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들고 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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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한
작품등록일 :
2024.07.28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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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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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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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를 넘어

DUMMY

어두운 방.


우진은 침대에 누워 있다.


침대 위에서 몸을 돌릴 때마다 매트리스가 삐걱거리며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휴···.”


오늘도 한숨만 나오는 하루였다.


이틀 전, 송도 던전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우진은 마음속에 잔뜩 쌓인 불안과 두려움을 겨우 억누르고 있었다.


‘나, 진짜 살아 돌아온 건가?’


벌떡 일어나 방을 한 바퀴 돌아다녔다.


벽에 걸린 작은 거울을 보며 멍하니 자신의 모습도 바라봤다.


거울 속 남자는 여전히 초라했다.


세상이 변한 지 10년이 지났고, 그 변화 속에서 각성자로 살아가게 된 지도 10일째가 되었다.


‘각성한 지 열흘이면 이제 겨우 시작인데··· 왜 이렇게 겁이 나지?’


각성 이후 처음 찾아간 던전이 문제였다.


송도 던전.


이른바 ‘상급 던전’으로 분류된 곳이었는데···.


처음으로 던전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는 고블린 정도를 상대할 거라고 예상했다.


‘잘못 들어간 게 화근이었지.’


하지만 그곳에서 우진이 마주한 것은 엘리트 오크와 변종 오크 무리 그리고 브락스라는 무시무시한 보스였다.


우진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천장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송도 던전'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다.


그곳에서 죽을 뻔했던 경험은 잊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우진은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간단한 식사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싱크대 옆에 놓인 라면 봉지를 집어 들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김치 한 접시를 꺼내고 젓가락을 준비하면서 어깨를 풀어줬다.


평소보다도 무겁게 느껴지는 몸은 우진을 괴롭혔다.


“뭐, 대단한 거 없잖아··· 겨우 라면 끓이는 건데.”


물을 넣고 면을 풀어가며 혼자서 투덜거렸다.


끓는 물이 넘칠 듯 부글부글 거리는 소리가 주방을 가득 채웠고, 그 소리가 우진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잠시나마 진정시켰다.


한동안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우진은 라면이 거의 다 끓었다고 생각해 불을 줄이고 면을 휘저었다.


후. 후.


뜨거운 면을 불어가며 젓가락을 들어 한 입 먹었지만, 라면이 이미 불어버린 상태였다.


“이렇게 맛없을 수도 있나···.”


우진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혼잣말을 했다.


“라면까지 나를 배신하네.”


조금씩 늘어지기 시작한 라면을 입안에 우겨 넣고, 기계적으로 씹기 시작했다.


라면을 씹는 그 순간에도 머릿속에는 던전의 장면이 떠올랐다.


오우거 브락스의 거대한 주먹, 자신을 죽이려 했던 그 순간들.


힘겹게 목구멍으로 라면을 넘겼다.


“젠장··· 정말 그때 죽을 뻔했지.”


우진은 라면을 남기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더 이상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후···.”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깥에서는 사람들의 소음과 자동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평화로움이 오히려 우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불과 며칠 전, 그가 경험한 던전의 긴장감과 혼란스러움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다시 던전에 들어가도 괜찮을까?’


혼란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던전청에 가볼까.”


간 김에 나무도 보고 풀도 보고 던전청 사람들도 보고.


그리고 던전에서 주운 마정석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진은 던전청으로 갈 준비를 하기 위해 빠르게 샤워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었다.



***



버스는 덜컹거리며 던전청으로 향했다.


우진은 창밖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진짜··· 던전은 지옥 그 자체였지.’


평범한 이들이 던전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실을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우진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뉴스를 검색했다.


화면에는 ‘화개장터 파티, 송도 던전 클리어!’이라는 제목이 떴다.


기사에는 화개장터 파티가 송도 던전의 보스를 어렵게 처치하고 상급 던전을 완벽하게 클리어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우진은 뉴스를 보며 자신도 그 던전에 있었음을 떠올렸다.


‘정말 대단하네. 그 괴물 같은 브락스를 쓰러뜨리다니.’


우진은 자신이 그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겼다.


버스가 목적지에 다다르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다가갔다.


“여긴 여전하네.”


던전청 정문은 각성자들로 북적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고, 그중 몇몇은 각성자 파티를 나타내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쳐 들어가자, 우진은 던전청 특유의 풀 내음이 느껴졌다.


일주일 만에 다시 온 던전청은 푸르름이 변하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린 끝에 상담 창구에 앉은 여직원이 우진을 맞이했다.


우진은 가방에서 마정석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거, 팔려고 왔습니다.”

“낡은 등급의 마정석이네요. 이 정도 무게면··· 40만 원에 매입이 가능합니다.”


여직원은 저울에 올려놓은 마정석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40만 원.


던전에서 목숨을 걸고 얻어낸 이 작은 돌멩이가 40만 원의 가치라니, 적은 금액이었지만, 우진에게는 필요한 돈이었다.


‘이제 돈도 생겼고···.’


송도 던전 참여 포상금과 스바이오 후원금은 매달 말일 지정된 통장으로 정산된다.


의도치 않게 중급 아니, 상급 던전에 들어가는 바람에 300만 원의 거금이 들어올 예정이기도 했다.


우진은 던전청을 나서며 그동안 묵혀둔 긴장감을 조금씩 풀어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자신이 다시 던전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복잡했다.


살아남기 위한 또 다른 도전이 곧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던전청을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진의 스마트폰 벨소리가 오랜만에 울렸다.


화면을 확인하니, 발신자를 알리는 프로필에 ‘나지연’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송도 던전에서 도와줬던 인천 연합 파티의 파티장이었다.


우진은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동안 잠시 망설였다.


우진과 나지연은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기에 그녀의 연락이 뜻밖이었다.


결국, 우진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사우진 씨! 안녕하세요. 저 나지연입니다. 기억하시죠?”


밝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우진은 잠시 당황한 듯 대답했다.


“아, 네. 기억하죠.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사실, 송도 던전에서 정말 큰 도움을 받았잖아요. 그래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우진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이 한 행동이 떠올랐다.


던전에서 나지연과 그녀의 파티가 위험에 처했을 때, 나서서 도와줬다.


그리고 그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 그때 일이요··· 별거 아니었어요.”

“아니에요. 정말 덕분에 저희 파티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그래서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한 번 만나서 인사드리고 싶어요.”


우진은 그 제안에 잠시 고민했다.


던전과 관련된 사람과 만나야 한다는 것이 우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 만남이 다시 던전에 도전할 용기를 얻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좋··· 아요. 시간과 장소는 어떻게 할까요.”

“정말요? 다행이에요. 그럼 제가 장소를 정해서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때까지 푹 쉬세요!”


나지연은 기쁜 목소리로 답했다.


전화를 끊은 후 우진은 잠시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던전에서의 기억이 떠오르며 다시 한 번 마음이 복잡해졌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서서히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우진은 나지연과 집 근처 별다방에서 만났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받아, 천천히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


잔이 테이블에 닿는 소리와 함께, 짧은 침묵이 그들 사이에 흐르기 시작했다.


나지연은 던전에서 봤던 그 강인한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그녀의 흰 피부와 늘씬한 몸매는 오늘따라 더욱 눈에 띄었고, 던전에서 피투성이로 마물을 상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우진은 그녀의 외모가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하게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며, 머릿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우진에게 있어서 그날 던전에서의 경험은 아직도 생생했다.


브락스의 거대한 주먹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정말 고마웠어요, 우진 씨."


나지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잔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때 당신이 아니었으면 우리 파티는 전멸했을 거예요."


우진은 잠시 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별거 아니었어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에요."


우진의 말에 나지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브락스... 그 보스를 혼자 상대하는 건 정말 대단했어요. 저희는 그저 살아남기만 했는데, 우진 씨는 끝까지 싸웠잖아요."


우진은 그녀의 칭찬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찬사에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려고 한 것뿐이에요. 던전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하잖아요."


나지연은 그 말에 살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던전에서는 누구나 살아남기 위해 싸워요. 하지만 그걸 해내는 사람이 많지 않죠. 그 점에서 사우진씨 당신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우진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던전에서의 강인한 모습과는 다르게, 지금의 나지연은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 여유로움 속에 그날의 공포와 긴장이 어딘가에 감추어져 있었다.


그녀 역시 그날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때 많이 힘들··· 었죠?"


우진이 물었다.


나지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힘들었어요. 사실, 아직도 그때 일이 꿈처럼 느껴져요. 우진 씨가 없었으면 지금 이렇게 이야기할 기회도 없었겠죠."


우진은 대답 대신 잔을 들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다가 피식 웃었다.


이 짧은 대화가 얼마나 큰 힘을 줄지 몰랐지만, 이 만남을 통해 자신이 조금 더 나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화가 조금 더 이어지며, 그들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던전 밖에서의 삶, 각성자로서의 고충, 그리고 일상 속에서 그들이 느끼는 작은 소소한 즐거움까지.


우진은 점점 더 나지연과의 대화에 몰입하게 되었고, 그녀 역시 조금 더 편안하게 대했다.


"우진 씨, 솔직히 말해도 돼요?"


나지연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실 처음에 우진씨가 우리를 도와줬을 때, 정말 놀랐어요. 그렇게 용감하게 브락스의 앞을 막는 모습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우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던전에서는 다들 그렇게 하잖아요."

"그래도... 저는 그게 우진씨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나지연은 우진과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우진씨는 진짜 강한 사람이에요. 그건 분명해요."


잠시 그녀의 눈빛을 피하다가, 다시 잔을 들었다.


그녀의 말이 우진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던전에서의 경험은 우진을 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하게도 만들었다.


"강한 사람이라...."


우진은 작게 중얼거렸다.


"저는 그냥... 살아남기 위해 나섰을 뿐이에요."


나지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대단한 거예요.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우진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말 속에서 자신이 그동안 놓치고 있던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던전에서의 경험을 계속해서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 경험이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이제는 좀 더 자신감을 가져봐야겠네요."


우진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나지연도 웃으며 잔을 들었다.


"그럼, 앞으로의 던전에서도 잘 부탁드릴게요."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커피가 얼마 남지 않은 잔을 들어 마셨다.


던전에서의 긴장감과 공포는 이제 어느 정도 사라졌고,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 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지연과의 만남은 우진에게 트라우마를 조금씩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던전에서의 공포와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이제 그것을 조금 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강해졌음을, 그리고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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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하급 던전(1) 24.09.08 24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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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던전 브레이크(2) 24.07.30 75 4 14쪽
3 던전 브레이크(1) 24.07.29 75 3 15쪽
2 사이드라고 불립니다 24.07.28 81 4 15쪽
1 누구나 하는 우연한 선행 24.07.28 9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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