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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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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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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맨이 로켓 쏘는 소리

DUMMY

45화












“루키가 아니라 빅리그 경력 20년 차 베테랑 같았어.”


백건우는 더그아웃의 공기를 읽고 적절하게 자신의 언행을 조절했다.

루키 주제에 자신의 행동을 조리 있게 설명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본인의 투구 철학을 관철했다.

그러면서도 타협의 여지를 두었고 마지막에는 스스로 고개를 숙이며 다툼을 정리했다.

그동안 실력은 있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루키 투수나 빅리그 분위기에 겁먹은 루키는 많이 보았다.

그런데 백건우처럼 팀 전체를 보는 루키는 처음 봤다.


“우리 팀에 합류하면 확실히 영향력을 미칠 거야.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콕스 감독에게 백건우는 아직 물음표였다.

1군 상황이 어렵다면 도박을 걸 수도 있겠지만 그가 이끄는 브레이브스는 투수 왕국으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막강한 투수들이 완벽한 기계처럼 잘 돌아가고 있는데 굳이 물음표가 붙은 투수를 기계 속에 집어넣을 이유는 없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험을 거는 건 그가 이룩한 브레이브스의 방식이 아니었다.


“내일 경기에 투입해보면 답이 나오겠지.”


내일은 뉴욕 양키스와 시범 경기가 잡혀 있었다.


***


같은 시각.

조인태 기자는 잔뜩 풀이 죽어있었다.

[마이너리그의 자랑스러운 한국인 백건우] 기획 기사가 편집장에게 커트 되었기 때문이다.


“편집장님. 이건 반드시 먹힌다니까요. 그 친구 캐릭터도 좋고 외모도 출중하고 무엇보다 스토리가 좋아요. 우리가 스타를 만들 수 있다니까요.”

“인태야. 니가 미국물을 오래 먹더니 감을 잃었구나. 야. 한국인들은 성공스토리를 좋아해. 아무도 모르는 미국 시골에서 지지리 궁상떠는 이야기가 아니라~ 누가 이걸 읽고 앉아있냐? 회삿돈으로 미국살이하니까 너무 안락해서 심심해? 이딴 거 쓸 시간에 찬오 기사 하나를 더 써. 대중들이 원하는 건 그거니까.”

뚝-


조인태는 내심 기대하고 있을 백건우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걱정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백건우에게 전화가 왔다.


“어. 그래. 건우야. 잘 지내지?”

“예. 기자님. 제가 오늘 빅리그 팀에서 첫 등판을 했거든요. 혹시 궁금하실 거 같아서요.”

“뭐야!? 그런 중요한 일을 왜 끝나고 알려주는 거야!? 당장 가서 취재했을 텐데!”

“박찬오 선배 담당인데 바쁘지 않으세요?”

“그. 렇긴 하지만.”


백건우는 어제 갑자기 콜업 전화를 받았고 오늘 말린스를 상대로 2이닝 1실점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일 탬파로 이동해서 양키스와 경기를 해요. 지난 시즌 우승팀이기도 하고 우리 브레이브스와 악연이 있어서 재밌는 대결이 될 겁니다. 저도 불펜 대기인데 혹시 몰라서 전화 드렸어요.”

“그래. 고맙다. 내가 꼭 시간 내서 취재 갈게.”


조인태는 기획 기사가 짤렸음을 끝내 말하지 못했다.

그가 모르는 게 있었다.

백건우가 들었으면 오히려 좋아했을 거라는 걸.

그런 속마음을 알지 못하는 조인태는 미안함에 출판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이너리그의 자랑스러운 한국인 백건우]가 단행본으로 나와서 베스트셀러가 되면 편집장 녀석 표정이 어떻게 변할까... 두고 보자.”


단행본 분량 내용을 뽑으려면 내일 당장 탬파에 가서 양키스전을 직접 봐야 했다.

백건우의 말대로 브레이브스 대 양키스는 흥미로운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


“인터리그는 도대체 어떤 놈 머리통에서 나온 거야? 인터리그 때문에 내셔널리그팀과 아메리칸리그팀이 유일하게 만나던 월드시리즈의 신성함이 사라져 버렸어.”

“개소리하지 마. 야구는 결국 돈이야. 누가 신성함 따위를 신경 쓴다고 난리야?”

“난 양키스 경기는 무조건 대환영. 최고 인기팀이라 전국 중계방송이 될 확률이 높잖아.”


다음 날 아침.

나는 1군 버스를 타고 양키스 스프링캠프가 있는 탬파로 이동했다.

마이너리그 고물 버스와는 달리 투수조와 타자조 2대로 움직여서 좌석이 넉넉했다.

버스도 최신형이고 내부 시설도 최첨단이었다.

투수조 선수들은 2시간을 이동하며 엄청 수다를 떨었다.

다들 이러쿵저러쿵해도 뉴욕 양키스를 상대한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양키스 녀석들. 오늘 박살을 내줘야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90년대 최강팀으로 불린다면 뉴욕 양키스는 미국 최고의 야구팀으로 통했다.


두 팀은 1996년 월드시리즈에서 만났다.

브레이브스는 2승을 먼저 거두며 기세를 올리다가 내리 4연패를 당하며 양키스에게 우승을 빼앗겼다.

이때부터 [브레이브스는 큰 경기에 약하다.]는 이미지가 제대로 박혀버렸다.

반면 뉴욕 양키스는 브레이브스를 제물로 오랜 암흑기를 끝내고 화려하게 부활하며 왕조를 재건했다.

브레이브스와 양키스는 각각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 소속이라 역사적으로 월드시리즈가 아니면 만날 일이 없었는데 96년 월드시리즈가 끝나고 97년부터 생긴 인터리그 때문에 이제는 정규리그에서도 가끔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전에 없던 [악연의 라이벌 의식]이 막 생긴 셈이다.


“거의 다 왔다. 내릴 준비 해라.”


양키스 스프링캠프 지역에 접어들자 어딘가 엄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LA다저스 캠프가 서부 특유의 낭만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였다면 양키스 캠프는 동부 특유의 오만함과 견고함이 느껴졌다.


“그야말로 악의 제국다운 스프링캠프네...”

[조지M. 스타인브레너 필드]


악의 제국을 만든 악명 높은 구단주의 이름이 붙은 야구장에 버스가 멈춰 섰다.

브레이브스 선수들이 꽤 비장한 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려 경기를 준비했다.

어제 말린스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나도 마조니 코치의 지시에 따라 등판 준비를 했다.


“양키스는 팬들의 관심도 굉장하구나.”

“돈 많은 늙은 양키들이 은퇴하고 여기 내려와서 많이들 살 거든. 그 양반들 연금을 양키스 캠프에서 봄마다 쪽쪽 빨아먹는 거지.”


남부 출신 선수들은 확실히 동부 팀 양키스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부유해 보이는 노인들이 양키스 모자를 쓰고 벌써부터 야구장을 찾아와 선수들을 구경했다.


“건우. 오늘도 1~2이닝 던질 거야. 어제처럼 싸우지 말고 경기 전에 포수와 소통을 충분히 해놓도록 해.”

“알겠습니다.”


오늘 선발 포수는 그렉 마이어스.

팀의 3번째 포수였다.

그는 30대 노장으로 로페즈와 페레즈를 제치고 주전 포수가 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

캠프가 끝나고 트리플A로 내려갈 가능성이 높아서 이번 양키스전이 마이어스에게는 빅리그에서 살아남을 마지막 기회였다.


“너도 매덕스처럼 빠른 리듬으로 투구하는 걸 좋아한다며? 나도 환영이야. 마운드에서 꾸물럭거리는 투수는 나도 싫거든. 최대한 너에게 맞춰 볼 테니까 자신 있게 던져.”

“알겠습니다.”


마이어스의 첫인상은 아주 좋았다.

오히려 내가 그를 도와주고 싶을 정도였다.


뻐어어어어엉- !

“뭐야. 이 소리는?”

“뭐긴 미스터 로켓맨이 로켓 쏘는 소리지.”


뉴욕 양키스가 슬슬 발동을 걸었다.

오늘 선발 투수 ‘로켓맨’ 로저 클레멘스가 홈팀 불펜에서 몸을 풀었다.

그러자 우리 선발 존 스몰츠도 불펜에서 기어를 한 단계 올렸다.


쩌어어어억- !!

“미트 소리 좋고~”


탬파의 따스한 햇볕 속으로 두 전설의 투수가 던지는 강속구 소리가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클레멘스...”


올 시즌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 클레멘스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제2의 전성기를 예고했다.

전생에서 나는 한때 그의 열정을 존경했었다.

그 무시무시한 승부욕과 오만에 가까운 프라이드도.

내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유형의 투수였지만 [이런 남자야말로 진정한 투수다.]라고 존경했다.

지독한 약쟁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같은 투수로써 당신은 용서할 수가 없어.”


나는 타자보다 같은 투수의 약물 복용에 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 배신감의 최정점에 클레멘스가 있었다.

마운드에서 언제나 당당했던 그가 뒤로는 더러운 약물의 힘을 빌리고 있었다니.


“왜 그래? 건우. 클레멘스한테 사인이라도 받고 싶은 거야? 하긴 투수라면 누구나 그렇겠지.”

“설마요. 저딴 더러운 인간의 사인 따위는 필요 없어요.”

“...”


내가 클레멘스의 투구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농담을 했던 마이어스가 당황했다.


***


경기 전 팀 연습이 끝나고 휴식 후 게임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원정팀이라 1회초 공격을 시작했다.

관중은 대부분 양키스 팬들이라 진짜 원정 온 느낌이 났다.

양키스 경기만 편파 중계하는 유명한 중계팀까지 합세해서 분위기를 더했다.


뻐어어어엉- !

[로저 클레멘스!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이 참 잘 어울리네요. 첫 타자부터 삼진 아웃을 잡아냅니다!]

[구속이 작년 토론토에 있을 때보다 더 빨라졌어요.]


클레멘스는 연습경기라는 의식이 없었다.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데 중독된 사람처럼 처음부터 엄청난 스터프로 타자를 몰아붙였다.


[3번 치퍼 존스까지 1루 땅볼로 물러나면서 삼자 범퇴. 가볍게 이닝을 종료합니다.]

[휘유~ 벌써부터 이런 구위면 선발 20승은 거뜬히 따내겠네요.]


“...”


한동안 나도 모르게 정신을 놓고 클레멘스의 투구를 지켜보았다.

직접 보니까 그가 왜 약물을 빨았는지 심정은 이해는 갔다.

저렇게 마운드에서 순수한 힘으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건 모든 투수의 로망이니까.

약물을 빨아서라도 저 쾌감을 유지하고 싶었을 거다.


뻐어어어엉- !

[이번에는 존 스몰츠가 기세를 올립니다. 양키스의 첫 타자는 척 노블락. 이런 강속구를 쳐낼 수 있을까요!?]


1회말.

클레멘스의 공이 스몰츠의 가슴에도 불을 지른 모양이다.

스몰츠도 강속구를 앞세워 척 노블락을 몰아붙였다.


따아아아악- !

[빗맞은 타구! 엄청난 구위에 밀렸어요!]


그러나.

첫 타자부터 야구의 신이 장난을 쳤다.

빗맞은 타구가 2루수와 우익수 사이에 떨어졌다.


[못 잡았어요! 노블락이 1루에 진출합니다. 이게 안타로 기록됩니다.]

투수가 기분 잡치는 상황.

다음 타자 데릭 지터가 등장하자 양키스 모자를 쓴 노인들이 박수를 치며 애들처럼 좋아했다.


“어째... 느낌이... 쎄 한데...”


경기 전.

스몰츠의 팔꿈치가 좋지 않아서 오늘은 직구 위주로만 던질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천하의 스몰츠라도 99년 양키스를 패스트볼 하나로 억제하는 건.


따아아아악- !

[지터가 3구를 밀어칩니다! 우중간에 떨어지는 안타! 무사 1, 3루!]


쉽지 않아 보였다.

이어서 폴 오닐이 나와 좌중간에 큼지막한 플라이를 때렸다.


[그 사이에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옵니다. 1점 선취! 1대0으로 앞서가는 양키스.]

[브레이브스 0 대 1 양키스]


스몰츠가 4번 버니 윌리엄스를 3루 땅볼로 잡아냈지만 그사이에 지터가 2루에 진출했다.

2사 2루에서 데이비스가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짧은 안타를 때렸는데 스타트를 절묘하게 끊은 지터가 홈까지 쇄도했다.


[지터! 송구와 동시에 홈으로 슬라이딩~~~ 세이프! 2대0! 1점을 더 뽑아내는 양키스!]

[굉장합니다. 지터는 연습경기라는 걸 잊은 걸까요?]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상대 팀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지금 양키스는 선수 모두가 승리만을 위해 하나의 생물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뭐야. 이 팀은...”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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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명절 연휴 보내세요. : )


백건우의 활약은 추석 연휴에도 쉼 없이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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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좋은 리듬이야 +7 24.09.15 7,719 250 12쪽
46 여기는 너의 놀이터가 아니야 +18 24.09.14 8,130 241 11쪽
» 로켓맨이 로켓 쏘는 소리 +9 24.09.13 8,689 247 12쪽
44 정말 끝내주는 너클볼 +16 24.09.12 9,218 313 12쪽
43 로페즈만 아니면 돼 +23 24.09.11 9,327 334 11쪽
42 이것이 강철 멘탈의 비결 +9 24.09.10 9,818 291 12쪽
41 배트보이까지 그를 따르더군요 +9 24.09.09 10,181 316 12쪽
40 왜 이름이 낯익지? +12 24.09.08 10,507 28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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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마이너리그의 법칙 #3 +6 24.09.03 10,859 29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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