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렙 숨기고 꿀 빠는 9급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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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세온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26 09:46
최근연재일 :
2024.08.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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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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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다이어트 복싱

DUMMY

막상 공간이동을 성공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판타지 세상에서 봤던 장거리 포탈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설계 방법도 자세히 모르고, 거기서는 쉽게 얻을 수 있는 물질이 여기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어떻게든 욕심을 내서, 비슷하게나마 개발해 낸다면?


‘반응이 엄청날 거야.’


사실 포탈을 차치하더라도 내가 가진 능력 자체가 그랬다.


현대로 회귀한 후 사용했던 모든 마법들.


저레벨만 따져도 비행, 투명화, 투시 같은 것들이다. 공개한다면 세상을 놀라게 하는 건 물론, 나는 하루아침에 엄청난 유명세를 얻게 되리라.


다만 문제는······.


‘내가 이미 그런 걸 겪어봤다는 거지.’


판타지 세상에서 용사로 살며 뼈저리게 느꼈다. 그 ‘명성’이라는 것의 부작용을 말이다.


일전에 말했듯, 용사로 각성해 온갖 호화를 누렸던 건 맞다. 미녀들도 모자라 일국의 공주들이 끊임없이 구애했고, 어딜 가나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렸다.


‘용사님! 여기 좀 봐 주세요!’

‘오오, 용사님! 세상을 구원하실 우리 용사님!’


현대로 따지자면 나는 최상위 인플루언서 그 이상이었다.


내 말 한마디가 가지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했고, 다들 나를 치켜세우기 바빴다. 모두가 나를 원해 마지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정말로 아니었어.’


모두가 나를 원한다는 말.


그건 모두가 내게 ‘용건’이 있다는 말과 같았다. 여기서 그 용건이라는 건, 당연히 개개인의 이해득실에 기반한 것들이었다.


수없이 많은 권력가와 재력가가 내게 접근했다. 하물며 제국의 황제조차 어떻게든 내 도움을 얻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나라고 그들의 요청을 다 들어줄 수는 없었고, 그럴 때마다 항상 그들이 하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 대단한 힘을 갖고 있으면서 왜 나를 도와주지 않는단 말이오!’


“하하······.”


지금 생각해도 참 헛웃음이 나오는 이야기였다.


나는 신이 아니라고. 모두를 도와줄 수도 없고, 설령 그러고 싶어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아무리 말해봤자 소용없었다. 그들의 논리라는 건 말하자면 그런 식이었다.


‘내가 지금 힘든 상황이니 응당 너는 나를 도와야 한다.’

‘왜?’

‘네게는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


“······.”


심지어 도움을 준다 해도 그걸로 끝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사람의 욕심에 결코 만족이란 없더라. 한 번 호의를 베풀면 다음엔 더 큰 호의를 바랄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현대의 진상 민원인들이랑 똑같다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장거리 포탈은 일단 접어두자.’


어차피 만들 방법도 모르니 잘된 일이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후, 나는 비로소 생산적인 주제로 넘어갔다.


‘자, 그럼 이제 뭐하고 놀지?’


원래는 항상 부족한 게 퇴근 후 여가시간이었다.


집에 와서 씻고 밥 먹기도 바빴다. 그 뒤에 잠깐 유튜브 좀 볼라치면 잘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별 잡생각을 다 했는데도 아직 초저녁인 상황.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영화관 가서 영화나 한 편 볼까?’


아니면 혼자서 마트에 가서 장을 봐도 좋을 것 같은데. 근처 재래시장 탐방을 해도 좋고.


전부 예전이라면 꿈도 못 꿀 선택지들이었다.


‘셋 다 좋은데 어쩌지······.’


고민하던 그때였다.


지이잉ㅡ!


진동 소리에 핸드폰을 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회원님. 요즘 많이 바쁘신가요? 시간 되시면 언제든 운동하러 나오세요. ^^」


수신자명은 ‘복싱장 관장님’.


‘아······.’


맞다. 나 복싱 체육관 다녔었지.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과거 집 근처 체육관에 등록한 적이 있었다.


나름 일도 하고 다이어트도 한다는 명목이었다.


갓생을 꿈꿨으나 결국에는 뜸해졌다. 복지센터 일로 심신이 지친 탓이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참 재밌게 배웠는데······.’


핸드폰을 내려다보다 마침 볼록한 뱃살이 눈에 띄었다.


말랐는데 배만 살짝 나온, 전형적인 운동 부족이 현대의 내 체형이었다.


‘오랜만에 가볍게 몸이나 풀어 볼까?’


그런 생각으로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저 땀이나 빼고 오자며.


그런데.


“원(one)!”


팡!


“원투(onetwo)!”


파팡!


“원투, 훅(onetwo, hook)!”


파파팡!!


경쾌한 소리가 체육관을 울렸다. 관장님이 미트를 잡다 말고 놀라서 물었다.


“민혁씨. 혹시 혼자서 연습하셨어요?”

“예?”

“아니, 자세가 너무 좋아지셨는데요? 임팩트도 장난이 아니신데······.”

“그런가요?”

“네. 원래도 소질이 있으시긴 했는데, 이건 좀 신기할 정도네요.”


의아해하는 관장님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내가 봐도 좀 달라지긴 했다. 나 스스로가 말이다.


‘그야 20년 동안 수도 없이 싸웠으니까.’


용사로서 내 재능은 마법에만 치우치지 않았다. 근접전투, 즉 검이나 주먹도 능숙하게 썼다는 소리다.


‘그저 가장 편한 게 마법이라 버릇이 들었던 거지.’


물론 거기서 현대의 복싱처럼 싸우지는 않았지만, 결국은 몸 쓰는 요령이라는 게 똑같은 법이다.


한 마디로 내 몸속에는 짬이라는 게 녹아 있었다. 사선을 넘나들며 마물들과 싸웠던 경험치가 말이다.


“자, 이번엔 어퍼컷!”


파아앙!!!


“우와··· 민혁씨, 진짜 대박인데요? 빈말이 아니라 제가 본 관원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예요.”

“하하! 그렇게까지야······.”


겸손을 떨었으나 나 역시 신이 났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더 잘 되는 기분이었다.


그 후로 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신나게 미트를 쳤다.


때앵!


“오케이! 좋습니다, 민혁씨. 잠깐 휴식하시고 좀 더 치시죠.”

“예, 관장님.”


허억, 허억!


체력은 현대의 그것인지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그래도 땀을 쭉 빼니 개운하기 그지없었다. 시원한 물을 한 모금 입에 머금고 조금씩 삼켰다.


‘너무 한꺼번에 마시면 옆구리 결리니까.’


땀을 닦으며 쉬고 있던 그때, 누군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저기요.”

“예?”


그는 인상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남자 관원이었다. 딱 봐도 운동 좀 했는지 다부진 체형이었다.


“아까 보니까 미트 엄청 잘 치시던데. 복싱 오래 하셨어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오, 그러시구나. 되게 재능 있으시네요.”


대단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 그가 슬쩍 말했다.


“혹시 괜찮으시면 스파링 한 번 해 보실래요?”

“스파링이라면······.”

“그냥 가볍게 매스 스파링으로요. 할 사람이 마땅치가 않아서. 하하.”

“음······.”


복싱 체육관에 다니다 보면 종종 겪게 되는 상황이었다.


다만 내가 고민하는 건, 사실 남자는 내가 익히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처음 봤다고 생각하겠지만.


‘회귀하기 전에도 이런 식으로 다가왔었지.’


알고 보면 그는 체육관의 고인물로, 좀 친다 싶은 초보가 오면 꼭 스파링 신청을 하는 사람이었다.


인상 좋은 웃음으로 무장한 채 시작은 가볍게.


그러다 스파링이 진행될수록 점점 본색을 드러낸다. 결국은 초심자를 상대로 풀파워 펀치를 날리는, 일명 ‘쎄게충’이라 불리는 유형이었다.


과거에 그걸 모르고 넙죽 스파링을 했다가 어찌나 얻어맞았던지.


이제야 생각난 건데 체육관을 안 나오게 된 건 이 남자 때문도 있었던 것 같다. 심지어 스파링 트라우마까지 생겼었다.


당연히 거절해야겠지만······.


“···한번 해 볼까요, 그럼?”

“오오! 진짜요?”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다.


용사로서의 경험치는 그대로, 몸은 형편없는 상태인 내가 어디까지 통할지가 말이다. 과연 복싱장 고인물을 상대로도 버틸 수 있으려나?


“그럼 관장님께 말씀드릴게요!”


남자는 얼른 관장님을 향해 달려갔다. 혹 내가 말을 바꾸기라도 할까 봐 급한 기색이었다.


이윽고 관장님이 내게 와서 말했다.


“민혁씨. 스파링 하신다고요? 괜찮으시겠어요?”

“예. 저분이 먼저 하자고 하셔서요.”

“그렇다고 꼭 하실 필요는 없으신데······.”


반응을 보아하니, 관장님 역시 남자의 성향을 대충 아는 모양이었다. 걱정하는 눈빛을 향해 말했다.


“괜찮으니까 한번 해 볼게요.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말려주세요.”

“음··· 민혁씨가 정 하고 싶으시면 그러세요. 대신 제가 바로 옆에서 보고 있을게요.”

“예.”


그렇게 무늬만 ‘매스 스파링’이 성사됐다.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마우스피스도 꼈다. 글러브 역시 16온스로 바꿨다.


쎄게충 남자는 이미 링 위에 올라가서 몸을 풀고 있었다. 싱글벙글 입꼬리가 움찔거리는 게 적잖이 흥분한 모양.


양 주먹을 팡팡 치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근데 헤드기어는 안 끼세요?”

“아, 저는 이쪽이 편해서요. 끼면 영 불편해서. 하하.”


껄렁거리는 기색이 조금씩 드러났다. 다 잡은 물고기인 양 여유를 부리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관원들이 링 주변에 모여들었다.


누가 스파링을 한다고 하면 이렇게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다. 특히 그게 쎄게충과 신규 관원이라면 더더욱.


‘아이고, 신입 관원이 하필이면 쎄게충한테 걸렸구나.’

‘오늘 또 한 명 그만두겠네.’


그런 시선들 속에서 준비 자세를 취했다.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렸다.


때앵!


남자는 가볍게 뛰며 주먹을 뻗어왔다. 견제구를 날리는 듯한 잽이었다.


툭, 툭!


커다란 글러브의 단면이 눈앞에 확대되는 느낌. 예전에는 이걸 마주한 것만으로 몸이 굳었다. 하지만 이제는······.


슥! 스슥!


리드미컬하게 머리를 움직이며 잽을 피해냈다.


사실 이런 동작까지는 배운 적도 없었다. 그저 본능에 따른 움직임이었다.


“오······!”


가벼운 감탄은 관장님의 음성이었다. 관원들 역시 작게 웅성거렸다.


“저분 움직임이 좋은데?”

“뭐야. 신입 관원분 아니었어?”


그 소리에 자존심이 상한 걸까?


쎄게충 남자가 들으란 듯 코웃음을 치더니, 평소보다 빨리 스퍼트를 올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파워 올릴게요. 너무 살살 하면 서로 연습이 안 되니까.”


조금이라는 말과 달리 제법 묵직한 주먹이 날아들었다. 가드 위를 때리는 힘이 상당했다.


퍽, 퍽! 퍼억!


단단히 방어를 잠그고 조금씩 뒷걸음질을 쳤다. 가드 사이로 관장님의 불안한 표정이 보였다. 언제라도 말릴 듯 몸을 기울이고 계셨다.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


그리고 한 걸음 더 물러섰을 때, 턱 하고 등에 뭔가가 닿았다. 벌써 코너에 몰린 것이다.


씩 웃는 쎄게충 남자의 모습. 먹잇감을 포착한 그가 이빨을 드러냈다.


퍼버벅!


원-투-어퍼로 이어지는 신속한 연타 공격. 그러나 이건 눈속임일 뿐이다. 진짜는 헤드기어로 인한 사각에서 날아오는 오른손 훅이었다.


쉬이이익!


초심자를 상대로는 너무 과도한 수법이었다. 심지어 주먹에 실린 힘이 완전히 풀파워다. 기절이라도 시킬 작정일까?


“엇! 잠깐······!”


관장님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지만, 나는 여전히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남자의 움직임이 손에 잡힐 듯 선명했기 때문이다.


강렬한 훅이 내 관자놀이를 타격하기 직전, 또 한 번의 본능이 빛을 발했다.


빙글ㅡ


유연하게 무릎을 굽히며 남자의 주먹을 피해냈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였다.


훤히 드러난 상대의 옆구리에 한 방.


퍼어억!


“꺼흑!”


세게 친 것도 아닌데 위치가 좋지 않았다. 배를 부여잡은 남자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볼 것도 없는 K.O였다.


“어······?”


이런. 이 정도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와, 뭐야!”

“방금 봤어? 리버샷 제대로 들어갔는데?”


얼른 헤드기어를 벗고 남자를 부축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꺼으······.”

“민혁씨, 제가 하겠습니다!”


재빨리 링으로 올라온 관장님이었다.


그는 남자를 부축하면서도 낮게 혀를 찼다. 언제고 벌어질 일이었다는 듯 말이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내 쪽을 힐끔거렸다.


그렇게 스파링이 종료된 후.


뻘쭘하게 옷을 갈아입고 나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쎄게충 남자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없었다.


체육관을 떠나기 전, 관장님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민혁씨.”

“예?”

“혹시 대회 나가 볼 생각 없으세요?”

“······?”

“아니, 그냥 저 믿고 한 번만 나가보시죠. 생체는 무조건 우승하실 거 같아서 그래요. 네?”


관장님의 호소 어린 눈빛에, 나는 그만 곤란하다는 듯 웃어 버리고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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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나부터 바로 서지 않으면 +1 24.08.15 118 9 12쪽
20 넌센스 퀴즈 대결 24.08.15 133 9 13쪽
19 사랑의 유통기한 24.08.14 155 11 12쪽
18 근육 성장의 비밀 +1 24.08.13 179 12 11쪽
17 엘프? +1 24.08.12 195 12 13쪽
16 차완무시(茶碗蒸し) +1 24.08.11 216 10 13쪽
15 레드 썬 +1 24.08.09 264 13 12쪽
14 살아갈 결심 +2 24.08.08 263 14 12쪽
13 사람을 살리는 데 필요한 것 +1 24.08.07 289 13 11쪽
12 찾아가는 복지 +1 24.08.06 313 15 13쪽
» 다이어트 복싱 +1 24.08.05 327 15 13쪽
10 진정한 칼퇴란? +2 24.08.04 329 13 13쪽
9 마침 내 전직이 +1 24.08.02 339 10 13쪽
8 복 받은 삶 +1 24.08.01 358 13 12쪽
7 이런 눈물이라면 +1 24.07.31 372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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