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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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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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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의 법칙 #3

DUMMY

35화












“당연하지. 나는 벌써 잊었어. 다들 내 걱정할 시간에 상대 투수나 신경 쓰도록 해. 우리가 점수를 더 내면 이기는 게 야구니까. 브루스의 무릎을 보라구.”


3회초.

내가 워낙 훌륭한 투구를 해서 야수들도 감정 이입한 모양이다.

나는 타자들에게 브루스의 버릇을 알려줬고 다들 그의 무릎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타석에 들어갔다.

그러나.


뻐어어엉! 뻐어어엉!


결과는 연속 삼진 아웃.

지금 브루스의 공은 구종을 알아도 못 칠만큼 대단했다.

척-

“가 볼까.”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9번 타순.

나는 배트를 가볍게 휘두르며 좌타석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8명의 타자가 브루스의 구위에 눌려 단 1명도 1루를 밟지 못했다.


“오오~ 저 녀석. 우투좌타인가?”

“타석에서 뭔가 해보려는 거 같은데.”


내가 좌타석에 들어가자 트리플A 선수들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3분 전.

더그아웃 앞에서 내가 배트를 들고 진지하게 타격을 준비하자 수석 코치가 조언했다.


“그냥 서 있다가 들어와. 부상 당하면 안 되니까. 절대로 풀스윙하지 마.”

“네. 네.”


물론 나는 코치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럴 거라면 왜 투수가 타석에 들어가야 하는가.

타석에 들어간 이상 타격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던져봐라. 브루스. 남일고 4번 타자의 무서움을 보여주마.”

뻐어어엉- ! 뻐어어엉- !

“스트라이크 투!”


순식간이었다.

브루스의 포심 패스트볼이 바깥쪽 낮은 코스에 연속으로 꽂혔다.

구속이 140대 후반은 될 듯.


‘이런 걸 친다구?’


메이저리그급 투수의 공을 타석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구속과 구위 거기에 제구력까지 좋아서 뭘 어떻게 해볼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크하하! 내가 뭐랬어?”

“완전 얼이 빠졌네. 하하하.”


트리플A 팀 더그아웃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브루스가 3구를 던지며 무릎을 들어 올렸다.

약간 앞으로 길게.

‘!’


따아아아아악- !


나는 가운데로 몰린 커브를 힘껏 걷어 올렸다.

높게 떠오른 타구가 플로리다의 푸른 하늘로 날아갔다.


텅- !

“홈런!”


타구가 우측 담장을 살짝 넘겼다.

10킬로 몸무게 증량이 아니었다면 우익수 뜬공 아웃이 되었을 거다.


[트리플A 1 대 1 더블A]


나는 담담하게 그라운드를 돌아 홈으로 들어왔다.

반면 동료들은 난리가 났다.


“뭐야!? 너! 타격도 할 줄 알았어?”

“내가 다 알려줬잖아. 투수의 무릎을 보라고. 저런 실투도 못 때리면 야구 그만둬야지.”


브루스는 잔뜩 열 받은 표정으로 다음 타자를 잡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나는 수석 코치의 뜨거운 시선을 피해 마운드로 올라갔다.

싱글A에서 이미 경험한 마이너리그의 법칙 #3.


[코치의 말을 잘 듣는 선수가 승격하는 게 아니라 야구를 졸라 잘하는 선수가 승격하더라.]


코치의 조언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이다.

모든 결정은 선수가 내려야 했고 그에 대한 책임도 선수가 졌다.

그것이 이 나라의 방식이었고 나는 마음에 들었다.


3회말.

첫 타자로 우타자 펠릭스가 나왔는데 너클볼을 던져보았다.

실투로 홈런을 맞았지만 오늘 너클볼 제구 감각이 괜찮았기에.


따아아악- !

“어!”


평범한 땅볼을 유격수 리키가 서둘다가 놓쳤다.

무사 주자 1루.

나는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고 다음 타자 투수 브루스를 상대했다.

누가 봐도 보내기 번트 타이밍.


티이이이익- !

“앗!”


나는 높은 투심 패스트볼을 몸쪽에 꽂았다.

놀란 브루스가 어정쩡하게 번트를 댔고 나는 뛰어가서 타구를 잡아 돌아섰다.


“안전하게 1루로 던져!”

뻐어어어엉- !


다들 1루로 던지라고 외쳤지만 나의 선택은 2루였다.


“2루에서 아웃! 1루에서 아웃! 병살타!”


내가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는데 브루스가 배트를 꼭 쥐고 나를 지나쳐갔다.

투수로서 가장 기분이 잡치는 상황.


“건우. 괜찮아? 숨 좀 돌리고 던져.”

“제프.”

“그럴 시간 없어. 빨리 받을 준비해.”


나는 포수 제프를 닦달했다.

에반스였다면 나의 의도를 바로 읽었을 텐데 제프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지금 멘탈이 흔들리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상대다.

무사 1루 찬스에서 병살타가 나왔으니까.

그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우리가 옆구리를 찔러 이닝을 끝내야 했다.


따아아악- !


타순이 돌아서 다시 1번 하워드.

몸쪽에 약점을 보인 그에게 몸쪽 너클볼을 던지자 바로 걸려들었다.


“포수 플라이 아웃! 공수 교대!”


4회초.

우리도 타순이 한 바퀴 돌았다.

타자들이 브루스의 공에 익숙해질 시점이란 뜻이다.

그리고 무릎 높이에도.


따아아아악- !


이전 이닝에서 보내기 번트 실패가 브루스의 투구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잘 던지던 브루스가 갑자기 흔들렸다는 게 중요했다.

좌우를 날카롭게 찌르던 공이 가운데로 몰렸다.


따아아아악- !

“들어와! 들어와!”

“홈~ 인! 나이스!”


[트리플A 1 대 4 더블A]


이것이 야구였다.

1회부터 나를 만나기 전까지 퍼펙트 피칭을 했던 브루스가 4회에 갑자기 난조를 일으켰고 더블A 타자들은 그를 두들겨 3점을 뽑아냈다.


“쳇. 조금만 더 때리지.”


아쉽게도 타순이 내 두 번째 타석까지는 돌지 않았다.


4회말.

나의 마지막 이닝.

트리플A 타자들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타석에 들어왔다.

오늘 경기에서 누구 때문에 이런 반전이 일어났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따아아아악- !

“유격수 땅볼! 아웃!”


타격에서 지나친 의욕은 오히려 독이 됐다.

나는 덤벼드는 타자들에게 너클볼과 투심을 던졌다.

일단 범타를 유도하다가 카운트가 차면 승부구로 스크류볼을 던졌다.


뻐어어엉- !

“헛 스윙! 삼진 아웃!”


롬버드는 오늘 두 번 연속으로 스크류볼에 당했다.

4회를 무실점으로 마치고 4이닝 1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오는데 구경하던 팬들이 박수를 쳐 주었다.


짝- 짝- 짝-

“잘 던졌다. 건우.”


더그아웃에서도 코치와 동료들이 나를 칭찬했다.

내가 오늘 좀 던졌구나 싶었다.

그러나.


[더블A 5 대 9 트리플A]


내가 내려가자마자 승부가 뒤집혔다.

트리플A 타자들이 화풀이하듯 더블A 구원투수들을 두들겼고 경기를 역전시켰다.

더블A 타자들은 노련한 트리플A 구원투수들의 변화구에 눌렸다.

클래스의 차이가 확실히 느껴지는 게임이었다.


“그래도 야구는 재밌어.”

졌지만 기분은 좋았다.

내 공이 트리플A 레벨에서도 통한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게임을 뛰어서 즐거웠다.

그중에서도 나를 흥분시킨 건 바로 타격이었다.


“이렇게 된 거 오타니보다 20년 먼저 투타겸업 시도해봐?”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아직도 짜릿한 손맛이 남아있는 손바닥을 비벼보았다.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마이너 캠프에 등장한 슈퍼 유망주 투수. 한국인 백건우. 매 경기 놀라운 투구를 이어가. 이번 시즌 중 빅리그 깜짝 승격 가능?]


마이너 캠프 연습경기 일정 절반을 소화했다.

30경기 중 15경기.

나는 6경기에 나와서 21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 1.28을 기록했다.

타석에서는 3타수 무안타...

투타겸업은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평균자책보다 놀라운 건 투구 내용이었다.

21이닝 동안 볼넷 0개.

마이너 투수 중 이닝당 최소 투구수 기록.

한번은 슈어홀츠 단장이 직접 찾아와서 내가 던지는 걸 지켜보고 갔었다.

당장 빅리그로 부르지는 않겠지만 단장의 머릿속에 내 이름이 입력된 건 분명했다.

애틀랜타 지역 신문에도 [Gun-Woo Paik]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물론 구석에 사진도 없는 작은 기사에 불과했지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포수 유망주 호세 가르시아. 15경기 타율 0.482, 홈런 15개, 도루 14개. 마이너리그 야수 중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쳐.]

“호세. 이 녀석 제법이네.”


호세의 대폭발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연습경기 첫날부터 미친 타격 페이스로 맹타를 몰아치며 더블A 승격이 유력해졌다.

호세는 아직 부족한 타격 기술을 압도적인 힘으로 보완했다.


“마스터. 내일 저녁은 내가 살게.”

“뭐? 왜? 호세 너 돈 없잖아.”

“매일 얻어먹기만 해서 미안해. 나도 가끔은 보답을 해야지.”


나는 매일 훈련이 끝나면 호세와 저녁을 먹었다.

메뉴은 대부분 티본 스테이크.

밥값은 언제나 내가 냈다.

나는 호세의 마스터였으니까.

귀여운(?) 야생 고릴라 한 마리를 키운다고 생각하면 돈이 아깝지 않았다.

또 호세를 데리고 다니면 괜히 시비 거는 놈들이 없어서 나도 편했다.


“호세야. 형은 돈이 꽤 있어. 앞으로도 더 많아질 예정이고.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는 없지만. 나는 안 챙겨도 되니까 너희 가족이나 잘 챙겨.”


알고 보니 호세는 소년 가장으로 한화 100만 원도 안 되는 마이너 월급을 전부 고향 베네수엘라로 보내고 있었다.

그는 부모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랐고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공부를 잘해서 의사가 꿈이라고 했다.


“스테파니를 꼭 미국으로 불러서 의대 공부를 시킬 거야. 그 아이는 우리나라에 너무 부족한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어 해. 그러려면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해. 나중에 빅리거가 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도 큰 집을 지어드릴 거야.”

“짜식. 기특하네.”


호세에게 부쩍 애정이 생긴 이유는 그의 인생사를 들은 후였다.

그의 아버지는 고향에서 꽤 유명한 갱이었는데 그가 5살 때 총에 맞아 죽었다고 했다.

이후 엄마는 생활고에 못 이겨 아이들을 두고 잠적.

졸지에 고아가 된 호세와 여동생 스테파니는 할머니 손에 키워졌다고.


“나에게는 가족이 전부야. 그들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바칠 수 있어.”


전생에서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이런 마인드는 위험하다.


“각오는 좋아. 하지만 목숨까지는 바치지 마. 가족들도 너를 잃으면 너무 슬플 테니까. 그때는 돈도 소용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지금 행복해야 해. 무조건 희생하는 건 가족을 위해서도 안 좋아.”

“마스터는 역시 현명해.”


호세 녀석이 이제는 남동생처럼 귀여웠다.

다만 가슴 한쪽이 싸한 건 전생에 내가 [호세 가르시아]라는 선수를 메이저리그에서 본 기억이 없다는 거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중남미 선수들이 호세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빅리그에 도전했을까.

이것도 인연인데 이번 생에서는 내가 호세의 멱살을 붙잡고 이끌어 함께 빅리거가 되기로 했다.

그런데.

호세가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내일 저녁에 고향 선배의 파티에 초대받았거든. 일행 1명 동행 가능하니까 마스터도 같이 가자.”

“잠깐. 보답을 하겠다더니 고작 남의 파티에 가서 공짜 밥을 먹자는 거야?”

“마스터. 그렇지 않아 가보면 좋을 거야.”

“고향 선배라구? 누구의 파티인데?”

“에디 페레즈.”

“뭐!?”


에디 페레즈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포수였다.

그렇다는 건.


“브레이브스 1군 선수들이 파티에 많이 올 거래. 마스터가 좋아하는 매덕스도 올걸? 둘은 우리 같은 짝꿍이니까.”

“... 매덕스가 온다구.”


어릴 때부터 누가 나에게 “가장 존경하는 투수가 누구냐?”라고 물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렉 매덕스]라고 대답했었다.

페드로 마르티네스, 랜디 존슨, 로저 클레멘스, 톰 글래빈... 아니고 나의 원픽은 언제나 매덕스였다.


그런데 내일 그를 만난다구?

파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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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좋은 리듬이야 +7 24.09.15 7,717 25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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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로켓맨이 로켓 쏘는 소리 +9 24.09.13 8,686 247 12쪽
44 정말 끝내주는 너클볼 +16 24.09.12 9,218 3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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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배트보이까지 그를 따르더군요 +9 24.09.09 10,177 3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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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로커와 세탁소 +10 24.09.05 10,634 305 12쪽
36 메이저리그 최악의 남자 +7 24.09.04 10,892 289 12쪽
» 마이너리그의 법칙 #3 +6 24.09.03 10,857 290 12쪽
34 종이 한 장의 공포 +9 24.09.02 11,040 28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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