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렙 숨기고 꿀 빠는 9급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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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세온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26 09:46
최근연재일 :
2024.08.1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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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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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썬

DUMMY

월요일은 힘든 요일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과거의 나는 특히 더 그랬던 것 같다.


마치 험난한 등산로의 초입에 선 기분이었다고 할까? 기나긴 한 주라는 산에 말이다.


눈앞의 산이 얼마나 험한지, 넘어가려면 또 얼마나 힘든지.


다 안다.


알기 때문에 더 오르기 싫은 것이다. 물론 금요일이라는 하산 코스가 있고, 생각보다 금방 오리라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매번이 고역이었어. 월요일을 시작하는 게.’


한 번은 버스를 타고 출근한 적이 있었는데, 차라리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럼 출근을 안 해도 될 테니까.


미쳤다는 말로도 모자랄 위험한 발상.


하지만 당시에는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됐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코너에 몰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지.’


더는 월요일, 그리고 출근길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두렵기는커녕 살짝 기대가 될 정도였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떤 능력을 실험해 볼지.


특히 오늘은 더 그랬는데, 바로 오전 중에 걸려온 전화 한 통 덕분이었다.


[여보세요?]


발신자는 창현씨.


조금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더 놀라운 건 달라진 그의 음성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이창현입니다.]


“아··· 네.”


아픈 사람이 내는 신음 같던, 축 처진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보다 훨씬 또렷하고 힘있게 들렸다. 약간 목이 쉬어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저, 그때 말씀해주신 수급 신청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혹시 지금도 가능할까요?]


핸드폰을 쥔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생각을 바꿨구나.’


김치 덕분인지 아니면 마법 덕분인지. 둘 다 아닌 또 다른 계기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창현씨.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 후에는 세부적인 얘기를 조금 나누고 통화를 마쳤다.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겠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월요일의 출발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인과율이 당신을 향해 미소짓습니다.]


새벽에 울렸던 시스템의 알람음.


잠결이었으나 분명히 들었다. 곰곰이 고민해본 결과, 그 작동 방식에 대해 조금은 감이 올 것 같았다.


‘일단 창현씨의 일과 관련된 건 확실해.’


그야 그 외에는 딱히 한 일이 없었으니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역시 타인에게 도움을 줘서 그런 건가?’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인과율이 반응한 건 총 2번이었다.


오늘 새벽과 저번에 센터에서 양치할 때였는데, 당시에는 헷갈렸으나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때도 임다현씨와 관련이 있었을 거라는 것을.


그녀에게 살얼음 식혜를 건넸던 일 말이다.


‘어? 근데 그러면······.’


불현듯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만약 내 가설이 옳다면, 인과율은 한 번 더 반응했어야 한다. 임다현씨와 점심 근무 당번을 같이 섰을 때 말이다.


그때 그녀가 주문했던 볶음밥을 불의 정령으로 데워주지 않았나.


살얼음 식혜는 되고, 불맛이 추가된 볶음밥은 안 된다? 어째서?


‘그 두 가지의 차이점이 뭐지?’


거기까지가 다다른 나는 고민을 잠시 접어두었다. 근무 시작이 임박한 탓이었다.


인과율의 정확한 원리는 여전히 아리송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좋았다.


또한, 뭔가 든든한 기분도 있었다. 언젠가 있을 비상 사태에 대비해, 능력 활용의 융통성을 늘려놓은 기분이랄까?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던 그때, 9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팀장님이 벌떡 일어나는 게 보였다.


“자, 여러분! 월요일입니다, 월요일! 피곤한 표정들 짓지 말고, 다 같이 한번 외쳐봐요. 이야, 기분 좋다! ‘월’쑤!”


순간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아니, 웃었다기보다 원래 웃고 있었다는 것에 가까웠지만.


“아니······?”


팀장님의 놀란 눈빛이 나를 향했다.


회귀한 후, 그동안 내가 자신의 개그에 반응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이윽고 그의 얼굴에 감격의 빛이 차올랐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민혁씨. 다시 내 개그의 진가를 알아주는 거야? 그동안 얼마나 섭섭했는데······!’


아니. 이거 뭔가 단단히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고마워, 민혁씨! 앞으로 더 열심히 준비할게!’


팀장님의 뜨거운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

*

*


적당히 바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남겨둔 시점.


어쩐지 센터가 고요해졌다.


일하다 보면 가끔 이럴 때가 있다.


적당한 전화와 적당한 민원. 진상도 없고, 소란도 없다. 조곤조곤한 통화 목소리와 타닥타닥 키보드 타건음만 낮게 울렸다.


현대로 돌아온 뒤 가장 좋은 것 중 하나. 바로 이런 순간이었다.


‘평화롭네······.’


판타지, 그것도 마왕이 강림한 세상에 살다 온 내게는 이런 삶이 곧 힐링이었다.


마물도 없고 몬스터도 없다.


평범한 일상이 가져다주는 평온함이 좋았다.


‘그때는 매일이 전쟁이었으니까.’


싸우고 또 싸우고, 정말 지겹도록 전투를 치렀다.


PTSD가 남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정도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용사로서 절대적인 힘을 얻기 전, 몇 번이고 경험했던 죽을 고비들이었다.


‘네르바 평원에서 수십 만의 오크 부대와 맞섰을 때라든가······.’


광활한 대지를 끝도 없이 채운 진녹색의 물결. 정말 더럽게도 머릿수가 많았다. 워낙 번식이 빠른 놈들이라 더했다.


그때 얼마나 질렸는지, 내가 그 뒤로는 미역을 잘 안 먹는다. 놈들의 피부색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 퀘커 협곡에서 데스나이트들과 혈투를 벌였을 때라든가······.’


고위 언데드인 데스나이트는 그 존재만으로도 강력하지만, 사람의 본능을 짓누르는 죽음의 오라가 아주 발군이다.


심장이 잠식당하는 듯한 더러운 기분. 그 역시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하리라.


‘그리고 지하 미궁도 만만치 않았지. 미친 네크로맨서가 무한으로 증식하는 좀비 떼를 소환하는 바람에······.’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던 찰나였다.


“으어어어······.”


좀비를 연상시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깨가 축 처진 남자가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후줄근한 양복에, 밤이라도 샜는지 두 눈이 퀭했다.


이내 그가 나를 발견하고는, 고개만 모로 돌려 힘없는 인사를 건넸다.


“민혁씨, 하이.”


그는 나보다 선임인 김영준 주무관이었다.


주로 장애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그는 항상 피곤에 절어 있었다. 업무 특성상 알아야 할 지침이 많고, 세부 분야가 상당히 복잡한 탓이었다.


장애 등록부터 주차 표지, 복지카드, 일자리 주선 등.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한, 두 개가 아니었다. 특히 장애 판정 관련해서 민원인들 상대하는 게 쉽지 않다고.


‘그나마 워낙 똑똑한 사람이라 잘 버티는 거지.’


듣자니 어렸을 때는 수재 취급도 받았다고 한다. 근데 수능을 망쳐서 공무원으로 진로를 틀었다나?


어쨌든, 그는 업무 능력 외에 인간관계도 좋고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본받을 만한 선임. 센터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근데 예전에도 저렇게 피곤해했었나?’


오히려 장난기 많은 성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신입인 내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었다. 가벼운 농담도 던지고, 힘들었던 공직 생활에 그 덕에 잠시라도 웃을 수 있었다.


회귀 후에는 왜인지 안 오시긴 했지만 말이다.


“안녕하세요. 김영준 주무관님.”

“응··· 아니지. 사실 안녕은 못 해. 진짜로 안녕하지가 못하거든.”


바로 이런 식의 실없는 농담이 그의 특징이었다.


미소를 짓고 있자 그가 나를 힐끔 보고는 말했다.


“근데 민혁씨 표정이 왜 그렇게 밝아? 진짜로 안녕한 사람인 것처럼.”


비꼬거나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묻는 말이었다.


나보다 네가 더 힘들 게 뻔한데, 어떻게 그렇게 멀쩡할 수 있냐는 듯이.


“그러고 보니 요새 볼 때마다 얼굴이 좋은 것도 같고. 민혁씨, 뭐 좋은 거라도 먹어? 나도 좀 가르쳐 주라.”


그의 너스레에 미소짓다 문득 한 마디를 건넸다.


“김 주무관님. 그렇게 많이 피곤하세요?”

“진짜 죽겠어. 이번에 규정이 또 바뀌는 바람에, 어제 다시 읽어보느라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니까? 근데도 다 못 봐서 큰일이야. 오늘도 당장 민원 밀려올 텐데······.”


기다렸다는 듯 한탄을 쏟아내는 김영준 주무관.


그의 손에는 두꺼운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아마 저것도 빙산의 일각일 거다. 저런 게 몇 권이나 더 있을 테니까.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제가 주문이라도 외워 드릴까요?”

“주···, 뭐?”

“주문이요. 안 피곤해지는 주문.”


김영준 주무관은 멍한 눈을 끔벅거렸다.


얘가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지? 혹시 장난치는 건가?


“제가 예전에 배운 적 있거든요. 일종의 최면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실 이렇게까지 할 건 없지만, 너무 피곤해 보이는 그에게 살짝 도움을 주고 싶었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선임이기도 하고. 또 마침 궁금한 게 있기도 하고.


‘타인을 돕는 것’과 ‘인과율’의 관계 말이다.


“뭐? 최면?”

“네.”

“나 원, 무슨 소릴 하나 했더니. 에이, 나 그런 거 안 믿어. 전부 다 사기 아니면 플라시보 효과 아니야.”

“김 주무관님.”

“으응?”

“그냥 속는 셈 치고 한번 받아보시죠.”


내 눈빛에서 뭔가를 느낀 걸까. 김영준 주무관이 흠칫하는 게 보였다.


망설이지 않고 밀어붙였다.


“자자, 우선 눈 감으시고요.”

“아니······.”


고개를 뒤로 빼는 그의 팔을 부드럽게 잡았다.


황당한 얼굴의 그는 이내 헛웃음과 함께 눈을 감았다. 나를 믿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라도 잠시 눈꺼풀을 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대충 아무 말이나 섬겨 주문을 외웠다.


“당신은 지금부터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모든 고민은 훨훨 사라지고, 복잡한 머리는 맑아질 것입니다. 지금부터 하나, 둘, 셋하면······.”


원래는 여기서 ‘레드 썬’이 나와야겠지만, 내 경우에는 조금 다르니까.


“명료한 정신(clarity of mind).”


우우웅ㅡ!


저레벨 주문임에도 마력을 조금 낮췄다. 너무 효과가 뛰어나도 이상할 것 같아서였다.


은은한 마력이 김영준 주무관의 머리에 스며들고.


“···이제 눈 뜨셔도 됩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무거운 눈꺼풀을 올렸다.


알쏭달쏭한 표정이다. 아직은 실감이 안 날 것이다. 약간 현타라도 왔는지 고개를 휘휘 흔들었다.


“이제 끝이야?”

“네.”

“나 참. 난 솔직히 민혁씨가 이러는 게 더 신기해. 원래 이런 스타일이었어?”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어쨌든 뭐··· 고맙다고 해야 하나? 마음이라도 잘 받을게.”


시큰둥하게 말한 김영준 주무관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점심시간.


내 자리로 부리나케 달려오는 발소리가 있었다.


“민혁씨! 민혁씨!!”


볼 것도 없이 김영준 주무관이었다.


“민혁씨! 이거 뭐야?”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감추며 모른 척 물었다.


“뭐가요?”

“아까 그 최면인가 뭔가 말이야! 이거 진짜 효과 있는 거였어?”

“그러셨어요?”

“아니, 사실 막 엄청나게 대단한 건 아닌데······.”


오묘한 표정을 짓던 그가 재차 말했다.


“진짜로 머리가 좀 맑아진 것 같아. 안 외워지던 규정도 잘 외워지고. 오늘 민원도 엄청 스무스하게 잘 처리했어.”

“그러셨군요.”

“그러셨군요가 아니라! 진짜 딱 물어보면 대답이 딱딱 떠오르더라니까? 나 고딩 때로 돌아간 줄 알았어. 그때는 머리 겁나게 잘 돌아갔거든. 내가 수능만 안 망쳤어도 진짜······.”

“하하······.”


끝내 웃어버리고 말았다.


“가자, 민혁씨.”

“어디를요?”

“점심시간인데 밥 먹으러 가야지. 내가 맛있는 거 살게. 그 최면 그것도 좀 물어보고.”


김영준 주무관은 마치 보물단지 안듯 나를 붙잡았다. 꼼짝없이 붙잡혀 센터를 나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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