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렙 숨기고 꿀 빠는 9급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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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세온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26 09:46
최근연재일 :
2024.08.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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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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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신입

DUMMY

로또에 당첨된 채 출근하는 기분은 어떨까?


예전에도 종종 했던 망상이지만, 최소한 지금의 나는 다를 줄 알았다. 용사로 살며 온갖 희로애락을 겪은 나라면 말이다.


그러나 막상 그것이 현실이 된 지금.


“흥흥흥······.”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콧노래에 놀랐다.


콧노래라니. 평생 이런 건 해 본 적도 없었는데. 아마 그만큼 들떴다는 증거일 것이다.


어제 농협 본사에 가서 당첨금을 수령했을 때부터 이랬다.


한참을 뒤척이다 잠들었을 때도, 오늘 아침 일어나 출근할 때까지도 가벼운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일터인 복지센터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계좌를 확인했다.


그 안에 찍힌 금액은 대략 33억원.


“······.”


원래 당첨금은 50억에 육박했으나 세금 떼고 이 정도가 들어왔다. 그것도 같은 숫자를 2번 마킹한 결과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얻을 수도 있었다. 몽땅 같은 숫자로 도배를 해 버릴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아무래도 ‘신성한 예언’ 주문의 특성 때문이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사용하면 안 된다는 법칙.


그것은 꼭 능력의 제한으로만 발현되는 건 아니었다. 과한 탐욕에 취할 경우 그에 다른 반대급부가 발생한다. 예언으로 얻은 이득보다 더 큰 불행이 돌아올 수도 있었다.


‘그래서는 절대 안 되지.’


사실 이 정도도 좀 간당간당했는데.


다행히 선을 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마 그랬다면 시스템이 먼저 경고를 날려왔을 테니까.


어쨌든, 아버지의 허리를 고치고 아파트에 입주할 돈으로는 과분한 금액이었다.


나는 딱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판타지 세상에서 회귀한 내 목표는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을 지켜야 해. 그게 최우선 과제야.’


그러기 위해서는 가급적 변수를 만들어내지 않는 게 중요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커다란 행운은 오히려 독이 되는 법이다. 꼭 주문의 부작용이 아니라도 말이다. 용사로서의 경험치가 그리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볼 때마다 아주 든든ㅡ하기는 해?’


33억이 찍힌 계좌 말이다.


솔직히 마법 중에는 금을 만들어내는 연금술도 있었다.


그럼에도 33억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파괴력은 남달랐다. 현대의 서민에게 있어 눈이 번쩍 뜨이는 액수랄까?


느긋한 걸음걸이로 관리 센터에 입장했다.


내 자리로 걸어가는데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이선정 주무관이 보였다.


“민혁씨! 일찍 출근했네?”

“안녕하세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옆구리를 찔러왔다.


훅!


하지만 어제는 일요일. 단 하나의 마법 주문도 쓰지 않은 나는 여유롭게 대응했다.


“환영 분신(duplicate image).”


스스슷ㅡ


순간 내 신형이 두 개로 늘어나며 이선정 주무관의 시각을 농락했다.


“어멋!?”


과연 어느 쪽이 진짜일까요?


놀란 그녀가 외쳤다.


“미, 민혁씨. 방금!”

“네? 왜 그러세요?”


멀뚱한 내 표정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요즘 왜 이러지? 피곤한가······?”


눈을 슥슥 비비는 그녀를 지나쳐 내 자리로 향했다.


어김없이 다가온 출근 시간. 팀장님이 힘차게 일어나서 외쳤다.


“자! 오늘 ‘월’요일이니까 ‘월렁월렁’······!”


딸랑!


야심찬 아재 개그가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급히 들어왔다.


숨을 할딱이는 그녀는 나와 함께 임용된 임다현씨였다.


머리 말릴 시간도 없었는지, 긴 머리가 미역처럼 젖어 있었다. 도수 높은 안경 너머 작은 눈에는 다크 서클이 끼었다.


“죄, 죄송합니다!”

“에잉······ 다현씨! 일찍일찍 다녀야지. 저번에도 늦었지 않아?”


팀장님은 그렇게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지각보다 개그를 방해받아서 더 성이 난 듯했다.


하긴 이번엔 임다현씨가 잘못했다. 아침에 저거 한 번 외치는 게 삶의 낙인 사람인데.


“네에······.”


작게 대답한 그녀가 자리를 찾아갔다.


소심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어두운 안색.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오늘의 목표.


업무야 당연히 하는 거고, 한 가지 시험을 해 볼 작정이었다. 그건 바로······.


‘마법을 어느 정도까지 써도 되는 걸까?’


지금까지 겪은 바로, 10레벨, 9레벨 같은 고위 마법은 쓰는 즉시 개연성의 훼손이 발생했다. 레드 드래곤 출몰 같은 인과율 조정을 초래하는 것이다.


반면 저레벨 마법의 경우 큰 반응이 없었다.


‘그 기준이 대체 어떻게 되냐는 거지.’


차라리 딱 정리가 되어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업무 규정들처럼 말이다.


업무와 관련된 각종 법규가 정리된 서적들.


20년 전에도 완전히 숙지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지금은 대부분이 기억도 나지 않았다.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명료한 정신(clarity of mind).”


가벼운 혼란에서 벗어나거나 복잡한 머리를 비워내는 등, 실용적인 저레벨 마법이었다. 특히 암기력 상승에도 효과가 좋았다.


우웅!


마나가 운용되고, 내 머릿속은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처럼 쾌청해졌다. 공부하고픈 의욕이 쑥쑥 솟았다.


그 상태로 규정집을 탐독했다.


파라라락!


엄청난 속도로 페이지가 넘어갔다. 아무리 저레벨 주문이라도 내 레벨은 999다. 레벨 보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탁, 하고 책을 덮자마자 걸려오는 전화.


때르릉!


“안녕하세요. 광락동 행정복지센터 최민혁입니다.”


[여보세요?]


“네.”


[그, 기초수급 관련해서 궁금한 게 있어서요.]


평범한 전화 같지만 여기서 알 수 있는 한 가지.


최소한 진상일 확률이 낮다. 왜냐? 첫 인사말을 끝까지 들어줬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는 민원 업무를 하루만 해 봐도 알게 된다.


“아, 네. 어떤 점이 궁금하실까요?”


[그, 소득 기준이 어떻게 되나 해서요.]


이런 경우, 대부분 기초 수급에 해당되지 않는 쪽이었다.


다만 꼼꼼히 따져보고, 혹여 받을 수 있는 게 있는지 확인하려는 부류에 속했다.


신입에게는 나름 까다로운 상대였는데, 꼬치꼬치 캐물어 보면 답변이 힘들기 때문이다. 해당 규정을 달달 외우고 있는 게 아닌 이상은.


“소득 기준이요.”


내 목소리에 옆자리 이선정 주무관이 힐끗 이쪽을 쳐다보았다.


예전에는 이럴 때 일일이 책을 찾아보며 대답했었다.


그러면 대번에 상대방이 눈치채고 업신여기고는 했다. 담당 공무원이 규정도 모른다고 말이다.


‘더 문제는 그래도 쉽지 않은 경우였지.’


그때는 하는 수 없이 이선정 주무관에게 헬프를 요청해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눈칫밥이 예사 눈칫밥이 아니었다. 도움을 받을 때마다 적잖은 핀잔도 들었다.


그녀가 항상 자신 있게 내 옆구리를 찔렀던 것도, 그걸 피하지도 못하고 우직하게 맞았던 것도 다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랬다.


“민혁씨, 혹시 잘 모르겠으면······.”


이선정 주무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소득 기준 같은 경우에는.”


자신 있는 첫마디에 이어 줄줄 읊었다.


“수급권자 가구의 소득인정액이 기준중위소득 이하여야 가능합니다. 1인 가구의 경우 2,228,445원. 2인 가구는 3,682,609원인데, 혹시······.”


[아, 저는 2인 가구예요.]


“그러시군요. 일단 기준 자체는 그렇고요. 소득인정액은 소득평가액랑 재산 소득환산액을 합해서 결정됩니다. 소득평가액은 실제소득에서 가구특성별 지출비용, 근로소득 공제 제하신 거고요. 환산액은······.”


막힘없이 쭉쭉 설명을 이어갔다.


이성적인 민원인에게는 이렇게 딱딱 설명해주는 게 가장 좋다. 다는 못 알아듣겠지만 최소한의 궁금증은 풀렸을 거다. 모자란 게 있다면 알아서 찾아볼 테니까.


수화기 너머 납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알겠습니다. 제가 좀 더 알아보고 전화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네. 좋은 하루 되세요.”


전화를 끊자 이선정 주무관이 입을 벌린 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힐끔 보자 그녀가 얼른 표정을 관리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물어왔다.


“미, 민혁씨. 언제 그걸 다 외웠대? 따로 공부라도 한 거야?”

“네, 뭐.”


이 정도는 기본이죠. 라고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언제나 중용. 중용이 중요한 법이다.


“그렇구나······.”


솔직히 선배인 그녀도 이 정도로 자세히 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규정집을 통째로 달달 외운 건 아니다만, 마침 유심히 봤던 부분이라 대답할 수 있었다. ‘명료한 정신’ 마법이 단기 기억에 특화돼 있기도 했다.


“민혁씨가 역시 똑똑하네. 좋은 학교 나와서 그런가?”

“······.”


그건 좀 신기한 말이었다.


예전에는 ‘민혁씨는 학교도 좋은 데 나와서 왜 그래?’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이 바뀌니 같은 것도 다르게 받아들여지나 보다. 뭔가 달라진 그녀의 눈빛을 보며 느꼈다. 내 삶이 확실히 과거와는 좀 변한 것 같다고.


‘일단 첫 스타트는 좋은데.’


그 후로도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다.


진상이라 할 만한 전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점심시간을 30분 남겨둔 시점, 기어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아, 그러니까! 내가 지금 몇 번을 얘기하냐고. 거 참 답답하네!”


신경질적인 고성이 센터를 울렸다. 얼굴이 벌게진 민원인 아저씨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다.


그 대상은 다름 아닌 나였다.


‘웬일로 평화롭다했더니······.’


사실 이 아저씨는 유명한 진상이었다.


신입 공무원만 골라 괜한 꼬투리를 잡는다.


욕설을 동반한 일장 연설로 사람 기를 죽이고, 시무룩해진 상대방의 모습을 감상하는 게 취미인 사람이었다.


‘참 기도 안 차는 인간 군상이지.’


어쨌든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나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끼어들어 봐야 민원인의 화만 돋운다는 걸 아는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자기 일이 아니라고도 생각할 것이다. 그건 연차가 쌓일수록, 호봉이 올라갈수록 공무원이 탑재하는 기본 마음가짐이었다.


“당신 못 보던 얼굴인데 새로 들어왔지? 공무원이 됐으면 응대부터 똑바로 해야할 거 아니야! 하여간 자격도 없는 것들이 개나 소나······.”


논리도, 이성도 통하지 않는다. 그저 폭언에 가까운 주절거림을 오롯이 감내해야만 끝나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이럴 때마다 죽고 싶었지만, 지금 내게는 몇 가지 옵션이 있었다.


우선 마법으로 입을 꿰매버린다거나, 혹은 산 채로 불태워버린다거나, 아니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지독한 악몽을 선사한다거나······.


상상의 수위가 더 심해지기 전에 입술을 놀렸다.


“고요(silence).”


마법과 함께 아저씨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완전한 음소거.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는 입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좀 낫네.’


비로소 조용해진 세상에서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딴생각이나 했다.


‘오늘 점심 뭐 먹을까?’


부대찌개? 뚝불? 현대에 돌아온 후 매끼마다 행복한 고민이었다.


진상 아저씨는 그 후로 10분간 더 떠들어 대더니, 전혀 타격감이 없었는지 제풀에 지쳐버렸다. 아마 벽에다 대고 화를 내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끄떡없는, 크고 단단한 돌벽에.


한풀 꺾인 모습을 확인하고는 마법을 해제했다.


“으음. 그, 그러니까 말이야. 앞으로는 잘하라고.”

“네! 살펴 가세요.”


눈웃음과 함께 보내자 그제야 몇몇 동료들이 다가왔다.


“민혁씨! 괜찮아?”

“힘들었지? 잠깐 쉬다 와.”


예전에는 이런 얘기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진짜 휴게실에 가서 마음을 추스르고 왔다는 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모든 게 내 근무 평가가 되고 평판이 된다는 것을.


멘탈이 약한 모습을 보여봤자 좋을 게 없었다.


잠깐 동정의 대상이 되긴 하겠지만, 결국은 낙오자 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뒷담화의 대상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둘 다 직접 겪어봤던 일이기에 나는 해맑게 웃어 보였다.


“네? 뭐가요?”


너무 멀쩡한 내 모습에 놀란 표정들이 스치고, 때마침 점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자리에서 훌쩍 일어나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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