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전사는 우주의 황제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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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4.08.01 11:35
최근연재일 :
2024.08.13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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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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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9. 방해

DUMMY

9.


기이이이이... 쿠웅!


거대한 옥타로드가 기울어지다가 쓰러진다.

흙먼지가 사방으로 날리는 가운데, 옥타로드를 쓰러뜨린 이반은 낙하산을 맨 체 천천히 착지했다.


“후우. 겨우 처리했군.”

“남자답지 못하게 낙하산이 뭔가? 그냥 뛰어내리라고, 선생.”

“... 난 너처럼 막돼먹은 신체를 가지지 못했다고. 애초에 이게 없으면 올라타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반이 클라이밍용 압축 진공빨판을 보였다.


“그런가? 뭐. 그래도 재미는 있었지?”

“재미보다는 뭐랄까. 간만에 두근거렸지. 아니. 짜릿했다 해야 하나...”

“하하하! 자기 마음의 소리를 부정하지 말라고. 선생. 내가 인정한 전사가 이런 도전을 재미없다고 느낄 리가 없어.”

“... 젠장. 그래. 인정하지. 빌어먹게 재밌었다. 네놈 때문에 내 상식마저도 박살이 나고 있는 것 같아서 혼란스럽다고.”

“거 참 잘 됐군! 선생 수준의 전사라면 상식이라는 범인들의 틀에 맞춰 한계를 정해선 안 되지. 안 그래?”

“... 하. 그래. 맞다. 맞아. 말 하난 정말 오질라게 잘하는군.”

“하지만 말보단 행동에 더 자신 있지. 후후.”


룬나임의 웃음에 이반은 자기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푸슈우우우우.


한편 두 사람이 얘기하는 동안 레이븐의 스페이스쉽이 근처에 착륙을 마쳤다.


“두 사람 다 고생했어. 이걸로 죽순보리 재배에 걸맞은 곡창지대도 확보했네.”

“예. 아가씨. 밀, 콩, 옥수수, 쌀에 이어 보리까지. 중요 곡물을 재배할 땅은 전부 확보했군요.”

“벌써 다섯 곳이나 돌았나? 난 두세 곳 정도는 더 돌아도 괜찮은데.”

“됐어. 이 정도 땅이면 SC-13 1년치 식량 재배하기엔 충분해. 오히려 너무 많이 되찾아 봐야 관리하기만 어려워질걸.”

“아씨 말이 맞다. 게다가 나도 이젠 더 못 움직인다고.”

“벌써 앓는 소리인가? 선생은 은근히 체력이 약점이군.

“... 누누이 말하지만 네놈이 괴물인 거다. 벌써 10시간이 넘도록 싸웠는데 탈진 안 하면 그게 사람이냐. 괴물이지.”

“이반 말이 맞아. 괜히 무리할 필요 없으니까 오늘은 이만 들어가 쉬어.”

“쉰다라.”


피식 웃는 룬나임.


“쉬는 것도 좋지. 그렇다면 오늘 밤은 예카테리나 아가씨의 침소에 가야겠군.”


그의 손이 레이븐의 턱으로 향했고, 레이븐은 그걸 부채로 슥 밀어냈다.


“됐네요. 너와 달리 난 이제부터가 바쁘다고. 곡창지대에 널브러진 로봇 잔해들 치우고 화전에 파종까지, 할 게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바쁜 척은. 어차피 일은 다 컴퓨터랑 로봇들이 하지 않나?”

“그 컴퓨터와 로봇을 관리하는 건 내 몫이라고. 또 네가 부순 안드로이드와 옥타로드들은 전부 호라이즌 사의 재산이야. 거기랑 대담도 주고받아야 한다고.”

“호오. 그런저런 핑계로 바쁘시다?”

“그렇다니까. 뭐.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네가 날 정말 너무너무 간절히 원한다면 짧게 시간 정도는 내줄 수 있어. 종마를 길들이는 것도 여주인의 일이니까.”

“하하하!”


당돌한 레이븐의 대꾸에 룬나임이 크게 웃었다.


“이거 참, 내가 생각보다 무서운 여자와 승부를 시작한 것 같군. 아무래도 아가씨의 마음을 빼앗기까지가 좀 길어질 것 같아.”

“... 흥. 여전히 진다는 생각은 없구나? 진짜 건방져.”

“물론. 그리고 어려운 상대일수록 이기는 보람이 있는 법이지. 좋아. 오늘은 그냥 얌전히 방에 가서 씻고 자도록 해야겠군-”

“아니... 스페이스 콜로세움으로 돌아가는 즉시... 넌 나와 죽음의 밤샘 스파링을 시작한다...”


그리 말하는 이반의 주먹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렀다.

주먹을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굳은살을 파고든 것이다.


“음? 선생은 체력이 다했던 것 아니었나?”

“... 방금 회복됐다. 지금 이 상태라면 밤새도록 널 두들겨 팰 수 있을 것 같군.”


이마에 지렁이만한 실핏줄이 돋은 채 이야기하는 이반.

룬나임이 상쾌한 웃음을 지었다.


“잘 됐군! 오늘도 많은 지도 편달 부탁한다고. 선생.”


******


“레이븐이 페르세포네의 곡창지대를 확보했다?”

“옙! SC-13 행성관측부 말로는 코마로프가의 스페이스쉽이 페르세포네 곳곳을 다니며 옥타로드들을 처리했다고 합니다.”


부관의 보고를 받은 로메오가 미간을 찌푸렸다.


“레이븐. 아니. 예카테리나 코마로프. 그 멍청한 년이 정말로 나와 식량 판매권을 두고 싸울 생각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어디서 났는지도 모를 대량의 농업 모듈들을 옮기는 정황 또한 포착됐다고 합니다.”

“스페이스 콜로세움 내부에 보관해 뒀겠지.”

“콜로세움 내부에 말씀이십니까?”

“그래. 코마로프가의 전대 가주 알렉세이 코마로프는 아주 현명한 남자였지. 과거 코마로프가의 함선이었던 것을 개조해 스페이스 콜로세움을 만들 정도로 말야. 하지만 딸 교육은 잘못 시킨 것 같군. 클클클.”


로메오가 비열하게 웃자 부관도 따라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바로 방해를 시작할까요? 곡창지대에 불을 지른다거나 화학물질을 뿌려서...”

“그럴 필요 없다. 식량은 그냥 생산하게 놔 둬.”

“예? 그러면 레이븐이 입찰에 들어오게 놔두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SC-13에서 내게 대들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지. 어차피 놈들은 입찰에서 이길 수 없다.”

“하, 하지만 입찰은 주민 투표제로 진행되지 않습니까? 저쪽에서 정말로 싼 가격에 좋은 식량을 판다면-”

“핫핫핫핫핫!”


로메오가 크게 웃었다.


“이게 숫자밖에 못 보는 자의 한계지. 이봐. 부관. 식량의 가격이나 퀄리티는 중요한 게 아냐. 중요한 건 식량을 사는 놈들이 개와 돼지들이라는 거지.”

“개와... 돼지요?”

“그래. 개돼지들의 특징이 뭔 줄 아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없다는 거야. 진실을 마주해도 받아들이는 능력 자체가 없는, 이게 텅텅 빈 놈들이라고.”


로메오가 제 관자놀이를 콕콕 찔렀다.


“개돼지들은 한 번 생각을 정하면 바꿀 줄 몰라. 훗날 그게 틀린걸 알게 돼도 바락바락 화를 내며 자기들이 맞았다고 합리화한단 말이야. 언론에서 적당히 그럴듯하게 떠들어주기만 하면 우리 식량이 비싸고 맛없는 이유는 자기들이 만들 터다. 건강이니, 브랜드 가치니 하면서 말야.”

“그, 그렇군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래. 놈들을 다룰 때 중요한 건 팩트가 아니라 권위, 자극, 반복이지. 그럼 부관. 이쯤 이야기를 해 줬으면 네가 뭘 해야 하는지 이제 눈치를 챘을 거다.”

“옙! 바로 SC-13의 방송위원회장과 식사 약속을 잡겠습니다!”

“좋아. 최소한의 업무능력은 갖췄군. 오늘 저녁으로 잡도록 해.”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집무실을 빠져나가는 부관.

로메오가 씨익 웃었다.


“후후후. 페르세포네의 옥타로드를 치워주다니 고마울 따름이군. 독점권 입찰에서 진짜 중요한 게 뭔지도 모르면서 말야.”


SC-13 주민 투표로 이뤄지는 식량 판매 독점권 입찰에서 중요한 건 식량의 가격, 퀄리티 따위가 아니다.

투표에서 중요한 건 여론과 인맥뿐!


“결국 입찰에서 지면 식량한 생산도, 페르세포네도 전부 애물단지로 전락할 뿐이지.”


여론과 인맥, 다 자기에게 밀리는 레이븐이 입찰권 경쟁에서 이길 방법은 없다고 믿는 로메오.

그가 테이블 위의 위스키병을 열었다.


퐁! 쪼르르르륵...


“하하하! 멍청한 년! 열심히 일군 곡창지대를 전부 내게 갖다바치게 생겼구나!”


낮술을 즐기는 로메오의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조였다.


******


한 달 후.


파바바바바박!


“지나치게 돌진을 고집한다! 돌진과 물러남을 섞어야 상대가 망설이지!”

“안다고, 알아!”

“전사에게 지식은 의미가 없어! 지식을 수행해야 의미가 생기는 거야!”


3주차 훈련부턴 더 이상 무쇠 너클이 쓰이지 않았다.

이반은 자신의 최고 전력인 4개의 단검, 즉 무한의 검술을 이용해 룬나임과 대련했다.

룬나임이 마나 운용에 익숙해짐에 따라 웬만큼 베인 상처에도 쉽게 회복했고, 또 마나의 흐름도 읽을 수 있게 되어서였다.


‘보인다. 아니. 보인다기보단 느껴진다. 이반이 어떠어떠한 자세를 중첩하고 공격을 연계하려는지가.’


마나의 흐름을 읽는 방법은 여럿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방식은 피부로 느끼는 것이다.

인간이 쉽게 의존하는 눈이나 귀, 코 등은 각자 담당하고 있는 감각이 너무 명확하여 마나를 느끼기 부적합하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중첩’을 사용하는 이반은 그야말로 마나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최고의 스승이었다.

마나가 먼저 피부에 닿고 그 다음에 주먹이 닿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각이 깨어나니까.


‘그렇지만 고작 3주 만에 감각이 깨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최소 반년은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그야말로 괴물 같은 성장속도를 보이는 룬나임.

이반도 사람인지라 질투가 나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룬나임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재능 있는 제자를 키우는 건 모든 스승의 로망과도 같은 일이었으니까.

이반은 룬나임이 자신의 기술을 모두 흡수하면 대체 어떤 괴물이 될지가 궁금했지만.


‘하지만 아직 한참 멀었어!’


그렇다고 스승 된 입장에서 제자에게 쉽게 져 줄 생각도 없었다.


파바바바박! 스륵.


한참을 몰아치던 이반의 단검이 룬나임의 목울대에서 멈췄다.

작게 베인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후우... 하하하! 이번에도 졌군. 실전이었으면 벌써 목숨이 몇 백 번은 날아갔겠어.”

“육체능력만 놓고 보면 넌 나를 한참 전에 능가했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전투가 너무 육체능력에 의존하고 과감해. 좀 더 냉철한 움직임을 갈고닦을 필요가 있다.”

“흐음... 28합에서 발 밟는 페이크에 크게 반응해 무게중심 앞으로 쏠렸던 거랑 43합에서 간 찌르고 위로베기를 앞으로 피하려 했던 시도를 지적하는 건가? 하긴 그 동작들은 내가 생각해도 지나치긴 했어.”


‘... 괴물 같은 자식. 이러니까 빨리 늘 수밖에.’


뭐 하나를 지적하면 바로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피드백하는 룬나임.

그야말로 탈인간적인 학습능력이었다.


“좋아. 선생. 이제 충분히 쉬었으니 한 번 더 붙어 보자고-”

“훈련은 잠시 뒤로 미루는 게 좋겠는데. 두 사람한테 전해줄 소식이 있거든.”

“아가씨!”


간만에 연무장에 등장한 레이븐.

그녀는 격무의 피로에 시달렸는지 살짝 초췌해 보였다.


“우리 아가씨 못 본 새 좀 야위었군. 그래서 전해줄 소식이란 게 뭐지?”

“별 건 아냐. SC-13 식량 판매 독점권 입찰 심사에 통과했다는 이야기지.”

“오오! 결국 통과하셨군요! 정말 잘 됐습니다. 아가씨!”

“이제 겨우 스타트 라인에 선 것 뿐인데 뭐. 그래도 같이 한 일이니까 중간 보고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레이븐이 홀로그램창을 띄웠다.


[ SC-13 식량 판매 독점권 입찰 심사 통과 대상 ]

1. (주) 로메오 푸드

3. 스페이스 콜로세움


“로메오 푸드는 딱 봐도 그 장군의 사업체로군.”

“맞아.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2달 뒤에 SC-13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투표하는데, 거기서 이겨야 5년간 식량 판매를 독점할 수 있는 거야.”

“잘 됐군요! 놈들보다 저희가 훨씬 더 싸고 좋은 물건을 공급하니 무조건 이길 겁니다!”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아.”


레이븐이 피곤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쉽지 않다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로메오. 그 늙은이가 수작질을 부린 모양이야. SC-13의 모든 방송에서 곡물공장에서 만들어진 게 아닌 자연상태의 곡물을 음해하는 프로그램들을 내고 있어. 중금속 농도니 영양이니 하면서 말야.”

“그, 그런...”

“피곤해졌어. 고기야 은하 전체가 배양육 쓰니까 똑같고, 채소나 과일도 별반 다를 바 없어. 사실상 곡물에서 밀리면 이번 투표는 패배야.”

“그럼 어떡합니까?”

“어떡하긴. 여론전을 걸어오면 우리도 여론전으로 맞서야지. 그쪽에서 지적하는 거 전부 다 팩트로 반박해서 정정기사 요구하고, 방송사랑 광고로 진실을 밝혀야-”

“하하하하!”


크게 웃는 룬나임.

레이븐이 미간을 찌푸렸다.


“... 왜 웃지?”

“아. 거슬렸다면 미안하군. 우리 똑똑한 예카테리나 아가씨께서 종종 보여주는 이런 순진무구한 모습이 귀여워서 그만.”

“... 순진무구하다? 그게 무슨 의미야?”

“대응방법이 어설프다는 거다.”

“어설퍼?”

“그래. 음해. 이간질. 거짓 정보 유포 등. 키 작고 태생이 비열한 모래원숭이 부족이 좋아할 법한 짓들이지. 이런 것들은 상대하는 방식은 따로 있다.”


상대하는 방식이 따로 있다는 눈이 커지는 이반과 레이븐.

룬나임이 피식 웃었다.


“의외로 간단한데 둘 다 모르는 눈치로군.”

“... 전혀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군. 어떤 방식이지?”

“백문이불여일견... 이라 했었나? 아무튼 그냥 내 검투사 시합을 하나 잡아라.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직접 보여줄 테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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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 고고학자 24.08.13 15 4 14쪽
10 10. 광물 24.08.12 16 4 12쪽
» 9. 방해 24.08.09 19 4 13쪽
8 8. 곡창지대 24.08.08 19 4 12쪽
7 7. 식량 24.08.07 22 5 13쪽
6 6. 우주정거장 SC-13 24.08.06 23 5 12쪽
5 5. 챔피언 24.08.05 22 5 15쪽
4 4. 자질 24.08.04 26 4 12쪽
3 3. 선생 24.08.03 34 5 14쪽
2 2. 스페이스 콜로세움 24.08.02 40 5 12쪽
1 1. 룬나임 24.08.01 64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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