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렙 숨기고 꿀 빠는 9급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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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세온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26 09:46
최근연재일 :
2024.08.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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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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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진정한 칼퇴란?

DUMMY

내가 하려는 건 다름 아닌 ‘마법진 그리기’였다.


원래 마법이라는 게 나처럼 쉽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보통의 마법사들은 캐스팅(마법을 쓰기 전에 중얼거리는 것)도 필요하고, 각종 도구 등 외부의 힘을 빌리기도 했다. 그중 대표적인 게 바로 마법진이었다.


‘물론 내게는 필요 없지만 말이지.’


내 경우에는 이세계 용사들이 그렇듯, 천재적인 재능을 깨우쳤다. 지금처럼 간단히 주문명을 외치는 걸로 충분했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왜 마법진을 그리려 하느냐?


그건 바로 하나의 가설을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경험을 바탕으로 ‘개연성 훼손’이란, 내가 사용하는 마법의 위계와 비례했다. 9레벨, 10레벨은 쓰자마자 격한 반응이 왔고 1레벨은 잠잠했으니까.


그렇다면······.


‘강제로 마법의 위계를 낮추면 어떻게 될까?’


일전의 빙결 마법은 5위계였으나 개연성의 훼손이 발생하지 않았다. 고작 식혜에 살얼음이 끼는 정도만 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서 나아가서, 마법의 효과는 유지하면서 소비 마력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그걸 가능케 해 주는 것이 바로 ‘마법진’이었다. 가장 적합한 마법의 종류는 공간이동, 즉 텔레포트고 말이다.


‘보자, 어떻게 그리는 거더라?’


4B연필을 들며 머릿속으로 마법진을 떠올렸다.


판타지 세상에는 장거리 공간이동 포탈이 존재했다.


그 시설이 워낙 인상적이라 공부한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4B연필을 선택한 것도, 그쪽의 마법사들이 마법진 초안을 그릴 때 흑연을 쓰기 때문이었다.


슥, 스윽ㅡ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이내 능숙하게 그려냈다.


구조가 복잡하긴 해도 결국은 마법이다. 내 재능의 범주에 속한다는 뜻이었다.


초안을 스케치한 후, 자와 각도기를 이용해 여기저기를 손봤다. 하면 할수록 기억이 속속 떠올랐다.


‘여기는 이렇게 그어주고, 여기는 고대어도 좀 추가해 주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럴듯한 공간이동진이 완성됐다.


‘좋아.’


마법진 도안을 머릿속에 각인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우웅ㅡ!


마력이 발현되며 허공에 마법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파랗게 빛나는 선이 저절로 움직였다.


완벽한 원을 그리는 것을 시작으로, 복잡한 선과 도형, 고대어가 그 내부를 채웠다. 어릴 적 애니메이션에서나 봤던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내 마법진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파아앗!


한 차례 발광한 형상은 바닥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됐다!’


이렇게 되면 내 방에 일종의 포탈을 설치한 셈이다. 이제 복지센터에서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면 공간이동이 가능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랬다.


‘관건은 개연성 훼손을 얼마나 줄일 수 있냐는 건데······.’


그건 직접 써 봐야 알 수 있을 거라고,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

*

*


다음날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출근했다. 얼른 마법진을 시험해볼 생각에 설렌 덕분이었다.


“자, 여러분! ‘수’요일이니까 ‘수’수께끼 하나 내겠습니다!”


광락동 행정복지센터의 명물. 팀장님의 포복절도 아재 개그가 펼쳐졌다. 오늘은 변화구였다.


‘수수께끼라니. 대체 뭐가 나올지 예상조차 안 되는구나······.’


“자아, 문제 나갑니다! 남자는 힘! 그럼 여자는?”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한 박자 쉰 팀장님은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함께 외쳤다.


“정답은 헐~ 이지요!”

“······.”

“······.”

“하, 하하하!”

“하··· 하하! 아하하!”


어색한 웃음들과 함께 오전 업무가 지나고,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민혁씨. 오늘 당번인 거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오케이. 잘 부탁할게!”


여기서 이선정 주무관이 말한 ‘당번’이란, 점심시간에 센터를 지키는 것을 뜻하는 은어였다.


점심때 민원인이 방문하는 경우도 있어서 아예 건물을 비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센터에서 밥을 먹으며 교대로 근무를 서는데, 오늘이 내 차례였다.


‘마침 잘됐어.’


얼른 점심을 먹고 남는 시간에 마법진 작업을 해 볼 생각이었다. 아예 그 전에 하면 더 좋고.


그러려면 같이 근무하는 교대 멤버가 중요한데······.


마침 나를 향해 다가오는 한 사람. 그녀를 본 내가 고개를 기울였다.


“다현씨? 설마 오늘 당번이에요?”

“네······.”


이건 좀 의외였다.


보통 신규 공무원 둘만 두는 경우는 잘 없기 때문이다. 스케줄이 돌아가다 보니 겹친 모양이었다.


‘근데 보통은 이러면 한 명을 다른 선임이랑 바꾸는데.’


과거에도 확실히 그랬던 것 같다. 한데 왜 지금은 그냥 넘어갔을까?


뭐, 일단은 크게 상관없는 일이긴 했다.


“우리 둘이 당번이라니 신기하네요.”

“그, 그러게요.”


그때 이후로 조금 편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현씨는 여전히 어색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전처럼 아예 벽이 쳐진 느낌은 아니고, 아무래도 사람 관계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밥은 누가 먼저 먹을까요?”

“음··· 민혁씨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전 상관없어요.”


예전 같으면 나도 사양했겠지만, 이제 의미 없는 겉치레는 차리지 않았다.


“그럼 제가 먼저 먹을게요. 고마워요, 다현씨.”

“아, 네······.”

“식사 주문은 제가 할 테니까, 메뉴만 말해주세요. 미리 시켜놓을 테니까.”

“어, 저는 그럼······.”


메뉴 신청을 받고, 먼저 돌아서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다 불현듯 어떤 생각이 스쳤다.


“다현씨!”

“네?”


뒤를 돌아보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말씀하세요. 저 휴게실에 있을 테니까요.”

“아······.”

“알겠죠?”


너무 갑작스러웠을까?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총총걸음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굳이 이런 말을 건넨 건, 회귀 전 다현씨에게 닥쳤던 어떠한 사건 때문이었다. ‘그 일’이 생긴 게 점심시간이었으니까.


물론 아직 시기가 이르긴 하지만······.


‘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 후 핸드폰으로 식사 주문부터 했다. 이제 배달이 올 때까지는 완벽한 자유시간이었다.


마법진을 설치하러 갈 절호의 찬스. 다만 장소가 문제였다.


‘어디가 좋을까?’


오늘 오전 시간 틈틈이 고민했다.


일단 센터 외부는 끌리지 않았다. 집에서 일터로 바로 순간 이동하고 싶은 것도 있고, 바깥은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cctv나 블랙박스가 너무 많은 데다, 핸드폰 카메라 성능도 굉장히 뛰어나다. 그때 레드 드래곤이 찍혔던 것처럼 말이다.


‘그럼 센터 내부에서 골라야 하는데······.’


처음엔 탕비실을 생각했는데 거긴 내가 근무하는 공간 가까이에 있었다. 출퇴근 때마다 들락거리면 딱 봐도 이상할 거다.


다음으로 화장실인데.


거기는 자칫 볼일 보는 사람이랑 마주치면 대참사라서 제외했다. 복도 구석도 좀 애매하고, 그래서 결국은······.


‘역시 휴게실로 가자.’


끼익ㅡ


문을 열자 텅 빈 휴게실 내부가 보였다. 점심시간이 막 시작된 지금 누가 있을 이유가 없었다.


정수기가 있는 기둥, 그 뒤편에 작게 트인 공간으로 향했다. 사람 한 명이 들어가면 딱 맞는 곳이었다.


챙겨온 도안을 꺼내 마력을 일으켰다.


우웅!


집에서 그랬듯 허공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잠시 후 빛을 뿜어낸 형상이 휴게실 바닥에 스며들었을 때, 내 몸에도 작게 전율이 일었다.


‘됐다······!’


이것으로 나만 아는 공간이동진이 만들어졌다. 물론 판타지 세상의 진짜 포탈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거긴 마법진은 기본이고, 각종 마법 물질들을 재료로 진짜 포탈을 만든다. 대륙 간 이동이라든가, 수도에서 지방으로의 점프가 가능한 종류였다.


‘애초에 그러니 나도 관심을 가졌던 거지.’


반면에 센터와 우리집의 거리는 대략 9km.


그것도 길을 따라 쟀을 때니 직선거리는 더욱 짧을 것이다. 단순히 마법진을 통한 포탈로도 충분할 거라고 예상되었다.


흐뭇하게 웃으며 휴식을 취하던 중, 이윽고 배달이 도착했다.


“배달이요!”


오늘의 메뉴는 중식.


먼저 먹는 나는 짜장면이고 다현씨는 볶음밥이었다.


‘맛있겠다!’


다행히 면이 불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매장이 센터와 가까웠기 때문이다.


단무지와 양파부터 세팅하고, 젓가락을 딱! 소리 나게 반으로 갈랐다. 슥슥 비벼서 한 입 먹는데.


우물우물···


일단 탱글탱글한 면발은 합격. 그리고 양념이 잘 밴 것도 합격이었다. 그런데······.


‘다 좋은데 뭔가 살짝 부족하네.’


그게 대체 뭘까, 고민하다가.


아!


먹는 걸 멈추고 정령을 소환했다. 지금까지처럼 물의 정령은 아니었다.


화르륵ㅡ


작게 타오르는 불꽃의 형상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그러자 불의 정령이 불쑥 몸집을 키우며 영체(靈體)를 들이밀었다. 용건이나 말하라는 듯 말이다.


판타지 세상에서도 그랬지만, 정령들은 속성에 따라 성격도 달랐다.


“까칠한 녀석.”


그래봤자 소환사에게 개길 수는 없는지라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앙탈을 부리는 녀석에게 명령을 내렸다.


“여기 이 음식 보이지? 여기에다가······.”


화륵, 화륵!


고작 그런 걸 시키려고 날 불렀단 말이야?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불의 정령.


그러면서도 녀석은 짜장면을 향해 날아갔다. 잘 비벼진 면발 속을 이리저리 골고루 넘나들고는 다시 돌아왔다.


“잘했어. 다음에 또 보자.”


화륵!


코웃음 친 녀석이 사라진 후, 다시 한 입 먹어 보았다.


후루룩!


살짝 밋밋하던 짜장면에 진한 불맛이 첨가돼 있었다.


“으음!”


역시 중국 요리는 불맛이지. 이제 좀 제대로 먹을 수 있겠네.


감탄하며 쫄깃한 면발을 쭉 빨아당겼다. 입안 가득 욱여넣고 씹다가 노오란 단무지도 날름 집어 먹었다.


볶은 춘장의 달짝지근한 맛과 절인 무의 새콤함이 어우러져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 사이로 씹히는 큼직하게 썬 사각 모양 돼지고기까지. 지방과 살코기가 적절히 섞인 게 완전 내 스타일이었다.


후룩! 후루룩!


쉬지 않고 해치운 후 양념까지 긁어먹었다. 작은 사치로 함께 주문한 제로콜라도 원 샷을 때렸다.


콸콸콸!


원래 살찌는 건 다 먹더라도 콜라는 제로인 법. 목구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캬아!”


오늘도 참 잘 먹었습니다.


속으로 감사한 마음을 되새기는데 빈 그릇이 눈을 스쳤다. 조금 민망할 정도라 살짝 덮어놓은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곧 있으면 임다현씨와 교대시간이었다.


그녀가 시킨 메뉴, 식어버린 볶음밥을 바라보다 결국 불의 정령을 한 번 더 불렀다. 그러고 나서야 휴게실을 떠났다.


*

*

*


오후 업무도 무난히 흘렀다.


점심 대 정령소환을 했던 걸 빼면 마법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혹시나 마법진에 영향을 미칠까 봐서였다.


그렇게 6시가 땡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떡!


“······!”


요즘 느끼는 건데, 칼퇴를 하는 나를 보는 시선이 나날이 달라지고 있었다.


부러워하는 눈빛과 못마땅해하는 눈빛의 비율이 처음에는 2대8 정도였는데, 지금은 3대7 정도 된다.


언제쯤 5대5를 넘어설지, 그때는 다른 누군가도 나처럼 칼퇴에 도전하게 될지. 그걸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으, 으응······.”


복도로 나와 휴게실로 직행하기 전, 잠깐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라도 누가 보지 않는 걸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달칵.


아무도 없는 휴게실 안, 마법진을 심어놨던 곳으로 향했다. 사실 실제로 해 보는 건 처음이긴 한데.


‘괜찮을 거야. 어제 자기 전에 몇 번이고 확인했으니까.’


용사로서의 내 재능을 믿자. 혼자 되뇌며 마나를 일으켰다.


화아악!


의식이 원자 단위로 쪼개졌다가 다시 모여드는 감각이 엄습했다.


공간이동 특유의 현기증이 스치고, 정신을 차리니 내 방 한복판이었다. 마법진이 성공한 것이다.


“오오!”


시계를 보니 정확히 6시 2분이었다. 퇴근까지 단 2분이 걸렸다는 뜻이다.


출퇴근 시간이 현대 직장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게 삶의 질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지.


알 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특히 집과 일터가 먼 사람일수록 더더욱.


어쩌면 이 순간만큼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장인일지 모른다고.


아무도 모를 기쁨을 오래도록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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