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렙 숨기고 꿀 빠는 9급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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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세온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26 09:46
최근연재일 :
2024.08.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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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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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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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마침 내 전직이

DUMMY

솔직히 조금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귀가 어두운 할아버지께서 허허 웃으며 돌아가셨을 때 말이다. 혹시라도 인과율이 반응하지 않을까 하고.


‘근데 전혀 반응이 없었어.’


손잡이를 잡은 채로 고민했다. 대체 인과율은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걸까. 퇴근길의 지하철 안에서였다.


훅훅ㅡ 훅훅ㅡ


「이번 역은 ▲▲,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늘은 그렇게까지 붐비지는 않았다.


일단 금요일이 아니기도 하고, 평일 중에 타이밍이 잘 맞으면 이런 경우가 있었다. 그냥 자동차를 한 대 살까 싶기도 했지만.


‘아니야. 소비 습관을 너무 갑자기 올리지는 말아야지.’


원래 한 번 올라가면 절대 내리지 못하는 게 소비라고 했다.


비싼 외제차 한 번 타면 다시는 경차 못 탄다고 하던가? 물론 경차조차 사본 적 없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얘기였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열차 내부를 둘러보았다.


대부분이 정장을 입은, 퇴근길의 직장인들이었다. 한결같이 무뚝뚝한 얼굴들이다.


‘다들 표정들이 안 좋네. 아직 수요일도 안 됐는데.’


그 외에도 여러 면면의 사람들이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었다.


지하철 의자에 앉아 화장을 고치는 여자, 멋지게 차려입은 남자. 특히 군복을 입은 청년도 있었다. 휴가를 나온 모양이었다.


“······.”


군인에게는 괜히 뭐라도 해 주고 싶은데.


딱히 도움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았다. 마법을 쓸 구실도 없고, 그저 건투를 빌어주고 눈을 돌렸다.


다시 둘러봤으나 거의 다가 비슷한 모습들이었다.


열에 아홉은 핸드폰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에는 아이팟을 꽂고 작은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핸드폰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나 싶네. 그때도 지하철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나마 핸드폰 삼매경이 아닌 쪽은 노약자석의 노인들이었다.


연세가 지긋한 그분들은 뭘 보거나 하지 않고 그냥 앉아 계셨다. 혹은 신문을 보거나. 요즘 보기 드문 종이 신문이었다.


‘하긴 나도 원래는······.’


회귀 전에는 나 역시 지하철을 타면 핸드폰에 머리를 박고 있었던 것 같다.


유튜브를 주로 봤는데, 거슬러 보면 꼭 그렇게 재미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지를 못했다.


막 심심한 것도 아닌데. 혼자 우두커니 남겨진 시간이 닥치기라도 하면 불안했다. 괜히 안절부절못하다가 핸드폰 화면을 켜고 말았다.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지.’


반면에 내가 잠시(?) 다녀온 판타지 세상에는 당연히 핸드폰이 없었다.


유튜브도 웹툰도, 폰 게임도 없는 세상. 그럼 거기서 나는 심심해 죽을 것 같았을까?


‘아니, 전혀.’


지하철과 비슷한 예를 들자면, 한 번은 수레를 타고 긴 거리를 이동한 적이 있었다. 아직 999레벨 마스터가 아니던 시절이었다.


덜컹거리는 수레 위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졸리면 잠도 잤던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은 멍하니 풍경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다.


각종 매체로 범벅이 된 현대에 비하면 참 지루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기억이 훨씬 더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왜일까? 단지 세월의 문제인 걸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말이지······.’


문득 그때의 추억들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지나가면서 봤던 이름 모를 들꽃과 나무들.


동료들의 미소와 장난기 어린 웃음 소리.


끝없이 펼쳐진 파란 하늘, 밤이면 빼곡히 드러나 반짝이던 별들까지.


따지고 보면 전부 다 현대에도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그런 것들을 본 기억이 없었다. 아니, 있을지 모르겠으나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흐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누군가 내 시선을 끌었다. 열차가 정차하며 새로 난 빈자리에 앉은 어떤 남자였다.


“커흠.”


헛기침을 뱉은 그는 앉자마자 두 다리를 쫙 벌렸다.


“앗!”


그의 옆에 앉은 여자 승객이 낸 소리였다.


그러나 남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다리를 벌린 그대로 팔짱까지 껴 버렸다. 뭐라고 하려면 해 보라는 듯, 험상궂은 표정은 덤이었다.


‘···우와.’


어이가 없는 걸 넘어서 놀라울 지경이다.


이제는 용어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쩍벌남. 그 실체를 직관하게 될 줄이야. 그러나 그것으로도 끝이 아니었다.


“여보세요!”


남자가 우렁찬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했다.


“어, 상구야! 나? 나 지금 지하철이지!”


커다란 웃음소리와 함께 통화가 이어졌다. 간간이 욕설이 섞인 데다 침까지 튀겨댔다.


잠시 후, 결국 남자 옆에 앉아있던 여자 승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딴 데로 가 버렸다. 쩍벌남은 잘됐다는 듯 다리를 더 넓게 벌렸다.


‘···진짜 확 찢어버리고 싶네. 어디까지 벌어지는지 한 번 보게.’


아마 그런 생각을 나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저 남자 근처의, 어쩌면 이 칸에 탄 승객 중 다수는 그렇겠지.


하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남자가 무서운 것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더러워서일 거다. 저마다 바쁘고 고된 삶에 괜한 분쟁을 일으키기 싫은 것이다.


‘그렇다면······.’


비로소 내가 나설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내 전직이 그쪽 아닌가. 선량한 시민들을 대신해 악당과 싸워주는 사람, 용사 말이다.


잠깐 고민하다 중얼거렸다.


“정령 소환(summon elemental).”


보그르르ㅡ


일전에 봤던 물의 하급 정령이 나타났다. 반갑게 눈인사를 해 주고는 지시를 내렸다.


소곤소곤···


내 말을 들은 정령은 뽀드득, 하며 거품을 일으켰다. 마치 웃음을 터뜨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더니 허공을 날아 쩍벌남에게로 다가갔다.


슈아아ㅡ


나 말고는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물의 정령.


녀석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쩍벌남의 아랫도리 쪽이었다. 훤히 드러난 그의 가랑이가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어? 뭐야?”


먼저 반응한 건 쩍벌남 맞은 편에 앉아있던 젊은 남자였다. 여자친구로 보이는 사람에게 손짓하며 속닥거렸다.


“자기야! 저거 봐 봐, 저거.”

“꺅! 저게 뭐야? 오줌싼 거 아냐?”


오줌이라는 단어에 사람들의 시선이 단숨에 몰렸다. 쩍벌남 역시 상황을 인지했다.


“응? 뭐야. 상구야, 잠깐만.”


통화를 멈춘 그가 고개를 내리고.


쪼르르ㅡ


“어어, 씨발! 이거 뭐야!”


쩍벌남의 고함과 함께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더욱 커졌다.


“진짜 오줌 쌌나 봐!”

“으으, 미친 사람 아니야?”

“찍어, 찍어!”

“유튜브 올리자!”


얼굴이 벌게진 쩍벌남이 소리쳤다.


“아니야! 이거 오줌 아니야!”


그는 처절히 외쳤지만, 사타구니를 적신 채 그러는 것만큼 허무한 일은 없었다.


단숨에 동네 바보가 되어버린 쩍벌남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정차한 열차에서 도망치듯 내렸다.


‘그러니까 적당히 벌렸어야지.’


작게 혀를 찬 나는 물의 정령을 시켜 의자에 남은 물기를 제거했다. 명을 수행한 녀석이 내게로 돌아왔다.


뽀그르! 뽀그르르ㅡ!


아무리 정령이라도 조금 찝찝했으려나 했는데, 녀석은 아주 재밌었던 모양이다. 하긴 정령은 기본적으로 장난기가 많으니까.


‘고마워. 다음에 또 보자.’


녀석을 돌려보내며 생각했다. 굉장히 유용한 녀석 같다고. 아무래도 자주 보게 될 것 같은데, 이름이라도 지어줘야 할까?


우르르ㅡ


쩍벌남의 빈자리는 새로 탄 승객들에 의해 금방 채워졌다. 간만에 용사로서의 직무를 다한 나는 뿌듯한 기분으로 지하철에서 내렸다.


*

*

*


승강장을 빠져나와 곧장 향한 곳은 집이 아니었다.


오늘은 밖에서 먹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는 저녁 먹고 들어간다고 미리 말씀드린 후였다.


메뉴는 바로 치킨.


놀랍게도, 나는 회귀 후 아직 치킨을 먹은 적이 없었다.


‘하, 빨리 먹고 싶다. 어디로 가지?’


보통 치킨은 배달시켜 먹은 기억이 대부분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매장에서 먹고 싶었다.


현대로 돌아온 후 처음 맛보는 치킨이다. 갓 튀겨서 따끈따끈할 때 바로 먹고 싶었다.


‘딱히 좋아하는 브랜드는 없는데······.’


원래 나는 그때그때 할인 쿠폰이 뜨거나, 그나마 제일 싼 걸로 시켜 먹었다.


그러다 보면 보통은 ‘홍식이 두 마리’ 계열의 치킨이었다. 왜 있지 않나. 한 마리 가격에 조금 더 얹어서 두 마리를 주는.


자연스럽게 오늘도 거기부터 떠올랐지만······.


‘아니야. 오늘만큼은 그러지 말자!’


주먹을 불끈 쥐며 되새겼다. 나는 통장에 33억을 가진 남자라는 사실을.


‘자동차는 몰라도 치킨 정도는 괜찮잖아?’


그렇게 내가 향한 곳은 바로 유명한 치킨 브랜드, 비빅큐였다.


딸랑딸랑ㅡ


“어서오세요! 비빅큐입니다.”


아주 예전에, 선물 받은 쿠폰으로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실로 오랜만이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았다.


‘매장이 엄청 넓네.’


보통 치킨집은 배달 전문도 많은데, 이렇게 제대로 된 홀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러나 더 신기한 건 따로 있었다.


‘이, 이만 삼천 원?’


치킨 한 마리에 2만 원이 넘다니.


확실히 비싸긴 했다. 아무리 메뉴 이름에 ‘황금’이 들어간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다고 진짜 금을 넣는 것도 아닐 텐데.


‘이 돈이면 홍식이는 두 마리에 콜라 1,25L까지 주는데······.’


순간 나갈까 싶었으나 필사적으로 참았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꾸욱 벨을 눌렀다.


띵동ㅡ


“주문 도와드릴까요?”


생글생글 웃는 직원을 향해 말했다.


“그, 황금올리비아 한 마리 주시고요.”

“네!”

“그리고 생맥주 500cc 한 잔도, 부탁합니다······!”


어쩐지 의연한 어조로 말한 내 모습에 직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이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주문 받았습니다! 금방 준비해 드릴게요!”


소복이 담긴 하얀 치킨무가 먼저 나오고, 집게와 포크도 함께 나왔다.


‘여기는 집게를 주는구나. 특이하네.’


그렇게 새콤달콤한 치킨무를 집어먹고 있자 마침내 오늘의 메인 메뉴가 등장했다. 바구니에 수북이 담긴 황금올리비아 치킨이었다.


“!!”

“맥주도 같이 준비해 드릴게요!”


탁! 소리와 함께 탁자에 놓인 500cc 잔.


얼마나 차가운지 표면에 살얼음이 끼어 있었다. 빙결 마법은 필요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직원이 물러간 뒤 경건한 자세로 손을 뻗었다.


모든 부위가 다 맛있어 보였지만 역시나.


‘시작은 닭다리지.’


두툼한 다리 한쪽을 들어 올렸다. 막 튀긴 거라 뜨거웠으나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나는 무려 20년 만의 치킨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므로.


얼마 전 형철이와 함께 먹었던 삼겹살&소주와 함께, 치맥은 현대인의 대표적인 소울푸드다.


지금까지 이걸 안 먹고 어떻게 참았을까? 새삼 나도 참 정신이 없었다 싶었다.


콕콕.


영롱한 닭다리를 살짝 소금에 찍고, 그대로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사삭ㅡ


고소한 튀김옷이 산산조각나며 이빨이 속살을 침범했다. 부드러운 닭다리살이 푹 패이며 육즙이 터져 나왔다. 치킨 특유의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으음······!”


음미하듯 꼭꼭 씹어 삼킨 후, 기름 범벅이 된 입안을 얼음 생맥으로 씻어내렸다.


꿀떡꿀떡꿀떡···


쏴아아ㅡ!


극락이었다.


“크햐아아아!”


이성을 상실한 나는 폭풍 같은 흡입을 시작했다.


*

*

*


눈 깜짝할 새 치킨 한 마리를 깨끗이 발골했다. 내친김에 생맥도 한 잔 더 마셨다.


20년 만의 치킨 먹방은 만족, 대만족이었다.


‘현대도 현대 나름의 장점이 있구나!’


부른 배를 두드리며 황올 한 마리, 양념 한 마리를 따로 포장해서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 드릴 거라 하나도 돈이 아깝지 않았다.


“엄마, 아버지! 치킨 사왔어요.”

“뭐어?”

“저녁도 먹었는데 치킨을 사 왔어?”

“선물로 무료 쿠폰 받았거든요. 진짜 맛있던데 드셔 보세요.”

“그래?”


치킨 바구니를 선물해 드리고 방으로 향했다. 마지막에 본 부모님의 얼굴에는 분명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


워낙 절약하시는 분들이라 간만의 치킨일 거다. 맛있게 드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온수로 목욕을 하고(정령세신술도 좋지만 샤워도 여전히 좋다.), 옷을 갈아입은 나는 방 안에 섰다.


침대로 뛰어드는 대신 서랍을 뒤져 몇 가지 물건을 꺼냈다. 4B연필과 30cm 자, 각도기 등 학생 때 쓰던 것들이었다.


일전에 생각했던 출퇴근 시간의 지옥철, 그 해결 방안을 마련해 볼 생각이었다.


‘오늘 지하철은 나름 재밌었긴 한데······.’


그래도 실험하는 김에 한번 해 보자고. 눈빛을 빛낸 나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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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내 전직이 +1 24.08.02 340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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