뭐하나? 환자가 먹지를 않으면 끝인데.


한데 그 ‘환자’라는 말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센터에 복귀한 후로도 간간이 생각에 잠겼다. 이창현이라는 그 청년, 그의 누운 뒷모습이 떠오른 탓이었다.


“민혁씨, 잘 다녀왔어?”


말을 걸어온 건 이선정 주무관이었다.


“예.”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무슨 고민 있는 사람처럼. 민혁씨 그러는 거 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아, 그 정도는 아니고······.”


대충 넘기려다, 은근히 진지한 그녀의 표정이 보였다. 그래서 내친김에 간단히라도 털어놓았다. 이창현씨의 사정에 대해서였다.


“음··· 그런 일이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말했다.


“근데 뭐, 어쩌겠어? 할 수 있는 선에서 하고 안 되면 별수 없는 거지.”

“그런가요?”

“그럼. 우리가 민원인 개개인을 다 챙겨줄 수는 없어. 우리가 맡은 사람이 몇 명인데? 따지자면 100명도 넘잖아. 민혁씨 그 사람들 다 그렇게 보살필 자신 있어?”

“아무래도 힘들겠죠.”

“그러니까. 물론 그렇게 고민하는 자세가 나쁘다는 건 아닌데, 너무 부담은 갖지 말라는 소리야. 꼭 그런 사람들이 빨리 그만두더라고.”

“······.”

“기껏 잘하고 있는데 그러면 안 되잖아?”


이선정 주무관은 어쩐지 씁쓸하게 웃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무원을 그만둘 생각이야 아직은 없고, 그 외의 부분은 대부분 동의하는 바였지만.


‘그보다는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어서.’


사실 이창현씨와 비슷한 경우를 본 적이 있었다. 판타지 세상에서 말이다.


마물과의 전투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청년.


그는 여러모로 이창현씨와 닮은 점이 많았다.


그 자신이 전도유망한 기사였다는 것과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는 점. 그 어머니를 병으로 잃었다는 것까지도 말이다.


‘처음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했었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러나 그는 결국엔 절망을 딛고 일어났다.


물론 그럴만한 계기를 내가 슬쩍 던져주긴 했지만, 그 계기라는 게 딱히 대단한 건 아니었다.


별 뜻 없이 건넨 맛있는 음식, 그리고 간단한 마법 정도?


그때 나는 깨달았다.


한 사람을 살리는 데 필요한 건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작은 관심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에도 한 번 시도나 해 볼까?’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는 오후 근무를 마쳤다.


*

*

*


뚜르르르ㅡ 뚜르르ㅡ


기나긴 통화음이 흐르고, 상담원의 음성이 나오기 직전에야 딸칵 소리가 들렸다.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이창현씨 핸드폰 맞을까요?”


[예. 그런데요······.]


“저 오늘 오후에 방문했던 최민혁입니다. 그, 행정복지센터에서 나왔다고 했던.”


[아··· 예······.]


“혹시 말씀드렸던 건 생각해 보셨을까요?”


내 질문에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아뇨. 그냥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시군요.”


예상했던 답변이라, 당황하지 않고 가볍게 설명을 곁들였다.


수급 신청이라는 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하는 거고, 지원받는 걸 미안해할 필요도 없다고. 혹여 부담스럽지 않도록 짧게만 끝냈다.


“그럼, 또 전화 드리겠습니다.”


[···예.]


뚜뚜뚜ㅡ


작은 관심이라는 게 결국은 이런 거였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전화 한 통. 판타지 세상에서도 이렇게 시작했었다.


‘그래도 이창현씨가 핸드폰은 있어서 다행이네. 언제 끊길지 모른다고는 했지만······.’


그날 이후로도 종종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로 수급 신청을 제안했으나 꼭 그런 얘기만은 아니었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기도 하고, 정 할 얘기가 없으면 별 내용 없이 끊은 적도 있었다. 딱히 심력을 기울이거나 노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었다.


‘엊그제 통화했을 때는 목소리가 조금 밝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새 다가온 주말.


마침 약속도 없어서 시간이 있는지라, 나는 다시 한번 광락4동으로 향했다.


그래도 두 번째라고 전보다는 나았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헤쳐 금방 목적지에 도달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먼저 마주친 사람은 창현씨가 아니었다.


“어?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이게 누구여. 동사무소 총각 아니여?”

“그간 잘 지내셨어요?”

“나야 죽지 못해 지냈지, 뭘.”


그는 다름 아닌 창현씨를 신고해 준 어르신이었다.


“근데 워쩐 일로 또 왔댜? 창현이 때매?”

“예.”

“그렇구먼.”


여상한 말투와 달리 할아버지는 내심 고마워하는 기색이었다. 이내 그가 헛기침을 하고는 물었다.


“동사무소 총각. 혹시 잠깐 시간 있는감?”

“왜 그러세요?”

“그야 창현이 때매 그라지.”


그렇게 말한 할아버지는 슬쩍 운을 뗐다.


“창현이 갸가 낯을 많이 가리지?”

“뭐, 그런 편이긴 한데 저도 비슷해서요. 그래도 요새는 통화도 자주 했어요. 별 얘기는 안 했지만.”

“그렸어? 그랬다면은 다행이긴 헌디······.”


작게 한숨을 내쉰 할아버지가 재차 말을 이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갸가 안 그랬어. 지 엄마 살아 있을 때까지만 해도 말여.”

“그랬나요?”

“그럼. 지금이랑은 아예 딴판이었지. 동네 어른들 보면 꾸벅꾸벅 인사도 잘 허고, 얼마나 잘 웃고 다녔는디. 뜀박질도 그렇게 잘혔다대.”

“뜀박질이라면······.”

“거, 육상 선순가 뭐시기였을 거여. 대회 나가서 큰 상도 타고 했다는디.”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였다.


창현씨의 집에서 봤던 사진 속 소년. 금메달을 목에 건 아이는 바로 창현씨의 과거였던 것이다.


“좌우간에 지 엄마 말이라면 껌벅 죽었지. 어려서 아비를 잃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모자지간에 그렇게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어.”

“······.”

“헌디 어미마저 그리 허무하게 가 버리고, 다리까지 저리됐으니 사람이 제정신이고 배겨? 그래서 젊은 나이에 저러코롬 누워만 있는 거 아녀. 나처럼 죽을 날 받아놓은 늙은이도 아닌 것이······.”


할아버지의 혀 차는 소리가 쓸쓸하게 골목을 채웠다.


창현씨의 예전 모습을 알아서 더 안타까울 것이다. 하지만 딱히 방법이 있었겠나? 할아버지의 상황도 넉넉한 편은 아닐 텐데.


“보면 하늘도 참 무심한 겨. 천하의 죽일 놈들은 떵떵거리고 사는디, 워째 저 착한 애만 저런 꼴을 당하느냔 말여. 그래도 사람이 살 수는 있게 해줘야 할 거 아니여.”


나로서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마지막 말이 그랬다. 사람이 살 수는 있게 해 달라는 말이었다.


어쩌면 그러기 위해서 내가 온 거니까.


“지 엄마라도 살아 있었으면 저렇게는 안 됐을 건디······.”


나지막이 중얼거린 그가 말했다.


“아이고, 나가 말이 너무 많았구먼. 총각도 바쁠 것인디.”

“아니에요, 할아버지. 말씀 감사했어요.”


그 말은 진심이었다.


내가 창현씨에게 쓰려는 ‘모종의 마법’.


그걸 위해서는 이창현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깊이 알수록 좋기 때문이다. 특히 엄마와의 관계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라믄 이제 창현이네로 가려는 겨?”

“예.”

“그려. 언넝 가 봐.”

“네, 할아버지. 또 봬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서려던 그때였다.


“동사무소 총각.”

“예?”

“참말로 고마워. 응?”

“아니에요, 할아버지. 저야 일하는 건데요, 뭐.”

“일은 무신. 요새는 공무원들이 주말에도 일을 하는감?”

“하하······.”


멋쩍게 웃는 내게 할아버지가 말했다.


“요즘 같은 시상에, 자네 같은 총각이 있어서 참 다행이여.”

“······.”

“언넝 가, 언넝.”


할아버지의 따스한 축객령에, 한 번 더 고개를 짧게 숙이고 떠났다.


*

*

*


그 후에는 곧장 창현씨의 집으로 향했다.


미리 연락을 주고 와서인지, 그는 전과 달리 곧장 문을 열어 주었다.


“오셨어요···.”


그는 여전히 초췌한 몰골이었다. 어두운 안색도, 강바닥에 가라앉은 돌멩이 같은 눈동자도 여전했다.


‘뭐, 이 정도는 예상했으니까. 그래도 위험한 생각은 안 한 것 같네.’


혼자 되뇌고는 대화를 시작했다.


물론 그리 오래는 이어지지 않았다. 전화로도 없었던 할 말이 만난다고 많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애초에 내 목적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시게요······?”


창현씨는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쉬워한다기보다는, 이럴 거면 왜 왔지? 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그에게 가져온 물건을 건넸다.


“아, 그리고 이거······.”


그건 바로 김치 한 통이었다.


관리센터에서 나온 건 아니고, 내가 개인적으로 구매한 거였다. 거절하기도 전에 탁자 위로 슥 내밀었다.


“꼭 드셔 보세요. 라면만 먹으면 맛없잖아요.”

“······.”

“그럼 진짜 가 보겠습니다. 안 일어나셔도 돼요.”

“···예.”


그렇게 떠나기 전, 현관에서 힐끗 뒤를 돌아보자 창현씨가 돌아눕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바로 나가지 않고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판타지 세상에서 썼던, 나만의 방법을 시도할 때였다.


“수면(sleep).”


사르르ㅡ


연두색 빛무리가 창현씨의 몸 위로 내리고, 이윽고 규칙적인 호흡 소리가 들려왔다.


살며시 다가가 그가 잠이 든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한 번 더 주문을 외웠다.


“꿈결 조율(dream tuning).”


우웅ㅡ!


드림 튜닝은 5레벨 마법으로, 상대방의 꿈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 있는 주문이었다.


고작 그런 능력으로 5레벨? 이라고 하기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위력적인 마법이다.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를 완전히 무방비로 만들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띠링!


[사용자의 마법 사용이 한계치에 임박했습니다. 개연성의 훼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오랜만에 듣는 시스템의 목소리였다.


그래도 9레벨이나 10레벨을 썼을 때보다는 나았다. 일단은 주의를 주는 내용이었으니까.


그러나 마법을 유지할수록 경고음이 이어졌다.


삐삐삐삐ㅡ


‘어쩌지? 저번처럼 마법을 봉인해서 넘어가는 방법은 위험하다고 했는데.’


하는 수없이 마력을 줄였다. 꿈결 조율의 세세한 조절을 포기한 것이다. 다만 창현씨의 의식 속, 단 한 사람의 존재만 부각시켰다.


스스스ㅡ


마법이 완성되자 경고음도 멈췄다. 다행히 선을 지킨 모양이었다.


다만 이렇게 되면 창현씨가 어떤 꿈을 꾸게 될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에게 ‘계기’를 주려는 내 목적에 부합할 수도, 혹은 아예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어. 만약 이렇게 해도 안 된다면, 그때는 내 손을 떠난 거겠지.’


잠시 그를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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