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들고 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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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한
작품등록일 :
2024.07.28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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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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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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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하는 우연한 선행

DUMMY

<을지로3가역 앞 던전의 영향으로 교통이 혼잡합니다.>


<구로 공구 상가에 나타난 던전이 시효를 끝으로 소멸하였습니다.>



<연일 공략되지 않아 불안감을 조성했던 여의도 국회의사당 근방의 던전이 공략 3일 만에 클리어되었습니다.>



지하철 내부, 광고 영상이 나와야 할 모니터 화면에는 던전 공략 상황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국회의사당 터질까 봐 아주 난리였겠구먼.”

“결국에 랭커 최무강까지 불렀다지 뭐야.”


어느 순간 던전은 대중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받아들여졌다.


“하, 참. 각성자 새끼들은 지원금 처받으면서 왜 이렇게 꿈뜬 거야? 던전 하나 클리어하는 게 그렇게 어렵나?”

“말을 말 게, 어린이 수준의 고블린이나 쳐 잡는 놈들한테도 지원금을 매달 따박따박 주기나 하고 말이지!”

“던전청 놈들부터 때려죽여야 해.”

“각성 못 한 사람,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복 받은 각성자 새끼들.”


한산한 점심 무렵, 술이 거나한 상태로 지하철 좌석에 앉은 두 중년 남성은 각성자를 거칠게 험담했다.


“거 말이 좀 심하시네. 듣는 각성자 기분 나쁘게.”


반대쪽에 앉은 노란 머리의 젊은 남성이 그들의 대화에 제동을 걸었다.


“넌 뭐 하는 새끼야? 뒈지고 싶어?”


술에 취한 두 남성은 당장 일어나 싸울 기세였다.


“자신 있으면 쳐보든가. 각성자 폭행하면 가중처벌 되는 거 알지? 쳐봐! 쳐보라고!!”


각성자는 국가에서 특별 보호, 육성하는 아주 중요한 인적 자원이다.


이렇듯 10년 전 갑자기 나타난 던전은 우리 사회를 꾸준히 변화시키고 있었다.



***



평일 정오 무렵, 출근하는 사람도 퇴근하는 사람도 없는 지하철역은 한산하기만 했다.


“후우, 후우, 늦었어! 늦었어!”


물류센터 오전 알바를 끝낸 사우진은 다음 일을 하기 위해 편의점으로 급히 이동 중이다.


지하철역 가파른 계단.


큰 캐리어를 들고 힘겹게 올라가는 할머니를 발견한 우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승강기를 찾지 못하신 건가?’


이상함을 느낄 새도 없이 번개처럼 계단을 뛰어오른 우진은 할머니 옆에 다가섰다.


“캐리어 들어드릴까요?”


혹시라도 오해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선한 미소를 안면에 장착하고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고마워요. 젊은이, 그러면 부탁해요.”


할머니는 인자한 웃음과 함께 선뜻 캐리어를 건네주었다.


읏차!


어떤 게 들었는지 모를 캐리어는 매우 무거웠고 계단 중간까지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어떻게 들고 올라왔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렇게 한 칸 한 칸 힘든 내색 하지 않기 위해 표정을 관리하며 계단을 오른 우진은 출구에 다다르자, 할머니에게 캐리어를 건네드렸다.


“요새 젊은이 같지 않네.”

“아마, 누구라도 이렇게 도와드렸을 거예요.”

“고마워요. 젊은이.”

“다음부터는 저 아래 있는 승강기를 이용하세요.”


계단 아래를 손으로 가리킨 우진은 머리에서 흘러내린 땀 방울을 손으로 닦으며 방긋 웃어 보였다.


“다음부터는 그리로 다녀볼게요. 정말 고마워요.”


인자한 할머니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럼, 조심히 가세요.”


그리고 이날은 유독, 이상한 일들이 많았다.


편의점으로 가는 오르막길. 파지를 잔뜩 싣고 올라가는 할머니의 수레를 끌어드리고, 한적한 공원. 술 취해 벤치에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해 드렸다.


또,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엄마한테 급히 전화해야 한다며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하였고, 길 가다 떨어진 지갑을 주워 인근 파출소에 갖다 드렸다.


오늘따라 이상한 일이 자꾸 생긴다고 생각한 우진은 편의점 출근 시간에 늦어버렸고, 전 타임 알바생의 매서운 눈초리를 조용히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출근 후 옷을 갈아입은 우진은 선입·선출 상품 정리와 식품의 유통기한을 전부 확인한 다음, 날짜 지난 삼각김밥 두 개를 가지고 카운터로 돌아왔다.


“후··· 오늘 무슨 날인가? 별일이 다 있었네.”


삼각김밥 두 개를 야무지게 먹고 굶주렸던 배를 가볍게 퉁퉁 치며 포만감을 즐기던 그때.


띠링 띵띵 띵.


문이 열릴 때마다 울리는 종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어서 오세요.”


혹시나 김 가루가 묻었을까 조심히 입 주변을 손으로 툭툭 턴 우진은 입구 방향으로 가볍게 인사를 건넸고, 그 앞에 낯익은 얼굴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지하철 계단에서 봤던 할머니?’


“낮에 봤던 젊은이가 맞았네.”

“아, 아. 어르신.”


몇 시간 만에 다시 본 할머니는 놀랍도록 화려한 옷차림이었다.


“이 근처 사세요?”

“일이 생겨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에요.”

“아, 그렇구나. 여기서 다시 보니 반갑네요.”


우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카운터 접이식 책상을 위로 열고 할머니 근처로 다가갔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물건 사러 들어온 게 아니에요.”

“그러면요?”

“아까는 정말 고마웠어요. 떠나기 전에 선물이라도 하나 주고 싶어서 말이지.”

“선물이요?”


선물이라는 단어에 우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별것은 아니지만, 잘 써주길 바래요.”

“아니에요. 뭐 받으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


우진은 손사래를 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자, 어서 받아요.”


할머니의 손가방에서 나온 두 개의 상자.


“꼭, 집에 가서 열어보도록 해요.”


다시 한번 강하게 손사래 치던 우진은 할머니 손에 들린 두 개의 작은 상자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이걸···.”


우진은 갑작스러운 선물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동안 젊은이가 쭉 해오던 선행의 대가라고 생각하세요.”


할머니는 이 세상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의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인간의 선한 마음은 아주 가끔 신을 감동시키기도 하지요.”

“.......”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할머니의 말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편의점에 들어와 이상한 말과 함께 상자 두 개를 주고 떠난 할머니의 뒷모습을 한동안 멀뚱히 바라보던 우진은.


“근데··· 내가 여기서 일하는 건 어떻게 아셨지?”


그저 우연이라 치부하며 조금 전 일을 가볍게 웃어넘겼다.



***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빌라촌.


우진의 집은 그곳에 있다.


좋게 말해서 원룸, 나쁘게 말하면 단칸방에 날짜 지난 편의점 음식이 작은 밥상 위에 조촐하게 차려졌다.


“오늘도 매우 매우 수고했다, 우진아.”


스스로에게 건넨 위로의 말.


특별히 급여일이라 퇴근할 때 맥주를 산 우진은 작은 PC모니터를 TV처럼 바라보고 앉아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켰다.


크하!


한 달여 만에 먹는 맥주라 그런지 시원함과 함께 청량한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다.


“하아, 이 맛에 일하지.”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우진은 소소한 것에 행복감을 느꼈다.


“아! 선물!”


맥주를 한 모금 더 들이켠 우진은 그제야 생각이 난 듯 가방에 넣어온 두 개의 상자를 꺼냈다.


“이런 걸 받아도 되나···.”


누구라도 했을 작은 일에 보상을 받는다는 게 살짝 부끄러웠다.


“뭐, 주셨으니.”


우진은 포장을 뜯고 책상 위에 있는 커터 칼로 상자에 붙은 테이프를 갈랐다.


“어?”

“응?”

“아···!”


너튜브에서나 보던 물건이 상자 속에 있어 당황한 우진은 그 물건을 천천히 꺼내보았다.


푸른빛깔의 길쭉한 돌.


돌 중앙에 의미를 해석할 수 없는 글자가 진한 푸른색으로 쓰여있는···.


우진은 이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푸른색, 물리계 각성석.”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각성석은 매우 고가에 거래되는 물품이었기 때문이다.


벌린 입을 채 다물기도 전에 허겁지겁 다음 상자를 개봉했다.


검은빛깔의 길쭉한 돌.


“이번엔··· 스킬··· 석···.”


각성자의 스킬이 담겨진 매우 특별한 돌이다.


“이··· 이것들을 왜···.”


가벼운 선행의 대가치고는 너무 과했다.


지금 당장 던전 마켓에 올려도 어림잡아 1억 5천만원은 넘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누누이 말씀하셨던 게 떠올랐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당장 비용이 없어 보일지라도 나중에는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한다는 뜻.


작은 선행만으로 이 비용이 다 치러졌을까?


아마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가 어떤 이유로 우진에게 이것들을 줬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스치는 기억.


-인간의 선한 마음은 아주 가끔 신을 감동시키기도 하지요.


정말, 신이 존재하는 걸까?


우진은 손에 쥔 맥주가 미지근해지는지도 모른 채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맥주가 손에 있다는 걸 인지한 바로 그 순간.


띠리링!

아까 켜놓았던 너튜브에서 알림이 울렸다.


삶의 낙.


유일한 즐거움.


일과의 마무리.


구독 알림 해놓은 [오늘도 던전] 채널에서 영상이 새로 올라온 것이다.


매일 보는 공략 영상이라 새로울 건 없었지만, 그럼에도 귀신에 홀린 듯 마우스를 쥔 오른손이 영상을 클릭했다.


영상 속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마스터 등급 각성자인 최무강이 있었고, 한편의 판타지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두두두두두—


광활한 대지 위 지축을 뒤흔드는 요란한 발소리.


끊임없이 몰려드는 흉포한 마물.


그 앞에 대검 한 자루 덩그러니 둘러메고 적 앞에 선 최무강의 모습.


그는 두렵지도 않은 듯 마물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정면으로 곧장 달려 나갔다.


인간의 몸으로 상상하기 힘든 속도.


그가 횡으로 휘두른 대검에 앞서 달려오던 마물 여럿의 상·하체가 분리되었고 녹색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마물의 비명이 난무하는 혼돈의 대지.


그럼에도 최무강은 눈꺼풀 하나 움직이지 않고 마물을 베어 넘겼다.


베기로는 만족하지 못한걸까.


그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지더니 몸이 점점 붉은 기운으로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아아!


세계 최정상 테너처럼 웅혼한 소리를 내뱉으며, 검을 바닥에 내리꽂자.


두두두둑.


파괴적인 힘이 파동처럼 퍼져나가 주변에 있던 마물 모두를 싸늘한 주검으로 만들었다.


하!


밀려오는 마물의 파도 속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지만, 최무강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랭킹 1위이자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강자다웠다.


잠시 후 마물 수백이 그에게 모두 몰살되었다.


이제 남은 건 강함을 줄기줄기 뿜어내며, 느릿하게 걸어오는 거대한 마물 하나.


최무강의 검이 태양처럼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던전청은 여러분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각성자 등록은 1588-■■■■ 또는 www.■■■■.■■■로 신청하세요. 오늘도 대한민국과 던전청은 각성자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라는 자막이 흘러나오며 영상이 종료되었다.


항상 이런 식이다.


덜 닦고 나온 느낌.


밥먹고 배고픈 그런 느낌.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


각성자의 능력은 대외비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아 더 보여드릴 수 없다는 던전청의 해명도 있었지만, 그들은 매번 엄청난 항의를 감당해야만 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절대, 저렇게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입 밖으로 내뱉어 본 우진은 맥주를 한 모금 더 훌쩍였다.


“그냥··· 팔까?”


가장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1억 5천만원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돈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각성 연금?”


사람들이 각성자를 욕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


속칭 각성 연금.


각성자로 등록만 해도 일상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정부에서 최소 월 100만 원이라는 돈이 통장에 꽂히며, 각성 등급이 오를수록 지원금은 더 많아진다.


‘1억 5천만원이면 월 100만 원씩 대략 12년이면 만들 수 있는 돈이야.’


13년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무조건 이득이다.


우진은 각성석과 스킬석의 시세가 떨어지지 않은 지금, 판매하기 좋을 때라고 생각하면서도 각성자를 동경해 왔던 자신에게 두 번 없을 기회가 찾아온 것에 대해 고민했다.


“각성자라······ 각성자···.”


맥주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하루에 몇 명의 각성자가 죽거나 다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매일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


정말 해도 될까?


맥주의 알싸한 끝맛에 취기가 살짝 올라오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자신에게 술김이라는 핑계를 대고 싶었다.


우진은 푸른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각성석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그러다.


그러다가.


각성석을 쥔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퍼석.


잘게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손에 있던 각성석은 연기처럼 사라졌고.


띠링!


후회해도 이미 늦은 일.


「각성하였습니다.」


선행에 대가로 각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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