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렙 숨기고 꿀 빠는 9급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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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세온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26 09:46
최근연재일 :
2024.08.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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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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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마법으로 로또당첨?

DUMMY

판타지 세상에서 돈에 구애받은 적은 없었다.


거기서 나는 태곳적 예언에 나온 용사였기 때문이다.


고귀한 귀족, 일국의 왕, 하물며 제국의 황제마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언젠가 나타날 마왕에 맞서 싸워달라고, 세계의 안녕을 당부하며 무엇이든 제공했다.


각종 산해진미와 진귀한 보물이 쏟아졌다.


아름다운 미녀들······은 내 쪽에서 거절했지만 어쨌든, 현대에서는 상상도 못 한 호사를 누렸다는 말이다.


‘뭐, 그것도 아주 잠시였지만 말이지.’


마왕의 강림은 예상보다 빨랐고, 놈의 군세는 강대했다. 대륙이 황폐화되는 건 금방이었다.


혹독한 굶주림이 뒤따랐다.


텁텁한 귀리 빵 한 조각이 만 개의 금화보다 귀히 여겨졌다. 아포칼립스에 돈만큼 무가치한 것도 없었다.


돈 많은 거부는 보물창고에서 농성하다 굶어 죽었다.


욕심 많던 왕은 부하들의 반란으로 죽었고, 대륙을 호령하던 황제는 권좌에 앉은 채 마물들에게 뜯어먹혔다.


그런 참상을 두 눈으로 지켜봤기에, 나 역시 부(富)의 허무함을 절실히 깨우쳤건만.


‘현대로 돌아오자마자 돈 문제에 부딪힐 줄이야.’


어쩌면 자본주의가 마왕보다도 강력할지 모르겠다고. 우스개와 함께 신발 끈을 묶었다.


“아들. 친구 만나러 가니?”

“네.”

“형철이?”


엄마의 입에서 즉각 이름이 나온 건, 내 인간관계가 그리 넓지 않아서일 것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늦게 들어올 수도 있어요.”

“그래? 너희 저번 주에도 보지 않았어?”

“아······.”


그랬구나.


웃으며 대충 둘러대고는 말했다.


“좀 늦을 수도 있으니까 먼저 주무세요.”

“응. 그래도 전화는 해 주고.”


이윽고 문을 나선 내가 향한 곳은 약속 장소가 아니었다.


물론 저녁에 형철이와 만나기로 한 건 맞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었으니까.


‘돈부터 마련해야지.’


사실 어제 자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다. 돈을 벌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가장 먼저 주식 투자가 떠올랐으나 쉽지 않았다.


일단 나는 재테크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흔한 주식 계좌 하나 없었으니 말 다 했다.


그리고,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미래의 초대박 상승주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당장의 돈이 필요해.’


언뜻 떠오른 건 우습게도 카지노였다.


물론 가본 적은 없지만, 티비에서 본 적은 있었다. 투시 마법 같은 걸 쓰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금방 생각을 고쳐먹은 것이, 우선 투시 마법을 몇 번이나 써야 할지 각이 나오지 않았다. 수십 번을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무래도 도박은 좀 꺼림칙하기도 하고.’


그렇게 끝내 선택한 옵션은 바로······.


[대박행운 로또방]


“······.”


인정한다. 용사치고는 좀 궁색한 결론이라는 걸.


솔직히 로또방에 온 것도 처음이었다.


투자도, 도박도, 그 흔한 로또 한 장도 안 사봤던 인생. 그게 현대의 나였다.


‘나도 참 소시민처럼 살았구나······.’


벽면에 붙어 있는 1등, 2등 당첨 현수막이 나를 반겼다. 안쪽의 기다란 테이블에는 몇몇 사람들이 옹기종기 서 있었다.


로또를 하는 그들 대부분이 아저씨들이었다. 마킹펜을 슥슥 놀리는 사람부터 굉장히 신중한 사람까지 다양했다.


‘뭘 어떻게 하는 거지?’


슬쩍 봤으나 단번에 뾰족한 시선이 돌아왔다.


“뭘 봐?”


나를 째려본 아저씨는 등산복 차림이었다.


수염이 듬성듬성한 그는 공부 잘하는 옆자리 모범생처럼 로또 용지를 사수했다. 절대로 보여줄 수 없다는 듯 말이다.


“그냥 어떻게 하는 건가 해서요. 해 본 적이 없어서.”


아저씨는 별놈 다 본다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더니 내뱉었다.


“뭘 어떻게 해? 그냥 카운터 가서 달라고 하면 되는 걸.”

“저쪽이 카운터죠?”

“딱 보면 몰라?”

“······.”


이런 반응은 참 오랜만이었다.


판타지 세계에서 나는 인류에게는 구원자, 마물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래. 이제 용사도 아닌데 적응해야지.’


혼자서 되뇐 나는 카운터로 향했다.


“로또 한 장 주세요.”

“수동이요, 자동이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전자였다.


기잉ㅡ


사장님은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종이를 뽑아 내밀었다.


“여기요.”


기다란 테이블 한쪽에 자리를 잡고 로또 용지를 내려다보았다.


숫자들이 적힌 작은 칸들을 보자 옛 생각이 났다. 수능 칠 때 OMR카드가 이거랑 비슷했었는데.


“후우.”


작게 한숨을 내 쉰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고레벨 마법은 이걸로 마지막이야.’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신성한 예언(divination).”


9레벨 주문인 그것은 마법사에게 예지 능력을 선사한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었는데,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서 쓰면 안 된다는 거였다. 실패할 확률이 급격히 올라갔다.


‘그래도 로또 당첨 정도는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용사 특전으로······.’


오히려 그것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건, 바로 주문 이름에 붙은 ‘신성한’이라는 단어였다.


신격에 기댄 마법이라는 뜻을 내포한 것 같은데. 판타지 세상의 신이라면 여기에는 없을 것이다. 그럼 효과가 없는 거 아닐까?


반신반의하던 순간.


우우웅ㅡ!


몸속의 마나가 요동치며 신령한 감각이 엄습했다. 주문이 제대로 시전됐다는 뜻이었다.


‘됐다!’


반색한 나는 얼른 로또 용지를 주시했다. 신성한 예언은 시전 시간이 짧다. 마법이 끝나기 전에 얼른 해치워야 했다.


‘당첨 숫자를 보여줘!’


강한 열망을 품자 시야가 훅 어두워졌다.


흠칫한 것도 잠시, 로또 용지 위 한 줄기 광채가 흘렀다. 찬란한 빛이 머무른 곳은 정확히 6개의 칸이었다.


8, 18, 23, 31, 34, 45


쿡쿡쿡쿡쿡쿡!


신들린 듯 마킹펜을 놀렸다. 그 사이 마법이 해제되며 시야가 밝아졌다. 그러기가 무섭게 울리는 알람음.


띠링!


[과도한 마법 사용이 이 세상의 개연성을 훼손했습니다!]


입술을 질끈 깨물었으나 예상한 바였다.


‘시스템! 내 능력을 봉인해서 훼손을 상쇄하겠어!’


[······.]


‘시스템!?’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9레벨 마법을 봉인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며, 반복해서 수행할 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의 경고는 나직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필시 귀담아듣는 편이 좋았다. 놈과 오랜 시간 함께하며 얻은 경험이었다.


‘알겠어. 조심할게.’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비로소 긴장이 풀린 나는 기다란 날숨을 뱉었다.


“쯧쯧쯧······.”


혀를 찬 건 아까 그 모범생 아저씨였다.


“젊은 사람이 감이 없어도 그렇게 없나?”


그는 내 로또 용지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자기 건 그렇게 숨기더니 내 건 이렇게 대놓고 본다고?


“감이요?”

“아, 그래, 감! 보니까 하나도 안 맞았네.”

“···당첨 숫자를 아세요?”

“나야 뭐 전문가지.”


그러더니 한껏 거드름을 피워댔다. 자기가 로또 연구만 몇 년째에다, 유료 카톡방의 정회원이라는 이야기였다.


“우와··· 그러시구나.”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며 떠날 준비를 했다. 문을 나서기 직전 전개한 저레벨 마법 하나와 함께.


“투시(penetrate).”


마법의 시야가 아저씨의 등산복을 꿰뚫었다. 속주머니 안에 고이 모셔진 로또 용지를 비췄다.


7, 15, 20, 21, 42, 44


나랑은 겹치는 숫자가 하나도 없었다.


*

*

*


“여, 왔냐.”


내 친구 형철이는 예전 그대로였다.


통통한 체형도, 펑퍼짐한 티셔츠도. 콧잔등 위에 올려진 동그란 안경까지.


“형철아!”


커다랗게 외치며 달려갔다. 차마 끌어안지는 못하고 어깨를 부여잡았다.


“억! 뭐, 뭐야?”


나 홀로 느끼는 20년 만의 재회였다. 형철이 감정선을 따라오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왜 이래?”


잠깐 당황했던 형철은 선 넘지 말라는 듯 지긋이 나를 밀어냈다. 오랜만에 보는 그 새침한 표정에 그만 웃음이 터져 버렸다.


“뭔데. 왜 그러는데.”

“반가워서 그러지······!”

“저번 주에도 봤으면서 무슨.”


씩 웃자 형철이 헛기침을 하고는 물었다.


“뭐 먹을래?”

“너 먹고 싶은 걸로 먹자. 나 아무거나 다 괜찮아.”

“음······.”


예전에는 메뉴 가지고도 티격태격했었다. 나와 형철은 식성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판타지 세상에서 아포칼립스를 겪으며 편식이 완전히 사라졌다. 배를 채우려 마물 고기를 먹다 보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


“그럼 삼겹살에 소주, 콜?”

“콜!”


단골이었던 고깃집으로 향했다.


드럼통을 닮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왜인지 기분이 좋은 듯한 형철이가 주문부터 했다.


“이모! 여기 삼겹살 4인분이랑 소주 한 병 주세요!”


지글지글······


지방 타는 냄새에 군침이 돌았다.


꼴꼴꼴···


소주잔을 채우고, 고기가 익자마자 잔부터 들어 부딪혔다.


짠!


그대로 한 잔.


“크으!”


쌈 채소에 고기에, 쌈장 듬뿍 찍은 마늘까지 올려서 한 쌈 싸 먹었다. 과장 좀 보태서 전율이 흐르는 듯했다.


이거지. 이게 진짜 현대의 맛이지.


우물거리며 세차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처럼 고기를 욱여넣은 형철이 기다렸다는 듯 잔을 새로 채워주었다.


“웬일이냐? 첫 잔 원 샷을 다 하고.”

“오늘 술이 다네.”


정말로 그랬다.


용사로 살며 최고급 포도주나 와인, 위스키를 실컷 맛봤다.


그러나 결국 생각나는 건 요놈, 소주였다. 나름 비슷하게 만들어서 먹어도 봤는데 이 맛은 절대 안 나더라.


먹는 데 집중하며 드문드문 이야기를 이어갔다.


일 이야기, 형철이 요즘 하는 게임 이야기, 즐겨 보는 유튜브 이야기.


아주 평범한 대화와 아주 평범한 친구. 이게 그토록 소중한 건지 예전에는 몰랐었다.


이윽고 남자들이 으레 그렇듯 대화 소재가 잠깐 끊겼다. 때마침 고깃집 티비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어제 오전, ▲▲구 광락동 상공에서 미확인 비행 물체가 발견됐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우선 제보 영상부터 보시겠습니다.」


“음?”


순간 시선을 돌리자 놀라운 장면이 보였다. 붉은 형체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영상이었다.


‘저, 저거 설마······.’


화질도 구리고 아주 먼 거리였지만, 날개라든가 긴 꼬리를 식별할 수 있었다. 어제 나 때문에 소환된 드래곤이 분명했다.


진짜 잠깐이었는데 저게 찍혔다고?


“어, 나도 저거 봤는데.”


형철이었다.


“저거 때문에 지금 난리야.”

“······.”

“엘론 머스크가 만든 극비 기술 유출된 거라던데. 왜 가상현실 같은 거 있잖아.”

“그, 그래?”


형철의 말에 어색한 웃음으로 맞장구를 쳤다. 현대에서는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구나.


화면에 있는 드래곤은 잠시 머무르더니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저거 봐 봐, 저거. 홀로그램처럼 그냥 없어졌지?”

“으응. 그러네.”


‘사실은 봉인 당한 거긴 한데······.’


표정 관리가 잘 안 되던 와중, 다행히 금방 화면이 바뀌었다. 리모컨을 든 건 고깃집 사장님이었다.


「반갑습니다. NBC 생방송 행복드림 로또645의 김경헌입니다.」


로또 당첨 방송이었다. 사장님의 손에도 로또 용지가 들려 있었다.


“아, 이번 주 로또 사는 거 까먹었네.”


형철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솔직히 나도 궁금했다. 마법이 정말로 통했을지가 말이다. 시전이 됐다고 해도 결과가 어떨지는 확신할 수 없으니까.


‘페널티까지 감수했는데 안 되면 어쩌지?’


곧 진행자가 버튼을 누르고, 동그란 원통 안의 공들이 마구 나부끼기 시작했다.


웅웅웅웅웅!


이내 작은 공 하나가 토해지듯 위로 솟았다.


「자, 첫 번째 행운의 숫자! 8번!」


몇 번! 몇 번! 몇 번!


하나 나올 때마다 외침 한 번. 그렇게 7개 숫자는 금방 공개됐다.


“에라이.”


용지를 와락 구겨버리는 사장님의 모습. 형철은 로또가 되면 뭐부터 할 건지 한창 떠들고 있었다.


그사이 나는 말 없이 숫자를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리고 남은 소주를 쭉 비웠다.


탁.


···마법 만세.


“2차나 가자, 형철아. 이건 내가 계산할게.”

“어? 어어. 얼마 보내주면 되냐?”


핸드폰을 꺼내는 형철에게 환히 웃으며 말했다.


“됐어.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뭐? 너 오늘 진짜 뭐 잘못 먹었냐? 왜 이래?”

“하하······.”


형철의 호들갑을 기분 좋게 받아넘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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