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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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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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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핸드 투수의 평범한 패스트볼

DUMMY

32화












“내 팔은 멀쩡해. 포심 제구를 완벽하게 잡은 다음에 변화구를 던져도 늦지 않아. 나는 한국에서부터 쭉 그렇게 해왔어.”

“호오~ 언더핸드의 포심 패스트볼~ 너무 잡아보고 싶네~ 얼마나 대단하려나~”


나는 제프 뒤에서 죽일 듯 노려보는 호세에게 저리 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제프는 본인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는 줄도 모르고 싱글벙글 웃으며 포수 마스크를 썼다.

‘!’

백인 시골뜨기 같던 제프가 막상 홈베이스 뒤에 앉자 자세가 딱 잡혔다.

표적을 만드는 자세만 봐도 호세, 에반스 보다 몇 수 위였다.

괜히 메이저 캠프에 초청 선수로 갔던 게 아니었구나.


“마음껏 던져봐! 신참(영 보이)~”


나는 포심 그립을 잡고 천천히 던지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포수와 호흡을 맞추며 점점 구속을 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쒜에에에엑- ! 뻐어어엉!


포수 제프가 투구를 잡아 마운드에 있는 나에게 강속구를 던졌다.

글러브로 겨우 잡긴 했는데 하마터면 얼굴에 맞을 뻔했다.


“내가 송구는 빠른데 제구력이 영 별로여서 말이야. 헤헤.”


나는 제프가 투수 출신이라는 걸 단번에 파악했다.

이 정도면 150Km는 될 거다.

구위도 묵직해서 손이 얼얼했다.


“멋진 송구였어. 제프.”


나는 씨익 웃으며 글러브 속에서 공을 쥐었다.

검지와 중지로 실밥을 나란히 잡는 투심 그립이었다.

포심 패스트볼 제구가 잡혔으니 이제 멕시코에서 터득한 투심 패스트볼을 던질 차례였다.

팔을 아래에서 위로 휘두르며 검지와 중지로 실밥을 힘껏 긁었다.


쒜에에엑- 뻐어어어억!!!

“아악!”


직구처럼 날아오던 공이 홈베이스 앞에서 날카롭게 떨어져 포수 미트를 맞고 굴절되어 제프의 허벅지를 강타했다.


“너! 으윽! 도대체! 뭘 던진 거야!?”

“그냥 언더핸드 투수의 평범한 패스트볼인데. 왜? 잡기가 어려운가?”

“젠장. 다시 던져봐.”


제프는 괴로워하면서도 포수로서 체통을 지키려 했다.

나는 마운드에서 환하게 웃으며 다시 제프에게 투심을 던졌다.


쩌어어억- !


이번에도 브레이킹이 강하게 걸렸는데 제프가 용케 잡아냈다.

포구도 좋아서 미트에서 끝내주는 소리가 터졌다.

불펜을 돌며 투수들을 지켜보던 코치들이 미트 소리를 듣고 내 쪽으로 모여들었다.


쩌어어어억- !


투심 패스트볼을 10개 던졌다.

제프는 어느새 능숙하게 나의 공을 잡아냈다.

마운드에서 포수 마스크 속 당황한 제프의 표정이 보였다.


“건우. 다시 포심 패스트볼을 던져보겠나?”

“그러죠.”


나는 투수 코치의 명령에 다시 포심을 던졌다.

그들은 스피드건을 들이대며 나의 구속을 측정했다.


뻐어어어엉- !

“이거 봐. 투심과 포심 패스트볼 구속이 똑같아.”

“그렇다는 건...”


투수 코치들과 팜 디렉터의 표정이 밝아졌다.

[89마일]

약 143km로 싱글A 시절(138km)보다 무려 5km가 빨라졌다.

놀라운 건 포심과 투심의 속도가 비슷하다는 것.

투심은 포심보다 구속이 떨어지는 게 상식인데 나의 언더핸드 투구 메카닉에서는 구속이 똑같이 나왔다.

즉 타자가 타석에서 구속 차이로 구종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거다.

나의 포심은 우타자의 바깥쪽으로 살짝 떠오르는 궤적이었고 투심은 우타자의 안쪽으로 살짝 떨어지는 궤적이라 범타를 유도하기 딱 좋았다.


“건우를 상대하는 타자들이 앞으로 골치 좀 아프겠어.”

“이봐. 제프. 피치 터널은 어떤가?”

“홈베이스 앞까지 똑같은 궤적으로 날아옵니다. 타자가 구별하기 힘들어요.”


투수 코치의 물음에 제프가 답했다.

말투를 들어보니 나에 대한 악감정은 이제 사라진 듯.


“건우. 이제 다른 구종을 던져봐. 오늘부터는 괜찮지?”

“물론이죠. 코치님.”


나는 나의 훈련 방식을 이해해준 마이클 투수 코치에게 고맙다는 사인을 보내고 스프링캠프에서 첫 변화구를 던지기 시작했다.


“먼저 하드 슬라이더야. 변화 각이 날카로우니까 긴장해.”

“흥. 던지기나 해.”


제프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긴장했는지 엉덩이를 들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척-

나는 코치들과 팜 디렉터가 지켜보는 가운데 셋 포지션에 들어갔다.

LA 베벌리힐스 체육관에서 매일 땀을 흘리며 만든 탄탄한 하체와 엉덩이, 등 근육이 정교한 기계처럼 협응했다.

언더핸드 투구 메카닉의 핵심은 하체와 상체 에너지가 단전에서 충돌하며 일으키는 꼬임.

일명 꽈배기 동작에 있다.

꼬임으로 만든 에너지를 스트라이드로 전진시키며 손가락 끝에서 폭발시켰다.


쒜에에에엑- 뻐어어어엉!!

“오!”


손끝을 떠난 하드 슬라이더가 바깥쪽으로 날카롭게 꺾였다.

검지로 종적 움직임을 억제해서 횡으로만 변화했다.

포수 제프가 겨우 잡아냈다.

[88마일]

구속이 대략 142km가 찍혔다.

지금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투수 코치들이 가장 잘 알았다.


“망할! 슬라이더까지 이 구속이 나오다니. 실전에서 엄청난 무기가 되겠어.”

뻐어어엉- ! 뻐어어어엉- !


나는 하드 슬라이더도 10개를 던졌다.

제프는 언제부턴가 입을 굳게 다물고 나의 공을 잡는 데만 집중했다.


나의 포심, 투심, 슬라이더 구속이 87~89마일로 비슷하다는 건 타자들이 타석에서 공이 살짝 솟을지 살짝 떨어질지 옆으로 날카롭게 꺾일지 알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뻐어어엉- !


이어서 77마일짜리 너클 커브를 10개 던졌다.

코치들에게 ‘라이징 커브’라는 찬사가 터져 나왔다.

그다음은 모두가 기다리던 나의 위닝샷.

스크류볼 차례였다.


뻐어어어어어엉- !

[85마일]


우타자의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다가 마지막에 슬쩍 안으로 들어오는 스크류볼 궤적에 다들 경악했다.

나의 모든 구종이 멕시코에 가기 전보다 빠르고 묵직하게 업그레이드되었다.


“에인절스 버베이시 단장은 도대체 왜 이런 투수를 이적시킨 거지?”

“아무렴 어때! 중요한 건 우리가 땡잡았다는 거야!”


코치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마이너 캠프에서 코치들이 선수를 대놓고 칭찬하는 일은 없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브레이브스에서도 중용될 거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끝났으면 좋으련만 마지막 너클볼이 말썽을 부렸다.


파아아앗- ! 투우우웅- !

“젠장.”


너클볼 10개를 던졌는데 단 1개도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지 않았다.

10개 중 4개는 회전까지 걸려버려서 홈런 맞기 딱 좋은 공이었다.


“손가락에도 살이 쪘나?”


나는 마지막에 찜찜하게 불펜 투구를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짝- 짝- 짝- 짝-

“좋았어. 오늘은 여기까지. 너클볼이 좀 아쉽지만 그래도 굉장한 투구였어. 버베이시 단장에게 장미꽃과 감사카드를 보내고 싶을 정도야.”


투수 코치들이 박수까지 치며 나를 칭찬했다.

반면 ‘요다’ 팜 디렉터는 입을 꾹 다물고 메모장에 뭔가를 한참 적었다.


“내가 실례했다. 건우. 사과할게. 너는 전담 포수를 거느릴 자격이 있는 투수야.”

“제프. 허벅지는 괜찮아?”

“나는 포수야. 당연히 괜찮지. 그보다 도대체 그런 변화구는 어떻게 익힌 거야? 나도 야구판에서 몇 년째 굴러먹고 있지만 처음 봤어. 언더핸드에~ 스크류볼에~ 너클볼이라니~ 휴우~”

“그런 것 치고는 잘 잡던데?”

“헤헤. 고마워.”


제프는 나의 공을 받아보고 즉시 꼬리를 내렸다.

베베 꼬인 녀석은 아닌 모양이다.

오늘 첫날인데도 나의 공에 금방 적응하는 걸 보면 실력도 뛰어났다.


“오늘 나의 너클볼은 빵점이었어. 겨울에 10킬로 증량을 했는데 뭔가 영향을 준 모양이야.”

“10킬로 증량? 휘유~ 굉장하군. 보통 투수였으면 투구 밸런스 잡는 데만 1년이 걸렸을 거야.”

“제프. 너 예전에 투수였지?”

“그건 어떻게 알았어?”

“네가 던진 공을 받아보고 알았지. 투수끼리는 알잖아.”

“그랬구나. 맞아. 나는 대학 때까지 투수로 활약했어. 나름 드래프트 상위픽으로 브레이브스에 입단해서 나름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경기 중에 그게 딱 걸려버렸어.”


제프가 두 손가락을 까닥까닥하며 웃었다.

투수라면 모두가 아는 그 동작.


“입스?”

“응. 경기 중에 한번 내야석에 던져버리는 송구 실수를 했는데 그 후로 어쩐 일인지 1루로 공을 던지지 못하게 되어버렸어. 극복하려고 1년을 노력했는데도 안 되더라. 정신과 상담까지 받아봤는데 소용없었어. 그때 마이클 코치님의 권유로 포수를 해봤는데 어라. 마음이 편안해지고 이게 적성에 더 맞더라구. 그래서 그때부터 홈베이스 뒤에 눌러앉게 되었지.”


제프가 포수를 맡은 건 투수 입스를 고치기 위한 임시 처방이었는데 결국 포지션 변경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둘이 앞으로 언제까지 호흡을 맞출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잘해보자.”

“일단 연습경기에서부터 파란을 일으키자. 철조망 건너편의 왕자님들이 깜짝 놀라게 말이야.”

“메이저 캠프 녀석들? 좋지! 건우! 어쩐지 너랑은 잘 맞을 거 같아!”


나는 제프와 손을 잡으며 어깨를 부딪쳤다.

이렇게 나에게 3번째 마누라가 생겼다.


***


2주간의 단체훈련을 마치고 스프링캠프는 연습경기 모드로 돌입했다.

우리 마이너 캠프는 총 30번의 연습경기를 했다.


자체 청백전부터 시작해서 점점 상대 팀 레벨을 올리며 경기를 치르는 시스템이다.

플로리다 지역 고교 팀부터 시작해서 대학팀들과 독립리그 팀들을 상대하고 마침내 우리처럼 플로리다에 캠프를 차린 다른 마이너리그팀들과 경기를 했다.


첫 연습경기 전날 밤.

나는 호세와 에반스를 데리고 숙소 근처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사주었다.

내가 혼자 호텔방을 쓰는 반면 호세와 에반스는 3~4명의 선수와 셰어하우스 생활을 했다.

둘이 좀 불쌍했지만 그렇다고 24시간 붙어 있고 싶지는 않았다.


“제프랑 호흡을 맞춰보니까 어때? 그 인간 포수는 잘해?”


호세와 에반스 둘이 눈빛을 초롱초롱 빛냈다.

원래 둘은 불편한 관계였는데 제3의 마누라 제프가 등장하며 어쩐지 같은 편이 되었다.


“에반스 너만큼 수비가 좋아. 그리고 투수 출신이라 송구는 최강이야.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거지.”

“또 뭐가 있는데?”

“타격. 제프가 이번에 초청 선수로 메이저 캠프에 참가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타격 때문이었어. 지난 시즌 더블A에서 3할 6푼을 쳤다나 봐. 홈런도 제법 날리고.”

“3할 6푼?”


에반스는 0.360이란 숫자에 기가 팍 죽었다.

반면 호세는 불끈했다.


“나는 이번 연습경기에서 4할을 칠 거야. 그래서 반드시 마스터와 배터리를 이룰 거야.”

“호세야. 너는 그 전에 더블A 승격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마스터. 내일 연습게임 기대해. 나는 승격할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기대할게. 호세.”

베네수엘라인 포수와 미국인 포수 그리고 한국인 투수가 플로리다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며 각오를 다졌다.

내일 우리는 적으로 만났다.


***


[브레이브스 싱글A 대 더블A]


연습경기 당일 아침.

오늘 3이닝을 던지기로 통보받은 내가 그라운드에서 몸을 풀고 있는데 타격 코치가 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건우. 오늘 타석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간단하게 타격 준비를 해두도록 해. 갑자기 배트 휘두르다가 다칠 수 있으니까.”

“타석이요?”


그때 서야 나는 깨달았다.

브레이브스는 내셔널리그 소속이고 아직 1999년이라 투수도 타석에 들어가야 한다는 걸.


“내가 타석에 들어갈 수 있단 말이지...”


남일고 전직 4번 타자의 피가 끓어올랐다.


작가의말

구독, 추천, 좋아요, 재밌어요! 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건우의 스프링캠프는 일요일에도 계속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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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로커와 세탁소 +10 24.09.05 10,641 305 12쪽
36 메이저리그 최악의 남자 +7 24.09.04 10,899 289 12쪽
35 마이너리그의 법칙 #3 +6 24.09.03 10,860 290 12쪽
34 종이 한 장의 공포 +9 24.09.02 11,045 284 12쪽
33 플로리다의 3월 하늘 +9 24.09.01 11,292 287 12쪽
» 언더핸드 투수의 평범한 패스트볼 +12 24.08.31 11,478 298 12쪽
31 마이너리그의 법칙 #2 +5 24.08.30 11,306 287 12쪽
30 기다려라. 내가 간다. 투수 왕국. +7 24.08.29 11,611 28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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