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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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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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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의 법칙 #2

DUMMY

31화











“지금 브레이브스는 최고의 투수들로 넘쳐나고 있어.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그들에게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야.”


나는 나의 인생 첫 스프링캠프를 즐기기로 했다.

서둘지 말고 더블A에서 한 시즌 충실하게 보내고 다음 스프링캠프 때 [초청 선수]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네가 백건우구나. 우리가 받은 프로필과는 많이 다른데? 188센티에 82킬로가 맞아?”

“겨울에 몸을 키웠습니다. 지금은 189센티에 91킬로입니다.”


브레이브스 마이너리그 팜 디렉터 맥스가 나를 유심히 훑어보았다.

그의 별명은 ‘요다’.

작은 체구에 주름진 얼굴에 초롱초롱한 눈.

맥스는 사람을 보는 눈빛이 아니라 조교사가 경주마를 살피는 눈빛으로 선수들을 보았다.

사실 틀린 건 아니다.

우리는 브레이브스 구단주가 돈 주고 사 모은 경주마들이니까.

10마리를 사서 마이너리그에서 굴리다가 단 1마리라도 터지면 이득을 보는 게 메이저리그 장사였다.

팜 디렉터는 마이너리그 선수를 평가하고 승격을 결정하는 캠프의 최고 권력자였다.

맥스 앞에서는 트리플A 노장 선수들도 조심했다.


“건우. 이렇게 발음하는 게 맞지? 나는 너의 더블A 팀 감독이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나는 투수 코치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바로 말해. 너희 동양인들은 윗사람들을 어려워한다며? 너는 그러지 않아도 돼.”

반면 더블A 그린빌 브레이브스 폴 론지 감독과 마이클 코치는 선수들과 친하게 지냈다.


팜 디렉터가 선수들을 갈구면 감독과 코치는 토닥여준다.


이것도 마이너리그의 오랜 전통이 만들어낸 문화일 거다.

나는 나이 많은 트리플A 투수들의 불평과 불만을 흘려듣고 혼자서 차근차근 몸을 만들었다.

캠프 근처 적당한 호텔에서 혼자 지내며 매일 아침 훈련장에 가장 먼저 출근해서 오후까지 단체훈련을 하고 퇴근했다.

단체훈련 시간은 9시 30분부터 12시까지 고작 2시간 30분 정도였다.

그 후에는 그라운드 사용을 할 수 없었다.


오후에 호텔로 돌아와 낮잠을 자고 이후에는 밖에서 플로리다 관광을 했다.

맛집을 찾아다니고 카페에서 책도 읽고 오락실도 다니고 놀다가 밤에 호텔로 돌아와 유연성 운동과 튜빙 운동을 꼼꼼하게 2시간 하고 10시쯤 잠을 잤다.

오늘도 10시쯤 잠이 들려는데 호세에게 전화가 왔다.


뚜뚜- 뚜뚜-

“껀우! 나야! 호세! 잘 지냈어!?”

“어. 그래. 무슨 일이야.”

“놀라지 마. 나도 이번에 브레이브스로 이적했어! 비록 싱글A지만 스프링캠프에서 너와 함께 훈련할 거야.”

“정말?”

“내일부터 훈련장에 나가니까 기다려!”


황당했다.

미국의 그 많은 야구단 중에서 하필 내가 있는 브레이브스 산하 팀으로 호세가 이적해 오다니.

이번 생은 호세 녀석과 운명이 엮인 걸까.

반가우면서도 좀 당황스러웠는데 30분 후에 빌 에반스에게도 전화가 왔다.


“건우야! 나 빌이야! 밤늦게 전화해서 미안한데 엄청난 뉴스가 있어!”

“뭔데? 설마 너도 브레이브스로 이적했냐?”

“어. 어떻게 알았어? 나 지금 전화 받고 너한테 바로 연락한 건데.”


커널스에서 배터리를 이뤘던 에반스도 내일 우리 캠프에 합류한다고 했다.

이쯤 되면 우연이 아니라는 걸 지성인이라면 눈치채야 했다.

나는 즉시 보라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건우 군! 첫 스프링캠프는 어때요? 의욕이 앞선다고 처음부터 무리하면 안 돼. 나도 캠프 때 무리하다가 부상을 당해서 선수 경력을 망쳤거든. 물론 우리 똑똑한 건우 군은 그럴 리가 없겠지만.”


이 남자는 이른 아침이건 늦은 밤이건 에너지가 넘쳤다.


“싱글A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포수 둘이 브레이브스로 이적했어요. 호세 가르시아와 빌 에반스요. 내일 캠프에 합류한다고 합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건우 군. 내가 말했잖아요. 나는 당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돕는 친구라고. 필요한 일을 했을 뿐이니까 너무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이 저를 위해서 포수 동료 둘을 붙여줬다는 겁니까?”

“유망주 투수가 새로운 팀, 새로운 레벨에 적응하려면 포수와의 궁합이 중요하죠. 존도 내 생각에 동의하더군요. 그러니까 건우 군은 부담 갖지 말고 평소대로 훈련에만 집중하면 돼요.”


존 슈어홀츠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명 단장으로 투수왕국을 만들어낸 장본이다.

보라스 정도의 수완가라면 슈어홀츠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거다.

그 둘이 나를 이 정도로 배려했다니.


“메이저리그 투수 한 명을 키우기 위해 싱글A 선수 두 명을 붙어주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건가.”


전화를 끊고 머릿속을 정리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나누었다.


“오히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함께 승격하자.”


호세와 에반스가 캠프에서 나를 리드하며 팜 디렉터 맥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면 둘은 더블A로 승격할 수 있다.

호세와 에반스가 나 때문에 팀을 억지로 옮기게 되었다는 죄책감은 갖지 않기로 했다.


***


“마스터! 오랜만이야! 몸이 엄청 좋아졌네!?”

“호세. 너도 영어가 많이 늘었다.”

“마스터와 약속했잖아. 나도 한다면 하는 놈이라구.”


다음 날 아침.

마이너 캠프에 출근하니까 정말 호세가 있었다.

우리가 격하게 포옹하며 좀 소란스럽게 굴었는데 고참 선수 중 누구도 뭐라고 시비 걸지 못했다.

호세 가르시아(193센티, 110킬로)가 풍기는 포스가 워낙 무시무시했기 때문이다.


“건우야! 다시 만나서 반갑다!”

“에반스! 진짜 왔구나!”


잠시 후 에반스도 출근해서 우리는 포옹을 하며 격하게 서로를 반겼다.

그런데.


“이쪽은 에반스야. 여기는 호세. 둘 다 포수로 포지션이 같아. 인사해라. 앞으로 친하게 지내.”

“반. 갑다.”


두 녀석 사이에 싸늘한 긴장감이 흘렀다.

나는 졸지에 두 집 살림하다가 걸린 불륜 남편처럼 머쓱했다.

어쨌든.

둘의 가세로 나는 전보다 든든해졌다.

입소 첫날부터 마이너 캠프 클럽하우스에는 기존 선수들이 신입을 무시하고 눈치 주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내가 호세와 에반스를 호위무사처럼 거느리고 다니자 함부로 건들지 못했다.

특히 호세 녀석은 베네수엘라 향우회 모드를 가동하며 기존 중남미 선수들과 빠르게 세력을 만들었다.


“괜히 슈퍼에이전트가 아니군.”


보라스 덕분에 나의 첫 스프링캠프 적응도 쉬워졌다.


***


뻐어어어엉- !

“나이스! 공 좋고~”


마이너 캠프 입소 8일 차.

멕시코에서 돌아온 후로 첫 불펜 투구라 나는 천천히 감각을 끌어올렸다.

10kg 증량한 육체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아반떼를 끌다가 그랜저를 끄는 감각이랄까.


뻐어어어엉- !!


확실히 공에 힘은 붙었는데 면도날처럼 예리했던 제구력이 둔해졌다.


“캠프에서 새 투구 밸런스를 확실히 잡아야 해.”


마이너리그 투수 코치들과 팜 디렉터 맥스는 나를 포함한 투수와 포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너는 싱글A, 너는 더블A... 저 녀석은 가망이 없군. 퇴출해야겠어...’


속으로 등급을 매기고 있으리라.

상황이 이러니까 마이너 캠프는 긴장감이 돌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자~ 오늘 훈련은 여기서 그만! 저녁에 우리 집에서 다들 파티를 하자구. 가족, 친구들 다 데려와! 바비큐와 맥주 무한 제공이다~”

“그거 좋지!”


반대편 메이저 캠프에서는 웃음꽃이 피었다.

다들 동네 야구 하는 소년들처럼 잔디밭에서 느긋하게 공을 주고받으며 놀다가 훈련을 끝냈다.

일부 메이저리그 거물 선수들은 플로리다에 대저택을 별장으로 사놓고 스프링캠프 기간을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매일 훈련이 끝나면 지인들을 초대해 풀 파티나 바비큐 파티를 벌이곤 했다.


“와... 존나 부럽다.”

“나도 내년에는 꼭 메이저 캠프에 초청을 받을 거야.”


마이너 캠프 선수들은 부랑아 소년들처럼 부러운 눈으로 철망 너머의 메이저 선수들을 보았다.


“왕자와 거지가 따로 없네.”


캠프 9일 차.

타자들이 속속 마이너 캠프에 합류했다.

50명이 들어가도 좁은 클럽하우스에 100명이 넘는 선수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텍사스 암내와 캐리비언의 땀내가 사방에서 진동했다.

거기에 더해 초청 선수로 메이저 캠프에 참가했다가 탈락한 선수들이 돌아와서 마이너 클럽하우스는 120명의 다인종 사내들이 땀으로 젖은 몸을 부대끼는 대환장 파티가 벌어졌다.

나도 에반스와 라커를 같이 쓰게 되었다.


“제프! 돌아온 걸 환영해! 메이저 캠프에 있느라 힘들었지?”

“젠장! 약 올리지 마. 노리스.”

“요즘은 아침 9시 30분에 클럽하우스 게시판에 탈락자 명단을 붙여둔다며? 라떼는 말이야~ 그런 게 어딨어. 그냥 라커에 빨간 딱지를 딱! 붙여놨었어. 그럼 바로 가방 싸 들고 클럽하우스를 나와야 했지. 요즘 세상 참 좋아졌다~”

“시끄러워! 노리스.”

나이가 많은 트리플A 포수 노리스가 초청 선수로 갔다가 돌아온 더블A 포수 제프를 놀렸다.


“단 며칠이라도 메이저 캠프에 있어서 행복했어. 거기는 공기가 달라. 완전 다른 세상이야. 식당 메뉴도 다르고. 당신처럼 구질구질한 인간도 없지. 나는 때려죽여도 이번 시즌에 빅리그로 꼭 올라갈 거야.”

“그런데 어쩌냐? 그사이에 경쟁자가 늘어났어. 우리 동양에서 온 위대한 유망주 투수께서 전담 포수를 둘이나 데려오셨거든.”

“뭐?”

제프가 인상을 구겼다.

그는 나와 배터리를 맞출 더블A 그린빌 브레이브스 주전 포수였다.


[마이너리그의 법칙 #2]

[이곳에는 비밀이 없다.]


호세와 에반스가 들어오자 백건우가 스캇 보라스를 에이전트로 고용한 거물이며 그의 힘을 이용해 전담 포수 둘을 캠프에 데려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는 즉각 마이너 고참 선수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들은 신인 선수의 계약금과 계약 조건을 꿰고 있었고 대놓고 질투했다.


“이봐. 신입. 그 소문이 진짜야?”

“내가 부탁한 적은 없어. 내 에이전트가 보라스인 건 맞지만.”

“그럼. 틀림없겠군. 오늘 불펜에서 내가 너의 공을 받아주지. 얼마나 잘난 녀석인가 한번 확인해볼까? 어제까지 이 몸은 존 스몰츠의 공을 받았었거든. 헤헤.”


제프가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러자 120명이 북적이던 클럽하우스가 더 시끌벅적해졌다.


“일이 재밌게 돌아가네. 동양인 거물 유망주 투수님과 한때 유망주였던 포수의 대결이라! 하하하!”


자기들끼리 [제프 대 백건우] 대결에 돈을 거는 인간들도 있었다.

정확히 뭐에 돈을 거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지켜보던 호세가 다가와서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마스터. 내가 저놈 손 좀 볼까?”

“호세야~ 그러지 마. 그래도 너의 포수 선배잖아.”

“선배고 뭐고 마스터의 적은 나의 적이야.”

“호세. 제프는 나의 적이 아니야. 그러니까 너의 적도 아니지. 오케이? 괜히 문제 일으키지 말고 승격할 생각이나 해. 나와 더블A에서 배터리를 맞춰야지.”

“맞아. 마스터의 생각은 항상 옳아.”

호세가 고개를 끄덕이며 까만 눈을 반짝였다.

그 모습이 참으로 고릴라 같았다.

잘생긴 고릴라.


***


잠시 후 불펜.

포수 장비를 착용한 제프가 나에게 다가와 이죽거렸다.


“이번 캠프 와서 지금까지 포심만 던졌다며? 어디 아프냐? 언더핸드로 너클볼까지 던지신다는 분이 벌써부터 아프면 큰일인데~”


뒤에서 호세가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죽게 놔둘까?’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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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너리그의 법칙 #2 +5 24.08.30 11,306 28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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